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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카트린 벵사이드
장이브 를루프 I. 남자와 여자가 만날 때 1.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못하니 2. 결합의 기원 3.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으니 II. 욕망의 변천 1.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2. 사마리아 여인: 욕망하는 존재 3. 원천이 갈증과 다시 만날 때 III. 우리는 어떤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일까? 1.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2. 요구하는 사랑에서 주는 사랑으로 |
Catherine Bensaid
Jean-Yves Lel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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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생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 단 한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야.” 우리는 모두 유일한 존재를 찾는다. 그 자체로 유일한 사람, 우리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주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유일한 존재라고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일한 누군가를. 그리고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사람이 되어야 한다.
--- p.27 내게는 나 혼자 감당해야 할 고독이 있고, 그에게는 자신만의 고독이 있는 법이다. 자신의 ‘혼자 있음’을, 자신의 존재가 유일함을 인정할 때만이 비로소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유일한 존재이다. 따라서 둘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임을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열어 보이고, 그와 하나로 합쳐지기에 앞서. --- p.37 한 사람의 타인처럼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를 또 다른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를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사랑하는 게 아닐까? ‘나 자신의 또 다른 반쪽’처럼? --- p.45 우리는 그제야 다른 누군가와 ‘알게 된다는 것’은 미지의 누군가를 알게 되는 것이며, 신과 알게 되는 것임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 p.55 인간은 다른 누군가를 만날 때, 그 만남을 통해 진정한 그 자신이 된다. --- p.59 ‘사랑’이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사랑은 이제 에로스가 아닌 ‘결합’을 의미한다. 자유로운 두 영혼, 두 주체 간의 결합. 두 사람은 더 이상 상보성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결핍을 메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자체로 온전한 두 명의 주체다. 이 두 자유로운 영혼 간의 관계에서는 신성하거나 미지의 무언가가 드러난다. 이는 의존적인 사랑이거나 유혹하는 사랑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결합이다. --- p.59~60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실은 자신과 함께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 그런 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p.70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매 순간 그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 p.72 하지만 하나가 없이 다른 하나가 존재할 수 있을까?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서로 대립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기트리의 표현대로 ‘아주 가까이’ 다가가려면 때로 맞설 수도 있어야 한다. --- p.78 우리는 평생 동안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를 언제나 똑같은 사람으로 간주하면서 그의 차이점을 부인하는 것이다. 당신은 영원히 지금의 그 모습으로 머물러 있어야만 해. 상대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서로를 위한 선물이다. --- p.80~81 유한한 존재에게 무한한 것을 바랄 수는 없다. --- p.119 상대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줄 것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나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는 걸까?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걸까? --- p.120 우리는 똑같은 사람을 또 다른 사랑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시간이 감에 따라 계속 발전하고 피어나는 또 다른 사랑으로.. --- p.180 당신이 나를 만나고, 내가 당신을 만나는 날, 하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두 개의 역사가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사랑은 두 개의 역사, 서로 다른 두 개의 역사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 p.232 그러나 실제로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남자나 여자는 한탄하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사랑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밖에서 자신들에게 결핍된 사랑을 찾는다. 그들이 좇는 것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게 무엇인지 알고는 있을까? 목마른 두 사람이 만나면 그들은 서로에게 그토록 찾던 샘물이 될 수 있을까? --- p.269 내가 당신이 없이도 존재한다면, 나는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더 이상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당신과 같이 있을 때도 나 자신이고, 당신이 없어도 나 자신이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있으면 더욱더 나 자신임을 느낀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어야 하는 필요성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고픈 욕망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욕망한다, 당신이기 때문에. --- p.270 둘이 된다는 것은 단지 서로를 마주 보면서 각자 상대에게서 사랑받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둘이 된다는 것은 영감으로 충만한 사랑의 행위이며, 서로를 높이 끌어올려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사랑의 행위이다. --- p.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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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카트린 벵사이드와
철학자이자 신학자, 심리학자인 장이브 를루프가 함께 써 내려간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는 우리가 너무도 쉽게 일상적으로 말해 온 “사랑한다”라는 말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끝까지 따라가 묻는 책이다. 이 책은 사랑을 미화하거나 감정의 고조를 부추기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어 온 오해와 착각, 그리고 그 안에 숨은 욕망과 결핍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사랑할 때, 나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처음에는 타인을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곧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나’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카트린 벵사이드와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장이브 를루프는 각자의 삶과 사유를 걸고 이 질문에 접근한다. 벵사이드는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해 사랑이 실패하는 이유를 감정의 부족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말하는 주체인 ‘나’에 대해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하는 내가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는 그의 말은 이 책의 출발점이다. 장이브 를루프는 사랑을 하나가 되려는 충동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서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사랑은 결핍에서 시작되지만, 그곳에 머무를 때 집착이 된다. 이 책이 말하는 사랑은 융합이 아니라 경계를 인식하는 일이며, 동일화가 아니라 관계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는 연애의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질문 앞에 멈춰 설 용기를 요구한다. 누군가에게 “사랑해”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묻게 만드는 책.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사랑을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사랑을 말하고, 찾고, 기다리며, 때로는 도망치다 요구와 통제, 소유와 의존의 관계로 변질된 사랑 우리는 사랑에 대해 수없이 말하고, 사랑을 찾고, 기다리며, 갈망한다. 때로는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기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꿈꾸어 온 사랑 앞에서, 혹은 이미 곁에 있는 연인과 삶의 동반자에게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는 누구이며,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전체를 관통하는 출발점이자 핵심이다. 이 책은 사랑을 감정의 문제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기술로 다루지 않는다. 저자들은 우리가 타인을 향한다고 믿는 사랑이 사실은 결핍된 자신을 향한 욕망은 아닌지, 혹은 상대에게 나의 기대와 불안, 욕망을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사랑이 상대를 통해 나를 완성하려는 시도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소유와 의존의 관계로 변질된다. 특히 이 책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지점은 사랑과 욕망, 사랑과 결핍의 관계다. 사랑은 배고픔과 갈증처럼 필요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그 욕망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랑이라고 믿어버릴 때 발생한다. 상대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결핍을 채워줄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사랑은 요구와 통제의 구조로 변한다. 이 책은 사랑을 말하면서 끝까지 묻는다. 사랑하는 사람 이전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사랑은 동일화가 아니라 관계이며, 지배가 아니라 공존이다” 포르네이아와 에로스, 포르노그래피와 에로티시즘 사랑의 유형을 통해 들여다보는 ‘나’와 ‘당신’ 카트린 벵사이드와 장이브 를루프는 한 인터뷰에서 사랑의 여러 단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에서 시작해, 결핍을 채우려는 사랑, 그리고 인간을 성장시키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포르네이아와 에로스, 포르노그래피와 에로티시즘을 구분하는 대목에서 저자들은 말한다. 사랑은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도,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다고. 중요한 것은 욕망이 삶의 전부를 점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일이다. 이 책은 “사랑은 배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단정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사랑 자체는 배워지지 않지만,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사랑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은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깊이와 함께 변화하는 태도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랑을 가르치기보다,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든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가 도달하는 사랑의 결론은 융합이 아니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서는 일이다. 타자를 나와 같게 만들지 않고, 경계를 존중하며 함께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것. 타자는 결코 완전히 이해되거나 소유될 수 없으며, 바로 그 거리 속에서 사랑은 지속된다. 이 책에서 사랑은 동일화가 아니라 관계이며, 지배가 아니라 공존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는 사랑을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을 통해 우리가 ‘나’와 ‘당신’을 어떻게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은 사랑 앞에서 혼란을 겪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