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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후마니타스 2005.09.09.
베스트
사회 정치 top100 4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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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제1부 문제
제1장 민주화 이후의 한국민주주의

제2부 보수적 민주주의의 기원과 갈등
제2장 냉전반공주의와 조숙한 민주주의
제3장 권위주의적 산업화와 운동에 의한 민주화
제4장 민주화 이행의 보수적 종결과 지역정당체제

제3부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
제5장 민주화 이후의 국가
제6장 민주화 이후의 시장
제7장 민주화 이후의 시민사회

제4부 결론
제8장 한국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과제

개정판 후기

부록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워싱턴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분교, 코넬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객원교수 및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그는 인간과 사회의 현실에 기반을 튼튼히 둔 정치학 연구를 지향하고, 열심히 가르쳐야 하는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다른 어떤 것보다 중시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정치학은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당위적, 이상적 목표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일견 모순된 정의 같지만,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워싱턴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분교, 코넬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객원교수 및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그는 인간과 사회의 현실에 기반을 튼튼히 둔 정치학 연구를 지향하고, 열심히 가르쳐야 하는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다른 어떤 것보다 중시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정치학은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당위적, 이상적 목표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일견 모순된 정의 같지만, 그것이 바로 정치학이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적 문제라 여긴다는 것이다. 경험적인 차원에서 정치는 통치와 피통치, 지배와 피지배, 민중과 엘리트, 집단과 집단, 신념과 신념 사이에서 한 사회가 통제할 수 있는 생산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지만, 실천적인 차원에서 정치는 “공공선의 실현을 둘러 싼 공동체의 윤리적 문제”를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학을 “최후의 진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이고 실용주의적이며 과정을 포괄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학습”이라 표현한다. 따라서 자신의 이론에 대해 “스스로 회의적이며 언제나 잠정적”이라 여긴다고 한다. 정치학이 “파워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 한 그것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공간과 함께 그 위험성의 차원 역시 고려해야 하고, 제아무리 이성적 판단이라 하더라도 예측할 수 없는 문제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의 현실을 사유함에 있어 언제나 사려 깊음과 관용의 덕목이 필요하다 말하고, 다른 생각 내지 관점과 공존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그래서 과도하게 강한 주장과 확신은 "대개 무지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며 늘 스스로를 경계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doctrinaire(교조적 이론가)"가 아니라 liberal(철학적 자유주의자)"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주류 언론들이 자주 진보파의 대표로 호명하는 것에 대해, 진보적이라 규정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이상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만들어진 나일뿐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현대정치의 구조와 변화》《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한국민주주의의 이론》《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위기의 노동》《민주주의의 민주화》《Labor and the Authoritarian State : Labor Unions in South Korean Manufacturing Industries 1961~1980》《現代韓國の政治變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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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153*224*30mm
ISBN13
9788990106117

책 속으로

현대 민주주의는 모름지기 정당 중심의 정치를 그 핵심으로 하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이 정치의 중심에 서고 활성화되는 과정을 통하여 민주정치가 강화될 수 있다는, 이 책이 제시하는 방향과 최근의 상황 전개 사이에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 p.267 '개정판 후기' 중에서

박정희 정부는 이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나는 박정희 정부가 정부의 조직을 근대적으로 창건하고 이를 운영한, 그리고 그 지지 기반을 적극적으로 동원했다는 점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정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은 정치체제에 있어서나 산업화 방식에 있어서 권위주의체제가 됨으로써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러한 체제였다.

