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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류드
이성의 나이 정원들 깨달음 예술/쥐들 맨발로 추는 춤 나의 마드리갈 필멸의 발걸음 그랜트 평화의 왕국 한 방울의 피 방랑자 사진에 관하여 아카이브에 관하여 |
Patti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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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펜이 종이 위를 움직인다. 반항의 혹 반항의 혹 반항의 혹. 무슨 말이야, 펜이 묻는다. 모르겠어, 손목이 대답한다. 말이 먼저 생겨나고, 그 의미는 후에 폴란드 북부의 어느 골짜기, 돌리 나 샤를로티에 머물고 있는 작가가 정할 것이다.
---p.8 약간 닳아 해진 『실버 페니』는 호기심이 폭발하던 시절, 어떤 지침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 살던 내게 주어진 사랑의 선물이었다. 나는 그 책의 첫 문장을 곰곰이 되씹었다. 요정 나라에 들어가려면 실버 페니가 있어야 해. 하지만 실버 페니는 찾기 어렵지. 나는 이 작은 책 속에 내가 가장 열망하던,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시들을 꼼꼼히 읽었고, 장난기 가득한 지상의 천사와 요정들을 향한 기도문을 외웠다. 하느님, 요정님, 진실을 보여주세요, 진실을 보여주세요! 저는 당신을 기다리는 아이입니다. 등굣길을 걷는 내내 이 기도를 되뇌었다._38~39쪽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른 세상의 일원이 되어 끝도 없는 책임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떠돌며 나만의 세상이라는 건축물을 한 칸 한 칸 만들어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는 변화의 과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p.66 이른새벽의 카페에, 텅 빈 호텔 라운지에, 아니면 고요한 대성당의 장의자에 앉아 공책에 무언가를 끼적이는 작가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특정한 순간의 진동을 담은 한줄기 빛이 환히 내리꽂히는 찰나. 조니 스탈이 나의 신발끈을 묶어주던 순간. 부치 매직의 손가락이 벌침을 뽑아내던 순간. 아무 계산 없는 친절한 몸짓의 기억. 그런 순수한 기억이 다름 아닌 천사들의 빵이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환상의 상처를 더듬는다. ---p.110 처음 뉴욕에 온 것은 예술가가 되고 싶어서였지만 운명은 나를 공인의 삶이라는 벼랑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스스로를 주로 노동자라 느꼈으며, 우리의 고투는 특권이라 믿었다. 사방이 벽이었고, 거기에 금을 낸 것은 다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저 온 힘을 다해 그걸 발로 차 무너뜨리고, 잔해를 치워, 이미 이만치 다가와 있을 새로운 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호시스』는 자유를, 진실한 한 시대를 알렸다. ---p.151 그를 다시 만난 건 12월, 우리의 두번째 디트로이트 콘서트가 끝난 뒤였다. 밴드와 스태프는 르네상스호텔 바에서 지역 뮤지션들과 합류했다. 그때 프레드가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몰래 빠져나와 통유리로 된 전망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프레드가 25층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갔다. 처음으로 단둘이 된 순간이었다.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대던 것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 자동차의 도시가 우리 발밑에서 멀어지며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그와 함께 우리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실제적인 존재보다 신뢰와 인내에 더 기대게 될 연애였다. ---p.157 로큰롤은 내게 우리의 음악적·정신적 유산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과 절연할 만한 전경을 제공해주었다. 나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낡은 체크무늬 여행가방을 들고 디트로이트로 돌아갔다. 사랑을 위해. 예술을 위해.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이제 낡은 코트를 벗어던질 때였다. 반항의 혹이 몸을 떨었다. 떠남은 내 존재의 두번째 선언이었다. ---p.192 깨달음에 대한 욕구는 야망을 능가했다. 아마도 내가 더는 대중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일 텐데, 어떤 이들은 나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사실 나와 프레드는 서로를 통해 진화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성장통으로 고통스러웠다. 마치 고치에서 막 빠져나와 젖은 날개를 펼치려 버둥대는 나방이나, 가녀린 네 다리로 땅을 짚고 첫걸음을 떼려는 당나귀처럼._199~200쪽 오랫동안 내 안에 떠다니는 한 가닥 깃털 같은 순수의 흔적을 품고 살았다. 그것이 내게 넉넉한 열정의 원천이 되어주고, 상실감과 실망감을 잠재웠다.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의 발목을 휘감는 피의 덩굴, 또한 제 날개를 붙여 나의 발꿈치를 멍들게 한 전령 같은 젊은 날의 부름을 나는 꽉 붙들고 살아왔다. 마치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망의 세례라도 받은 것 같았다. ---p.307 한 해의 마지막날. 나는 나의 아들딸과 함께 음악을 연주한다. 아들은 의자에서 잠이 든다. 텔레비전 화면이 깜빡인다. 태평양 연안에는 12미터 높이의 파도가 일렁이고 베들레헴은 셔터를 내렸다. 나는 딸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다. 푸른 달이 프레드의 탄생석인 사파이어의 쪽빛으로 우리를 물들인다. 그렇게 우리는 한마음이 된다. 또 한 해가 저문다. ---p.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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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생을 아우르는 가장 깊은 고백,
