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 나는 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나
초대의 글 … 소망을 품고 아버지께 1부_ 하나님에 관한 질문 첫 번째 편지 … 기독교는 왜 그렇게 많은 해를 끼쳤는가? 두 번째 편지 … 세상은 왜 이토록 많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는가? 세 번째 편지 … 자유는 과연 모든 고난을 감수하고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네 번째 편지 … 하나님은 미래를 다 알고 있는가? 다섯 번째 편지 … 하나님은 왜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게 하는가? 여섯 번째 편지 … 하나님은 왜 사탄을 창조했는가? 일곱 번째 편지 … 네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한 존재인가? 여덟 번째 편지 … 애당초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아홉 번째 편지 … 모든 게 우연히 생긴 것은 아닌가? 열 번째 편지 … 하나님은 왜 네 엄마를 살려 주지 않았는가? 열한 번째 편지 …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 열두 번째 편지 … 하나님이 왜 하찮은 인간들에게 신경을 쓰는가? 2부_ 예수에 관한 질문 열세 번째 편지 …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왜 믿어야 하는가? 열네 번째 편지 … 복음서는 모순들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열다섯 번째 편지 … 복음서는 누가, 언제 쓴 것인가? 열여섯 번째 편지 …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열일곱 번째 편지 … 한 인간이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3부_ 성경에 관한 질문 열여덟 번째 편지 …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일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하는가? 열아홉 번째 편지 … 성경이 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스무 번째 편지 … 성경은 신화와 하나님의 복수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스물한 번째 편지 … 가톨릭교회가 성경을 편집한 것이 아닌가? 스물두 번째 편지 … 성경에 대한 해석은 왜 그렇게 다양한가? 스물세 번째 편지 … 다른 종교의 ‘경전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4부_ 삶과 교리에 관한 질문 스물네 번째 편지 …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가는가? 스물다섯 번째 편지 … 하나님은 사랑이라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영원한 지옥에서 괴롭히는가? 스물여섯 번째 편지 …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닌가? 스물일곱 번째 편지 …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내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가? 스물여덟 번째 편지 … 어떻게 내가 거룩하면서 동시에 죄성을 지닐 수 있는가? 스물아홉 번째 편지 …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에필로그 … 나는 믿는다! 부록 … 숙고와 나눔을 위한 질문 |
Gregory A. Boyd
그레고리 A. 보이드의 다른 상품
Edward K. Boyd
정옥배의 다른 상품
|
상당히 지적이고 심히 회의적인 데다 고집도 센, 나이 일흔의 내 아버지보다 회심 가능성이 더 희박한 사람이 또 있을까? 아버지는 내게 일말의 희망조차 주지 않으셨고 복음에 관한 한 한 번도 마음을 여신 적이 없었다. 교회에 대해서는 적개심이 가득했고, 아버지가 ‘거듭난 족속들’(born-again types)이라고 부른 사람들에게도 노골적으로 증오심을 보이곤 하셨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아버지와 편지 왕래를 시작하기 전 14년 동안 우리는 신앙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몇 마디 주고받을 때도 상당히 거북했고 별 효과도 없었다. 솔직히 나는 아버지가 구원받으리라는 소망을 버린 지 오래였다. --- p.9, 「”나는 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나“」 중에서 아버지, 저는 제가 왜 지난 14년간 계속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는지 아버지와 진실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그건 단지 제가 변증학을 좋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고 해서 저를 비난할 사람은 없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저의 믿음, 그리고 그분의 구원의 능력과 사랑에 대한 경험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이 땅에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귀한 경험이라고 믿어요. 그 관계가 저를 영원한 세계로 연결해 주기 때문이지요. --- pp.19-20, 「”소망을 품고 아버지께“」 중에서 자유와 책임의 관계에 대한 너의 논점에는 뭔가 사람을 끄는 게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성가신 질문을 또 하나 던지마. 자유를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을 거는 창조주가 과연 지혜로운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구나.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수백만 명의 자유를 그리고 생명을 빼앗기는 위험 부담을 안은 채로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미친 사람들이 자유를 오용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건, 솔직히 말해 대단히 서툰 경영이다. 하나님이 자유를 그렇게 귀중하게 여긴다면, 도대체 왜 하나님은 자유를 그토록 미약하게 만들어서 한 명의 의지가 수백만의 자유를 망쳐 버리도록 했단 말이냐? --- pp.36-37, 「”자유는 과연 모든 고난을 감수하고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중에서 아버지, 제가 스스로 경험하고 신약성경을 통해 발견한 것은, 우리가 고난받을 때 예수님도 함께 고난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우리의 고난을 치유하시는 방식이지요. 신약에 나오는 그분의 이름 중 하나가 ‘임마누엘’인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깊숙이 가라앉아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그 밑바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외딴 별에 뚝 떨어져 있으면서 우리의 곤경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에요. 그분은 우리가 겪는 모든 것 한가운데에 계십니다. --- pp.92-93, 「”하나님은 왜 네 엄마를 살려 주지 않았는가?“」 중에서 너는 지난번 편지 끝에서 내가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지.