--- p.91 '제3장 권위주의적 산업화와 운동에 의한 민주화'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오늘의 한국 현실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본격적인 문제제기
최장집 교수가 그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개정판을 내면서 오늘의 한국정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원고지 160매 분량의 긴 개정판 후기를 통해서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발언을 전후한 사태에 대해 생각을 피력해 달라는 일체의 요구를 거절하고 꼬박 열흘에 거쳐 작성한 글이다. 초판 이후 3년 가까이 지난 시간의 정치변화를 반추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이 책의 중심 논지를 연장해서 오늘의 정치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저자는 정치적 쟁론에 직접 개입하려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려 애쓰고 있다. 격렬하기보다는 차분한 논의 전개가 특징이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채색된 통속화된 정치언어를 배제하면서 사태를 보다 입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이 돋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현실과 무관한 정치학 연구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지식인의 비판적 사회참여를 강조해온 최 교수답게 이번 책에서도 현실에 대한 불만은 행간과 행간마다에서 그대도 묻어난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던 2003년 11월 이후 이 책의 내용을 둘러싼 평가와 논의도 많았고,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나 이야기 거리도 적지 않고, 곧이어 이 책의 영어 번역본과 일어 번역본으로 출간된다는 사실도 있고, 최근의 사회과학 책 중에서 그것도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과 구조, 전개 나아가 오늘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망라할 만큼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의 책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서 자리를 지켜왔다는 등, 출판사로서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러나 지금 이 책을 그렇게 한가하게 소개하는 것은 다소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지금의 한국 정치현실이 그렇고, 이에 대해 저자인 최 교수가 이 책의 긴 후기를 통해 개진하고 있는 문제제기가 바로 그 현실을 정면으로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무엇을 위해 기능하고 있는가? 이번 개정판의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요약하라면 저자 스스로가 제기한 이 질문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최 교수의 대답을 간단히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그 정조는 비관적인 쪽에 가깝다. 다소 비판적일 거라는 사실까지야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넘어 비관적이라는 것은 오늘의 한국현실을 마주하는 최교수의 심사가 어떤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설
최 교수에 따르면, 권위주의로부터 벗어난 이후 즉 민주화 이후의 단계에서 민주주의의 초점은, 어떻게 보통사람들의 이해와 관심에 바탕을 두면서 동시에 능력 있는 정부의 창출을 통해 사회구성원 전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하게 된다고 말한다. 민주화냐 아니냐가 아니라, 얼마나 민주화되었느냐 다시 말해 정치적 민주화를 경제적 민주화로 이어가고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단위로까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진전시키고 현실화하면서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최 교수가 주목하고 있는 양상은 크게 두 가지 역설적 사실이다. 하나는 민주정부하에서 보통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삶이 더 악화되고 공동체적 기반이 해체되고 있으며 시민성의 기초가 황폐화되고 있다는 역설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 교수가 금년 초에 편집, 발간한 『위기의 노동』을 통해 자세히 논의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저자가 “슈퍼재벌의 등장”이라고 개념화하고 있는, 사상 초유의 경제권력이 민주정부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역설이다. 노무현 정부가 이들 슈퍼재벌이 만든 가치관과 정책프로그램을 수용하고 인적관계를 수용하고 의존해왔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법의지배를 관철하려 하면서 이 슈퍼재벌의 범법행위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하다 못해 협조적이라 할 만큼 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온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귀결은 한국 민주주의의 극적인 변형과 민주화 이후 사상 최악의 분배구조 악화라고 말한다.

“출범 초기 개혁적일 것으로 기대되었던 하나의 민주정부가 슈퍼재벌과 연대하는 모습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패러독스는 없을 것이다. 성장주의와 시장효율성의 가치가 지배적인 지위를 갖게 된 정책레짐에서 만들어진 슈퍼기업의 등장이, 민주화 이후 사상 최악의 분배구조 악화를 수반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로 보인다.”


