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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국 근대사 산책 3
아관파천에서 하와이 이민까지 EPUB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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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 한국 근대사 산책 3 - 아관파천에서 하와이 이민까지

제1장 갈 곳을 모르고 헤매는 조선의 운명
01 고종의 아관파천
아관파천의 배경과 내막|‘김홍집·유길준 등을 잡아 죽이라’|단발령 철회|을미의병의 보수성|고종의 러시아공사관 생활|‘아관파천은 엄상궁의 작품’|아관파천에 대한 평가
02 "서유견문"의 기구한 운명
"서유견문"의 금서화|개화의 등급과 종류|오늘날의 "서유견문" 평가
03 차라리 가난이 다행이었던 민중의 삶
양반계급은 ‘면허 받은 흡혈귀’|김구의 관찰|조선인의 식탐과 폭식|조선농민의 간도·연해주 이주
04 김구의 치하포 사건
김구는 왜 일본인을 살해했는가?|사형 위기에 처한 김구|전화가 김구의 목숨을 살리다

제2장 독립신문과 독립협회의 등장
01 최초의 민간지 "독립신문"의 창간
"독립신문" 창간 배경|정동파의 역할|정부의 적극적 지원|"독립신문"의 한글혁명|"독립신문"의 역사적 의미|"독립신문"이 내세운 ‘개화’의 의미|"독립신문"의 독자|"독립신문"의 광고|"독립신문"의 사업|‘최초의 민간지’ 논쟁
02 "독립신문"의 편집정책과 방향
사실과 뉴스를 앞세운 신문|"독립신문"의 계몽주의|"독립신문"의 ‘옥시덴탈리즘’|"독립신문"의 기독교 예찬|"독립신문"의 제국주의·의병관
03 독립협회 창립, 애국가의 등장
독립문·독립관·독립공원|독립협회 논쟁|‘한국 최초의 근대잡지’ 논쟁|애국가·창가의 등장|운동회 붐
04 배재학당의 성장과 이승만
배재학당의 정부 위탁교육|이승만의 배재학당 입학|이승만의 배재학당 생활|협성회 발족|협성회의 토론회 활동|1897년 숭실학교 개교

제3장 대한제국 시대의 개막
01 고종의 경운궁 환궁
러시아 군사교관단 파견|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1년 만에 끝난 러시아 공사관 생활|정부의 "독립신문" 탄압
02 대한제국과 황제의 탄생
‘국왕 전하’→‘대군주 폐하’→‘황제 폐하’|칭제건원 찬반논쟁|칭제건원 평가|대한제국 밖의 냉소적 시선|대한제국·광무개혁 평가 논쟁|환구단의 흔적을 찾아서
03 개신교 성장의 정치학
개신교의 충군애국|교회의 치외법권적 보호 기능|"죠션크리스도인회보" "그리스도신문" 창간|크리스마스 문화의 확산
04 전화를 향해 큰절을 네 번 하다
1896년 10월 2일 최초의 전화 개통|전화를 거는 예절|‘대청전화’의 위력
05 개발권 양여, 매관매직
미국의 무관심|일본의 독식화|이권문제에 대한 "독립신문"의 변화|고종의 매관매직과 미신 사랑

제4장 민권의식의 성장
01 배재학당 "협성회회보"의 창간
협성회의 성황|이승만의 주도|최초의 배달제
02 대원군 사망, 명동성당 완공
“주상이 보고 싶다”|명동성당 완공|대원군에 대한 평가|대원군 평가와 민비 평가
03 제1차 만민공동회
1만 명이 모인 ‘만민공동회’|만민공동회의 러시아 규탄|독립협회의 자기역량 과대평가|만민공동회의 배후는 일본?|러시아의 입장|니시-로젠 협정
04 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 창간
창간 주체 이승만의 긍지|"독립신문"과의 경쟁 선언|"매일신문"의 혈기 왕성
05 미국으로 돌아간 서재필
서재필의 출국에 반대한 만민공동회|“흐르는 눈물이 한강을 이루었다”|서재필 평가 논쟁|"독립신문"의 소유권 논쟁|서재필의 제국주의·의병관 논쟁|서재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제5장 만민공동회의 도전
01 독립협회의 의회설립운동
독립협회의 상원설립운동|황국협회의 하원설립운동|안경수의 정변(政變) 미수사건|독립협회의 이토 히로부미 환영
02 "제국신문" "황성신문" 창간
1898년의 언론사적 중요성|"제국신문"의 창간 배경|"제국신문"과 외국인 용병사건|"황성신문"의 창간 배경|"황성신문"의 필진|"황성신문" 사장 남궁억의 수난
03 고종 독살음모 사건과 커피
고종의 커피 사랑|고종 독살음모 사건|손탁호텔과 커피|‘사교계의 여왕’ 배정자|커피는 서양 문물·분위기의 상징
04 제2차 만민공동회
‘평화적 혁명이 이루어졌다’|관민공동회 개최 결의|장지연과 최익현의 충돌
05 제3차 만민공동회
관민공동회와 ‘헌의 6조’|백정 박성춘의 연설|무어의 백정 인권 운동|중추원 의관 선거 공고

