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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론
제2장 열정의 종말? 제3장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의 재맥락화 제4장 진정성 산업 제5장 신성한 것의 소멸 제6장 죽음 그리고 순진무구함의 종말 제7장 결론: 기계화의 최종 승리 |
Stjepan Gabriel Metrovic
朴炯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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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론가들이 계몽주의에 대한 과대평가 속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증대된 합리성이 이러한 추세들로부터 인간을 구할 수 없어 보인다. 그 까닭은 탈감정적 통제는 정신이 아니라 감정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가 신성한 것으로 모시는 합리성과 정신의 힘은 그간 무기력한 무심함에 길을 내주어왔다.
--- p.23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가 들은 상투어는 “우리는 알지 못했다”이다. 1990년대에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보스니아에서 일어난 대량학살에 대해 알았다. 그리고 현대의 상투어는 “(우리가 희생자들을 파악할 수 없어) 우리도 당혹스럽고, (우리가 동정심을 베풀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탓에) 우리는 동정심 피로(compassion fatigue)에 빠져 있다”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새롭다. --- p.49 이 모든 것이 실제로 탈감정주의를 제도화하는, 즉 다른 무엇보다도 보다 독특하고 사적이고 개인적이었던 행사인 생일, 결혼식, 기념일, 출산과 같은 전통적인 행사와 관련한 감정들을 공장처럼 표준화된 상태로 포장하는 요소들이다. 사회생활은 조지 오웰과 헨리 애덤스가 예견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기계를 본떠서 만들어져왔다. --- p.105 이러한 통찰은 또한 왜 파리의 유로디즈니가 초기에 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프랑스의 지역 안내원들은 솔직히 미국식 기준에 의하면 충분히 친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전통적인 프랑스 남성과 여성은 왜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에펠탑과 라틴 거리와 같은 파리의 전통적인 관광명소보다 유로디즈니를 더 좋아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문화적으로 말하면, 에펠탑과 유로디즈니 간의 차이는 실제로 내부지향성과 타자지향성 간의, 또는 더 정확하게는 내부지향성과 탈감정주의 간의 차이이다. --- p.143~144 모든 사람이 ‘친절’하기를 기대받고 말과 행동이 정치적 올바름에 의해 부호화되어 온 타자지향적이고 탈감정적인 사회에서는 모든 형태의 카타르시스가 실제로 봉쇄되었다. 소산되지 않는 그리고 소산시킬 수 없는 억압된 트라우마 때문에 언제든 잠재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해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walking time bombs)’이라는 표현을 탈감정적 의식이 만들어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 p.170 탈산업적 하늘에는 너무나도 많은 대안, 선택지, 해석들-이것들 모두는 폭로되고 해체되고 탈분화될 수 있다-이 존재해서 탈감정적 유형은 자신들이 내린 행위 결정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결혼할 한 사람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서방이 보스니아에서 일어나는 살육을 막을 방책을 정하지 못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상에서 이러한 믿음의 상실을 감지한다. --- p.213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순탄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상호작용 속에서 탈감정적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밝혀낸 초보적인 뉴스피크에 기초한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대해 우려했다. 그가 느낀 공포는 옳았던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리고 그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수정구슬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예견했다. 그러나 탈감정주의는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분노 또는 반란으로 이어질 수 없는 매우 ‘친절하고’ 매력적인 전체주의-로 더욱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 --- p.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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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감정사회란 지성화되고 조작되고 대량생산된 기계적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탈감정사회’라고 하면 흔히 감정 없이 냉철한 이성만이 지배하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의미하는 탈감정사회는 지성화되고 조작되고 대량생산된 기계적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메스트로비치는 사회학에 감정을 다시 복원시키며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대신할 사회학적 개념으로 탈감정주의를 제안한다. 이 책에 따르면 탈감정적 감정은 “죽은 또는 재생된, 또는 시뮬레이션된 감정”이다. 이 책은 감정 없는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된 가짜 감정들로 충만한 사회,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감정을 소비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이러한 사회는 감정을 점차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대립 없는 사회를 만듦으로써 엄청나게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메스트로비치는 경고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나의 감정은 진정 내 것인가? 전쟁범죄 연구자로 이름 난 사회학자인 저자 스테판 메스트로비치는 현대사회의 탈감정적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보스니아 내전과 미국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O.J.심슨 사건을 분석한다. 보스니아에서는 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내전을 중단시킬 수 있는 어떠한 실제적인 행동도 없었다. 다만 대량학살에서 살아남은 희생자들에게 마치 그들이 허리케인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뿐이었다. O.J.심슨 재판과 관련해 미국 대중의 관심은 죽은 심슨 부인에 대한 애도와 심슨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기원을 가진 인종차별주의에 쏠렸다. 이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작된 감정이 여론을 형성하고, 그 여론은 어쩌면 진실한 감정에서 나올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감정은 단조롭고 대량생산되면서, 쉽게 조작될 수 있는 현상으로 변형되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은 나의 분노, 나의 연민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감정에 벨트를 채우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감정적 삶을 성찰하도록 만들다 우리는 점점 진정한 감정에 둔감해지고 있다. 데이비드 리스먼은 머리말에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살펴보게 되고 또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도 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다소 불편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불편한 마음이 들려주는 진짜 감정의 목소리를 새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현재의 삶 및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게 하고, 기계적인 감정적 삶이 아닌 진정한 감정적 삶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내 감정’을 찾으려는 발로이며, 이는 곧 저자 메스트로비치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숨은 의도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