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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컬러화보]

머리글

제1부 고통을 맛보게 하지 않는 교육은 없다
제1장 나의 고향 프랑크푸르트 … 15
제2장 유년의 기억 … 49
제3장 군정장관 트랑 백작 … 87
제4장 성서와 나 … 119
제5장 첫사랑 그레트헨 … 166

제2부 젊은 날의 소망은 나이들수록 풍요로워진다
제6장 누이동생 코르넬리아 … 221
제7장 독일 문학과 나 … 263
제8장 병마로 인한 귀향 … 313
제9장 두번째 고향 슈트라스부르크 … 358
제10장 나의 친구 헤르더 … 400

제3부 나무는 자라도자라도 하늘까지 닿지 않도록 되어 있다
제11장 셰익스피어에의 심취 … 455
제12장 프리데리케로부터의 해방 … 508
제13장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루어지다 … 565
제14장 ‘슈투름 운트 드랑’ 문학 서클의 형성 … 610
제15장 신교의 죄악론 … 646

제4부 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신을 거스를 수 없다
제16장 릴리와의 처음 만남 … 684
제17장 릴리와의 약혼 … 702
제18장 코르넬리아의 이별 권유 … 729
제19장 라바타의 『관상학』 … 756
제20장 잃어버린 사랑―릴리 … 780

괴테의 생애 『시와 진실』 … 797

저자 소개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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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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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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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74.4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72.1만자, 약 23.1만 단어, A4 약 451쪽 ?
ISBN13
9788949720173

출판사 리뷰

자서전 범주를 넘어선 뛰어난 문학작품

『시와 진실』은 문학사에서 일반적 자서전의 범주를 넘어 뛰어난 문학작품으로서 평가받고 있다. 위대한 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적나라하게 펼친 점에서뿐만 아니라 성실한 내면 성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시와 진실』은 괴테 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 작품에서는 괴테의 내면세계와 작품의 도정을 보여 주고 있기에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이 자서전은 괴테 자신에게도 일종의 교육적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이 자서전을 쓰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를 반성하고 정리하고 철저하게 심사숙고했던 것이다. 이 점은 괴테가 『시와 진실』이 자신의 청춘을 일깨우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큰 평가를 받고 있는 제1부와 제2부는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의 괴테의 성장배경과 내면 성찰의 기록으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훌륭한 인생지침서가 된다.

자서전 문학의 독보적 작품

『시와 진실』은 괴테가 살아온 시대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인간본성을 지배하는 법칙과 외부의 세계를 다스리는 법칙이 서로 자기를 주장하며, 거기에 일종의 힘의 장이 나타난다.

작품 전체를 통해서 나타난 그의 전개방식은 서사시적이고 독자에게 정보를 주며, 병이나 양심의 가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삶의 즐거움을 이끌어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이야기 사이에 가끔 짧은 성찰이 삽입되어 특별한 것, 체험되는 것, 보편적인 것, 교육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글을 쓰는 작가만이 자서전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괴테에게 이 자서전 형식은 매우 잘 들어맞는다. 그것은 괴테가 자연과학자, 바이마르 관료, 예술이론가, 무대감독, 사교가로서 체험한 다양한 삶을 자서전 안에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괴테 만년의 자서전적 작품은, 시문학이나 자연 과학과 나란히 그의 창작 세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독특한 장르이다. 세계 문학에서 괴테와 나란히 할 만한 다른 위대한 서정 시인으로 페트라르카와 횔덜린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괴테의 극작과 나란히, 아니 부분적으로는 훨씬 위대한 극작가들로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수많은 대소설가들이 있다. 그러나 세계 문학 중 루소와 함께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에 필적할 만한 작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인류 역사상 몇 안 되는 위대한 인간의 전형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와 진실』의 그 가치는 영원한 고전으로서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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