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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인방' 붕괴
2. 사령부를 포격하라 3. 인민 전쟁 승리 만세 |
任弘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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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란의 시절을 직접 체험한 홍위병 세대가 문화예술의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문화대혁명은 광기와 부도덕 그 자체로 전락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진개가(陳凱歌)와 장예모(張藝謨)의 영화들, <사람아 아, 사람아!> 같은 소설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자의 고통을 살갗을 벗겨내듯 생생하게 형상화했다. <낙타 상자>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노사(老舍)가 손자뻘인 홍위병들에게 학대당한 후 '나는 우리들의 나라를 사랑했다. 그러나 누가 나를 사랑해주었던가?'라고 슬퍼하며 강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그 시절의 참담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 p.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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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접견은 이때 이미 7회째를 헤아리고, 모두 1천만명에 가까운 홍위병에게서 환희와 찬양의 소리를 계속 들어왔다. 모택동의 경호관이었던 두 사람이 쓴, '모택동 최후의 10년-경호대장의 회상'에 의하면 필자 중 한사람인 진장강은 이 때, '주석님, 접견할 때 반드시 서 있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하고 모택동을 걱정했다. 모택동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네들처럼 앉고 싶을 때 앉을 자유가 나에겐 없네.
앉으면 머리가 낮아져서 내가 보이지 않게 되지. 고단해도 서서 그들을 대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하지 않으며, 병아리들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것 아닌가.' 중국 공산당 조직의 중추를 장악하고 있는 국가 주석인 유소기나, 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인 등소평 등을 제거하기 위해, 모택동 자신이 젊은이들의 열정에 불을 붙이고, '조반유리(造反有理-항거에는 이치가 있다.)'를 열심히 고무하여 생겨난 홍위병도 지금은 '병아리'라고 불리고 있었다. --- pp.199-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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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는 절박합니다. 일각 일초라도 속히 명령을!"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든 중국 공산당 부주석 겸 국방부장(국방장관) 섭검영의 귀청을 울렸다. 그건 4인방 체포를 요구하는 절규였다. 당 주석이던 모택동이 서거한 지 1개월이 채 안 된 1976년 10월 4일의 일이었다. 북경시 서부, 인민 해방군 특별 구역에 있는 서산 15호관 집무실. 빨간색, 검정색, 흰색으로 구분된 수화기 가운데, 섭검영이 들고 있는 것은 인민 해방군 간부들을 잇는 빨간색 전화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해군 사령과 소경광이었다. 그는 모택동이 10년 전에 일으킨 프롤레타리아 문화 대혁명이 한창일 때, 모택동의 아내인 강청을 비롯한 혁명 급진파 4인방이 숙청 공작의 표적으로 노렸던 사람이다. --- p.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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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는 절박합니다. 일각 일초라도 속히 명령을!"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든 중국 공산당 부주석 겸 국방부장(국방장관) 섭검영의 귀청을 울렸다. 그건 4인방 체포를 요구하는 절규였다. 당 주석이던 모택동이 서거한 지 1개월이 채 안 된 1976년 10월 4일의 일이었다. 북경시 서부, 인민 해방군 특별 구역에 있는 서산 15호관 집무실. 빨간색, 검정색, 흰색으로 구분된 수화기 가운데, 섭검영이 들고 있는 것은 인민 해방군 간부들을 잇는 빨간색 전화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해군 사령과 소경광이었다. 그는 모택동이 10년 전에 일으킨 프롤레타리아 문화 대혁명이 한창일 때, 모택동의 아내인 강청을 비롯한 혁명 급진파 4인방이 숙청 공작의 표적으로 노렸던 사람이다. --- p.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