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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세계정치』 초대 편집위원장 고(故) 신욱희 교수를 기리며
제1장 지역과 세계정치 ― 지역연구의 전환 ‣ 신범식 제2장 동아시아 지역질서연구 시론 ― 보편/특수에서 전체/부분의 관점으로 ‣ 신욱희 제3장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 이후 세계질서 및 지역질서 변화 ― 다권역 질서의 도래 ‣ 전재성 제4장 중국적 지역 개념의 계보학 ― 천하체계/조공체제의 역사적 변용 ‣ 이왕휘 제5장 지역연구와 특수성-보편성 문제 ― 구조주의와 역사적 재구성의 교훈 ‣ 민병원 제6장 관계론으로 본 지역의 형성과 발전 ‣ 이용욱 제7장 지역(연구) ― 서구중심주의 해체와 재생산, 그 사이를 넘어 ‣ 은용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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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지역을 정의함에 있어서 물적 조건보다 관념적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성주의적 접근법으로 지역을 정의하려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다. 구성주의(constructivism)적 방식에 의하면 지역이란 ‘그 자체가 존재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범위 내지 주민들이 공통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범위’로 규정되며(다카야 요시카즈 2000), ‘역사적 실재와 공간적 인식의 양면으로 구성되는 단위’라고 인식되기도 한다(이철호 2001). 구성주의적 정의 방식에 의하면 지역은 다양한 행위자들의 권력 관계, 갈등과 투쟁의 과정이며, 담론적 실천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 p.29 세계사적 맥락에서 냉전기는 식민주의와 21세기 사이에 놓여 있는 ‘비정상적인’ 근대의 시기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는 냉전을 통해 또 한 번의 전환을 겪게 되었고, 이는 한편으로는 2차대전과 태평양전쟁 이후 탈식민화 과정의 굴절로, 다른 한편으로는 냉전체제의 형성을 통한 지역의 분절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는 물론 미국과 소련이라는 역외세력의 양자관계와 글로벌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지역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단절과 한반도의 분단, 그리고 북한과 중국, 한국과 일본의 연결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 p.79 현재의 국제질서를 강대국 간 세력배분 구조로 정의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국제정치의 다양한 현상들을 볼 때 지난 30년간의 국제질서는 강대국 간 세력배분 구조의 변화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초국가적 위협의 부상도 있지만, 세계화의 진전으로 인한 지구정치 공간의 변화,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군사, 정치, 경제, 환경의 변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글로벌 사우스라고 불리우는 남반구, 비서구 국가들의 국제질서에 대한 문제 제기, 중국, 러시아 등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권력정치적 대항을 넘어선 대안적 질서의 제시 시도, 각 지역별로 나타나는 새로운 지역질서의 등장 등 탈냉전으로 규정되기에는 다양한 현상들이 등장한 것이다. --- p.98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이 주권 평등 원칙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중국 중심의 위계적 국제질서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평가한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시진핑 주석은 2023년 11월 15일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 전 미국 기업지도자 만찬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중국은 결코 미국에 반해 돈을 걸지 않으며 결코 미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몰아낼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 p.141 인문학 또는 사회과학의 분과로서 지역연구는 오늘날 학문적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전통적인 학문분과가 대부분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반면, 지역연구는 방법론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은 지역 또는 장소·공간이 가지는 특수성에 기인한다. 관찰 대상으로서 지역이나 장소는 고유한 성격을 지니며 실증주의적으로 취합하기 어려운 개별성의 특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역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나아가 실증주의적 탐구에 필요한 사례와 자료를 제공하는 기여를 하고 있기도 하다. --- p.186 완성된 형태의 사회적 개체(개별화된 사회 개체)는 결국 연결(yoking)을 통해 형성되는데 그것은 “각각의 한 면이 동일 개체의 ‘내부’로 정의되도록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원시경계를 연결하는 것”으로 정의된다(Abbott 2001, 272). 따라서 개체의 형성(혹은 집합 정체성)은 임의의 지역적 대립과 차이(경계의 것)에서 이러한 차이가 하나의 경계단위로 발전해 나가는 관계적 연속성에서 발생한다. 특히 연결(연결하는 과정)은 의식적인 집합 행위자가 필요하며 이들의 의식적인 경계 구분의 활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이의 크기나 강도와 관계없이 집합 정체성은 나타날 수 없다. --- p.250 국제정치학에 지속되고 있는 서구중심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외형이 아니라, 그 문제를 일으키고 지속시키고 있는 작동원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크다는 것이다. 작동원리를 제대로 파악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서구중심주의 문제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연구, 비교지역연구, 얽힘의 지역연구 등등, 그 어떤 이름으로든 혹은 그 어떤 존재론과 인식론의 입장을 활용해서든, 서구중심주의 작동원리를 과감하게 해체할 수 있는 다양한 대응과 대항의 방식들이 지속적으로 논의되면서, 21세기 초라는 시간축과 한국의 국제정치학계라는 공간축에 지배적으로 “배치”되길 바란다. --- p.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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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다시 묻다
