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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부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을 넘는다 시작 고요를 듣다 오늘 꽃 웃음을 끌고 가는 바람 부는 날 홍매화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가차 없이 아름답다 개나리 풍경의 완성 종유석과 석순 귀로 듣는 수묵화 여름 산 사랑 지도를 그려 이별 뒤 노을 이유 다른 시작 높이 소금이 온다 적赤 눈 지각의 현상학 나무 깊은 특수상대성 2부 산다는 것은 나를 견디는 것 아버지의 변심 그리워 꽃에게 흉터 우리 동네 석탑에는 칸트가 산다 엄마 부녀 소름 스무 살 양말 여섯 켤레 여자 빈집이 아닌 이유 보름달 특수상대성 카톡 집 고독 고개 숙여 고뇌 유혹 한 점 시인 사랑해, 사랑해 우리 둘이 해송 3부 달의 지평선에 지구가 뜨면 어느 날 나는 거기 있을 것이다 큰스님 말씀 전지전능한 아이들 화엄경 우묵한 봄 오래된 시간 물리학 비 촛불 콘크리트 틈 풍장 꿈 돌탑 정상 개구쟁이 세한도 진주 앎 풀잎 마주침 범종 중력파 진화론 풍경 안행 확장되다 죽음 4부 사람들은 표 나게 인자하지만 나는 아직 꾸준히 잔인해야겠다 봄 한 끼 죄의 화석 돌아오십시오 2014년 4월 진달래 봄날은 간다 사월 푸른 촛불 새로 쓰는 노동당사 안내문 어린 발 구름 무소의 뿔처럼 유류품 완전한 소통 눈길 시간의 사건 아기 촛불 이현상 하늘에 고함 할머니의 귀가 작품 해설 |
김주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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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 시인의 문인화는 그야말로 ‘아주 특별한 문인화’로서 시인의 짙은 페이소스를 담은 시들과 섬세한 붓의 터치가 일품이다. ‘감동스럽다’라는 말이 사전을 떠나 시인의 그림을 만나며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참말로 감동스럽다. 김주대는 시의 새로운 분야를 분명히 개척한 큰 시인이다.
- 이시영 (시인) 김주대의 그림에는 작게 그려지는 것이 많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와, 잠자던 아비의 귀를 울리는 딸의 모습, 커다란 고독의 산을 넘는 작은 여인, 콘크리트 틈새에 피어난 작은 풀……. 모두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고, 힘없고 쉽게 간과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별거 없음의 무력함을 표현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반대로 그 별거 아닌 것들을 둘러싼 것들을 아주 크게 그림으로써,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작게 만들고 보잘것없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힘든 삶이나 콘크리트의 거대한 괴체(怪體)에 포위되어 있으면서도, 거기에 짓눌리지 않고 거대함의 틈새를 비집는 생명의 힘을, 과장 없이, 그 보잘것없는 크기 그대로 그린다. 이진경 (철학자, 연구 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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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라는 재난을 스스로 수습하는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힘
당연한 것들을 낯설게 배치하여 긴장감을 주다 시가 그림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김주대 시인은 그 물음에 자신만의 답안을 제시한다. 시어는 그 단어 자체로 그림이 될 수 있고(「비」, 「고독」,「사랑해, 사랑해」), 지면을 가득 메우는 강렬한 색으로 감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가차 없이 아름답다」, 「허공」, 「진달래」), 일상적이지 않은 낯선 배치로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릴 수도 있다고(「여름 산」, 「촛불」, 「봄」) 말이다. 그의 시화에 두드러지는 특징을 꼽자면, 지면을 힘 있게 넘나드는 과감한 남성적 터치와 작은 부분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세부 묘사일 것이다. 크게 용틀임한 소나무의 기운찬 형태와 그것을 감싸는 섬세한 수피(樹皮),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산맥 속에 숨어 있는 작은 마을 등이 그것이다. 공존하기 어려운 두 가지 상반적 특징은 마치 음양의 조화처럼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여 그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이룬다. 또한, 그의 시화에는 여리고 가냘프지만 삶을 붙들고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들이 등장한다. 