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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연표 서론 제국에 대해 생각하기 제국들 러시아의 제국 형성 제1장 제국 이전: 초기 루스의 다양한 땅과 민족들에 대한 여러 시각 국가 성립 이전: 루스의 민족들 키예프 루스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모형들: 국가 없는 수장인가, 은하 정치체인가 분령 시기 루스와 그 이상의 분화 몽골의 칸들과 제국의 아우라 제2장 제국의 출발: 모스크바국 국가 건설: 제국을 향한 요구 이반 뇌제: 제국 원칙의 실행 모스크바국의 전제정: 권력과 의무 누가 모스크바국 사람들이었나? 러시아는 무엇이었나? 인민들이 발언하다: 동란의 시대 제국적 정복과 통제 제3장 제국으로부터 국민국가까지 가는 쉬운 길을 방해하기: 이론적인 간주곡 민족, 민족주의, 그리고 민족 담론 제4장 반응 규칙과 그 한계: 18세기의 힘과 정서 계승, 협의, 그리고 인정의 정치 표트르 혁명과 제국 형태의 국가 표트르의 후계자들: 여성들(그리고 어린이들)이 정상에 올라선 세기 제5장 18세기의 러시아 정체성: 수많은 가능성 ‘러시아인’은 무엇을 의미하나? 18세기에 민족에 대해 생각하기 민족의 다양성: 민족들과 제국의 구분 18세기의 제국 확대 제6장 “민족의 순간” 속의 제국 러시아, 1801-1855 일종의 헌법 제국들의 충돌 제국적 보수주의 데카브리스트 관제 국민성 인텔리겐치아 확대, 정복, 그리고 반란 러시아 “민족”을 상상하기: 동과 서 사이에서 제7장 전쟁, 개혁, 반란, 그리고 반동 어리석은 전쟁 대개혁: 국가, 신민, 그리고 시민 정치 참여와 차등의 범주 우리는 누구인가? 민족 정체성에 대한 더 많은 질문들 러시아화, 다양성, 그리고 제국 주변부를 “평정하기” 중앙아시아 정복 반反개혁과 정치적 양극화 제국과 혁명운동 제8장 제국의 불안감: 1905-1914 20세기 제국들의 운명 근대화 중인 제국과 그 불만 제국의 외연 확장: 제정의 근대화 및 팽창 제1차 러시아혁명, 1905년 민족주의가 공적 영역으로 드러날 때: 제국을 재구성하기 제9장 제국들의 충돌과 붕괴: 1914-1921 세계대전 혁명적 단절을 넘나드는 민족성과 계급 소비에트 권력 소비에트러시아의 민족 정책 제10장 소련 스타일의 민족 만들기: 1921-1953 스탈린 시대: 1928-1953 폭력으로 강제된 농민의 복종 제국으로서의 국가와 국민국가 민족 볼셰비즘의 구축 열전에서 냉전으로: 방어를 위한 제국의 외부적 팽창 국내의 냉전: 내부를 향한 제국적 통치 소련의 산만한 권력 제11장 제국의 난국: 개혁, 반발, 혁명 정책과 경험: 민족들의 우호 관계 기이한 제국 세계 속에서의 소련 정체停滯 고르바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라는 테스트 제12장 제국의 종식인가, 아닌가? 1991-2016 블라디미르 푸틴과 국가 재건 포스트 소비에트 국가들에서 일어난 민주주의의 후퇴 포스트 초강국 러시아와 나토 확대 ‘가까운 외국’의 레드 라인: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결론 한국어판 보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부쳐 참고문헌 미주 옮긴이 해제 찾아보기 |
Ronald G. Su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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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은 중세 연대기에 기록된 이 시기의 묘사, 즉 루스 전역에 흩어져 살던 이질적인 인구 구성에 대한 설명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이 지역에는 발트족과 핀-우그리아계 민족들, 튀르키예계 민족들, 슬라브족 계통의 다양한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북서쪽에서 진입하여, 처음에는 바그다드, 그리고 그 후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같은 국제적 중심지에서 나오는 은화銀貨를 찾아서 주요 하상河上 교역로를 따라 이동했다. 루스와 관련하여 ‘바랑기아인Varangian’이라고 불리는 이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 중 일부는 루스 북부에 정착했다.
--- p.64 1630년대가 되면, 모스크바국 권력은 유라시아 전역을 가로질러 태평양 연안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17세기 동안 모스크바국은 남서부의 우크라이나 지역 및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의 복잡한 정치에 점차 깊숙이 개입하게 되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변경 지역에서 카자키가 지배하던 영토를 편입한 사건은 모스크바의 동방 진출에 대한 우리의 연구를 보완하는 유용한 사례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우크라이나Ukraina’라는 명칭은 원래 변경 또는 국경 지역을 의미하며, 모스크바국 시대 전반에 걸쳐 이곳은 지역 강국들 사이에서 완충지대이자 경계가 불분명한 회색 지대로 기능했다. 우리의 논의 속에서 간헐적으로 언급되었던 카자키는 그 기원이 타타르와 슬라브의 혼혈 출신의 사람들로서, 16세기 및 17세기 전반에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의 명목상의 통치하에 있었던 러시아, 폴란드, 크림 사이에서 느슨하게 통치된 변경 지대에서 무리를 형성했다. 