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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영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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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하늘 시민권을 가진 이 땅의 나그네들을 위한 안내서

Part 1. 시대를 묻다, 시대 속 영성의 틀을 세우다
- 다원주의 환경을 마주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1. 신학자로서 통찰하다
격변의 시대,
정치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2. 목회자로서 통찰하다
우리는 복음의 불로 타오르는
이중 시민권자인가

3. 모험가 정신으로 마주하다
익숙한 답이 통하지 않는 시대,
신앙의 야성을 회복할 시간

4. 개척자 정신으로 마주하다
두려움과 불편을 무릅쓰고
공공의 광야에 길을 내다

Part 2. 좁힐 수 없는 차이 속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 끼리끼리의 벽을 허무는 법

5. 작가로서 통로가 되어
내가 속한 시공간을 정확히 읽어 내며
영원한 현실을 선언하다

6. 송라이터로서 통로가 되어
비극과 아름다움, 그 마디마디를
정직한 노래로 증언하다

7. 스토리텔러로서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거대 서사로,
왜곡된 서사를 다시 직조하다

8. 번역자로서 통로가 되어
두 세계에 온전히 발 딛고서
양편의 언어로 서로를 잇다

Part 3. 세상 한복판에서 어떻게 복음을 살아 낼 것인가
- 메마른 곳에 하나님 나라의 숨결을

9. 다리 놓는 자로 섬기기
오해와 갈등의 현장,
서로 마주 앉을 자리를 설계하다

10. 돌보는 자로 섬기기
성취의 사다리에서 내려와
‘아프고 고단한 동료 여행자’ 곁에 서다

11. 화해자로 섬기기
그리스도의 압도적 사랑에 매여,
답 없는 균열을 파고들다

12. 평화를 이루는 자로 섬기기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이 땅에 ‘샬롬의 질서’를 일구다

에필로그. 겸손과 인내와 관용으로, 한 번에 한 걸음씩
감사의 글

필진의 다른 작품들

저자 소개3

팀 켈러 (티머시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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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othy J. Keller,팀 켈러

맨해튼을 비롯해 미국 뉴욕 세 군데 지역에서 약 6천 명의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리디머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설립 목사. 팀 켈러의 설교는 철저히 예수 복음 중심이며,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지성으로 이 시대를 통찰력 있게 읽어 준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구도자와 회의론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팀 켈러는 한 시대의 문화와 사상이 만들어지고 집약되는 ‘도시 지역’ 선교에 헌신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전 세계 100개 이상 도시에 430개 교회의 개척을 도왔다. 2017년부터는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세계 각국 교회 지도자들의
맨해튼을 비롯해 미국 뉴욕 세 군데 지역에서 약 6천 명의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리디머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설립 목사. 팀 켈러의 설교는 철저히 예수 복음 중심이며,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지성으로 이 시대를 통찰력 있게 읽어 준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구도자와 회의론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팀 켈러는 한 시대의 문화와 사상이 만들어지고 집약되는 ‘도시 지역’ 선교에 헌신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전 세계 100개 이상 도시에 430개 교회의 개척을 도왔다. 2017년부터는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세계 각국 교회 지도자들의 도시 전도와 사역을 돕는 단체인 CTC(City to City)에서 섬겼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버크넬대학교(Bucknell University), 고든콘웰신학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했다. 1984년부터는 5년간 모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강단에서 설교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췌장암 투병 끝에 2023년 5월 19일 타계했다.

