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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프롤로그 1장 왜 사랑하는가 사랑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랑해야 참답게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의 주체로서의 ‘나’ 열두 살의 사랑 도덕성과 성격 발달에 따른 사랑 해답은 부단한 이론적·실천적 교육과 연습 자기중심적 사랑 욕구충족적 사랑 ‘왜 사랑하는가’는 자기 결단의 문제 사랑의 갈등과 극복 2장 성과 사랑 생리·해부학적 성 성과 사랑은 하나 라캉의 성과 사랑 성적 사랑의 진실한 열매 맺기 사랑의 덕과 인간 존중 원초적 사랑의 기쁨 에로스와 필리아와 아가페 ‘나’와 사랑 관능적 사랑과 환멸 3장 결혼과 사랑 니체의 원근법주의와 사랑 고고학과 천문학으로 본 사랑의 모습 결혼 따로 사랑 따로 구정물 세례를 받은 소크라테스의 사랑 예수와 공자의 사랑 퇴계와 율곡의 사랑 석가모니의 사랑 서양 철학자들의 사랑 여러 가지 얼굴로 변할 수 있는 힘, 사랑 사랑의 힘, 사랑의 승리 사랑의 고뇌 사랑을 지키는 힘 4장 아름다움과 사랑 한 얼굴의 두 모습, 증오와 사랑 그리고 추함과 아름다움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미적 태도: 무관심 내지 공평함 또 다른 미적 태도의 특징: 내면적 관계 미적 태도를 상실해 가는 현대인 그리고 ‘존재’의 은폐 예술과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예술의 분류와 각 예술에 대한 우리의 사랑 예술 작품은 하나의 생명체 철학자들의 예술관 5장 사랑의 발자취 니체의 계보학적 방법으로 본 사랑의 변천 사랑의 원천은 우주론적인 힘 사랑의 근원은 에너지: 태조 이성계의 결혼 이야기 로고스(이성)에 대립하는 힘, 에로스 다양한 사랑의 의미 찾기 플라톤의 사랑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에로스 서양 중세의 사랑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랑 근대와 현대에서의 의미심장한 사랑 6장 플라토닉 러브 일상생활에서의 플라토닉 러브 스승 소크라테스와 제자 플라톤 ‘아테네의 등에’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꿈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플라톤의 지혜에 대한 사랑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지고지순한 사랑 사랑의 참 의미 7장 심리학과 사랑 ‘판도라의 상자’에 암시된 사랑의 정체 사랑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 사랑과 밀접한 정서: 쾌감, 공포, 분노, 불안, 희망 친밀감과 책임과 열정을 가진 사랑 사랑과 뗄 수 없는 개념: 좋아함, 섹스, 결혼 시시포스 왕 신화에 암시된 삶의 모습과 사랑의 승리 사랑 탐구의 세 가지 이론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보는 사랑의 성격 구강기口腔期 항문기肛門期 성기기性器期 잠복기 사춘기 증오심과 적대감이 동반되는 멜랑콜리 8장 종교와 사랑 원시종교와 사랑 마나와 사랑〡샤머니즘과 사랑〡주물숭배와 사랑〡마법사와 사랑 계시종교와 사랑 유교와 사랑〡힌두교와 사랑〡불교와 사랑〡유대교와 사랑〡이슬람교와 사랑〡기독교와 사랑 9장 사랑의 황홀한 힘 인식하는 사랑 만물의 근원과 긍정신학 부정신학과 삼위일체 기도의 힘 사랑의 황홀한 힘과 최상급 신학 선택받은 인간과 사랑 10장 영혼의 순례: 영혼이 가진 사랑의 힘 신에 도달하기 위한 여섯 가지 단계 신의 발자취 흔적 안에 있는 신 영혼의 자기 자신으로의 복귀 영혼 안에서의 반성 빛과 존재 절대적 선 및 신과의 합일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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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일상적 삶의 덫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시간에 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평상시 우리는 누구나 시간에 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나는 시간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사실 의심과 경탄이 없는 삶은 권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에 관한 고백은 그의 시간에 관한 의심과 경탄을 동반합니다. “시간은 과연 무엇인가?” 이 물음은 시간에 관한 근본적인 의심을 제시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대부분 어둠에 싸여 있고 단지 시간의 극히 작은 단편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물리적 시간, 다시 말해서 시계의 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시간 앞에서 어느 순간 문득 ‘도대체 나는 시간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니… 시간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제기할 때 우리는 본질적인 의심을 던집니다. 의심의 언저리를 한없이 맴돌다 보면 드디어 경탄의 순간을 체험하게 됩니다.
--- p.18 ‘무엇을 사랑하는가’라는 물음은 ‘사랑의 대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라는 물음과 똑같습니다. 넓게 보면 사랑의 대상들로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이성, 형제, 부모나 자식, 친구, 예술, 자연, 종교적 신… 등 수없이 많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사랑합니까?’라고 물으면, ‘애인, 친구, 형제, 부모…’ 등 특정한 인간을 사랑한다고 누구나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무엇을 사랑합니까?’라는 물음에 접하면,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음악, 스포츠, 내가 속한 단체…’ 등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사랑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왜 사랑하는가?’ 등의 물음을 던지고 답하기에 앞서서 꼭 살펴보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아, 곧 나입니다. 설령 사람들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당신들은 조국을 사랑합니다. 한국인들은 혼과 몸을 바쳐서 땅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고 해도 결국 누구나 ‘나’의 입장에서 사랑을 말합니다. 