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이 없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있어. 그가 누구였든,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는 거지. 그는 죽었거든. 이쯤 되면 너도 진절머리가 났을 게다! 우리가 이 문제로 씨름한 지 1년이 넘은 데다가, 내가 대단히 흠모하는 너의 모든 지적인 논증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 신앙을 받아들이는 일에 예전보다 가까워진 것 같지 않거든. 하나님에 대한 내 견해는 다소 바뀌었지만, 어찌 보면 나는 그저 훨씬 더 많은 지식만 얻게 됐을 뿐인 것 같구나. --- p.153,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 중에서 파스칼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비치기에 충분한 빛과, 버림받은 자들의 눈을 가리기에 충분한 어둠을 주신다.” (…) 아버지, 정리하자면 믿음이란 역사적 가설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결단입니다. 도덕적 결단 말이지요. “왜 당신이 믿어야 하는지 이성적으로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는 “당신은 믿고 싶은가?”라는 결단에 관한 것입니다. 그 누구든 믿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풍부하고 견고한 증거가 제시되지만, 충분한 믿음은 강요된 결정이 아닌 도덕적 선택을 요구합니다. --- pp.188-189,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일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하는가?“」 중에서 내 말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지옥에 간들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을 사람들도 많다. 한동안은 말이다. 하지만 200년이 지나도록 히틀러가 계속해서 비명 지르는 것을 듣고 있자면 나라도 지겨울 것 같다. ‘재미’란 점차 사라지는 법 아니겠냐? 그 이후에 나라면 히틀러가 그가 만든 희생자들에 대한 빚을 다 청산했다고 보고 그를 그냥 죽여 버리고 말 게다. 하지만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지? 몇 백 년 후면 이미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뤘을 텐데. 왜 계속해서 고통을 주는 거냐? 왜 죄인들을 그냥 그들의 불행에서 멸망시키지 않고 고문을 위한 고문을, 그것도 영원토록 하는 것이냐? --- p.243, 「”하나님은 사랑이라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영원한 지옥에서 괴롭히는가?“」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고치 속에 들어 있는 나비와 비슷합니다. 아름다움, 비행, 우아함의 삶이 그들 내면에 있습니다. (…) 날아오르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과도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고치에서 탈바꿈하는 과정에 있는 나비입니다. 아버지가 꼭 아셔야 할 요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노력으로 점차 ‘옛’ 자아로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다만 주님이 그들 속에 있는 나비를 단련시키고 강화시켜 나가도록 맡길 때 그들은 참으로 자유로워집니다. 구원받은 영혼이 먹는 유일한 식량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고치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를 위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쉴 때에만 고치 밖으로 나갈 힘과 동기를 점점 더 많이 얻게 됩니다. --- p.279, 「”어떻게 내가 거룩하면서 동시에 죄성을 지닐 수 있는가?“」 중에서 나는 마침내 ‘도약’했다. 할렐루야! 그간 우리가 주고받은 모든 편지들을 읽어 보면서, 모든 걸 다 아는 체하던 그 건방진 내가 어떻게 실제 신자로 변화되었는지 지금도 믿을 수가 없구나! 네 새어머니도 믿을 수 없어 한단다! 심지어 우리 집 개마저도 헷갈려 하는 것 같다! --- p.292, 「”나는 믿는다!“」 중에서 |
|
이 책의 특징
- ‘가족 구원’의 생생한 실례를 보여주는, 부자 간 ‘실제 편지’ 기록 - 지적이고 냉철한 아버지의 질문에 대한 정직하고 사랑 넘치는 아들의 답변 - 개인 스터디 및 소그룹 모임에 활용할 수 있는 ‘숙고와 나눔을 위한 질문’ 수록 대상 독자 - 가족이나 친구, 지인의 무신론적 질문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고민해온 그리스도인들 - 기독교에 회의적이거나 거부감이 있는 비그리스도인들 및 가나안 성도들 - 청년부 사역자 및 소그룹 리더, 신학생 - 기독교 변증 관심자 및 연구자 |
|
그레고리와 그의 아버지가 주고받은 서신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기독교에 대한 아버지의 날카로운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것 중 가장 분별력 있고 성경적이며 이성적이다. 만약 내가 미국의 모든 청년에게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기독교가 삶의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해 지적으로 만족스러운 해답을 제시한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 로저 E. 올슨 (베일러 대학교 신학 교수, 《현대 신학이란 무엇인가》 저자)
|
|
이 책이 재출간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특히 최근 기독교 신앙에 대한 무신론적 공세가 빗발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매력적인 책은 탄탄한 연구가 뒷받침되어 있고 깊이가 있으면서도, 읽기 쉽고 흥미롭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 한 권, 주변의 회의주의적인 지인을 위해 한 권을 꼭 구입하기 바란다. - J. P. 모어랜드 (신학자)
|
|
《무신론자 아버지 vs. 신학자 아들》은 단연코 이 분야 최고의 책이다. 이처럼 다양하고 중요한 변증학적 주제들을 이토록 읽기 쉬운 형식으로 소개하는 책은 없을 것이다. 특히 그레고리 보이드가 아버지의 질문에 답하는 정직하고도 사랑이 담긴 태도는 변증가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이 책을 사서 읽으라.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 의문을 가진 이들에게도 선물하라. - 제임스 베일비 (베델 대학교 신학 및 변증학 교수)
|
|
그레고리 보이드는 자신의 개인적인 탐구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깊은 지혜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지혜를 사랑과 존중이 담긴 대화를 통해 아버지 에드워드 보이드와 함께 나누었다. 만약 누군가 자신만의 영적 탐구를 이어가고 있거나 삶의 가장 중대한 질문들에 대해 대화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은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다. 이보다 더 강력
하게 추천할 만한 책은 없다. - 데이비드 K. 클라크 (베델 신학대학원 신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