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Emmanuel Carrere
전미연의 다른 상품
|
그녀는 풀잎 아래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과거 그녀의 모습이 다르게 변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무서웠다. 더듬더듬, 그녀는 몸 전체를 손으로 쓸어 내렸다. 그런데 배꼽 밑, 태어날 때부터 비늘이 있었던 그 자리에 피부가, 그토록 부드러운 살갗이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순간만큼 니꼴라를 뒤흔들어 놓는 것은 없었다.
--- p.88-89 |
|
간식 시간이 끝난 후 노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직업 흉내내기, 수건 돌리기, 연극 등을 하며 놀았다. 그런데 이날 파트릭이 색다른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뭔데요?" 아이들이 묻자, 파트릭이 대답했다. "해보면 안다." 파트릭의 지시에 따라 몇몇 아이들이 테이블과 긴 의자, 그리고 그 방에 있던 거치적거릴 만한 물건을 모두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파트릭이 불을 껐다. 하지만 홀의 불은 그대로 켜놓아서 아이들은 그나마 볼 수 있었다. 이런 이상한 준비 과정이 아이들을 흥분시켰다. 집기를 옮기면서 아이들은 키득키득 숨을 죽여 가며 웃기도 했고, 무엇을 하게 될지 가정을 해보기도 했다. '아마 귀신 놀이를 하거나 테이블을 돌리면서 영혼을 불러오는 놀이를 할 거야.' 파트릭이 손뼉을 탁탁 치더니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자 이제 바닥에 드러누워라, 등을 대고." 파트릭이 말했다. 아이들 모두가 시키는 대로 하는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며, 여전히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파트릭 혼자 서서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모두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차분한 목소리로, 서두르지 않고, 파트릭은 아이들이 가장 편안하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지시를 하였다. 우선 기지개를 켜고 될 수 있으면 상체를 일으켜 세우지 말고, 등 전체를 바닥에 밀착시키라고 했다. 그런 다음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눈을 감게 했다. ---pp.66~67 |
|
...니꼴라는 곧 문이 열릴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그의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삶에서는, 그에게 용서란 있을 수 없음을.
--- p.186 |
|
...니꼴라는 곧 문이 열릴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그의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삶에서는, 그에게 용서란 있을 수 없음을.
--- p.186 |
|
치밀한 구성력, 독특한 작가적 상상력, 보기 드문 흥미진진한 소설
엠마뉘엘 카레르는 프랑스에서 상당한 컬트 독자를 가진 독특한 작가다. 40대 초반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동안의 소유자인 그는, 첫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주인공들을 비극 속에 빠뜨려 처참하게 희생시키는 잔인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것도 아주 기이한 상황을 설정, 주인공과 독자 모두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그의 첫 장편 소설 『콧수염』의 주인공은 콧수염을 민 후로 편집증 환자가 되어 버린다. 다른 소설 『위험을 벗어나서?』에서 주인공인 여교사는 카지노에 미쳐서 폐인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역시 『겨울 아이』의 꼬마 니꼴라도 환상이라는 올가미에 걸리고 현실 속에 냉동되어 버리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사디스트적인 작가는 아니다. 그는 일련의 기괴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허구가 현실을 능가하고, 이성이 상상 앞에서 흔들리고, 부조리 앞에서 논리가 굴복되며 익살이 비극에 잠식당하는 정확한 시점, 그 민감한 경계 지점을 날카롭게 보여 주려 한다. 그의 소설 속에는,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또한 아슬아슬하다. 『겨울 아이』의 주인공 니꼴라의 경우도 무죄인 동시에 유죄이고, 희생양인 동시에 백정이 된다. 카레르는 이 작품을 구상하는 데만 8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본격적인 집필 기간만 일 년 남짓. 대하 소설도, 역사 소설도, 순수 예술을 표방하는 모더니즘 소설도 아니고 오히려 추리 소설적인 재미가 곁들여진 짧은 이야기에 8년이나 투자했다는 것이 언뜻 의아스럽다. 그러나 막상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독자가 느끼는 것은 전율이다. 마치 정교한 공예품을 보듯, 각각의 소설적 장치들은 정확한 자리에, 교묘하게, 너무나 치밀하고 완벽하게 배치되어 있음을 그때서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일종의 복선이랄 수도 있는 요소들―자동차, 인간의 해부 모형, 아버지의 직업, 브라질 팔찌 등―은 결코 억지로 짜 맞춘 듯한 인상을 주지 않고, 오히려 비극적 결말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겨울 아이』는, 주인공을 걷잡을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몰고 가서 결국은 길 잃게 만드는 카레르 특유의 <치밀한 전락의 설계도>가 가장 탁월하게 그려진 걸작이다. 기존의 그의 작품과 더불어 이 소설로 인해 카레르는 기괴 소설의 전통을 참신한 방식으로 계승하는 탁월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겨울 아이』는 95년 출간 직후, 프랑스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 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작가인 엠마뉘엘 카레르는 그밖에도 수 차례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적 재능을 확고히 인정받았다. 참고로, 카레르의 모친은 프랑스의 유명한 아카데미 프랑세즈(프랑스 한림원)의 회원이자 역사학자인 엘렌 카레르 당코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