팀 켈러 (티머시 켈러)의 다른 상품

존 이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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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Inazu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법과종교 샐리 D. 댄포스 특훈교수다.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과 집회 종교의 자유 및 법정치이론의 관련 문제들에 집중하고 있는 그는 워싱턴대학교의 크리스천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대학, 교회, 사회를 섬기고 연결하는 일을 돕는 비영리단체 카버프로젝트(The Carver Project)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미국의 정치사상과 헌법사상에서 집회의 역할을 재발견하려 시도한 Liberty’s Refuge: The Forgotten Freedom of Assembly(자유의 피난처: 망각된 집회의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법과종교 샐리 D. 댄포스 특훈교수다.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과 집회 종교의 자유 및 법정치이론의 관련 문제들에 집중하고 있는 그는 워싱턴대학교의 크리스천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대학, 교회, 사회를 섬기고 연결하는 일을 돕는 비영리단체 카버프로젝트(The Carver Project)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미국의 정치사상과 헌법사상에서 집회의 역할을 재발견하려 시도한 Liberty’s Refuge: The Forgotten Freedom of Assembly(자유의 피난처: 망각된 집회의 자유)와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시민적 실천을 다룬 Confident Pluralism: Surviving and Thriving Through Deep Difference(확신 있는 다원주의: 커다란 차이를 넘는 생존과 번성)이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영문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소재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기독교영성학으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장신대, 한남대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교목실장으로 연구와 교육에 몸담고 있다. 그동안 유진 피터슨 『메시지』『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고통의 문제』, 파커 팔머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알렉산더 슈메만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배』 등의 주저를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했으며, 저서로는 『하나님을 향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영문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소재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기독교영성학으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장신대, 한남대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교목실장으로 연구와 교육에 몸담고 있다. 그동안 유진 피터슨 『메시지』『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고통의 문제』, 파커 팔머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알렉산더 슈메만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배』 등의 주저를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했으며, 저서로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여정: 기독교 영성 탐구』『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훈련』『백투더클래식: 영성고전으로 오늘을 읽다』(이상 공저) 등이 있다.

홍종락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00g | 135*215*18mm
ISBN13
9788953152526

책 속으로

세상에 참여하다 보면 낯선 관계를 맺고 위험한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그분은 단순히 안락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이라는 확실하고 분명한 대가를 치르면서 세상에 참여하셨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으로 가셨을 때 사람들은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눅 19:7, 새번역)고 수군거렸지만 예수님은 가시던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을 기록하며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나(요 4:9),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우물가에서 그 여인에게 말을 건네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죽으셨다(눅 23:43). 우리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우리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붙들고,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사신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한다.
--- p.21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나는 존 이나주가 제안한 ‘확신 있는 다원주의’가 분열된 정치 문화 속에서 베드로의 권고를 실천할 방법이라고 본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내’할 수 있다. 다양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영원히 주님이심을 아는 장기적인 관점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겸손’할 수 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온전히 의존하는 존재임을 알며,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의견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사랑은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온전하고 밝히 보게 될 날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하기 때문이다.
--- p.42

바울은 우리의 주된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썼지만(빌 3:20-21), 사도행전을 보면 그는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수시로 언급하고 활용했다. 이는 우리가 예레미야 29장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예루살렘 시민이었던 유대인 유배자들에게 바벨론의 가장 탁월한 시민이 되라고 명하셨(4-7절). 직관과는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눅 10:20)되었다는 확신에서 오는 안정감과 사랑, 기쁨과 용기에 힘입어, 모든 지상 공동체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시민들이 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이런 성경적 주제들로 무장한 뒤, 문화의 바람에 휩쓸려 동화나 은둔 중 한쪽으로 향하는 두 종류의 신자들에게 다가갔다. 첫 번째 집단에게는 그들이 이 사회에 좀 더 거북함을 느끼게 하려 노력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이 세상의 시민권보다 우선함을 깨달아야 했다. 그로 인해 성, 돈,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도시의 나머지 사람들과 뚜렷이 달라져야 함을 알아야 했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그들이 뉴욕의 진짜 시민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켰다. 나는 그들에게 세 가지 방식으로 섬기고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사람들과 만날 때 자신의 신앙을 밝히고, 신앙을 자신이 하는 일과 통합시키며, 지역 사회에서 정의와 긍휼을 위해 일하라는 것이었다.
--- p.60

우리는 대개 자신의 핵심 신념과 상당 부분 다른 사람, 기관, 운동과 협력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속한 가족, 직장, 국가의 목표와 열망이 비기독교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조직의 목표와 갈망이 불의하거나 악한 것일 때는 그것들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가까이 다가가 공통점을 찾아내야 하며, 선을 긋는 일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 소금이 소금 그릇에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등불을 그릇으로 덮어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서든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기꺼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평소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라 해도 말이다.
우리는 차이 속에서도 함께 여행해야 한다.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늘 복음 중심적이지는 않은 사람들 및 사안들 속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는 의미다. 모험가에게 이는 반가운 소식이다. 색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분투는 무엇일까? 어디에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서 드러나고 있을까?”
이런 관대한 정신의 원천은 순진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에 대한 신뢰다. 이 정신은 기쁨을 기대하게 한다. 낯선 것을 단순히 견디는 상태를 넘어, 뜻밖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는 가치를 겸손하게 인정하는 단계로 우리를 이끈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생각에 열려 있게 만든다. 분별과 성경적 비판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그 목소리에 반드시 겸손과 사랑이 담겨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자세가 우리를 위험에 노출시킨다고 주장할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모험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이 사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모험에 소망과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안내자가 신뢰할 만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 pp.89-90