슈퍼재벌을 만들어낸 한국적 신자유주의
이러한 역설적 현상의 원인으로 최 교수는, 민주정부라면 가장 중심으로 삼아야 할 사회경제 정책에 있어서 노무현 정부가 보수적 경로를 선택한 사실을 지적한다. 최 교수는 노부현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의 특징을 “한국적 신자유주의 정책레짐”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를 교조적으로 수용하고 과격하게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렇다고 박정희식 발전모델이라고 불리는 과거 권위주의체제하에서의 발전모델을 대체한 것도 아닌, “권위주의 국가주도형 발전모델의 연장선상에서 구 이념과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기에 신자유주의가 접합된 변형”을 내용으로 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를 변형시키는 것, 나아가 “실질적 민주화의 실패”로 이어지게 했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그리 급진적인 것도 아니고 민주정부가 대면해야 했던 현실적 제약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했다거나 유럽식 복지국가체제를 선택해야 했다는 반(反)사실적 가정에 기초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여러 비교연구의 결과에 기초해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렇다. 신자유주의가 압도적인 외적 제약하에서도 그것의 부정적 효과를 통제하고 보완하거나 아니면 사회정책이나 노동정책을 통해서 경제정책의 신자유주의적 내용과 균형을 맞출 수 있으며, 민주정부가 정치적 역량을 키워감에 따라 한국적 현실에 상응하는 정책적 대안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은 확대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 그 경로를 개척하는 데 실패 혹은 사실상 그러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기회와 실패
앞서 지적했듯이, 노무현 정부가 집권했을 당시의 제약조건에 대해서 최 교수가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최 교수는 누구보다도 한국정치에서 개혁세력의 등장이 중심부 정치엘리트 내부에서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해왔다. 노무현 정부는 그 극단적 예가 된다. 그는 구 여당의 정치기반을 승계하는 데 있어서나 새로운 지지기반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나 많은 어려움을 갖고 출발했다. 애초 조직화된 사회세력을 대표했던 것도 아니고, 뚜렷한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적 비전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으며, 인적 자원도 적고 약했다. 그러나 이것이 변명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노무현 정부는 두 번의 선택의 기회를 가졌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하나는 대통령선거에서의 민중적 위임이 만들어낸 힘을 향유했던 집권 초였다. 다른 하나는 2004년 총선 이후 정치가 다시 정상으로 복원된 이후였다. “처음 실패를 거울로 이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고, 한국정치의 지형을 보다 민주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맞이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큰 행운을 가졌다”고 최 교수는 다른 글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후 대통령의 선택은 보수적인 경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선택은 대통령 당선과 탄핵 이후 총선을 통해 표출된 민중적 개혁의지의 내용이나 방향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대통령은 보수적 세력이나 투표자로부터의 지지를 얻고자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실제로 결과한 것은 본래 자신의 지지기반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킨 것이었다. 또다시 허약한 정부로 회귀한 것이다. 최 교수가 문제로 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절망의 한국 민주주의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이 두 번째 기회의 실패로 인한 비용을 아주 혹독하게 치루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저자는 오늘의 노무현 정부에 대해 거의 절망하고 있다. 다음 인용은 이 책에 나타난 저자 최장집 교수의 비관적 정조를 잘 대변한다.

“책에서 필자가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민주정부들이 이들 문제를 개혁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대해 비판과 실망을 말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정부가 할 수 있는 가능의 영역이 넓게 열려 있으며 그 영역을 개척해 가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의 엄중함은 이러한 배면에 깔린 정조에 훨씬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민주화 이후 여러 가지 제약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사회가 이를 위한 잠재력과 자원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 자원 자체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민주주의라든가, 개혁이라든가 하는 말은 더 이상 어떤 도덕성을 함축하거나, 집합적 에너지나 열정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 그동안 민주정부들은 정치적 민주화를 경제적 민주화로 이어가고, 정치적 수준에서의 민주화를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단위로까지 진전시키고 확대하면서,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또한 운동의 이상과 열정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대안을 강고하게 건립하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힘과 세력은 약화되고 해체되면서 기존의 사회구조와 헤게모니 내로 흡수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환경에서 구질서의 구조와 가치들은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언어로 복원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구 권위주의에 못지않게 경제적?사회적 기득층들의 이익이 더 잘 실현될 수 있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정부의 무능력
이 책을 읽노라면, 민주정부의 무능력이 재난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가치에 반하는 파괴적이고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민주화 이후 특정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질,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민중적 삶의 여건이 개선되는 문제는 민주정부의 능력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갖는다고 말한다. 특히나 한국처럼 박정희모델의 영향력이 강한 조건에서 민주정부의 무능력은 곧바로 권위주의 내지 엘리트주의적 경향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 따라서 “우리가 실현해야 할 최선의 경로는 민주정부가 자신의 지지기반을 견고하게 하면서도 넓은 인적?지적 자원들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광범한 사회적 기반 위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적인 것이 곧 유능한 시스템을 만들며, 유능한 시스템이 다시 민주주의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인과적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대표’와 ‘책임’을 핵심원리로 하는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이러한 정부의 유능함과 민중적 기반이 인과적 순환관계를 가질 수 있는 제도적 결절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당이 중심이 되는 정치체제를 만드는 일이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였듯이 그것은 정당이 중심이 되는 정치체제이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민주정치란 정당을 중심적 메커니즘으로 하여 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폭넓게 표출하고 대표하는 방법을 통해 다수의 힘을 동원하고,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권력을 획득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정책적 대안을 실현하고, 그 실현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지지를 동원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적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선출된 정부가 취할 정책의 방향은 이미 선거과정을 통해 사회와 투표자들로부터 제기됐다고 볼 수 있다. 특정의 정당과 후보가 선거경쟁에서 다수를 획득하여 정부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투표자들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요구했던 이슈들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책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이를 집행하라는 위임(mandate)을 부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내용을 구성하는 대표-책임의 관계는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대표는 투표자들이 그들의 요구를 정치인과 정당에게 위임하는 것이며, 이 때 위임받은 자는 투표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를 이행할 책무를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중적일 수 있는 최소요건은 정당정부(party government)를 만드는 일이다. 노동당 정부, 보수당 정부, 민주당 정부, 공화당 정부, 사민당 정부라고 하듯 우리도 대통령 개인의 정부만이 아닌 정당의 정부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정당은 통치자로서의 유능함을 발휘하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이 강화될 수 있게 하는 ‘현대판 군주’이자 ‘민주주의의 엔진’이 아닐 수 없다.”

