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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키에르케고어 선집 9] 사랑의 역사 제1부
기도 머리말 [제1부] 1. 숨겨진 사랑의 생명 - 사랑은 그 열매로 알아볼 수 있다 2-1. 그대 사랑“하라” 2-2. 그대는 그대의 “이웃”을 사랑해야만 한다 2-3. “그대”는 그대의 이웃을 사랑해야만 한다 3-1.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3-2. 사랑은 양심의 문제이다 4. 우리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 의무 5. 서로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우리의 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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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9월에 출판된 『사랑의 역사(役事)』는 키에르케고어 자신이 이해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독자들에게 직접으로 전달하기 위해 쉬운 문장으로 적은 일종의 강화집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철학서도 아니고 신학서도 아니다. 굳이 따져서 말한다면, 이 책은 키에르케고어가 생전에 출판한 많은 설교집(강화집)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선포한 선교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뛰어난 변증가이자 시인인 키에르케고어의 천품이 모자람 없이 발휘되어 있어, 같은 해 3월에 출판된 『들의 백합화와 하늘의 새』와 더불어 그의 종교적 저술 중에서도 으뜸가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성구를 인용하여 “사랑”의 의미를 자신의 실존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해명하는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록 신학적인 저술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현대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실존사상가인 저자의 독특한 그리스도교 이해가 낱낱이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키에르케고어와 레기네와의 사랑의 체험이 종교적인 사랑으로까지 아름답게 승화되어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간에 사랑의 너그러움과 준엄함과 심오함에 끌려갈 것이다. 저자도 머리말에서 적었듯이 이 책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사랑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사랑의 “역사(役事)”이다. 이 책의 주제가 되고 있는 “사랑”은 자연발생적인, 자아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그리스적인 사랑, 곧 에로스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아가페다. 에로스는 그것이 아무리 고상하고 헌신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의 욕구적인 사랑이고, 자아중심적인 것이고, 스스로 가치 있다고 인정되는 것에만 기울게 되는 편애이고, 알게 모르게 보상을 요구하는 사랑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과는 반대로 그리스도교의 사랑인 아가페는 자기희생과 자기부정의 터전에 선 하느님의 사랑이고 자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사랑이고 상대방이 가진 가치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중간 규정으로 삼는, 곧 이런 사랑을 거치고 그 위에 터전을 둠으로써만 인간적인 사랑도 사랑으로서의 완성과 영원성이 부여되고 보장된다.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은 사랑의 생명과 본질과 역사(役事)를 감동적으로 감지할 것이다. “사랑”에 관한 한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사랑”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지식이라면 안다는 것이 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지식이 아닐진대 그것에 대해 “안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랑”이란 그것이 에로스적이거나 아가페적이거나 간에 실천의 뒷받침, 곧 실천이 동반하지 않는 한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런데도 에로스적인 사랑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평범한 인간들의 실상이다. 에로스적인 사랑의 본보기인 애인이나 벗조차도 단속적으로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성서가 말하는 사랑은 인연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성서는 그것이 아가페적인 사랑으로까지 승화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자기 돌봄 없이 자기부정을 통하여 하느님이 보는 앞에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성서는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보는 모든 인간이 곧 우리의 이웃이므로 그 이웃을 자기부정을 통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상대인 이웃이 우리의 사랑을 거부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되어 그 자리에서 책장을 덮고 외면해 버리고 싶을 것이다. 역자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역자는, 키에르케고어의 모든 저서를 저버려야 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이 책『사랑의 역사』과 『그리스도교의 훈련』만은 도저히 저버릴 수가 없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수수께끼다. 역자나 독자 개개인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