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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海仁
이해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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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도 따스하게 송이송이 시가 되어 내리는 눈 눈나라의 흰 평화는 눈이 부셔라 털어내면 그뿐 다신 달라붙지 않는 깨끗한 자유로움 가볍게 쌓여서 조용히 이루어내는 무게와 깊이 하얀 고집을 꺾고 끝내는 녹아버릴 줄도 아는 온유함이여 나도 그런 사랑을 해야겠네 그대가 하얀 눈사람으로 나를 기다리는 눈나라에서 하얗게 피어날 줄밖에 모르는 눈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순결한 사랑을 해야겠네 2 평생을 오들오들 떨기만 해서 가여웠던 해묵은 그리움도 포근히 눈밭에 눕혀놓고 하늘을 보고 싶네 어느 날 내가 지상의 모든 것과 작별하는 날도 눈이 내리면 좋으리 오래도록 사랑했던 신과 이웃을 위해 이기심의 짠맛은 다 빠진 맑고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를까 녹지 않는 꿈들일랑 얼음으로 남기고 누워서도 잠 못 드는 하얀 침묵으로 깨어 있을까 3 첫눈 위에 첫 그리움으로 내가 써보는 네 이름 맑고 순한 눈빛의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서 기침하며 나를 내려다본다 자꾸 쌓이는 눈 속에 네 이름은 고이 묻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무수히 피어나는 눈꽃 속에 나 혼자 감당 못할 사랑의 말들은 내 가슴속으로 녹아 흐르고 나는 그대로 하얀 눈물이 되려는데 누구에게도 말 못할 한 방울의 피와 같은 아픔도 눈밭에 다 쏟아놓고 가라 부리 고운 저 분홍가슴의 새는 자꾸 나를 재촉하고……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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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이라는 대가족을 위한 노래
이해인 수녀는 수녀원 안팎에서 느끼는 사계절의 변화에 예민하고 분주하게 마음을 준다. 계절에 따라 피고 지닌 꽃들, 나무들, 숲, 바다, 하늘과 땅에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여 그것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노래했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해인 수녀의 자연시편들은 누구에게나 폭넓은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윤제림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이해인 수녀의 시는 한마디로 “자연과 인간이라는 대가족을 위한 동심의 노래”다. 그만큼 자연을 품에 안고 자연과 한몸으로 호흡하며 사는 시인의 일상과 순수한 사유가 시 한편 한편을 수놓고 있다. 선정한 60편의 시는 자연, 사랑, 고독, 기도라는 네 가지 주제로 분류하였다. 1부 ‘자연’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을 뒤돌아보고 삶을 성찰하는 시들로 채워져 있고, 2부 ‘사랑’에는 주로 자연물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3부 ‘고독’에서는 고독을 견디며 고요한 묵상으로 단단해지는 존재들이 찬미하며, 4부 ‘기도’에서는 온 마음을 다하여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고 위로하고픈 시인의 기도가 두드러진다. 이해인 수녀의 시에는 유난히 나무와 꽃이 많이 등장한다. 나무와 꽃은 우리 주위에서 가장 친숙하게 만날 수 있고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며 인간의 삶을 반추하게 하기 때문이리라. “뿌리 깊은 외로움을 견디어냈기에/ 더욱 높이 뻗어가는 눈부신 생명이여”(숲에서 쓰는 편지)라며 나무를 예찬하는가 하면, 민들레를 통해 기도와 사랑이 자신의 시의 출발이자 본질임을 밝힌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좁은 길이었다 해도/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민들레의 영토). “황홀하여라/ 끌 수 없는/ 사랑// 초록빛 잎새마다/ 불을 붙이며/ 꽃으로 타고 있네”(석류꽃), “피 흘려도/ 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동백꽃이 질 때)처럼 꽃에서 황홀하고 찬란한 사랑을 발견하고, “내 푸른 살을/ 고통의 가시들로/ 축복하신 당신……// 그리하여/ 살아 있는/ 그 어느 날// 가장 긴 가시 긑에/ 가장 화려한 꽃 한 송이/ 피워 물게 하셨습니다”(선인장)라며 고통 속에서 사랑의 축복을 깨닫는다. “푸른 계절 보내고/ 돌아와 묵도하는/ 생각의 나무여”(11월에),“바다 어머니/ 흰 모래밭에 엎디어/ 모래처럼 부드러운 침묵 속에/ 그리움을 참고참아/ 진주로 키우려고 했습니다”(어느 조가비의 노래)는 존재를 아름답고 단단하게 하는 고독을 노래하고 “진정/ 살아 있는 동안은/ 피 흘리게 하소서/ 죽어서 다시 피는/ 목숨이게 하소서”(장미의 기도), “하얀 눈 속에 길게 누워/ 오래도록 사랑했던/ 신과 이웃을 위해/ 이기심의 짠맛은 다 빠진/ 맑고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를까”(눈꽃 아가)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겠노라는 간절한 기도다. 자연과 호흡하며 써내려간 사랑과 고독과 기도의 시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늘 우리 곁에 있는 자연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어떤 우주적인 질서를 깨닫게 해준다. 인간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우주적인 움직임과 함께 순환해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인간은 그 안에서 겸손과 정직함을 배우고 또 초월적인 위안을 얻게 된다.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깨달음과 삶에 대한 반추를 이해인 수녀는 큰 목소리로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작은 풀 한 포기, 꽃 한송이, 나무 한 그루에 마음을 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잎이 지는 사계절의 순환을 지켜보면서 이웃과 함께 나눌 사랑을 찾는다. 이해인 수녀 역시도 자신의 시를 “자신에게, 이웃에게, 신에게 그리고 자연과 사물에게 환히 마음을 열어보이는 사랑의 편지”라고 말한다. 이해인 수녀의 시가 수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나가는 것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랑과 위로의 힘 때문일 것이다. 장영희 교수의 말처럼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아 내가 사랑 받는 사람이로구나” 하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자연 속에서 사랑 고독 기도를 노래한 이해인 수녀의 이번 시선집 역시 독자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기쁨과 평화와 위안으로 다가갈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시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웃을 이해하고 신을 섬기며 일생을 헌신하는 한 송이의 민들레가 되리라. 내가 사는 민들레의 영토, 민들레의 바다에서 나는 늘 잠들면서도 깨어 있는 사랑의 시인, 사랑의 구도자가 되고 싶다. ―시인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