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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한밤의 스키틀즈 몬 몬 캔디 보아 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 해설 | 도넛이 구르는 문장 · 홍성희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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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올라오던 인터넷 기사 속 사진들과 주안의 잠기 섞인 이야기들이 정말이라면, 율은 그곳에서 걸음을 내딛는 순간마다 어떤 기로에 서 있는 셈이 되었다.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p. 28」중에서 도시의 사람들은 꾸준히 땅 밑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귀신처럼 골목 곳곳을 떠돌며, 가만하던 사람들을 미약한 흥분 상태로 차례차례 밀어 넣었다. 입에서 입으로─손끝에서 손끝으로 전해지고, 돌고 돌며 조금씩 더 험악해지던 그 이야기들은, 그곳의 모두가 하나같이 비슷한 종류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으리란 인상을 자아 내기도 했다. 도시는 벌써 몇 달간 아무런 사고 없이 조용했으므로, 누군가는 정말로,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위험을 기다리며 모종의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런 예감이 공중을 분분히 떠다니고 있었다.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pp. 81~82」중에서 이 동네, 사이렌 소리가 너무 자주 들려. 건너편에서 해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을 때, 미오는 원래 좀 그래,라고 무심히 대답해주었는데, 그러고 나자 걸음을 걷는 일이, 나무에 몸을 기대는 일이, 해아를 돌아보는 일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산책로의 풍경이, 안쪽의 호수가, 그 너머의 도로가, 나아가 온 도시가, 아무것도 아닌 곳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혹은 누구에게나 비슷비슷한 일들만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한밤의 스키틀즈, p. 127」중에서 차가운 흙이 한 줌씩 상자 위로 덮여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자는 검은 흙 속에 파묻혀 흔적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고다와 선요는 구덩이를 완전히 메운 뒤 그 위로 발을 구르며 단단히 땅을 다졌다. 그러곤 상자가 묻힌 곳으로부터 한 발짝씩 떨어져 그곳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아. 선요가 말했다. ─그러네. 고다가 대답했다. ---「몬 몬 캔디, p. 243」중에서 낱낱이 흩어지고 있는 개구리를 내 어깨 너머로 바라보던 선생님께,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니? ─여길 봐. 텅 비어 있잖아요. [……] 선생님은 나의 어깨를 돌려세우며, 다시 한번 아─니─야,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전부란다. 네가 발견한 것이 그 개구리의 안에 든 모든 것이란다. ---「보아」, pp. 294~95」중에서 얀은 그곳의 풍경을 조금씩 더 자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더 세밀하게 감각하고 있었다. 거대한 것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을, 예컨대 조약돌 사이로 피어난 손톱만 한 풀꽃이나, 호숫가 근처에 남아 있는 마르지 않은 물 자국이나, 체이와 시나가 스케이팅을 하듯 자유로이 달리고 있던 호수의 양 끝에서 희미하게 눈에 띄는 작은 금들을, 점점 더 분명하게 알아보고 있었다. [……] ─하지만 이곳은 너무나 단단히 얼어 있는걸요! 시나가 환히 웃음을 보이며 소리쳤다. 얀은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수는 얼어 있었다. 아직은,이라고 얀은 생각했다. ---「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 p. 343」중에서 ─지금은 겨울인데도요. ─눈은 언제나 녹고 있어요. 그러자 체이는 곤란하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나에겐 절대 녹지 않을 눈이 필요해요. ---「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 p. 368」중에서 백은 여전히 누워 있는 한서를 내려다보며,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말했다. 자신이 이미, 그들의 모든 것을 보아버렸다고 말했다. 모든 세월을 보아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끝엔 아무것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편이, 애초에 전부 없었던 일로 하는 편이 좋겠어요. 그게 낫겠어요. ---「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 p. 422」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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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기척으로 흔들리는 삶의 지면 위
휩쓸리는 각각의 궤적들 주이현의 세계는 ‘예감’으로 진동한다. 재난의 예감, 죽음의 예감, 이별의 예감 그리고 상실의 예감. 표제작이자 첫번째 작품인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에서는 재난의 기척이 “땅 밑의 소리”(p. 81)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땅 밑에서 나는 소리’는 도시라면 으레 들릴 법한 소리임에도 “매일 더 멀리, 더 끔찍한 모습으로 변태하며 퍼져”(p. 82)나가는 소문에 힘입어 시민들을 공포로, 동시에 기묘한 흥분으로 몰아간다. 예견된 재난의 도래를 불안해하는 사람은 한편으로는 재난이 닥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과도 닮은 얼굴을 한다. 미래의 재난을 예고하는 소리는 이미 참상을 겪은 듯한 과거의 기억을 불어넣으며, 그들의 결말에 최종적인 사건을 배치하고는 정해진 궤도에 따라 안정적으로 비극을 향해 치닫기를 바라게끔 만드는 것이다. 소설에서 실제로 사고가 벌어지는 장면보다 그 전후로 사고의 기척과 흔적을 가늠하는 장면이 긴 까닭은, 우리 삶 전반이 예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에 잇따르는 결과가 실제로 당도하는지는 오히려 중요치 않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또렷하게 포착하는 주이현의 시선은 비단 재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언젠가 그럴” 것 같다가 “수명이 완전히 끝장나버”(p. 82)린 현관 등이나 “빛도, 열도, 냉기도 없이 밤새 고요히 숨죽이고 있을 쇼 케이스가 등 뒤에 있”(p. 23)음을 알면서도 녹게 놔둘 수밖에 없던 아이스크림처럼, 관계의 끝을 인지하면서도 그 끝의 끝까지 차분히 겪어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루와 주안의 시간들 또한 소설 전반에 생생히 그려진다. 