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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옮긴이의 말 1 어린 시절과 청년기 2 전쟁 기간 3 오스만제국의 기록보관소에서 4 문화 외교 5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6 학자로 살아온 날들 7 대서양을 건너 8 이웃 9 문명의 충돌 10 오리엔탈리즘과 올바른 역사인식 11 파리에서의 판결 12 역사서의 집필과 개정판 13 정치와 이라크 전쟁 맺음말 부록 I : 만가 부록 II : 수상 및 출판 업적 찾아보기 |
Bernard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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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거대한 힘들이 역사를 위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힘들은 아첨하고, 속이고, 특정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골몰한다. 이기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왜곡은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역사는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이다. 인체와 비교해서 사회를 생각한다면, 역사의 부재는 사회의 기억상실증이고 왜곡된 역사는 노이로제라고 할 수 있다.
과거를 직시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현재를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은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도덕적이고 직업적인 책임감을 바탕으로 과거의 진실을 정확히 찾아내고, 파악한 그대로를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했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중동 출신은 물론 서구의 중동 학자들 사이에서도 루이스 교수만큼 중동과 서구를 오가며 경험을 쌓고 연구를 해온 인물도 드물다. 서구의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중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고루 보며 학문적 활동을 해온 사람이 바로 루이스 교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터키 문화부가 수여하는 훈장을 받았고, 터키 학술원 명예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중동과 서구의 16개 대학에서 명예박사를 수여받기도 했다. 일방적으로 서구 중심적인 연구를 해왔다면, 이런 명예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100년의 기록》은 루이스 교수의 학문적 삶을 모두 담아낸 책이다. 또 100년에 가까운 삶을 정리하며 집필한 개인적 회고록의 성격도 갖고 있다. 연구를 하면서 그가 직면한 학문적 고민과 논쟁에 대해서도 솔직히 담아냈다. 이혼이라는 개인사도 여과 없이 기술했고, 노년에 시작한 새로운 사랑에 대해서도 부끄럼 없이 진솔하게 밝혔다. ---「옮긴이의 말」중에서 역사가라면 자신의 시대에 발생한 사건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역사가는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 사안들에도 관심을 가진다.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므로, 현재의 문제점들이 제기하는 의문들을 과거에 투영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은 정통성 있는 접근법일 뿐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접근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세대의 역사가들이 기록할 게 없어진다. 같은 주제를 다시 쓰고 같은 사안을 다시 검토할 수는 없다. 다만 역사적 사실과 결과를 정치적 혹은 이념적 목적으로 왜곡하는 것은 절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방식은 역사가의 정신에 대한 배신이다. ---「2 전쟁기간」중에서 “중동에서 어떠한 영토도 합병하거나 점령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동 국가들이 독립하는 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지원을 했던 미국이 왜 서구에 대한 적대감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미국인들이라면 이런 의문을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의문에 대해, 중동 지역의 절대다수 무슬림들은 기독교 유럽의 정체성과 충성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국가와 민족을 부차적인 것으로, 혹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정체성과 충성심에 기반을 둔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무슬림들에게 생소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이슬람세계에서 정체성과 충성심의 기초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한 민족 안에 여러 종교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무슬림들은 한 종교 안에 여러 민족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민족은 한 국가 내에서는 어느 정도 중요성을 갖지만 국제적 차원에서는 부차적이다. 중동에서 기독교세계로 간주되는 서양 국가들은 하나의 그룹으로 분류된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때때로 러시아도 여기에 포함된다. ---「9 문명의 충돌」중에서 오사마 빈라덴의 이 선전포고는 중동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시각이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중동의 이슬람주의 운동은 더는 민족적, 지역적 혹은 반제국주의적 성격과 같은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이슬람 과격 세력의 국제적 무장투쟁은 7세기 이슬람의 등장으로 시작된 갈등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슬람세계의 사건과 담론을 면밀히 분석해온 학자로서, 나는 9·11 테러 공격에 경악했다. 그러나 놀라지는 않았다. 이슬람 과격무장단체의 시각에서 이는 무슬림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향하는 길의 첫 단계가 완성된 것일 뿐이다. 불신자들과 그들의 군대를 이슬람의 땅에서 축출하는 것이다. 그다음과 마지막 단계는 적의 영토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다. 세계의 지배권을 놓고 진정한 신자들과 불신자들 간에 최종 전투를 시작해 이슬람의 대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9 문명의 충돌」중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논문은 분명 잘못됐다. 이슬람세계에서 유럽 제국의 확장과 오리엔탈리스트 학자들을 연계한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유럽에서의 아랍어와 이슬람에 대한 연구, 즉 오리엔탈리즘은 그가 주장한 바와 같이 무슬림세계에서 유럽 제국주의의 확장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다. (…) 사이드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바로 그의 무지였다. 그는 중동의 역사뿐 아니라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의 잘못된 서술 중 일부는 논쟁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역사의 전개 과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집필한 것이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그는 아랍무슬림 군대가 북아프리카를 정복하기 전에 터키를 정복했다고 서술했다. 그런데 사실 북아프리카는 터키보다 4세기 먼저 정복됐다. 이러한 오류들은 집필한 주제에 대한 작가의 지식을 불신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10 오리엔탈리즘과 올바른 역사인식」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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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관련 핵심 이슈의 집대성