요컨대 사랑에는 사랑하는 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 p.28 ‘어떻게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은 사랑하는 사실들만 관찰하면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이며 나르시시즘적으로 오직 자기만을,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자식만 또는 자기 가족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예술만, 신앙만, 일만, 자연만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알면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알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떻게 사랑해야만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주체는 사랑받는 객체에 대해서 인내하며 성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특히 인간 사이의 사랑에 있어서는 사랑받는 객체 역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 때 더 이상 사랑받는 객체이기를 그치고 사랑하는 주체가 됩니다. 이때 사랑은 인간 상호관계의 정서가 될 수 있습니다. --- p.46 동물적인 모성애는 무조건 어미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자식을 보호하고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모성애는 본능적 모성애에 자식의 성숙에 대한 염려와 배려가 첨가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에 대해 사랑 교육을 행할 때 비로소 모성애는 인간적 모성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정은 물론이고 자연 사랑과 지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종교적 사랑 모두 무조건 자연적으로 행해지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다양한 사랑들은 모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련과 갈등을 극복하면서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도 갈고 닦아야 제값을 합니다. 사랑의 씨앗도 역시 갈고 닦아야 빛이 납니다. 사랑은 연습하고, 배우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소중하게 사랑을 키워나갈 줄 아는 사람만이 바람직한 사랑을 나눌 수 있고, 또 받을 수 있습니다. --- p.58 “나는 무엇일까? 나의 성충동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동생과 부모님과 집과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사회와 국가는 무엇일까? 사랑과 마음은 또 무엇일까? 내가 읽는 책들은 무수한 낱말과 개념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들은 ‘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특히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보살피는 엄마는 내가 나 자신을 만들어가고, 그것을 아는 데 있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어머니와 언어와 사회는 내가 나로서의 주체를 상징적으로 구성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들이었다.” 라캉에 의하면, 욕망의 주체인 인간은 상상과 상징의 현실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캉은 어느 곳에선가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 따라서 성관계도 없다”라고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남자, 여자, 성관계 등의 현실은 알고 보면 상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 p.70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에로스는 어떻게 보면 선생과 제자 간의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생과 제자는 양자 다 정신적 진리와 윤리적 선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말한 에로스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철학에서 표현했습니다. 플라톤의 에로스는 이데아 이론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나는 ‘플라토닉 러브’ 장에서 이데아 이론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이데아는 이상적인 개념입니다. 말하자면 영원불변하면서 보편실재적인 개념이 이데아입니다. 지금 여기에 3이 있습니다. 이 3은 우리가 소리 내어 말할 수도 있고, 빨간색으로 쓸 수도 있으며, 셋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3이라는 숫자는 지우면 없어집니다. 그러나 관념적(정신적)으로 3은 언제나 존재하며, 이런 관념적 3을 따라서 우리는 종이에 3을 쓰고 입으로 3을 말합니다. 현실 세계의 사물들은 다 변하지만, 그것들은 각각 불변하는 이데아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의 에로스는 이데아에 대한 사랑입니다. --- p.93 키르케고르의 결혼과 사랑에 대한 고뇌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뇌를 잘 대변해 줍니다. 키르케고르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무대인 덴마크 출신의 현대 실존철학자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청년 시절에 헤겔 철학을 비롯해서 독일 철학을 공부하긴 했어도 덴마크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기독교 신앙에 정진한 인물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약혼을 하고 난 후 한동안 약혼녀와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드디어 그는 ‘나 자신도 책임지기 힘든 내가 또 다른 한 인간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책임질 수 없는 결혼은 아예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이 사실을 약혼녀에게 알리고 철학 공부를 하러 독일의 베를린으로 향하는 긴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베를린에 도착한 키르케고르는 덴마크에서의 일을 모두 잊어버리려는 듯 철학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키르케고르가 또 다른 한 인격 주체를 책임질 수 없으므로 그가 결혼을 포기했다는 사실입니다. --- p.128 예술 작품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술 작품을 사랑할까요? 