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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 길에 나서서 민들레 오월 길 잃은 아이 수학여행 목련 불면 장마 나 그리고 마음 깜브론 역 밤 기차 2부 - 낯선 것과 익숙한 것 파리는 널 사랑해 항온 동물 마닐라 열차에서 내린 남자 성탄절 아침에 딸이 고양이가 되다 제주도 작별의 말 하지 김장하는 날 3부 - 사람들 사이 편지 1 편지 2 천리길 오타루 나가사키 착한 사람 월요 이야기 배회 기러기 예식장 4부 - 사라짐 서울 택시 늦가을 여름 오후 오이 소실점 멈춘 강 조사 콩나물 공장 사람은 비밀이 된다 5부 - 저녁 어스름 장미 저명함에 관해 지중해 지우펀 진실과화해위원회 조율 수국 의자 악보 나는 믿나이다 6부 - 생각의 산책 젊은 별이 솟는 호숫가 당신이 누군지 그들이 알려 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해설 - 기억의 여운에서 움튼 말(안선재,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
조재선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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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강요하지 마라
보드라운 볼에 빨간 압류 딱지를 붙이지 마라 5월은 그저 봄꽃 지는 쓰라린 서른 하루일 뿐 광활한 대지를 뒤덮은 풀과 나무 제 뜻대로 기어다니고 걷고 뛰는 들짐승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 그것들은 하나같이 저마다 알아서 자란다 --- 「오월」 중에서 거친 산골 굽은 신작로 겨우내 닫힌 함석지붕 낮은 방앗간이 오랜만에 문 열고 뽀얀 떡사실 내는 날 오늘이 설인겨 어린아이 된 할머니가 창피한 맘으로 이렇게 묻는 아직 찬 이른 봄날 아침 --- 「목련」 중에서 차가웠다 희고 검은 것들 보이지 않는 소리마저 잡아 가두는 힘 자유로우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 끊임없이 불협화음의 터널을 지나가는 너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기도와 경전의 글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악보」 중에서 하늘에는 아무도 없지만 하느님을 믿나이다 숨 쉬는 모든 것이 죽지만 삶을 믿나이다 사랑은 늘 식은 밥처럼 굳지만 사랑을 믿나이다 --- 「나는 믿나이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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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사람이 말할 수 없는 존재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물들 그리고 그 움직임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요?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을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럴지라도 시는 언어의 옷을 입지 않았을 뿐 우리가 상상해 보지 못한 다른 꼴을 갖춘 채 여전히 세상에 남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의미라는 건 구름과 같은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언어 이전의 존재, 지칭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바로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숨 쉬는 것 혹은 숨 쉬지 않는 모든 것들도 의미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들이 싹트기를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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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이든 에세이든 산문을 주로 쓰는 나에게 시는 감히 오르지 못할 나무와도 같은, 글의 성역처럼 다가온다. 모든 걸 현상과 본질 사이의 맥락으로 단순화하는 나로선 시를 쓰기 위해 동원해야 할 감수성과 심상이 무엇인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조재선과 교류하면서 나는 시인의 인격이 무엇인지 약간은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시를 인용하자면 시는 "착한 소리가 사람의 말로 환생"하는 것이며, 시인은 "다정한 말씨의 집"이다. 그리하여 "가장 슬픈 이에게 따끈한 밥을 지어 먹이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역할이다. 조재선의 시를 읽으면 토닥이는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그건 그가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세상의 부조리를 한껏 아파하기 때문이다. - 최광희 (영화평론가,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