버나드 루이스는 이 책에서 여러 이슈들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역사의 동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서구적인 시선을 배제한 채 중동 고유의 시각으로 그들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따라서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중동 문제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와 일관된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먼저 루이스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슬람 과격단체의 전신인 중세 아사신의 기원을 이야기한다. 서양에서 중세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아사신에 대한 오해, 즉 이들의 분노가 십자군으로 향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며, 중세 아사신의 공격 대상은 이슬람권의 지배 엘리트와 지배 이념이었음을 밝힌다. 따라서 이들은 오늘날 민간인들을 원격 제어장치로 무차별 살상하고 인질 납치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현대 테러리스트들과는 크게 다르다. 아사신에 대한 바른 연구는 오늘날 특정 단체들이 종교와 정치를 사이에 두고 자신들의 극단적, 폭력적 방법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버나드 루이스는 반미주의 확산 이유에 대해 분석한다. 2001년 9?11 테러를 시작으로 전 세계인이 미국에 대한 중동의 반감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에 아마 많은 사람들은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루이스는 다음과 같은 미국인들의 질문을 가정한다. “중동에서 어떠한 영토도 합병하거나 점령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동 국가들이 독립하는 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지원을 했던 미국이 왜 서구에 대한 적대감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그는 대다수 무슬림들은 기독교 유럽의 정체성과 충성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국가와 민족을 부차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에게 정체성과 충성심의 기초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기독교세계로 간주되는 서양 국가들은 하나의 그룹으로 분류된다. 즉 미국을 자신들을 괴롭혀온 기독교세계의 대표적 국가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무슬림들의 뿌리 깊은 반미 감정의 기원을 가늠할 수 있다. 루이스는 서구의 방법을 중동에 적용하려는 잘못된 시도에 관해서도 분명히 지적한다. 서구 사회는 중동 문제에 개입하면서 수많은 계산착오를 드러냈다. 그것은 자신들의 민주주의 방식이 중동 사회에도 반드시 통할 거라는 오만함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중동 역사의 맥락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를 가진 버나드 루이스는 서구적인 방식으로 중동을 바꾸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며, 서구의 힘을 중동에 적용시키기보다 중동인 자신들의 방법으로 자유를 쟁취하도록 돕는 편이 낫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버나드 루이스는 중동 내 분쟁의 기초인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한 아랍-이슬람의 태도, 유럽에서 이슬람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한 생각, 이란혁명, 이라크 전쟁, 팔레스타인 분쟁, 또 반유대주의의 정체까지 다양한 역사적 현안들을 다루고 있다. 역사학자를 둘러싼 오해와 그에 대한 반박 이 책에서 버나드 루이스는 자신의 활동과 관련한 세간의 오해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팔레스타인 출신의 유명한 중동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들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의 저서《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중동을 연구하는 서구 학자들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오리엔탈리스트라고 주장했다. 이 점에 대해 루이스는 우선 사이드의 연구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다. 그의 주장은 단편적이고 잘못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구의 신빙성 또한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서구 중심적인 연구를 한다는 비판과 관련하여, 비중동인으로서 중동을 연구함에 있어 자신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한다. 중동 국가에서 내부인이 중동을 연구하는 것은 아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외부인으로서 누구보다도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를 연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중동 국가로부터 명예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일방적으로 서구 중심적인 연구를 해왔다면, 이런 명예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버나드 루이스는 이라크 전쟁을 부추겼다는 오해와,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관련하여 벌어졌던 소송 문제에 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어떠한 상황 앞에서도 역사학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나 분명하게 드러냈다. 물론 버나드 루이스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중동에 대해 무척 정확한 분석을 내려놓는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그는 해박한 언어 지식을 바탕으로 해당 지역의 오랜 기록을 직접 분석해 정확한 역사 연구를 내놓는 몇 안 되는 역사학자다. 실제로 루이스는 오스만제국 기록보관소에 접근하여 연구한 것이 터키어 및 아랍어, 페르시아어 지식을 갖춘 자신에게 커다란 전환점이었다고 언급했다. 지난 100년에 대한 그의 기록을 늙은 역사학자의 업적을 기리는 한낱 종잇조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는 엉킨 실타래와 같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중동 역사에서, 지난 100년을 통해 다가올 100년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로서 그 의미가 크다. 이 책은 격변하는 중동 역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시각을 제공하는 최고의 역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