정당없는 민주주의의 실패와 갈등회피적 정치관
앞서 인용문에 나타나듯, 최 교수가 견지하는 민주주의관의 핵심은 ‘존재하는 사회갈등과 균열에 폭넓은 기반을 둔 정당중심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을 말하지 않으면서 정치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의 권력과 권위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뒤얽혀있는 사회로부터 발생하며, 그의 리더십과 수행능력은 일차적으로 그를 선출한 다수투표자들의 이익과 요구를 대표하고 반영하되 그것이 사회 전체이익과 병행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조화시키는 데서 발휘된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경우 저자의 생각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3김정치를 극복한 탈권위적 리더십이니, 정치는 당에 정책은 책임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국가 전체적 과제에 집중하겠다는 등의 논리나, 당정분리, 원내정당화, 정책정당화라는 등 현재의 정부에 들어와 자주 사용되는 개념들은 정당과 정치논리를 스스로 부정시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관을 집약적으로 말해준다.
대통령은 정부와 사회를 매개할 수 있는 정당과의 관계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거리를 두었다. “대통령은 정당을 기반으로 선거에서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당이 갖는 특정의 정치적 관점 내지 이념을 발전시키거나 그에 기초하여 사회의 갈등과 균열에 접근하는 정당의 지도자로서 행위하기보다, 사기업조직의 CEO와 같이 정부조직의 혁신과 생산성을 높이는 관리자 혹은 파당적 쟁투로부터 벗어난 국가 전체의 지도자로서 행위하는 데 관심을 집중해왔다”. 최근에도 대통령은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내거나, 이를 우회 혹은 초월하여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한 지도자의 역사적 결단을 강조해왔다”. 정당이 중심이 되는 대표-책임의 연계구조는 선출된 정부에 대해, 한편으로 선출된 대표에게 책임을 지우기 때문에 그들이 권력과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제약하고, 다른 한편으로 지지와 참여를 통하여 그들의 권력과 권한을 강화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은 스스로 대표와 책임의 고리를 끊고 “역사”라는 막연하고 모호한 내용의 말에 의존해 거기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극히 초현실적이고 군왕적 사고를 정치행위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민주주의란 갈등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로서 존재하고 표출되고 있는 실제의 갈등과 대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진정성과 거리가 먼 지역구도 극복론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을 비판하면서도, 지역구도를 극복하겠다는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으나 방법론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저자인 최 교수의 분석은 이런 해석과 양립하지 않을 만큼 전혀 다르다. 기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주의에 몰두하게 된 것은, 실제 우리사회의 중심 갈등인 사회경제적인 문제들과 대면하지 않으려는 것, 혹은 그간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으려는 것의 결과라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대면하지 못할 때 불러들여지는 것은 초현실적인 욕구들이다. 지역주의가 한국사회에서 현실의 중심적 갈등으로 기능하고 있다면 굳이 ‘역사’를 들먹이거나 대통령직을 그만둘 수 있다는 식의 극단적 논리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실제의 중심 문제를 회피하게 될 때, 그저 많은 사람들이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어떤 문제를 과장하거나 극화하여 실제의 현실을 전치(轉置)시키고자 한다. 이 책의 본문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미국 진보정치학계의 한 계보를 구축한 샤츠쉬나이더는 ‘정치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은 있는 갈등을 다른 갈등으로 전치시켜 정의할 때’라고 말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지역구도로 환원하여 이해하는 대통령 자신의 생각을 정치와 사회 전체에 강요하는 지금이 바로 그렇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사회의 중심적 갈등을 대면하지 않는다는 것과 지역주의적 관점에서 한국정치를 본다는 문제 사이에는 적지 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최 교수가 보기에 노무현 정부의 경우, 지역주의를 통하여 정치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수준에 가깝다. 그것도 지역주의 때문에 문제이고 지역주의를 그대로 두는 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권력을 포기해서라도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식의 근본주의적 관점이다. 그러나 최 교수는 한국의 지역문제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최 교수가 보기에 한국의 지역문제는 권위주의 지배의 한 산물로서 반호남주의를 핵심으로 한다. 그리고 이는 김대중 정부의 집권과 함께 괄목할 만큼 개선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비교적 용이하게 지역주의가 완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가 독자적인 사회균열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의 문제가 만들어낸 ‘결과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역주의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민주화의 진전을 억압하기 위해 지역주의를 동원하고 영향력을 갖게 만든 한국정당체제의 이념적 협애성과 사회적 기반의 약함, 시민사회의 강한 보수 헤게모니 등이 문제이고, 따라서 지역주의 극복 그 자체에 몰두하는 것이 대안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불러내고 유지시키는 요인들을 개선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최 교수 본래의 논지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논의들과는 달리, 최 교수는 “오늘의 시점에서 지역문제가 정권의 운명을 걸고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뭔가 다른 의도를 가진 정치적 알리바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잘라 말한다.