그들은 자유인들로 행세했으며, 종종 지역의 경쟁국들 중의 어느 한편에서 용병 혹은 보조 전력으로 가담하곤 했다. --- p.162~163 국민국가와 제국은 연속선상에 있는 두 가지 국가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각각은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형을 대변한다. 이 둘은 고정적이고 안정적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속으로 흘러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쪽으로 변모될 수도 있다. 어떤 정치체제의 통치 방식이나 구성원의 집합적 소속감의 인식에 있어서 어느 하나의 형태가 우세를 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우세의 순간은 사라질 수 있으며, 하나의 방식이 다른 방식에 자리를 내줄 수도 있다. 제국 또는 제국주의, 곧 제국의 활동-은 어떤 실체가 아니라, 국가를 통치하는 하나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에 따른 정치적 행위에는 초기에는 다른 국가의 정복과 예속이 포함되며, 나중에는 차등과 종주권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이것들을 생산 및 재생산하는 것이 포함된다. --- p.174 볼로토프 자신은 예카테리나 대제를 위해 조경가로 활동했으며, 딱딱하고 기하학적인 프랑스식 정원을 대신하여 “낭만적인” 혹은 “자연스러운” 영국식 정원을 도입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영국식 정원의 핵심은 울타리를 쌓지 않고, 지평선까지 탁 트인 조망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 볼로토프와 다른 러시아 조경가들은 그러한 외양을 본뜨기는 했으나, 농민들의 예측 불가능한 분노를 두려워하여, 멀리 있는 영주 저택의 주변을 따라 도랑을 파고, 시야가 가린 곳에 보호용 울타리를 숨겨 놓고 무단 출입을 차단했다. 이것은 계몽주의 시대에 지주와 농노 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적절한 은유로 보인다. 광활한 러시아 제국의 대지에서, 지배 귀족들은 제국의 가장 비천한 신민들을 명목상 보호할 의무를 지녔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가 애정의 유대 관계로 연결된 상하 관계의 ‘자연 질서’ 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러한 감상적 믿음이 현실 세계의 조건에 의해 쉽게 부서질 수 있는 허약한 갈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또 경계하고) 있었다. --- p.245 19세기는 캅카스 남부로의 성공적인 진출로 시작되었으며, 그로써 그루지야와 페르시아령 아르메니아가 제국에 편입되었다. 그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훗날 아제르바이잔이 될 저지 평야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러시아는 그 시선을 보다 험준하고 도전적인 캅카스 북부로 돌렸고, 그곳에서 “산악 민족mountain people”이라 불린 이들과 진흙 탕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이 투쟁의 여파는 체첸과 다게스탄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다. 제국의 서부 국경에서는, 1816년에 알렉산드르 1세가 폴란드 국민들에게 말했던 유망한 제안은 이후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다가, 1830년 폴란드의 11월 봉기로 이어졌다. 이른바 “배신”으로 간주된 이 사건은 결국 제국이 우크라이나, 루테니아, 발트 지역 등 이질적인 인구 집단을 향해 취한 이후의 정책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 p.345 레닌은 1917년 4월에 개최된 제7차 볼셰비키 대회에서 수사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누구보다도 더 많은 민족을 억압해 온 우리 대러시아인들은 왜 폴란드, 우크라이나, 혹은 핀란드에게 분리해 나갈 권리를 주지 말아야 하는가?” 그는 분리주의 운동에 대한 볼셰비키의 태도는 “무관심하며,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핀란드가 완전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에야 러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감이 커질 것이고, 핀란드인들도 분리해 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러시아가 힘을 쓰며 거들먹거리는 것이 지닌 위험성을 아주 예리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동지들에게 구체제의 “대러시아 쇼비니즘”이 범한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제국 내의 비非러시아 민족에 대한 불평등의 유산을 단념할 것을 경고했다.. --- p.526 고려인들은 본래 일본의 식민 통치를 피해 소련의 극동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으나, 농업 집단화 캠페인 과정에서 현지 러시아인들과의 민족 간 충돌이 발생했다. 1937년에, 17만 명 이상에 달하는 소련 고려인 전체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되었고, 그들의 집단농장은 동원 해제된 소련의 군인들에게 넘겨졌다. 