제6장 만민공동회의 좌절
01 익명서 조작사건
독립협회 간부 20명 체포령|11세 소학생 장용남의 ‘피를 토하는 연설’|보부상의 만민공동회 습격|2배로 늘어난 만민공동회 인원
02 김덕구 장례식 사건
황국협회의 의병 선언|의관 50명의 중추원 성립|의사 김덕구의 탄생
03 박영효의 배후 조정
온건파와 강경파의 갈등|박영효 일파에 포섭된 이승만|이승만의 과격성|만민공동회 폭력화의 배후
04 만민공동회·독립협회 불법화
종로는 ‘조선의 아크로폴리스’|‘신문지 조례’의 제정|독립협회·만민공동회의 역사적 의의|‘만민공동회는 일본이 사주해 일으킨 소요’?
05 박영효 쿠데타 음모사건과 이승만 체포
박영효의 쿠데타 음모|이승만은 최초의 권총 탈옥수|박영효의 집념
06 윤치호·이완용의 변절
윤치호의 덕원부윤직 임명 수락|윤치호의 유교 비판과 친일 논리|이완용의 독립협회 활동|이완용에 대한 긍정 평가|문명개화론의 함정
07 최시형 처형, 영학당 사건
1898년 최시형 처형|영학당의 봉기|강일순의 증산교

제7장 전차·철도와 조혼·축첩
01 전차 개통과 ‘전차 소각 사건’
한성전기회사 설립|1899년 5월 17일 전차 개통식|전차에 대한 호기심과 반감|기독교인 도륙비지 사건
02 대한국 국제 반포
‘대한제국의 정치는 전제정치’|대한국 국제 평가 논쟁|정부보다는 개신교가 더 나은 보호막
03 경인철도 개통 자전거 인력거
“철도가 공간을 살해했다!”|‘불을 뿜어내는 수레’|윤치호의 축지법?|인력거의 보급
04 "독립신문" "매일신문" 폐간
"시사총보"의 창간|"매일신문" 폐간, "상무총보" 창간|"독립신문" 폐간과 고종의 언론관|북한의 "독립신문" 평가|"독립신문" "황성신문"의 인종주의·아시아주의
05 조혼·축첩 청산운동
여성단체 찬양회 조직|"독립신문"의 조혼풍습 비판|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된 조혼|"독립신문"의 축첩제 비판|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된 축첩제
06 1890년대 말의 식산흥업·양전사업
조선은행·한성은행의 설립|대한천일은행 설립|광무 양전(量田)·지계(地契)사업

제8장 외세 지배의 심화
01 활빈당의 출현
중국 의화단의 난|경제적 침탈에 대한 저항|활빈당 평가 논쟁|일본 우익단체 흑룡회 창립
02 외국 쌀 먹으면 애비 에미도 몰라본다
1901년 안남미 수입 파동|내장원 쌀장사 논쟁|국가재정·황실재정 논쟁
03 "제국신문"과 이승만의 옥중생활
감옥에서 "제국신문" 논설 집필|이승만의 기독교 선교|이승만의 감옥 내 집필활동
04 이재수의 난
1898년 방성칠의 난|천주교의 오만과 횡포|천주교인들의 폭력 대응|천주교도 700명 사망, 이재수 교수형|박광수의 영화 "이재수의 난"|천주교의 민간풍습에 대한 적대적 태도
05 개신교·천주교의 충돌
개신교 선교사는 ‘백만장자’|천주교인의 개신교인 구타 사건|‘국가보다 기독교를 더 신뢰한다’|정길당 사건