앤서니 브래들리 박사는 이 소금의 본질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제시한다. 소금을 거름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는 2016년의 --- p.크리스채너티 투데이〉 기사에서 고대 세계에서는 소금을 거름으로 이해했다는 농업 전문가 유진 디트릭과 로버트 포크의 연구를 인용했다. 브래들리는 이러한 관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인다. 필리핀 코코넛청에 따르면, 소금은 “작물의 성장과 발육을 촉진하고 수확량을 증대시킨다. …… 실제로 소금 비료를 준 농가들은 소금을 쓰지 않았던 코코넛 나무들에 비해 수확량이 125퍼센트나 증가했다.” 브래들리에 따르면, 소금을 거름으로 보는 이러한 이해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어떤 것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곳으로 가서 새 생명이 자라도록 도우라는 부름을 받았다는 적용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세상에 맛을 더하거나 세상이 부패하지 않게 막기 위해서만 여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의 황폐한 곳에 가서 성장을 자극하고, 세상의 거름더미에 기꺼이 섞여 들어가 하나님이 그 거름을 사용하셔서 새롭고 고결한 삶을 일으키실 수 있도록 하는 사명을 받았다.”
--- p.110

개척자가 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의지를 갖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마지못해 나선 개척자’가 된다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뜻한다. 때로는 사회적 평화, 인종 화해, 공동체적 선의가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이 희망적이지 않아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창조적인 분이시기에 우리 또한 지역 사회의 난제들에 창조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그분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능히 감당할 역량을 주셨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불편하고 비범한 행동에 나서라고 우리를 부를 수 있다. 우리가 그런 상황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종종 당면 과제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교회나 교단이 당대의 거대한 사회적 이슈들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며 지역 사회의 긴장을 직시하게 되기도 하고, 공적 영역에서 신실하게 자리를 지키는 동료 신자들을 지원하라는 부름을 받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안심하고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고 생명을 전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 p.115

여기서 나는 작은 기적을 발견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 자신을 형성한다는 사실이었다. 너그럽고 사랑이 담긴 언어를 사용하라는 상급자의 권고는 우리가 학교 측을 느끼는 방식을 바꿔 놓았다. 정말 그렇게 말과 글을 사용했더니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졌고,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대학 측의 좋은 점들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대학 측과의 견해 차이를 명확히 글로 표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학계의 진보적 엘리트들을 맹렬히 혹평하는 쪽이 훨씬 쓰기 쉽고 관심도 더 많이 끌었을 것이다. 우리가 맡은 더 미묘하고 까다로운 과제는, 공개적으로 의견을 달리하되 어설프고 불완전하게나마 진실하며 겸손한 언어를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논쟁 상대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논증을 구사하는 것, 즉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쓰되 잠깐의 만족을 위한 독선적 독설은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 과제에 충실하려니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고, 우리를 거부한 이들과의 의미 있는 관계 유지를 위해 긴장하면서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 p.127

그러나 그해 나는 언어의 한계에도 부딪쳤다. 솔직히 나는 내가 올바른 논증을 제시하고 적절한 권위자의 말을 인용하며 잘못된 범주를 뒤흔든다면, 즉 충분히 글을 잘 쓰기만 한다면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적절한 말을 찾는 일이 결국 우리를 구해 줄 줄 알았다. 그러나 매력적인 태도나 지적 엄밀함, 문화적 참여나 섬세함을 동원해도 화해를 가져오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어 그 자체는 구원이 될 수 없다. 말과 글은 오해나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져 내지 못한다. 말은 편협함과 이기심, 어리석음이나 근시안적 태도로 치닫는 우리의 본성을 끝내 이겨 낼 힘이 없다. … (중략) … 말이 없으면 우리는 문화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도 없으며, 누군가를 온전히 알거나 알려질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만으로는 그 과제를 감당하기에 결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말이 우리를 진리로, 궁극적으로는 말씀이신 분께로 이끄는 정도만큼만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언어를 사용한다. 그분은 모든 말 이전에 계셨으며, 우리의 영광스러우면서도 다루기 힘든 말, 빛나면서도 한계가 뚜렷한 이 작은 말들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심판하고 구속하신다.
--- pp.128-129