고려인들은 소련에서 민족 전체가 추방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재정착한 생존자들에게는-레닌주의의 민족 정책을 삐딱하게 모방하는 방식으로-고려인 집단농장, 고려인 학교, 출판사, 그리고 자체적인 신문이 부여되었다. 지도급 고려인 공산주의자들 중 대부분은 처형당했다. 신경제정책NEP 시기에 외국 이민자들에게 열려 있었던 소련은 스탈린 시대에 들어서면서 철저히 국경을 통제하는 폐쇄적인 요새 국가로 변모했고, 외국에 충성한다고 의심되는 자국 시민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 p.585 민족주의라는 강력한 이념의 도전을 두 세기 동안 받아온 후기의 소련 제국은 정치적 동질성은 강화했으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동질적인 주권 국민국가로의 진화는 이루지 못했다. 전반적으로는 동질화를 향한 추세가 있었지만, 지역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했다. 중앙아시아는 면화 단일 재배 체제로 인해 지속적인 경제적 종속 상태에 놓여 있었던 반면에, 발트 지역의 공화국들은 제조업 기반 덕분에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공산당 보스들은 장기 재임을 통해 일정 정도의 자율성을 획득하기도 했으나, 모스크바가 바라는 바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이탈하는 경우에는 해임되거나 처벌받을 수 있었다. 비록 여러 측면에서 주변부가 중심부보다 더 나은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식민지”를 착취하고 있다는 “인식”은 각 공화국의 민족운동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으며, 이것은 중앙 권력의 약화와 맞물려 소련 시대를 종말에 이르게 하는 데 기여했다. --- p.689~690 역사를 통틀어, 러시아 지도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진 자기 나라가 주변국들과 경쟁국들이 가하는 위협에 노출된 취약한 국가라고 생각해 왔다. 17세기에는 그 대상이 스웨덴, 폴란드, 그리고 오스만제국이었다. 18세기에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그리고 오스만제국이,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에는 영국, 독일, 그리고 미국이 그 대상이었다. 그들의 불안감은 열강이 되거나 열강으로 남아 있으려는 야망과 결합되어, 러시아 자체의 역량을 넘어서서 영향력과 범위를 증대시키려는 과도한 세력 확장으로 이어졌다. 과거의 유사한 국면들을 상기시키는 현재의 중대한 아이러니는, 바로 이러한 야망과 과도한 팽창이 오히려 불안정성과 고립의 확대, 그리고 취약성의 심화를 초래해 왔다는 점에 있다. 러시아는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초강대국인 중국의 호의와 지원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불균형 관계에서 더 큰 힘과 권위를 가진 쪽은 모스크바가 아니라 베이징이다. 포스트 소비에트러시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다민족적 국민국가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으로서의 뿌리 깊은 역사는 유령처럼 러시아를 따라다니고 있다. --- p.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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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없는 수장’ 키예프 루스
『러시아 제국 연구』가 추적하는 지난 천 년 동안 존재했던 다섯 개의 주요 정치체제 중 첫 번째가 키예프 루스이다. 러시아 역사를 중세 루스에서 시작하는 것 자체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정치적 중심지인 키예프가 독립국인 우크라이나의 수도이고, 러시아 역사로 연결 짓는 것은 역사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지배 가문의 혈통, 종교적 소속, 법제, 건축 양식, 유목민들과의 상호작용 등이 러시아 역사 신화와 기억 속에서 살아있고, 이 책의 핵심 주제인 집단의 구분, 위계질서, 상호성을 통한 권력관계 등 중요한 요소들이 모두 중세 루스 시대에 기원하면서 이후 수 세기에 걸쳐 패턴화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키예프 루스는 ‘국가’라기 보다는 지배 가문의 연대라는 개념과 키예프 대공이 지니는 상징적인 연장자 지위에 의해 느슨하게 연결된‘영역(realm)’이었다. 저자들은 키예프 루스가 ‘수장 없는 국가’였다는 다른 학자들의 주장을 변용하여‘국가 없는 수장’이라는 흥미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중력을 가진 여러 중심이 존재하는 정치체로 루스 역사 여러 시기 동안 키예프, 노브고로드, 볼리아니, 체르니고프, 그리고 트무타라칸 등이 그러한 중심들이었다. 