제9장 하와이 이민
01 최초의 노동이민단 출발
솔나무 밑에서 죽어간 사람들|102명 1902년 12월 22일 인천항 출발|노예와 다를 바 없는 생활|2002년에 발견된 ‘이민자 모집 광고지’
02 영업용 전기, 공중용 전화의 등장
1900년 영업용 전기의 판촉|한국 전차·전기사업의 좌절|1902년 최초의 공중통신용 전화업무 개시|공사관 건물의 위엄 효과
03 최초의 화장장 완공
화장은 ‘왜놈들의 장법’|한국의 독특한 장례문화|의학에서의 해부 금지|아펜젤러 사망

저자 소개 1

康俊晩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인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인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권’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전17권)이 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문해력을 위한 교양국어사전』, 『권력과 복종』, 『법조 공화국』, 『인문학과 손잡은 영어 공부』(전3권), 『정치적 올바름』, 『한류의 역사』, 『미디어 법과 윤리』,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한국 현대사 산책』(전28권)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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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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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5.19MB ?
ISBN13
9788959063215

책 속으로

지독한 가난이 차라리 다행인 민중의 삶
나라가 망하든 말든 양반계급의 수탈은 계~속됐다

구한말 양반계층은 ‘면허받은 흡혈귀’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과거제도를 폐지한 탓도 있었지만, 세원이 없던 왕가(王家)에서는 벼슬을 팔아서라도 국고(國庫)를 충당해야만 했기 때문에 온 나라에는 탐관오리만 득실거리게 되었다. 벼슬을 돈 주고 샀으니 본전 뽑고 이익까지 남기는 건 당연지사, 백성을 착취하는 것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었겠는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서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당시 조선을 네 번이나 방문했던 영국인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이 비분강개하며 ‘일반 백성들의 존재 이유는 오직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그뿐인가. 당시 선교사였던 유진 벨은 ‘지구상에서 그런 억압과 착취를 견딜 수 있는 민족은 오직 한국인뿐’일 거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먹는 인종?
세계인들, 한국인의 식탐과 폭식에 놀라다

한국인들은 식사하는 데는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수다를 떨지 않는다.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밥을 채워 넣는데, 때때로 숟가락 자루로 아이의 배를 두드려 보아 꽉 찼다 싶으면 비로소 밥 먹이는 것을 중지한다. 유독 많이 먹고 빨리 먹는 한국인은 시도 때도 없이 먹길 좋아하며, 엄청나게 많은 밥을 ‘빨간 고추’와 함께 눈 깜짝하기도 전에 삼켜버린다. 왜 그렇게 먹을 것에 집착하는가? 헨리 새비지-랜도어는 폭식의 원인이 양반의 경우엔 허례(虛禮)에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다가올 굶주림에 대한 공포에 있다고 보았다.

출판사 리뷰

생각하는 역사
한국언론사 ·한국문학사 ·한국철학사 등 각 분야의 역사는 그 분야에 관계된 역사에 대해서만, 즉 언론 ·문학 ·철학에 대해서만 말한다. 물론 각 분야와 관계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은 들어가지만 역사의 큰 줄기와, 각 분야의 유기적인 관계를 조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그간 나온 책들은 너무 간결하게 압축돼 있거나 특정 주제만을 다룬 전문서들 뿐이었다. <한국 근대사 산책>은 전문화 ·세분화되어 있는 한국의 근대사를 종합화 ·총체화하면서 한국 근대의 큰 줄기와 장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진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논쟁과 논란을 충실히 소개하여 어떤 주장이나 편견에서 자유롭게 함으로써 ‘생각하는 역사’를 전개한다.

<한국 근대사 산책>의 특징
나이스비트가 <메가트렌드>로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그에게 “나는 당신이 책에서 말한 것들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모든 조각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주었지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스비트는 <마인드 세트>에서 그런 평가에 대해 “‘익은 과일 따기’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라면서 “문제는 무엇을 따서 어디에 놓을까 하는 것이다”라고 여유를 보였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연관 지어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엮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근대사 산책"의 첫 번째 특징 역시 바로 이러한 ‘종합’이다.