만일 예술 작품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릴 뿐 결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술 작품은 크게 보아 감각적 가치, 형식적 가치, 삶의 가치 등 세 가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자연 대상에 대해서도 감각적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슬방울이 맺힌 반짝이는 나뭇잎, 보드랍고 차가운 대리석의 촉감, 저녁 하늘의 자줏빛 구름, 굽이굽이 휘돌아 흐르는 강물… 등에서 우리는 자연이 던져주는 감각적 가치를 지각합니다. 또한 대금의 구성진 음, 고려청자와 이조백자의 단아한 자태, 청아한 사찰 등에 접하여 감각적 가치를 느낍니다. 티없이 맑게 웃는, 젖내음 풍기는 아기를 바라볼 때 그리고 건강미가 흘러넘치는 이성을 마주할 때 우리는 감각적 가치를 맛봅니다. --- p.165 절대성 역시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인간은 상상력에 의해서 자신과 주변을 쉬지 않고 창조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력을 단지 부정적인 것이라고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상력의 산물인 절대성을 실재한다고 확신하고 오직 절대성만을 추구한다면 인간은 역시 자기 자신을 잃고 자신으로부터 소외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간혹 비정상적인 신앙인의 자세를 가리켜서 맹신 또는 광신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문명 내지 문화는 그리스의 로고스(이성)와 기독교의 피데스(신앙)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이성의 완전성과 신앙의 절대성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참다운 모습으로부터 많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사랑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하는 것 역시 사랑의 완전성과 절대성의 정체를 살피고 사랑의 완전성과 절대성을 극복함으로써 다양한 사랑의 의미들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 p.188 플라톤의 일생은 한마디로 ‘지혜에 대한 사랑’인 에로스eros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의 노력은 이데아들 중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를 궁극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데아들은 현상 사물들의 영원불변한 원형들이고, 이 원형들의 가장 윗자리에서 완전무결한 이데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선의 이데아입니다.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선의 이데아를 하나님과 똑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데아들과 아울러 선의 이데아를 알기 위해서는 참다운 앎, 곧 지혜에 대한 사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선의 이데아는 진리이고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선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완전한 이데아를 아는 것이 지혜이고, 인간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가질 때만 선의 이데아로 향할 수 있습니다. --- p.219 프로이트는 리비도 이론을 통해서 인간이 영아기, 유아기에 웬만한 욕구발산과 억압을 체험할 수 있어야만 욕망의 충족도 정상적으로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리비도의 표현이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람을 일컬어 성도착 환자라고 부릅니다. 프로이트는 개인의 성발달이 출생과 함께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에 개인의 사랑 역시 출생과 함께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생아의 원천적 삶의 에너지인 리비도는 처음부터 완성된 것은 아니고 시간과 함께 끊임없는 학습과정을 거치면서 점차로 완전한 틀을 갖추게 됩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개인의 성적 발달은 다섯 단계를 거치는데 이 발달과정은 성인이 된 후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습니다. 다섯 단계를 정상적으로 거치는 사람은 성인이 되어 정상적으로 성관계를 할 수 있고, 따라서 정상적으로 사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성관계와 사랑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성격과 태도를 보입니다. --- p.255 윤리적 사랑을 질적으로 비약할 때 비로소 종교적 사랑이 가능합니다.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인간은 종교적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과 맺어진 삶을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라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현실화됩니다. 그리스도는 영원이지만 동시에 현실이라는 시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타락의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는 영원한 시간을 소유하기 때문에 믿음과 사랑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신이면서도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를 매개로 삼아 인간은 종교적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출발점은 불안에 떠는 자아입니다. 하나님은 은폐되어 있고 자아는 의존할 것이 없어 불안합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인간은 종교적 사랑에 의해서 윤리적 사랑으로부터 비약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안에서 본래적 자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종교적 사랑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키르케고르의 주장입니다. --- p.2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