12~13세기를 거치면서 키예프 루스 시대는 ‘분리된 영토들의 다양한 집합체’로 변모했고 1237-40년 몽골-타타르의 침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루스는 몽골제국의 가장자리, 즉 변방의 전초기지로서 제국 통치의 실행 방식을 체득했다. 루스의 소규모 공국들의 공들은 스텝 지대의 지배자들과 각각 별도로 협상을 했고, 정교회 수장들 역시 법적 면책, 재정적 특권, 세금 징수권, 군사 지원 등 다양한 이익을 확보했다. 루스의 지도자들은 타타르 황제들, 즉 ‘칸’이라 불리는 이들을 ‘차르’라 칭하며 그들의 종주권을 인정했고, 이를 통해 제국적 통치 구조에 순응했다. 몽골-타타르의 지배는 200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15세기에 들어 스텝 지대의 제국이 붕괴하면서 끝났다. 패권자가 사라지자, 모스크바국이 분열된 루스들을 통합하면서 북동 루스 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부상했다. 모스크바국의 차르와 백성의 소통 채널, ‘젬스키 소보르’, ‘복스 포풀리’ 모스크바국은 15세기 중반까지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이반 뇌제는 1547년 대관식을 치르며 공식적으로 ‘차르’가 되었고, 기존의 강자 노브고르드를 위협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그 전환점은 1550년대 카잔과 아스트라한의 무슬림 칸국의 정복이었다. 종교, 언어, 문화적으로 기존의 슬라브계 정교도와는 다른 민족들을 편입함으로써 모스크바국은 다민족 제국으로 변모했다. 모스크바국의 차르는 몽골 칸의 정통성을 계승했으며, 17세기 초, 빌뉴스(백러시아)와 우크라이나(소러시아),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그리고 캅카스의 소국들에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이 시기에 러시아의 제국적 통치 방식의 전형이 초기 루스의 전통과 몽골제국의 유산을 통해 정립되고 이후 수 세기에 걸쳐 패턴화된다. 바로‘차등화’와 ‘상호성’이다. 수니와 키벨슨은 모스크바국의 통치가 차별화와 다양성을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제국은 다양한 협정과 행정 방식, 조세 및 공물 체계, 지역적 면세와 특권, 양보와 요구 등과 함께 지역 특수성을 고려한 구분 정책을 통해 넓은 영토와 다양한 민족들을 포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 역사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개념이 상호성인데 저자들은 그 사례 중 하나로‘젬스키 소보르’(전국회의)에서 확인된 ‘복스 포풀리’(인민의 소리)를 든다. 짜르와 백성의 소통과 동의의 채널이었다. 불평등한 자들 간의 상호성은 17세기와 로마노프 지배로 이어진 혼란의 시기인‘동란의 시대’를 거치며, 제국 통치의 집단적 불평등에 맞서는 방식으로 차르의 신민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통치는 역사 대부분(그리고 오늘날까지도)에 걸쳐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데 저자들은‘피지배자가 동의하는 권위주의’라 표현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동의는 자유선거를 통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권력에 대한 협조 혹은 그 지배에 대한 묵시적 수용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제국의 붕괴는 실패라기보다 제국이 자임한 문명화 사명의 성공이다 표트르 대제 치하에서 제정러시아는 발트해에 도달하고, 핀란드만에 새로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며, 유럽 외교에서 중요한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18세기 러시아 역사에 대한 기존의 관점은 초기의 표트르 대제의 군사적 영광 후, 이어지는 소년들과 여성 군주들이 경박하거나 정실주의에 경도되면서 부패라는 수렁으로 빠져든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시각을 편견이라 꼬집는다. 표트르 대제 때 일시적으로 사라졌던‘상호성’ 관행이 이 시기에 다시 부상했고, 특히 18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매우 중요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위험한 지적 전환이 일어났음을 강조한다. 엘리트들이 ‘사랑스런 어머니’로 여긴 예카테리나 대제와 연결된 상호성의 정서적 감각이 존재했고 이는 아래쪽을 향해서도 확대되어, 결국 엘리트와 농노를 묶어 준 사랑과 의무의 감미로운 비전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민족주의의 시대로 규정하는 이 시기는 동시에 제국의 팽창기였다. 민족주의의 부상은 제국의 통치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했다. 동질성, 평등, 대표성,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서구에서 유입된 민족주의 담론의 증가는 위계에 따른 차등화를 골간으로 한 제국 통치와 상충했다. 