─ 지역의 뜻과 세계를 보는 눈 이 책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지역’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세계정치를 지역이라는 눈으로 다시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책은 지역을 고정된 땅덩이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관계와 인식, 제도와 실천이 쌓이며 만들어지고 바뀌는 단위로 본다. 이 첫 물음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된다. 구성의 장점도 여기서 드러난다. 첫 장은 지역 개념을 풀어 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가 중심 틀의 한계를 짚고 새로운 지역연구가 무엇을 겨냥하는지 또렷이 보여 준다. 지역격, 지역성, 지역색 같은 개념도 이 자리에서 제시되어 뒤의 글들을 읽는 데 길잡이 구실을 한다. 덕분에 독자는 각 장의 논의를 흩어진 주장으로 받지 않고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따라갈 수 있다. 우리 국민에게 이 문제의식은 더욱 절실하다. 강대국 경쟁, 동아시아 질서 변화, 초국경 문제를 날마다 마주하지만, 이를 국가 대 국가의 구도로만 읽기에는 이미 세계가 너무 복잡해졌다. 이 책은 그 복잡함을 외면하지 않고, 한국의 국제정치학이 더 넓고도 세밀한 시야를 갖추기 위해 무엇을 새로 물어야 하는지 차분히 일러 준다. 흔들리는 세계질서를 읽는 법 ─ 동아시아와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 이 책은 지역 개념을 세운 뒤 곧장 현실 세계의 큰 문제로 나아간다.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미국이 이끌던 질서 이후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중국의 전통적 질서 구상은 오늘 어떤 뜻을 갖는가 같은 물음이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책은 추상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세계정치가 실제로 어디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를 붙든다. 구성상 강점은 서로 다른 시선을 한데 묶어 보여 준다는 데 있다. 한 장은 동아시아를 전체와 부분의 관계 속에서 읽어 보자고 하고, 다른 장은 다권역 질서의 도래 가능성을 살핀다. 또 다른 장은 중국적 지역 개념의 역사적 변형을 더듬으며 그 가능성과 한계를 짚는다. 각 글은 논지가 다르지만, 세계질서 변화 속에서 지역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함께 밝힌다는 점에서 분명한 결을 이룬다. 한국에서 이 논의가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동아시아 한복판에서 세계질서의 충돌을 가장 예민하게 겪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지역을 단지 배경으로 두지 않고 질서 형성의 주된 무대로 읽어 내는 작업은 학문적 의미를 넘어 현실 인식의 힘과도 이어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지역연구를 새로 세우는 방법 ─ 관계, 해석, 서구 중심 넘기 책의 뒤쪽은 지역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집중한다. 특수한 사례를 다루는 지역연구가 어떻게 넓은 논의로 나아갈 수 있는지, 지역의 형성과 발전을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또 서구 중심 시각을 넘어서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차례로 묻는다. 이로써 책은 앞선 논의를 받쳐 줄 방법의 문제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 부분의 장점은 연구 방법을 딱딱한 절차 설명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역사 재구성의 관점, 관계를 바탕으로 한 지역 형성의 틀, 얽힘의 지역연구 같은 제안이 살아 있는 논쟁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독자는 단지 주장만 읽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역연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책 전체가 이론과 방법을 분리하지 않고 맞물리게 짜였다는 점도 돋보인다. 학계에서 이 대목은 특히 값지다. 지금까지 지역연구는 종종 개별 사례의 축적에 머무르거나, 반대로 큰 이론의 부속처럼 다뤄지곤 했다. 이 책은 그 둘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한다. 지역을 더 넓은 세계정치의 일부로 읽으면서도, 각 지역의 역사와 관계를 지워 버리지 않는 길 말이다. 『세계정치WORLD POLITICS』 시리즈 국제정치에 관한 이론과 같은 기초적인 연구에서부터 군사와 안보, 정치경제, 환경과 과학기술 등의 기능적인 분야와 주요국의 외교정책, 동아시아 국제 관계 등 지역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세계정치』 시리즈는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사회평론아카데미가 펴낸다. 한국의 국제정치학이 과도한 정책지향성을 극복하고, 세계정치의 보편성과 동아시아와 한국의 경험과 관점을 균형 있게 바라보면서 한국 국제정치학의 정체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에 발간된 19권(젠더와 세계정치), 20권(국제정치학 방법론의 다원성), 21권(동아시아의 보편성과 특수성), 25권(국제정치사상: 다원적 접근과 보편적 교훈)은 2014년, 2015년, 2017년 연속으로 세종도서 학술부문(구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어 『세계정치』 시리즈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