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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Gate 01 - 새초롬한 얼굴을 하고 Ep 1 블루스타 Ep 2 개 두 마리와 요르고스 Ep 3 코라가 있는 섬 Ep 4 자유의 의미 Ep 5 곤충 욕심 Ep 6 늘 조금은 취한 채로 환승 시간- 〈어디든 베이스 캠프로 만드는 법〉 Gate 02 - 강렬한 도화지에 Ep 7 택시 기사에 대한 편견 Ep 8 여행의 공기 Ep 9. "털 빠져"라는 경고 Ep 10 나는 튀르키예 전과 후로 나뉜다 환승 시간- 〈히치하이킹 노하우〉 Gate 03 - 돌아온 탕아처럼 Ep 9 에밀리는 없다 Ep 10 프랑스의 혈액형 Ep 11 파란색은 믿음의 색이야 Ep 12 손톱 길이에 대한 철학 Ep 13 마르세유 열병 환승 시간- 〈유럽에서 해먹기 좋은 파스타 레시피〉 Gate 04 - 영겁의 세월동안 Ep 14 죽었던 남자 Ep 15 내가 걷는 이유 Ep 16 불청객 Ep 17 여행 경비 모으기 Ep 18 이별 전리품? Ep 19 내가 정착한다면 그곳은 봉안당일 걸 환승 시간- 〈What's in my bag〉 Gate 05 - 언덕에 누워 Ep 20 호슐랭 3스타 Ep 21 46°23'44.4"N 14°06'21.3"E Ep 22 마리보르 언덕 Ep 23 바위산의 바이탈 사인 Ep 24 로제 와인과 로제 와인색 하늘 Ep 25 11월 28일 환승 시간- 〈배드버그, 그는 누구인가〉 마지막 Gate-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할 말 Ep 26 마리암 Ep 27 그 배우는 어디로 갔을까? Ep 28 땅의 소리 Ep 29 수십 개의 간이역 Ep 30 기억에 오래 남는 것 Ep 31 버려진 버스 입국 심사- 〈좋은 숙소, 나쁜 숙소〉 *Epilo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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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서슴없이 여름 별장으로 들어와 젖은 타월로 내 목을 졸랐다. 나는 께에엑-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고, 눈 주위 실핏줄이 터져 빨간 피가 뚝뚝 흘렀다. 당장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에 손만 겨우 움직여 핸드폰을 켰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말했다. "그…그리스 경찰 번호가 며…몇 번인지 알아?"
--- p.26 세계적인 미국 여행 잡지인 '콩데나스 트레블러(Conde Nast Traveller)는 폴레간드로스섬을 '그리스에 숨겨진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소개했다. 이 작은 섬에는 마을이 3개뿐이며 아직도 나귀를 타고 농사짓는 현지인을 볼 수 있다. --- p.28 몇 년은 그 곤충이 학계에 보고된 적 없다고 확신한 채 농장에 갈 때마다 두 눈을 치켜뜨고 풀숲을 뒤적거렸다. 만약 또 발견하면 내 이름을 붙여서 곤충 도감에 등록해야지-라는 부푼 꿈을 안은 채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 곤충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희귀함이 나를 더 안달 나게 했다. --- p.40 여행하다 보면 높은 확률로 패닉에 빠지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 극도로 분노하거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이 오곤 한다. 그런 순간에 만약 혼자라서 의지할 구석이 없다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고개를 떨구고 걷기보다 이 방법을 써보길 바란다. 이건 즉각적인 안정 효과를 가져올 방법이다. 나는 자주 뿌리던 향수 샘플을 들고 가 인종차별을 당해 서러울 때마다 뿌렸다. 향이란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 p.46 전부 개성이 강한 프랑스인들이었다.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 머리에 남색 셔츠와 흰 반바지를 입은 중동 재벌처럼 생긴 남자, 아담하고 조금 내성적이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 짓는 금발 여자, 낮에는 공항 관제탑에서 일하고 밤에는 래퍼로 활동하는 흑인 남자, 나른한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 있는 틸다 스윈턴 닮은 여자…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각자 술잔을 부딪치며 자유롭게 마셨다. --- p.82 "그거 알아? 