제정러시아의 엘리트들은 러시아를 재정의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럽인보다는 덜 문명화했지만 아시아 민족들보다는 우월하다는 슬라브 민족 중심의 ‘러시아화’였다. 그러나 ‘제국의 딜레마’는 어려운 문제였다. 피지배층, 식민지 주민을 교육하면 할수록 로마노프 제국은 그들로부터의 도전에 점점 더 노출되었다. ‘국민주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기반한 권리 주장 방식이 등장하면서, 시혜가 아닌 해방을 요구할 수도 있는 ‘상호성의 새로운 의무’로 변모되었다. 수니와 키벨슨은‘문명화 사명’을 앞세운 몇몇 다른 제국과 마찬가지로 차르든 소련이든 러시아 제국의 붕괴를 초래한 것은 실패라기보다는 오히려 제국이 자임한 제국적 사명의 성공으로 볼 수 있다는 도발적 주장을 편다. 소련은 공산주의 시민들의 용광로라기보다는 새로운 민족들을 배양하는 인큐베이터가 되었다 『러시아 제국 연구』의 특징 중의 하나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유럽의 중동부, 우크라이나, 캅카스,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등 변방의 역사와 그곳의 수많은 민족들이 제국 형성에 미친 영향을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이다. 1917년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볼세비키는 몇 달만에 민족-영토 단위를 기반으로 한 연방 체제, 즉 소련을 구축하였고, 블라디미르 레닌은 비러시아 민족들에게 민족자결권 및 정치적, 문화적 권리를 부여했다. 핀란드에는 의회와 자치를 허용하고,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등의 민족들이 제국 말기 이래로 요구해 오던 치외법권적 특권을 인정했다. 다른 소수민족 공화국들도 자신들의 학교와 소비에트를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정책은 차르 제국 시기의 ‘대러시아 쇼비니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계급 충성심을 육성하고 국가 통합이라는 현실적 고려를 결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민족 원칙에 양보하는 정책은 레닌이 기대했던 것처럼 민족의 문화적 소속감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족성이 공고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련은 공산주의 시민들의 용광로가 되기보다는, 새로운 민족들을 배양하는 인큐베이터가 된 것이다. 레닌과 달리 스탈린은 러시아인 중심의 중앙집권적 민족 정책을 추구했다. 고려인 171,000명을 포함한 수십 민족, 수백만 명의 대대적인 강제 이주로 혼합이 일어났고, 러시아어는 공공 생활의 표준어가 되었다. 크렘린의 명령과 당의 지시는 일부가 아닌 모든 소련인에게 적용되었다. 고압적 통치의 특성이 수평적인 구분을 통한 통치와 차등화의 특성을 압도하면서 소비에트 초기에 구상한 평등주의적 다민족국가는 ‘유사 연방제’라고 정의되는 좀 더 중앙집권적인 제국 형태로 급속히 변모했다. 수니와 키벨슨은 ‘제국적 성격과 민족주의적 프로젝트 사이의 중대한 모순과 긴장이 소련 권력 70년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소련의 역사를 제국의 렌즈를 통해 선명하게 조명한다. 결국 민족주의라는 강력한 이념의 도전을 두 세기 동안 받아온 후기 소련 제국은 정치적 동질성은 강화했으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주권 국민국가로의 진화는 이루지 못했다. 저자들은 비록 계급 언어가 작동하여 소련이 성립되었지만 그 체제 하에서 개별 민족들의 정체성은 소멸되지 않았으며, 고르바초프 통치기에 소련의 권위가 약화되자 민족 문제가 소련 해체의 중요한 동인으로 작동되었다고 주장한다. 길고도 복잡한 러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제시 저자들은 소련의 해체가 제국의 종식을 의미하는지의 여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자면, “러시아연방은 내부적으로는 과거보다 제국적 성격을 적게 띠게 되었으며, 동등한 시민들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의 형태를 좀 더 강하게 가지게 되었으나, 구분과 차등 및 제국 통치의 관행은 결코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특히 러시아의 제국적 성격은 ‘가까운 외국’이라고 불린 구소련 국가들을 대상으로 명확했다. 러시아에서 유라시아주의가 관심을 끌었던 것이나, 유럽연합에 비견되는 유라시아경제연합을 출범시킨 것도 러시아가 제국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이것을 제국이라고 부르지는 않고, “종속국의 내정 및 외교정책 전반을 완전히 통제하지는 않되 지배력을 행사하는 방식”인 패권이라고 일컬었다. 『러시아 제국 연구』의 말미는 러시아가 조지아 및 우크라이나에 대해 취한 정책을 서술하고 있다. 