정치를 비합리적으로 만드는 길
대통령의 말대로 한국의 지역주의가 ‘망국병’, ‘지긋지긋한 고질병’이며, 한국정치의 의식과 문화, 행태와 제도를 지배하는 힘이라고 말한다면 지역주의 극복 없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런데 대통령이 망국병이라 말하는 지역주의란 도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선거제도를 바꾸면 지역주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문제라면 무엇 때문에 정치가 대통령은 스스로를 종교적 순교자가 되겠다는 식으로 행위하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은 물론 정부여당 어디에서도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튼튼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구나 다 그렇다고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혹은 그럼 지역주의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는 반문이다. 따라서 이런 논의의 자연스런 귀결은 현실정치를 아무런 합리적 대의 없이 지역감정이 난무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적나의 당파적 이익이 충돌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정치가 긍정적으로 인식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현실이 비판의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해석은 정치를 모든 문제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보는 지배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개혁의 최대 과제를 지역주의 정치의 타파로 정의하고, 지역주의에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정치가와 집단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추궁하게 될 때,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이해는 더욱 약화되고 여론의 호응을 동원하기 위한 공허한 제안들의 다툼이 이어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선거구제 개편으로 논의를 이어가려는 게 핵심이라는 대통령과 여권의 태도에 대해서도 최 교수의 비판은 강렬하다. 대통령과 여당이 가장 선호하는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도를 바꿀 경우, “기존 거대정당들은 규모의 이점을 나눠 갖게 되고, 보수독점적 양당체제는 강화되며, 오히려 약화되고 있는 지역갈등구조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이(며)....나아가 그럴 경우 사회의 계층이익들이 대표될 수 있는 보다 민주적 제도개혁의 가능성은 사전에 봉쇄될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에 기초한 현실인식 위에서 추구되는 지역간 균형발전의 메가 프로젝트들이나 지역안배인사는 어떤가? 최 교수의 대답은 “보다 중요한 정책영역에 있어서의 자원배분을 제약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고) .... 공직의 충원이 지역간 형평의 기준을 최우선으로 할 때 또 다른 차원에서 인적 충원의 불균형을 결과할 것”이 분명하다는 데 있다.