자전적 편지 형식으로 씌어진 「보아」는 이러한 인간상이 극도로 치달아가는 성장기이다. 소설 속 ‘나’는 예감의 세계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불안의 배면에서 흘러내리는 기대감을 탐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나’는 끊임없이 ‘나’의 곁을 맴도는 ‘너’, 즉 ‘보아’를 기다리고 추적하는 데 생애를 바친다. ‘보아’를 마주치고 그를 붙드는 순간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기를 두려워하면서, 혹은 기다려 마지않으면서. 그러나 예감은 그것이 내포한 장면처럼 세계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무참히 다가오는 그 성질에 반해, 예감이 실현된 이후의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몬 몬 캔디」는 그러한 세계의 회복성 내지는 무심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다와 선요는 만화책을 훔치고 급식을 훔치다가 종국에는 길가의 사마귀와 키우던 잉꼬를 죽인다. 그러나 세계의 손상은 고사하고 그들 자신에게 응당한 처벌조차 내려지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p. 243)처럼. 고다와 선요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마음으로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술집에 들이닥치지만, 월드컵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뿐이다. 단어와 단어가 맞물리는 끝말잇기의 규칙과 달리, 반드시 예감에 응하는 상황이, 상황에 응하는 결말이 잇따르지만은 않는 세계에서 어린 인물들은 규칙의 부재를 경험하며 비로소 어른이 된다. 이미 소진된 결말 앞에서 예감이라는 힘으로 세계를 앞지르는 삶 중요한 점은 예감된 것이 예감된 내용으로 일어났는지 일어나지 않았는지가 아니다.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반복된다는 점도 아니다. 예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어떤 움직임이 시작된다는 사실, 그로 인해 더 많은 것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나아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기도 한다는 사실, 그 가운데 각자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는 삶들이 헐겁고도 단단하게 얽혀 마주 서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홍성희 해설, 「도넛이 구르는 문장」에서 예감의 향방은 세계에서 인간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주이현의 소설은 도리어 인간으로부터 출발해 또다시 인간을 그리고 세계를 밀고 나가거나 거스르기도 하는 예감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의 배경 중 하나인 스키 리조트에서는 눈이 무너지기 전에 다이너마이트로 미리 눈더미를 터뜨린다. “감당 가능한 수준의 눈사태를 미리 일으켜서, 큰 사고를 방지”(p. 349)하려는 이 작업은 폭발 사고로 인한 직원의 사망으로 이어진다. 예감에 대비하려는 인간의 행동이 도리어 그 결과를 촉진한 것이다. 연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실의 예감을 먼저 맛보고는 이별을 선언해버린다. 근사한 여행을 마친 체이는 시나에게 헤어짐을 고하고, 여름을 함께 보내자는 한서의 제안에 백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편이”(p. 422) 낫겠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파라솔 아래 누운 J 위로 무섭도록 우박이 쏟아지다 어느샌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p. 425)해진 해변처럼, 세계는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전의 모습으로 회귀하기 마련이기에 백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한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p. 423)다. 그는 “누워 있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버”리는 미래에 안착하지 않고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p. 387)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밤의 스키틀즈」는 예감에 추동되는 인간들이 그 지향성으로부터 탈피하는 장면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미오가 나무 밑에 멀거니 선 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꿈을 꾼 해아는 불현듯 미오가 죽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길로 미오를 찾아간 해아는 꿈을 통해 예감한 미오의 죽음을 실현하기 위해 그를 무수한 나무 밑에 세워본다. 그 과정에서 해아와 미오는 “눈앞에 있는” 서로를 “엄청나게 꼼꼼히 보게”(p. 126) 되고,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p. 133)게 되며, 종국에는 추락하는 홍시로부터 해아가 미오를 구해낸다. 예감으로 촉발된 움직임들이 모여들어 예감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에서 인물들이 천사를 향해 빌었던 소원에 대한 답가는, 땅으로 떨어져 뭉개진 감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이는 예감을 맛보고도 그 예감을 모조리 겪고, 모든 걸 보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결말까지 나아가 정해진 장면을 보거나 정해지지 않은 이후를 열어가는 것이 삶이라는, 가냘픈 전언과도 같다. 세계의 불확실성을 체현하듯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주이현의 문장 속에서, 우리는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홍성희의 말처럼 “완전히 닫혀버린 것 안에서도 모든 것이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음을 예감하게 된다”. 그리고 삶을 이끄는 힘의 궤적과 그에 힘입어 우리가 남겨온 족적이 겹겹이 덧그려진 소설집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그 흔적 위로 포개지는 새로운 미래의 장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