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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작용하는 방식
헌신 꿈은 꿈이 아니다 옮긴이의 말 기차에서 쓴 |
Patti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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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예기치 못한 질량이며 은닉의 시간에 급습하는 뮤즈다. 화살들이 수없이 날아다니지만 화살에 맞은 자는 맞은 줄도 모른다.
--- p.11 이것이 내가 찾던 다른 무엇의 시작이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 p.16 운명에는 손이 있으나 그 손이 미리 정해진 건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찾다가 무언가 다른 것을, 어떤 영화의 예고편을 찾았다. 울림이 깊지만 생경한 목소리에 마음이 동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용과 참조의 교향악을 소환하는 빛의 주크박스에 이끌려 여행을 떠났다.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추상적 거리들을 배회하며 심지어 내 것조차 아닌 세계를 실로 엮었다. 책 한 권을 읽고 시몬 베유의 신비적 행동주의를 알게 되었다. 한 피겨 스케이트 선수를 보았고 완전히 매혹되었다. --- p.46 내가 그 글을 어떻게 썼는지, 왜 그렇게 도착적으로 처음의 길에서 일탈했는지, 그 과정은 고찰할 수 있겠으나 왜 그랬는지 이유는 말할 수 없다. 범죄자를 추적해 구속하는 데 성공한들 범죄자의 정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와 ‘왜’는 분리할 수 있는 걸까? 나 자신을 심문하면 몇 초도 안 되어 그런 글을 쓰고 나서 느낀 이상한 회한을 자백하게 된다. --- p.47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 열렬히 바라는 건 오로지 그뿐이었다. --- p.58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웠어. 그런데 왜 추한 삶을 살아야 하니? --- p.67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징표는 없어. 별도 십자가도 손목에 새겨진 숫자도 아니야. 우리는 우리 자신이야. 네 재능은 오로지 너로부터 나오는 거야. --- p.108 어째서 글을 쓰지 않고 못 배기는 걸까? 스스로를 격리하고, 고치 속에 파고들어, 타인이 없는데도 고독 속에서 황홀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프루스트에게는 셔터를 내린 창문이 있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는 음이 소거된 집이 있었다. 딜런 토머스에게는 소박한 헛간이 있었다. 모두가 말들로 채울 허공을 찾는다. --- p.121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부단한 노력과 정량의 희생 없이는 안 된다. 펄떡이는 심장으로 살아 있는 독자라는 종족을 위하여 미래를 끌어오고 유년기를 다시 찾아가고 날뛰는 상상력의 어리석음과 공포에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 --- pp.12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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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할 수 없는 공기로부터 끌어온 은유”
찰나를 포착해 창작의 실마리를 발견하다 ‘뭔가 다른 걸 찾다가 우연히.’ 책의 첫 번째 장(「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을 여는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는 『몰입』 전체를 요약하는 구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글감을 찾아 헤매는 패티 스미스는 우연한 일상에서 창작의 실마리를 건져 올린다. 그리고 이를 정교하게 꿰어내 하나의 작품으로 내놓는다. 두 번째 장(「헌신」)은 패티 스미스가 쓴 단편소설이다. ‘유지니아’라는 에스토니아 소녀가 주인공인 소설 「헌신」은 그녀가 스케이트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이야기다. 첫 번째 장과 세 번째 장은 이 소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착상이 이뤄졌는지, 소설 속 소재들은 무엇에 영감을 받은 결과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순례의 여정을 패티 스미스가 미리 ‘계획’하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갈리마르 출판사와 책을 홍보하러 떠나는 ‘사업적’ 여행을 떠나기 전날 우연히 맞닥뜨린 에스토니아의 영화 예고편, 영상에서 본 강렬한 이산離散의 이미지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막막한 그물망 같은 파리, 마지막 순간 우연찮게 집어 든 베유에 대한 논문, 카뮈가 거닐던 갈리마르의 정원과 베유의 무덤, 동생과의 여행을 회고하는 과거로의 순례, 그리고 카뮈의 자택까지. 우연이 모여 운명이 되고 그 운명이 패티 스미스를 자신의 창작물로 이끈다. - 「옮긴이의 말」에서 처음에는 그런 막막하고 불행한 이야기를 쓰게 된 기폭제가 뭘까 궁금했다. 외과의의 펜으로 해부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이야기에 영감을 주고 틈입한 스치는 상념과 사건 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라웠다. 심지어 하찮고 무의미한 인용마저 하이라이트로 강조한 듯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 42쪽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글쓰기, 그 순례의 여정 패티 스미스는 언어능력과 감수성이 뛰어난 예술가지만, 영감이 오기까지 마냥 기다리는 작가가 아니다. 우연한 발견을 운명으로 뒤바꿀 수 있는 건 글감이 될 만한 소재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그녀의 의지 덕분이다. 패티 스미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땐 자연스레 흘려보내지만, 그때에도 창작의 씨앗은 희미하게나마 붙든 채 반복해서 상기한다. 그 굉장한 표현력에 사로잡힌 나머지 애초에 찾던 게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누워서 무자비하게 흩날리는 하얀 꽃잎 사이로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추방당한 인간 사슬을 서서히 수평 이동 촬영한 화면을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한다. - 17쪽 세 번째 장(「꿈은 꿈이 아니다」)에서 패티 스미스는 알베르 카뮈의 집에 머물며 그가 마지막까지 집필하던 미완성의 원고를 읽는다. 그녀는 ‘써야만 한다’는 강렬한 충동을 이때 다시금 느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의 원제는 ‘Devotion’이다.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인 『몰입』도, 책의 두 번째 장에 실린 단편소설의 제목인 「헌신」도 모두 Devotion을 번역한 말”이다. 특히 프랑스어에서 이 단어는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기도하는 행위(silent prayer)’와 ‘고요하게 집중해 깊이 생각하는 행위(meditation)’를 함께 아우르는 묵상”이기도 하다. 패티 스미스에게 글쓰기는 ‘기도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읽고 보는 모든 것들에 ‘몰입’하고 ‘헌신’하는 경건한 태도”가 글쓰기로 이행되는 것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내 손가락이 촉침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질문을 추적한다. 젊었을 때부터 내 앞에 놓인 익숙한 수수께끼. 언어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놀이와 친구들과 사랑의 계곡에서 한 박자 바깥으로 물러서기.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 129쪽 글쓰기를 향한 패티 스미스의 열정은 우리에게도 많은 걸 시사한다. 그녀는 창작을 위한 필요조건이 비단 재능에만 있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것들이 특별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