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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곡물 요리의 완성
2. 보리와 밀, 제국을 세우다 3. 영혼을 위한 요리, 붓다의 성찬 4. 달콤한 낙원의 맛, 이슬람 5. 빵과 포도주를 든 선교사들 6. 요리, 문명의 선두에 서다 7. 식품 가공과 황금시대의 도래 8. 선택의 시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저자의 말: 인간과 요리의 긴밀한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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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와 요리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낮은 지위에 해당하는 요리나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천한 사람으로, 나아가 짐승으로 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고대의 모든 주방과 잔치에서는 비슷한 지위의 사람들이 비슷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동류가 있을 수 없는 왕은 대개 혼자, 아니면 가까운 가족과 식사를 했다. 미천한 신분의 사람들도 날 음식은 먹지 않으려 했다. 짐승으로 전락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64쪽 전투에서의 승리는 잘 먹은 보병과 장교, 가축에 달려 있었다. “식량과 다른 필수품들을 준비해 두지 않는 자는 누구든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한다.” 서기 4세기에 군사학에 관해 저술한 베게티우스는 말했다. “전쟁의 핵심은 풍부한 식량을 확보하여 적을 굶겨서 무찌르는 것이다. 굶주림은 칼보다 끔직하다.” 그리하여 역사가 조너선 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로마의 군사적 성공은 종종 쇠보다는 빵에 의존했다.” 117쪽 청어와 치즈는 온 국민이 간편하고 영양가 높으며, 상대적으로 값싸고 맛있는 보존 식품을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평등화 장치’였다. 360쪽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햄버거는 현대 서양 요리와 정치경제·영양·종교 간의 관계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모스크바에서는 일부가 주장했던 것과 같이, 맥도날드의 개점이 소련의 붕괴를 예고했다. ……모건 스펄록은 패스트푸드와 비만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 〈수퍼사이즈 미〉에서 매일 빅맥을 먹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빅맥의 가격을 이용하여 세계 통화의 가치를 측정했으며, 사회학자 조지 리처가 처음 사용한 용어 맥도날드화(化)는 효율, 예측 가능성, 기계식 공정과 동의어가 되었다. 493~494쪽 1918년에는 스탠퍼드에 새로 설립된 식량연구소의 후원 아래 ‘유럽의 기아 지도’를 발표하고,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음식 섭취를 줄이는 운동을 전개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이 당하고 있던 고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운동에 동참했다. ……역사가 헬렌 베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유럽을 더 이상 따라야 할 모델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원조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514~515쪽 새로운 요리는 새로운 요리 철학이 받아들여진 뒤에야 탄생되었다. 요리 철학은 정치, 경제, 종교, 인체, 환경에 대한 새로운 사상으로부터 나왔다. 공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로마 공화파, 마르크스, 고타마 붓다, 예수, 교부들, 무함마드, 칼뱅, 루터, 노자, 히포크라테스, 파라켈수스, 서구 영양학자들의 사상을 언급하지 않고 요리의 역사를 얘기하기란 불가능하다. 579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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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빵과 쇠고기는 어떻게 세계인의 음식이 되었나?
오늘날 우리는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전 세계 120개국에 지점을 가진 맥도날드를 비롯하여, 한국의 롯데리아, 일본의 모스버거, 벨기에의 퀵, 필리핀의 졸리비 등 다양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햄버거의 주재료에 해당하는 흰 빵과 쇠고기는 200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지배층만이 즐길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 200년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요리의 역사를 살펴볼 때, 1880~1914년은 가장 큰 전환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북유럽 국가들, 유럽의 해외 이주 식민지들, 미국, 일본 등에서 봉급생활을 하는 중산층과 임금을 받는 노동 계층이, 마침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던 식품 가공 산업의 소비자로 급부상한 것이다. 식품 가공 산업은 이들이 즐겨먹는 흰 빵과 쇠고기를 저렴한 값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형성되던 새로운 정치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왕과 귀족이 먹는 고급 요리와 평민이 먹는 하급 요리가 분명히 구분되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 많은 이들이 계급에 상관없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보다 개인의 평등과 자립을 더 잘 보여주는 예시는 없었다. 이처럼 요리의 진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밀과 고기는 가공을 거쳐 햄버거가 되고, 여기에 문화와 철학이 더해져 미국 고유의 음식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 오늘날 햄버거는 세계인 모두가 향유하는 보편적 음식이 되었다. 제국·종교·요리, 그 매혹의 트라이앵글 이처럼 요리와 음식의 역사에는 당시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체제, 그리고 건강과 질병, 윤리와 종교에 대한 신념이 숨어 있다. 이러한 특성을 파악하여 요리와 음식을 가장 잘 활용한 건 바로 제국과 종교였다. 어느 시대이건 지배층들은 요리와 음식을 활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고, 종교인들은 특유의 요리 철학을 확립하여 종교의 확산을 꾀했다. 제국의 지배층들은 먼저 그들만의 요리 철학을 세웠다. 로마 제국의 경우, 이전의 페르시아나 마케도니아와 달리 공화주의에 입각한 검소한 요리를 선호했다. 이러한 요리 철학은 훗날 18세기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되살아나 19세기 영미 세계의 요리에 관한 사고를 규정지었다. 제국은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와 음식의 확산에 기여했다.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식민지 개척민, 외교관, 병사, 선교사, 상인을 비롯한 이주민과 여행자들은 그들이 정착할 땅에 그들의 요리를 함께 가져갔다. 그 안에는 요리법과 요리 도구, 요리는 만드는 데 필요한 동식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변국은 번영을 누리는 제국의 요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 똑같이 될 수 있다는 오랜 믿음은, 제국의 음식이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몽골인들은 중국과 페르시아 요리의 대부분을, 로마인들은 그리스 요리를 받아들였으며, 20세기 초에는 일본인들이 영미 요리를 받아들였다. 종교 역시 요리를 활용하여 세력을 넓히는 전략을 사용했다.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구분되는 분명한 요리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고기와 알코올을 피하고 영혼을 위한 음식을 강조한 불교, 달콤한 음식을 낙원에서 누릴 기쁨의 예시로 여긴 이슬람, 빵과 포도주, 축제와 금식을 특징으로 하는 기독교 요리는 지배층과 결탁하거나 비주류 세력들 사이로 파고드는 방식으로 세력을 넓혀나갔다. 그 과정에서 종교의 요리 철학은 각 지역에 맞게 변화를 꾀하거나, 까다로운 과정을 단순하게 바꾸는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새로운 유형의 역사 기록에 도전하다! 인류의 식문화를 조망하는 일은 매혹적이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식문화는 정치적·종교적·문화사상적 분석·전통적인 국가 간 경계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음식이 탄생하는 데는 당대의 철학, 시대적 배경, 지역 문화 등이 고루 영향을 끼친다. 커피, 국수, 빵처럼 단일 주제로 식문화를 풀어낸 책은 많지만, ‘식재료, 요리, 음식, 식문화’를 함께 아우른 책이 드문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탐식의 시대]는 출간 즉시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그 해에 요리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IACP 어워드를 수상했다. 여기에는 5,000년의 식문화사를 한 권에 담아낸 저자의 공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저자가 단순히 과거의 문명사를 조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을 진단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풍요의 병을 걱정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식문화적 차원에서 본다면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인류는 식품 가공 산업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신선한 천연 식품에 열광하고 있다. 이는 과연 옳은 것일까? 저자는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를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대 요리의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한편, 과거의 전통 요리에 낭만적인 색채를 덧입히지 않는 것이다. 이는 자칫 인류가 이룩한 요리의 발전사를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식문화를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