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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카를스바트에서 로마까지(1786년 9월∼1787년 2월) 카를스바트에서 브레너까지 브레너에서 베로나까지 베로나에서 베네치아까지 베네치아 페라라에서 로마까지 로마
제2부 나폴리와 시칠리아(1787년 2월∼1787년 6월 나폴리 시칠리아 나폴리에서 헤르더에게
제3부 두 번째 로마 체류(1787년 6월∼1788년 4월) 6월의 서신 7월의 서신 보고7월 8월의 서신 9월의 서신 10월의 서신 보고10월 11월의 서신 12월의 서신 1월의 서신 로마의 사육제 2월의 서신 3월의 서신 4월의 서신 보고4월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Johann Wolfgang von Goe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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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를 탈출, 로마라는 학교에 첫발을 디딘 괴테의 첫말은, “나는 다시금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편협한 사고의 반경 속에 갇혀 지냈던 자신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식과 행동을 포함한 자아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간하기까지 상당 기간이 걸린 《이탈리아 여행기(Italienische Reise)》에는 괴테의 이러한 정신적 변화와 성숙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1786년 9월 3일부터 1788년 6월 18일까지 약 22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비록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이 여행은 괴테의 표현을 빌리면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혁신시키고 충실을 기할 수 있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괴테는 로마에 발을 디딘 순간이 제2의 출생, 진정한 재생이라고 생각했거니와,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배워 새로운 인간이 되어 돌아가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늘 탐구적인 자세를 견지했으며 비교적 만족스런 결과를 귀국 직전의 편지에 써 보낼 수 있었다. 괴테에게 있어 이탈리아는 고대의 유적과 유물을 찾아보는 관광지만이 아니었다. 공사다망했던 바이마르를 떠난 그에게 정신적 안정감을 되찾아 주고 잠자고 있던 그의 천재성을 다시 일깨워 준 장소였다. 그것은, 수년간 묵혀두었던 원고들이 현지에서 완성되거나 개작되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식물학을 위시한 자연과학의 연구에도 몰두했고 인간과 민족과 예술의 근원인 자연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기도 했다. 바이마르의 지인(知人)들에게 보낸 많은 편지에 적혀 있듯이 그는 껍질을 벗는 듯한 자각의 변화를 체험했으며, 그것은 훗날 〈파우스트(Faust)〉와 같은 대작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에너지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감행한 동기는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소년 시절부터 간직했던 남국에 대한 동경심 둘째, 바이마르의 편협성에서 도피하려는 충동 셋째,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던 예술가 정신을 되찾고 싶은 욕구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이 세 가지 소망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괴테는 로마와 나폴리만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폴리를 찾아 그 기막힌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한 달가량이나 머물다가 시칠리아 섬까지 나아갔으며, 결국은 이탈리아 체류를 연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3개월 이상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면서 괴테는 명랑하고 자유로운 나그네의 정취를 마음껏 만끽했다. 1787년 6월 6일 다시 로마로 돌아온 그는 이 위대한 세계의 학교에 1년 이상 더 체류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