누가 지역주의자인가
최 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지역주의적 접근을 대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 된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진단부터 해결책에 이르기까지 지역주의 때문에 그렇고 지역주의극복 아니면 없다는 식의 이해방법 자체가 지역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지역주의에 온몸을 걸고 싸운 사람이라 말하는, 이른바 스스로를 지사형 반지역주의자로 정의하는 것 자체부터가 다소 억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자신과 같은 반지역주의자가 다수 유권자의 지지에 의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지역주의 망국론’을 말하는 것 자체부터가 논리적으로 불합리한 것이다. 다수 유권자를 민주주의의 승리를 가져온 ‘위대한 국민’으로 호명할 때와,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유권자’로 규정하는 것 사이의 모순은 전혀 주목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자를 말할 때는 ‘모든 것을 국민의 뜻에 따라’ 하겠다고 말하고 후자를 말할 때는 ‘지도자가 결단해서 역사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며 국민을 질책하는 것이다.
지역개발정책 역시 지역주의적 접근의 한 전형이다. 최 교수의 서술을 따라가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책의 본문에서 강조하였듯이 지역주의 문제의 해결도 민주주의의 발전도, 한국의 정당체제가 갈등의 사회화 내지 전국화에 그 기반을 둘 때 가능하다. 지역개발정책이든, 혁신도시 건설이나 기업도시 건설, 지역균형발전정책이든 지금까지 추진되었던 정책들은 정당간에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기보다, 지방자치정부와 지방이익들간의 새로운 경쟁과 갈등을 유발하는 데 기여했다. 다시 말해 갈등을 국지화시키는 효과를 가졌던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정치적 차이와 갈등은 정당들의 계층적?이념적 지지기반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정부여당의 정책이기 때문에 혹은 이에 반대하는 야당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측면이 크다. 예산을 통제할 수 있는 정부여당은 지역을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며, 정책의 수혜를 받는 지역과 수혜관계를 형성하는 데 용이하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야당이 후에 집권하게 되더라도 유사한 지역개발정책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결국 지역개발정책을 둘러싼 정치란 국가의 재정지출을 둘러싼 정당정치인, 기업, 지방자치정부, 이 정책으로 혜택을 보는 지역의 수혜자들 사이의 이익연합의 정치가 주 내용일 수밖에 없다. 정책수행의 파트너는 일차적으로 기업이며, 그것도 재벌대기업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지역주의를 완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실제의 결과는 지역간 정치경쟁을 자극하고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것은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것으로서 사회구성원 전체가 자기 지역 위주의 개발이익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시민성을 황폐화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 밖의 중요한 논의들과 결론
최 교수가 논의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소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주제는 아닐 것이다. 제도만능주의와 헌정주의의 문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 문제들은 이미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논쟁 주제로 떠올랐다. 제도적 접근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점에서 볼 때 최 교수의 여러 주장은 긴장을 야기할 수 있다. 강력한 권위주의 문화와 국가주의적 전통을 비판하면서 자유주의를 불러들이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이 글이 여러 가지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글은 오늘의 정치현실 속에서 독해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 제도와 헌법, 자유주의 등의 문제는 시간이 가면서 논란의 주제로 부각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자신의 논의를 종결짓는 일종의 주장 내지 실천적 함의를 이렇게 요약한다. “민주주의를 희구하고 투쟁했던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실망하고, 이를 비판하는 ‘소극적 시민’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민주주의를 만드는 과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함께 민주파로서의 집합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일이 절실하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투쟁과 민주주의를 만드는 과업은 다른 성격의 문제라는 전제위에서, 정부가 된 민주주의가 강한 사회적 기반을 가지면서 유능하게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를 말해야 하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인 내용을 갖고 발전할 수 있는 경로를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민주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저자의 결론으로부터 독자인 우리들이 적극성과 열의를 느끼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보다는 비관적 상황인식 위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사회의 공적 관심이 쇠퇴하거나 개인의 영역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으려는 한 지식인의 절규처럼 들린다. 안타까운 우리 현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적 모습은 이처럼 최 교수의 글을 읽는 우리의 복잡한 심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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