동양과 서양에서 색깔의 의미가 다르다는 거." "정말?" 그가 흥미로운 듯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 "예를 들어 노란색은 기다린다는 의미야. 한국에서는 먼저 간 사람들을 위해 노란 리본을 달아두고 기다려." "그래? 내가 생각하기에 노란색은… 기쁨? 즐거움? 행복한 느낌인데." "초록색은? 나는 자연이라 생각해. 초록색을 보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어." "우린 독약. 부정적인 느낌이야." "보라색은?" "보라색이라… 좀 애매한데. 멜랑콜리?" --- p.96 마음에 든 시퍼런 멍이 둥글게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랑스러울지도 몰라. 파란색은 믿음의 색이라 했으니, 이참에 푸르뎅뎅한 내 마음을 한 번쯤 믿어볼까. --- p.100 나는 죽었던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185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덩치였고 낡은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알 코팅이 심하게 벗겨져서 안경을 쓰면 오히려 더 안 보일 듯했다. 그는 그런 사소한 것이 개의치 않은 듯 코를 훌쩍이며 안경을 추켜올리곤 했다. --- p.115 사랑이 전부라는 것 /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전부 / 그것으로 충분하긴 한데 그 짐에 / 비례하여 바퀴 자국이 나겠지 // 특이한 문체가 특징인 그녀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듯 담백하게 써 내려간 짧은 시. 내가 애정하는 시를 닮은 공간을 발견해서 행복했다. 두 사람의 이별에서 시작된 예술이 퍽퍽한 라면땅 같은 도시의 별사탕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헤어져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도 될까. --- p.114 "나는 스포츠 타월을 사랑해요" 스피드 드라이 타월이라고도 불리는 이 마법의 수건은 정말이지 필수다. 한국에서부터 가져가면 좋겠지만, 여행지가 유럽이라면 가서 사는 걸 추천한다. 나는 스페인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산 스포츠 타월을 6년 동안 쓰고 있다. 얇고 가벼우니 온몸을 다 덮을 만큼 큰 사이즈를 사길 바란다. 샤워를 하고 쓰자마자 세면대에서 비누로 세탁한 뒤 2층 침대에 걸어두면 정말 금방 마른다. --- p.152 46°23'44.4"N 14°06'21.3"E. 쇼팽의 녹턴 No. 2를 들으며 걸었다. 새는 지저귀며 선율을 얹고 내 두 발이 내는 발걸음 소리가 박자를 맞췄다. 땅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흙의 풍미에 마음이 무르익었다. 마치 새로운 행성에 처음 발을 디딘 것처럼 생경했다. 내 복숭아뼈에 스치는 잔디와 차가운 물방울이 내게 생명을 말했다. 어릴적 내 손등 위를 기어간 달팽이가 남긴 자국처럼 매끄럽게 속삭였다. 이곳에는 걱정이나 근심, 욕심, 질투, 허영, 화 따위의 나쁜 것은 살지 못한다. 탄생과 죽음도 없다. 소음도 매캐한 공기도 없다. 녹음의 축복이 흐르는 시간을 늦추는 곳. 아니, 어쩌면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이다. 그곳의 좌표를 여기에 남긴다. --- p.163 여기서 히틀러가 마리보르에 와서 '이 땅을 다시 독일 것으로 만들라.'라고 한 게 유명하다. 연합군이 폭격을 가해 도시의 절반이 파괴됐다. 이번에는 슬로베니아인이 추방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가 저물고 난 뒤에는 또다시 독일인이 마리보르에서 추방당했다. 마리보르는 '추방'의 역사가 있다. --- p.169 낭만이란 불편하고 귀찮고 의미 없지만 마음이 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불안이 내 인생의 유속을 재촉할 때 나를 버티게 한 힘은 낭만에서 나왔다. --- p.183 우리 모두 죽음 속에 잠겨 있다고 해도 삶은 삶이니까 삶처럼 살아야 한다. 그것이 끝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올바른 방법이겠지. --- p.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