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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쓴다 ]
날마다 쓴다/ 산문/ 잔돈은 놔두세요/ 초겨울밤 자문자답/ 아득하게/ 고독한 사업/ 오늘의 금언/ 에피소드 작법/ 무엇이 아쉬운가/ 황포항의 로버트 프루스트/ 생명작업/ 정림사지 오층석탑/ 내 시집 사인해드릴까요?/ 입 꾹 다물고/ 백척간두/ 무명 생활/ 실용적인 시/ 편견을 산다/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더 말해 보세요/ 은둔형 에세이스트 [ 나는 시를 믿지 않는다 ] 나는 시를 믿지 않는다/ 시인의 서사/ 나의 순교/ 야한 농담/ 어떤 남자/ 예스/ 어떤 타이피스트에게 쓰는 편지/ 시와 철학/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시/ 내가 쓴다는 것/ 청탁 없는 글쓰기/ 은둔의 형식/ 내가 전화를 거는 곳/ 누구든, 내가 되는/ 롱아일랜드/ 작가들의 랭킹/ 예술적인 너무나/ 산문/ 종각에서 맞는 첫눈 [ 밤의 허밍 ] 군소리/ 밤의 허밍/ 아이러니/ 가끔 생각한다/ 거장의 지팡이/ 진정한 자아/ 반복의 꿈/ 마치 살아 있다는 듯이/ 시집에 가까운 책/ 똥/ 나는 후회하고 싶다/ 11월/ 내부자 농담/ 4분 33초 2악장/ 시가 아닌 방식으로/ 잠시 침묵/ 손끝의 떨림/ 진퇴양난의 글쓰기/ 손가락의 보수주의/ 책과 헤어지기/ 시인의 자리/ 나에게 묻는다/ 만각과 몽각의 시쓰기/ 감수성 갱신 공고 시안 [ 어떤 의미에서는 ] 닭의밑씻개/ 어떤 의미에서는/ 한때/ 흥분/ 미완의 완성/ 괜히 쓰는가 봐/ 이런저런 일/ 거장들이 바빠서 못 쓴 시/ 정직성/ 평범한 저녁/ 조계사 앞에서/ 이런 사람을 믿는다/ 모르긴 몰라도/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강릉의 숨소리/ 뜬구름/ 회고담 두 편/ 인공지능에게 물으면/ 원고료를 인상하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칼럼을 쓴다는 것/ 시 [ 당신에겐 당신의 시가 있다 ] 키오스크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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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는 고독한 사업이자 조금은 독한 사업이다. 시가 뭐라고 여기에 매달려 문자판을 두드리고 있겠느냐 그 말이다. 시인이면서 나는 비(非)시인의 세계를 표상한다. 정신 차리자.
--- p.19 작은 항구에서 회를 썰면서 늙어가는 로버트 프루스트가 잘못 든 길을 회고하듯 물 나간 빈 항구를 내다본다. 저 남자에게는 거슬러받아야 할 약간의 삶이 남아도는 듯 했다. --- p.28 누구도 존경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다. 팽나무 옆을 지나오면서 몸을 달구던 꿈. 헛되고 망령되었던 욕망들. 나는 무얼 그리 썼단 말인가. 이 문장은 다음처럼 번역된다. 무얼 그리 징징거렸단 말인가. --- p.40 실용적인 시, 그게 좋다. 누구나 슥슥 읽고 인생을 수정할 수 있는 시. 두통, 치통, 생리통, 우울증에도 효과가 좀 있는 시. 그리고 휙 던져버리는 시. --- p.42 그러니까 나는 시를 쓸 때 부사어와 형용사를 자주 쓴다. 거의 애용하는 수준. 문장에서 두 가지 품사는 기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개의치 않는다. 쓰라고 있는 말을 왜 쓰지 말라고 하는가. --- p.43 환갑 그러니까 예순 살이 넘어서 시를 쓰는 건 치매 비슷한 거 아닌가요? 이 말 앞에서 미소 짓는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소. 마치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화답의 작은 미소, 부처님 제자 가섭을 벤치마킹하는 미소. 이 대목쯤에서 아트 블레이키의 펑키한 드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면 좋겠다. --- p.59 이 남자가 김수영 산문집을 애독한다는 말이 흘러다녔다. 술자리에서는 「거대한 뿌리」를 왼금으로 통째 낭독한다는 썰도 있다. 낭독 끝에 그가 후렴처럼 입가심으로 중얼거린다는 말. 민주주의 만세. 개 같은 민주주의여. --- p.62 밤잠을 설치며 한 줄의 시를 쓴 시인보다 아침에 눈 뜨면서 자신의 따분한 일상의 루틴을 배반할 작심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우리 시대의 예술가다. --- p.86 한국문학 장면에 거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거장을 갖지 못한 채로 달린다(고 생각하는 중). 근거없는 불안과 신경증은 나의 것이지만 대신 비거장들이 분발하면 된다(고도 생각한다). --- p.99 금번 예술성과 시인노조총연합회 본부에서는 모년 모월 모일을 기해 본방 시인들의 감수성 고유번호를 일제히 갱신 재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한번 득하면 영구히 자기화했던 시인들의 감수성 권한을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5년마다 감수성의 갱신 및 재사정을 공고합니다. --- p.134 알량한 대통령 한 명 뽑는데 물쓰듯 쏟아붓는 국민돈이 얼마인가를 따진다면 원고료야 몇 푼 되겠는가.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잠시 쉬어야겠다. --- p.177 잘 쓴 시는 많다. 누구나 시를 쓴다. 최신형 키보드로 자판공사를 벌이려는 욕망에 복무하는 존재가 시인이다. 흔히 말하는 잘 쓴 시에 공감하기보다 어딘가 부족하거나 어딘가 조금 넘치는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는 이론의 어두운 구석이 밝아온다. 시는 그런 결핍과 과잉의 물산이다. 조금 넘치거나 겹핍을 가장하면서 쓰기란 잘 쓰는 것보다 쉽지 않다. --- p.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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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박세현 시인이 출판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산문집 교정을 보러 온 것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출판사 건너편에 있는 시장통 순대국이었다. 그는 금천구에 와서 먹는 순대국이 단연 최고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입맛이 공감하는 시의 최대치라고 본다. 그는 짐 자무쉬의 영화와 홍상수의 신작에 대해 얘기했다. 왕빙과 장률의 영화가 보고 싶다는 사실도 피력했다. 그는 영화 마니아는 아니다. 몇몇 감독들의 영화는 개봉관에서 극장판으로 보는 순정파인 것은 맞다. 산문집 제목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편집부에서 몇 가지를 제안했다. ‘쓰다, 달다’도 그중 하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믹스 커피를 마시고 맛있다고 인사하면서 그는 돌아갔다. 어쩌다 그의 책을 찾는 독자의 주문 전화가 오면 우리는 마치 옛사람에게서 봉함엽서를 받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의 책을 인쇄하면서 만나게 되는 작지만 뿌듯한 기쁨의 독립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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