『저스트 키즈』의 프리퀄이자 시퀄 “내가 기억하는 첫 감각은 움직임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제2차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패티 스미스가 철거를 앞둔 주택단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가난하고 병약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헌신적인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 그는 충성스럽고 우애 깊은 형제들의 대장이자, 거북 왕과 교감하며 신성한 은화를 찾아 떠나는 모험가로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친다. 그리고 그 생생한 어린 시절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이후 이야기는 예술과 사랑에 빠져 첫 불꽃을 피우던 10대 시절로 이어진다. 단 한 번뿐이었지만 가족과 함께 필라델피아미술관을 찾았던 날은 패티에게 계시와도 같은 순간이었고, 그는 그곳에서 예술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예술의 존재를 깨달은 패티는 문학과 음악에 깊이 매료되어 아르튀르 랭보와 밥 딜런을 창작의 롤모델로 삼아 시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 경험은 훗날 『Horses』, 『Wave』, 『Easter』와 같은 명반을 탄생시키는 동력이 된다. “당시 나의 가장 큰 욕망은 예술에 온전히 나 자신을 바치는 일이었다. 아마 필요한 기술은 부족했겠지만 기꺼이 갈고닦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_117쪽 10대 시절 일찍이 예술가를 꿈꾸게 된 패티는 대학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체크무늬 여행가방 하나만 들고 뉴욕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예술적 동반자인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나 첼시호텔에 머물며 가슴에 품은 예술의 불덩이를 쏟아낸다. 이 시기의 이야기는 『패티』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다. 이미 『저스트 키즈』에서 모두 써냈기 때문이다. 이것이 『패티』를 『저스트 키즈』의 프리퀄이자 시퀄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대신 책에는 전작에서 깊이 다루지 않았던 뮤지션으로서의 패티 스미스, 그리고 남편 프레드 “소닉” 스미스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풍부하게 담겨 있다. 특히 프레드와의 만남, 결혼, 두 아이와 함께 미시간에서 보낸 소박한 삶에 대한 기록은 이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온갖 소문만 무성했던 시절의 이야기인지라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작가가 좀처럼 글로 쓰거나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은둔의 시간’을 작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줌으로써 독자는 패티의 예술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전환 “우리의 삶은 선명하지 않았고 아마 누군가에게는 그리 흥미롭지도 않았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전부였다. 때로는 힘들었지만 나는 내가 천천히, 그러나 실시간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_224쪽 패티는 이 은둔의 시간을 예술가로서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회상한다. 음악과 문학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는 한순간 무대를 떠나 가족과 함께 소박한 일상을 보내며 사유하던 시간, 매일 아침 카드 탁자 앞에 앉아 머릿속에 떠다니는 단어들을 붙잡아 종이 위에 나열하던 순간은 오히려 스스로를 ‘작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사이 마주해야 했던 상실과 회복의 과정은 음악 없는 산문시로 그의 곁에 머물다 다시 모험을 시작하는 날, 멜로디라는 날개를 달고 세상 밖으로 발돋움하며 ‘뮤지션’이라는 자아를 되돌려놓았다. 10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새로운 앨범 『드림 오브 라이프Dream of Life』로 다시 돌아온 패티 스미스는 이후 오늘날까지 음악 활동을 이어가며, 열두 권이 넘는 책을 발표한 동시대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패티』는 예술이 인간을 어떻게 지탱하고, 상실과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건너게 하는가, 라는 질문을 골자로 개인적인 기억과 사유, 일상의 단편들을 통해 예술이 단순한 표현을 넘어 영혼을 먹여 살리는 ‘양식’임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원제인 ‘Bread of Angels(천사들의 빵)’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위로와 신념, 예술의 은유, 그리고 삶 곳곳에서 마주한 ‘친철함’을 의미한다. 『저스트 키즈』가 젊은 날의 우정과 예술의 탄생을 기록했다면, 『패티』는 시간을 건너온 예술가가 지금도 예술을 통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책에서 패티 스미스는 거창한 고백 대신 절제된 문장으로 삶의 취약한 순간들-사랑, 상실, 나이듦, 창작의 고독-을 응시하며,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은 음악가이자 시인, 그리고 기록자로서의 그가 어떻게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록 스타의 회고록이라기보다, 한 예술가가 평생 붙들어온 신념의 아카이브에 가깝다. 『패티』는 오랜 팬뿐 아니라, 예술과 삶의 의미를 묻는 모든 독자에게 열려 있는 책이다. 패티 스미스 특유의 담담하고 투명한 문장은, 빠르고 소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자문하게 한다. 예술은 생존의 방식이며, 이 책이 그 증거다. “우리는 진화하고, 비틀거리고, 과오로부터 배운다. 그리고 다시 그것들을 반복한다. 우리는 간신히 빠져나온 심연 속으로 다시 풍덩 뛰어들어 운명의 수레바퀴의 다음 회전 속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후에는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죽도록 힘들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놓아주기를 시작한다.”_33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