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뒤집힌 태양 - 13
이유 없는 기쁨 - 35 거룩한 문화 - 59 쓰여진 빛 - 83 심장의 고막 - 105 자동인형 작가 - 131 죽음의 낙원 - 151 |
Christian Bobin
크리스티앙 보뱅의 다른 상품
|
어떤 방법의 틀 속에서 얻은 지혜도 마음을 넘어서지 못한다. 정체성의 모든 껍질을 벼락처럼 깨뜨리고, 나와 타인을 가르는 심연을 뛰어넘으며, 상대의 심장이 가장 미세한 박동까지 예감되는 그 순간, 그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다.
--- p.16 우리는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삶에서 벗어난다. 그때 우리는 시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어떤 지속을 느끼지만, 곧바로 한층 더 불투명해진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 p.28 나는 이 삶을 가볍게 만들고 싶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통해서. 타오르며 침묵하는 마음은 모든 형이상학을, 모든 계시의 책들을 삼켜버릴 수 있다. 사랑은 시간의 모든 계절을 끌어안아 하나로 모은다. 단 한 순간에, 상대방의 모든 황금을 모아 한 아름의 빛으로 묶는다. --- p.46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를 읽는 일이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문장을 읽어내고, 읽음으로써 그를 해방하는 일이다. 각자가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낯선 언어로 쓰인 책인 것처럼, 양피지를 펼치듯 그의 마음을 펼쳐 큰 소리로 읽은 일이다. --- p.55 내가 사랑하는 문학은 현실을 뒤쫓는 밀렵꾼들에 의해 쓰인 것이다. 그들은 독자의 앞까지 경이로운 사냥감을 몰아넣는데, 그때 독자의 발치에서 자고새 또는 그보다 더 희귀한 새 한 마리가 돌연 날아오른다. 반면 다른 문학은,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을 작가 자신에게로 몰아가는 이들에 의해 쓰인 것이다. 그런 방식이 통하면, 작가는 자기 자신의 동상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두 문학을 구분할 수단이 주어지지 않았다. 문화적 질병이란 것이 존재하며, 이런 미분화 상태가 그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병은 너무도 널리 퍼져 있어 오히려 건강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 p.62 이토록 추함이 찬미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음악마저 이제는 심장의 고동을 흉내 내는 단조로운 반복이 되어, 오히려 심장을 파괴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책들이라고 해봐야, 약간의 성급함이 덧칠된 보잘것없는 재능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이들에게 한층 더 세심히 귀 기울여야 한다. --- p.101 진정한 위대함을 알아본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의 어둠을 건드리지 않는 가짜 영광들(싸구려 가짜 신들)을 만들어 내길 더 좋아한다. 앙드레 도텔의 책은 독자를 길 위로 이끌어 어떤 야생의 빛을 찾아 나서게 하지만, 『마담 보바리』는 독자를 문화적 낮잠의 깊은 안락의자 속으로 밀어 넣는다. 플로베르는 도텔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널리 알려져 있고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것이란, 우리를 더 큰 무엇인가를 향해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p.142 눈동자 속에 비친 하늘의 반영이 ‘시선’을 만들어 낸다. 떨리는 눈망울 위로 던져지는 작은 조약돌처럼. 하늘을 지워버리면, 시선 또한 사라진다. 태어날 때 눈 속에 깃들어 있던 그 빛을 우리는 조금씩 그리고 체계적으로 빼앗겨 왔다. --- p.163 |
|
■ 크리스티앙 보뱅이 말하는 문학, 사랑, 세계
한 시인이 엮어낸 가장 고요한 사유의 목소리 “그를 이해하려면,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것이 되어버리는 사람을 상상하면 된다.” 프랑스 문학의 가장 고요하게 울리는 목소리, 크리스티앙 보뱅의 『세상의 빛』이 국내에 소개된다. 이 책은 소설도, 에세이도, 인터뷰집도 아니다. 프랑스 시인 리디 다타스가 보뱅의 말과 사유를 오랜 시간 경청하고 수집해 하나의 흐름으로 엮은 텍스트로, 작가가 문학·사랑·언어·삶·세계에 대해 직접 말한 문장들이 질문의 흔적 없이 이어진다. 독자는 설명이나 해설을 거치지 않고, 보뱅의 목소리 그 자체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빛』은 보뱅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하는 요약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그가 평생에 걸쳐 사유해 온 문학적 태도와 세계관이 ‘말’의 형식으로 응축된 결정체에 가깝다. 여기서 보뱅은 자신의 작품을 해명하지도, 이론을 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문학이 무엇인지, 사랑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 세계를 산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에 대해 짧고 단정한 문장으로 말한다. 그의 말들은 논증이 아니라 응시이며, 결론이 아니라 태도다. ■ 말해질 때 비로소 드러나는 세계 보뱅의 문학관과 삶의 윤리 “내가 오늘 어둠에 다가가는 것은, 빛을 한층 더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이 책에서 ‘빛’은 하나의 주제로 제시되기보다, 보뱅의 말들이 머무는 방식에 가깝다. 『세상의 빛』의 빛은 은유나 상징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를 특별하게 해석하려는 의지보다, 세계가 말해지는 순간에 잠시 드러나는 투명함에 가깝다. 보뱅에게 문학은 세계를 설명하거나 교정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 곁에 오래 머무르며 그 윤곽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두는 태도다. 보뱅은 이 책에서 자신이 사랑한 작가들, 자신이 멀리하는 문학의 태도, 읽기와 쓰기에 대한 신념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문학 그 자체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보다 못한 무언가에 도달하게 된다. 책만을 만드는 이들은 사실상 책조차 만들지 못한다. 성공적으로 팔릴 수는 있겠지만,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미학, 아름다움, 완벽함만을 추구하는 작가는 결국 그 미학, 그 아름다움, 그 완벽함 아래로 추락하게 된다.”라고 그는 말한다. 문학을 체계나 담론으로 다루는 방식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읽고 쓴다는 행위를 삶과 분리하지 않는다. 이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의 특별한 문학적 취향(“다른 이들이 베케트나 조이스의 이름을 내세울 때, 내가 꺼내는 이름은 도텔이나 그로장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들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내게는 더 큰 기쁨이 된다.”)을 엿보는 것도 이 책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 한 작가의 ‘생각’이 아니라, 한 문학의 ‘태도’ 크리스티앙 보뱅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입구 “진정한 책이란 언제나 우리의 고독 속으로 들어오는 하나의 존재다.” 앞서 말했듯, 『세상의 빛』은 단순히 크리스티앙 보뱅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보뱅이 세계 앞에 취하는 태도 그 자체를 보여준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말의 윤리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그리고 세계를 조금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또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드러내는 문학, 『세상의 빛』은 크리스티앙 보뱅이 평생에 걸쳐 지켜온 그 조용한 확신을 가장 투명한 형태로 담아낸 책이다. 우리의 고독 속으로 들어오는 하나의 존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