옐친 시기에 러시아는 구소련 국가들에 대해 ‘방기 정책’을 펼쳤으나, 21세기 들어 푸틴 집권기에는 이 지역들에 적극 개입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저자들은 구소련 국가들 중 특히 조지아와 우크라이나가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2008년 러시아는 조지아와 전쟁을 벌였고,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저자들은 러시아가 미국이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일극 체제가 아니라, 유엔을 통한 다극 체제를 선호한다는 점을 여러 맥락에서 강조했다. 2017년에 출간된 『러시아 제국 연구』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뒤이어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이 독립을 선포한 설명에서 마무리되고 있지만, ‘레드라인’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2022년 2월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예견하고 있기도 하다. 이로써 저자들은 “가까운 외국”에 대한 현재의 러시아의 정책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제국적 이미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러시아 제국 연구』의 한글판에는 저자들의‘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보론을 더했다. 지은이들의 말 우리는 이 책을 함께 집필하는 과정을 매우 즐겼으며, 독자 여러분 또한 그 즐거움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이 책은 소위 ‘비 非교과서’로서, 중요 인물과 사건 들을 망라한 포괄적인 개론서라기보다는 해석적 에세이이자 분석적 개관이다. 우리는 독자들의 사전 지식 정도와 무관하게 이 책의 논지가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이해하기 쉬운 문장과 핵심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통해 이 분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전 범위를 아우르는 서술보다는 지적 일관성을 목표로 삼았으며, 제국, 다양성, 상호성, 연대에 대한 질문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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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근대와 근대라는 각기 다른 시간의 층위에서 러시아사를 탐구해 온 두 거장, 수니와 키벨슨이 앤아버(Ann Arbor)라는 지적 공간에서 오랜 대화와 토론을 거쳐 빚어낸 거대한 결실이다. 저자들은 러시아사를 제국‘들’(Empires)이라는 틀로 읽어내며, 차등과 위계라는 제국적 원리가 시대마다 어떻게 구성, 해체, 재구성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다양한 민족과 지역이 어떻게 통합되고 때로는 분리되었는지를 유려하게 펼쳐낸다. 러시아 역사는 물론, 제국과 민족 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 - 노경덕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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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루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역사를 ‘제국’이라는 렌즈로 풀어낸다. 제국의 상대로 염두에 둔 건 ‘국민국가’다. 국민국가와 제국은 연속선상에 있는 국가 형태의 이상형들이다. 연속적이지만 차이는 분명하다. ‘러시아 국민문학’과 ‘러시아 제국문학’은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러시아사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면 러시아 문학사의 실상도 달리 보이게 된다. 러시아 국민문학의 작가들을 러시아 제국문학의 작가들로 다시 호명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은 러시아문학을 달리 읽게끔 자극한다. - 이현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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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라는 개념은 대한민국과 러시아에서 전혀 다르게 이해된다. ‘민족’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방법 또한 더욱 차이가 나기에 『러시아 제국 연구』는 한국인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각도를 제공해 준다. 또한 러시아가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 대한민국과 러시아 간의 진정한 협력과 교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러시아 출신인 저도 매우 흥미롭게, 그것도 단숨에 읽어버렸다. - 일리야 벨라코프 (수원대 러시아어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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