철학자 이진경 교수는 “김주대의 그림에는 작게 그려지는 것이 많다. (……) 그러나 그것이 별거 없음의 무력함을 표현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반대로 그 별거 아닌 것들을 둘러싼 것들을 아주 크게 그림으로써,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작게 만들고 보잘것없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붓이 지나간 자리의 시, 생각, 마음 가장 낮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희망의 가락 시화집은 크게 네 가지 테마로 나뉜다. 1부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을 넘는다]는 시화 특유의 시각적 신선함과 서정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을 골라 모았다.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시화’를 보는 맛이 잘 살아 있어, 그의 시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2부 [산다는 것은 나를 견디는 것]에는 시인의 내밀한 개인사가 숨어 있다. 누구의 삶이든 은밀한 귀퉁이에는 비밀에 부치고 싶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사연은 각기 다르더라도 발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적 비밀은 개별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닌다. 시인의 개인적 성찰, 주변인과 맺는 시시콜콜한 관계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까닭이다. 3부 [달의 지평선에 지구가 뜨면 어느 날 나는 거기 있을 것이다]에서는 특정 종교를 뛰어넘은 정신적 영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뇌가 드러난 시를 만날 수 있다. 스스로의 내면세계로 깊숙이 침잠한 시인은 그 안에서 잠언과도 같은 문구를 건져 올린다. 하지만 그 언어는 절대자의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계시’라기보다 대승적 기틀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도반의 ‘방백’에 가깝다. 4부 [사람들은 표 나게 인자하지만 나는 아직 꾸준히 잔인해야겠다]에서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항거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폐가 사람들, 비정규직 노동조합원, 거리의 부랑자, 폐지 수집 노인……. 시인은 가장 낮은 이웃 옆에 슬그머니 쭈그려 앉아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경계선을 허문다. 큰 소리로 외치며 분개하기보다 낮은 목소리로 지친 삶을 위로하며 정답게 보듬는다. 광범위한 불의에 붓을 들어 맞선 시인 ‘생명’이라는 절대적 명제를 낙관에 새기다 그러나 그가 마냥 유한 것만은 아니다. 2014년 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는 정부와 사회를 치열하게 비판하고 우리 모두의 반성을 촉구한다. 그림 속 여객선은 직선으로 뾰족하게 요동치는 파도에 휘청대고, 아이의 유류품인 신발은 활화산같이 폭발한다. 떨어진 목련은 먼저 간 아이들의 발바닥이 되고 돋아나는 새싹은 아이들이 들고 있는 푸른 촛불이 된다. 분노, 절망, 상실감, 죄책감 같은 원초적인 감정이 추스를 새 없이 흘러넘친다. 하지만 결코 과하지 않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누군가를 비난할 수밖에 없었던, 혹은 스스로를 책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철학자 이진경은 “김주대의 그림을, 그가 자처하는 ‘문인화’로 만들어주는 것은 화면 안의 넓은 여백과 그림에 써진 시구, 그리고 한 그림에 두 개는 찍혀 있는 빨간 낙관이다. 이는 알다시피 동양에서 문인화의 오랜 전통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그의 시화에는 낙관이 꼭 두 개씩 찍혀 있다. 하나는 일반적 의미의 낙관, 즉 그의 이름이 들어간 낙관이고, 다른 하나는 ‘命’ 혹은 ‘목숨’이라는 글이 새겨진 낙관이다. 그는 어떤 시를 쓰고 그리든, ‘생명’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잊지 않는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 곁에 엎드릴 때도, 부당한 현실에 투철한 정의감으로 맞설 때도, 혹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탄하거나 이별의 아픔을 토로할 때도 ‘생명’은 언제나 우선순위다. 이 땅의 모든 삶이 동일한 운명 속에 공생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생이 한 사람의 것이되 모두의 것임을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불멸은 ‘우리’에서 출발해서 결국 ‘타인’에 의해 결실을 맺는 끝없는 연결 과정이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