두 번째 특징은 ‘역사의 현재화’다. 모든 역사가 다 그렇지만 특히 개화기는 현재진행형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화기 이전은 너무 멀고 개화기 이후는 너무 가깝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시절 조선은 열강들의 각축전의 와중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는 점이 오늘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주로 개화기 사건을 거론하면서 오늘을 논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 산책"은 현재의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연계시켜 풀어 쓰는 새로운 기술방식을 시도했다. 과거와 현재의 생생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책과 논문은 물론 신문기사 ·칼럼 등을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언론 ·문화 ·커뮤니케이션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E. H. 카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과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 그 상호작용 ·대화의 성격과 질이 문제의 핵심이고 ‘대화’보다는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역사를 그렇게 이해할 때에 인간이 역사에 끌려 다니거나 이용당하지 않는 주체성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 기존 역사 서술은 커뮤니케이션과 과정을 소홀히 하면서 구조와 결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거대담론의 폭력성’을 은연중 드러냈다.

네 번째 특징은 이른바 ‘메타 역사’ 서술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메타 역사’란 ‘역사에 관한 역사’다. 개화기 시절의 어느 사건에 대해서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며 수많은 주장과 이견들이 난무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명쾌한 역사란 있을 수 없으며 ‘교과서’는 늘 위험하다. 특정한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종합’에 의미를 둔 이 책은 다양한 주장들을 다 보여주는 데에 주력했다. 역사는 단순명쾌할 수 없으며 매우 복잡하다. 과거의 복잡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복잡성과 전혀 다를 바 없으며 현재라는 변수가 더해져 현재보다 오히려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복잡성은 한 차원 높은 재미를 재공한다. 매 사건마다 각기 다른 여러 전문가들의 주장을 감상하다 보면 “아, 똑같은 사안을 이렇게까지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더불어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런 이해와 체험은 “역사는 외우는 과목”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한다.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특징은 ‘역사 서술의 다양한 시각을 치우침 없이 소개하면서 도식주의를 넘어서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특정한 지향성을 갖고 있지 않다. 보수 ·진보 시각이 충돌을 빚으면 둘 다 균형 있게 소개하려고 했으며 개화기 역사에서 잘 나타나곤 하는 민족사적인 서술 시각도 공정하게 보려고 애를 썼다. 암울한 역사의 그늘을 거닐며 독자가 자괴감이나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해 특정한 시각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건 우리의 저력이 무섭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니겠는가”라고 발상의 전환을 해보길 권하는 게 옳은 일이다.

늑대 떼의 출몰과 함께 시작된 개화기
개화기 역사는 가슴 한구석을 답답하게 한다. 동화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시 우리나라의 처지는 사나운 늑대 떼에게 포위된 한 소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듣고 위험한 곳으로 간 소년의 잘못에 대해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말하기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년의 몸부림이 너무 눈물겹다. 그 소년은 나름대로 꾀를 내보기도 하지만 다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늑대의 밥이 되고 만다.

한반도에 ‘늑대 떼’가 본격 출몰한 건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1870년대부터였다. 개화기를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볼 것이냐에 대해선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바로 이 시기에서부터 1910년에 이르는 30~40년간을 개화기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늑대 떼’의 출몰과 함께 개화기가 시작되었다는 건 그들을 무조건 막아내 싸우는 것만이 능사일 수는 없었으며 그 만큼 대처 방안을 놓고 내부의 혼란과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 혼란과 갈등은 크게 보아 ‘개화론’과 ‘수구론’의 대립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런 이분법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당시의 지식인 ·위정자들의 사고를 개화 혹은 수구의 어느 한쪽에 끼워 넣으려는 것은 당시 조선의 정치지형, 그리고 현실정치의 역학관계 및 문맥을 이해하는 데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 이런 시각에 입각하게 되면 동요하고 있던 시대를 살았던 당대인들의 정치적 고뇌와 선택의 의미가 생동감 있게 느껴지기 어렵다. 19세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사고의 경직성을 탓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가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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