예수님은 완전한 공동체를 떠나 우리의 폭탄 구덩이 속으로 내려오셨다. 그분 자신의 것이 아닌 고난 속으로 들어와 곡을 연주하셨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곡이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군대 동원과 진군을 원했지만, 대신 예수님은 지금까지 울려 퍼진 것 중 가장 아름답고 참된 노래를 연주하셨다. 전쟁으로 찢긴 나라에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디서든 폭격으로 패인 구덩이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신적 본성에 참여할 수 있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으며,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송라이터인 나는 인간 경험 전체를 증언하라는 초청에 응하고, 폭탄 구덩이에서 연주된 곡처럼 내 증언 하나를 올려 보냄으로써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 pp.145-146

번역이라는 나의 소명은 교회 친구들에게는 대학을, 대학 친구들에게는 교회를 풀어 전하는 데 있다. 그렇게 이 두 세계를 오가는 삶 속에서 나는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언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종의 이중 언어 번역자가 되었다. 두 문화를 모두 잘 안다는 것은 어느 쪽에서도 완전히 편안하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수요일, 영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안겨 주는 동료들과 교수 회의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들은 내 사람들이 아니야.’ 몇 시간 후, 교회에서 영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안겨 주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이들은 내 사람들이 아니야.’ … (중략) … 나는 이 두 문화를 잇는 번역을 “한 발은 한쪽 세계에, 다른 발은 다른 세계에” 딛는 일로 생각하곤 했다. 비기독교 대학교의 기독교인 교수로서 나는 내 한 발을 대학교에, 다른 발은 교회에 딛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 비유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유능한 번역자가 되려면 서로 다른 두 맥락에 동시에 완전히 몰입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대학에도 두 발을, 교회에도 두 발을 다 딛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pp.191-192

예수님이 팔복을 말씀하신 순서에서도 평화를 이루는 일의 중요성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온유하지 않다면 결코 평화를 이루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평화를 이루는 주체가 아닌, 평화가 이루어져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평화가 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주어지기만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우리를 자신과 화해시키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깨닫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책임을 통감하며, 앞장서서 평화를 가져오고 다른 이들과 평화를 이루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평화를 이루는 자들을 위한 복은 팔복 중 일곱 번째다.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다. 예수님이 이 복을 일곱 번째에 두신 것은, 평화를 이루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시사하신 것이 아닐까? 신자의 온전한 삶은 그가 무엇을 만들어 내고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하는가로 증명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단순히 혜택을 소비하는 자가 아니라 기여하는 자로 부름받았다. 그들의 정체성은 그들을 위해 차려진 식탁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일구어 낸 열매로 정의된다. 이는 특히 평화의 영역에서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평화를 이루는 자가 되라고 끊임없이 촉구하신다.

--- p.281

추천평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사랑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기독교적 확신이 강한 이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팀 켈러와 존 이나주는 이 일의 본보기일 뿐만 아니라 이 훌륭한 책을 통해 지혜로운 대화 상대자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은 점점 더 다원화되는 문화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데 필수적인 영적 덕목, 곧 겸손과 인내, 관용을 기르는 데 꼭 필요한 조언을 들려준다. - 리처드 마우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 신앙 및 공공생활 교수)
지독한 갈등의 시대에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자 애쓰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통찰력 있고 즉시 실행 가능한 틀을 겸손하게 제시한다. 기꺼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지혜를 나누어 준 열두 명의 리더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웃과 원수를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도 절박한 과제이며 때로 큰 대가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 주듯, 이는 결국 예수님의 일이기에 우리는 큰 소망을 품고 이 사랑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 게리 A. 하우겐 (국제정의선교회(IJM) 설립자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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