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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가지 불안
2. 아직까지 명료하게 제시되지 못한 논쟁점 3. 자기 진실성의 원천들 4. 내쳐 버릴 수 없는 지평들 5. 인정에 대한 요구 6. 주관주의로의 침몰 7.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8. 보다 미묘한 언어들 9. 과연 쇠우리iron cage인가? 10. 파편화를 반대하며 |
Charles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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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황이 요구하는 거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투쟁, 즉 지적, 정신적, 정치적인 투쟁이다. 따라서 공공의 장에서의 논쟁은 병원, 학교 등과 같은 많은 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논쟁들과 상호 연결되어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들에는 기술을 새로운 틀로 묶으려는 문제들이 구체적인 형태로서 체험되고 있다. .... 이런 다면적인 논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문화속에 있는 위대한 점과 동시에 천박하거나 위험스러운 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파스칼이 일찍이 인간에 대하여 말했던 것처럼, 현대사회는 장대함과 동시에 비참함에 의해서 특징지워진다. 이 두가지 점을 포용하는 시각만이 이 시대의 최고의 도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우리 시대에 대한 굴절없는 통찰을 우리들에게 허용할 것이다.
--- p.152-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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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기 진실성이라는 당대 문화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의 축은 다음과 같다. 이런 문화는 자기 실현을 순전히 자기 개인적인 일로 이해하도록 만듦으로써, 개인들이 가입하는 여러 단체들이나 공동체를 순전히 도구적인 의미로만 대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좀더 넓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런 개인 중심적 태도는 공동체에 대한 강한 집착력과 정면 대립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복종으로 이해되는 정치적 시민 의식을 점점 더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좀더 개인적인 생활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것은 인간 관계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성취에 봉사해야만 한다는 인간 관계관을 조장하는 것이다. 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들의 자기 실현이 우선이고, 인간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생 동안 지속되는 무조건적인 결합이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만약 인간 관계가 자기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그것은 죽을 때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 관계가 마땅히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돼야만 한다고 선험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은 1970년대 중반에 인기를 끌었던 어떤 책 속에 또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생의 중반에 여행을 떠날 때, 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떠날 수 없다. 너는 멀리 떠나가는 것이다. 사회 제도적인 요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과제들로부터 떠나가는 것이다. 외재적인 가치 규범들이나 신념 체계들로부터 떠나가는 것이다. 너는 사회적 역할들로부터 떠나서 자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이 여행을 떠나면서 누구에게 송별 기념으로 선물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텐트가 될 것이다. 정처 없이 떠다니며 탐색을 하기 위한 텐트. 이동할 수 있는 뿌리라는 선물……. ---pp.6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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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기 진실성이라는 당대 문화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의 축은 다음과 같다. 이런 문화는 자기 실현을 순전히 자기 개인적인 일로 이해하도록 만듦으로써, 개인들이 가입하는 여러 단체들이나 공동체를 순전히 도구적인 의미로만 대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좀더 넓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런 개인 중심적 태도는 공동체에 대한 강한 집착력과 정면 대립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복종으로 이해되는 정치적 시민 의식을 점점 더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좀더 개인적인 생활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것은 인간 관계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성취에 봉사해야만 한다는 인간 관계관을 조장하는 것이다. 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들의 자기 실현이 우선이고, 인간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생 동안 지속되는 무조건적인 결합이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만약 인간 관계가 자기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그것은 죽을 때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 관계가 마땅히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돼야만 한다고 선험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은 1970년대 중반에 인기를 끌었던 어떤 책 속에 또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생의 중반에 여행을 떠날 때, 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떠날 수 없다. 너는 멀리 떠나가는 것이다. 사회 제도적인 요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과제들로부터 떠나가는 것이다. 외재적인 가치 규범들이나 신념 체계들로부터 떠나가는 것이다. 너는 사회적 역할들로부터 떠나서 자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이 여행을 떠나면서 누구에게 송별 기념으로 선물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텐트가 될 것이다. 정처 없이 떠다니며 탐색을 하기 위한 텐트. 이동할 수 있는 뿌리라는 선물……. ---pp.6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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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우리는 몇 사람만 만나도 화제가 돌고 돌다가 결국 "불안하다"는 얘길 하고 만다. 다들 "불안하다"고 말한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들 한다. 요새 우리는 왜 "불안"한가? 도대체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계는 전 세계적으로 몰아닥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에 함몰되어 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제 이 세계는 도구적 이성이 제 세상을 만나, 시장과 자본만 있고 인간은 그 존재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결국 인간의 삶을 정글의 법칙 속으로 옮겨 놓게 되고, 인간이 살 만한 사회적 공간을 상실케 하는 것이다. 인간은 없고, 자본만이 아니 자본의 유령만이 떠돌고 있는 이 황량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건질 것인가? 테일러는 서구 근대 사회를 성립시킨 핵심 개념이자 실천 이념인 근대 개인주의의 자기 진실성은 내면적 자아와의 도덕적 대면과 자아 실현, 그리고 주체적 결정의 자유를 의미하는 사상이지만, 그러나 근대 개인주의 문화는 자기 중심적이며 파편적인 원자론적 형태로 말미암아 그러한 자기 진실성의 이상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즉, 원자론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개인주의는 자기 도취(나르시시즘)의 문화에 빠짐으로써 삶의 의미 지평의 상실과 도덕적 차원의 질적인 하락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러한 근대성이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강화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관심을 배제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 기술 사회에서 도구적 이성이 지배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최대의 시장 "효율"만이 강조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목표를 상실하고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근대성이 관료제의 심화, 개인의 공적 영역에서의 소외와 정치적 영향력의 쇠퇴로 말미암아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케 하였다고 한다. 테일러는 인간을 개별적으로 고립되고 추상화된 "원자적 존재"로 보지 않고, 언제나 다른 인간들과 대화하며 공동체와의 연관 속에서 하나의 일관된 인생 목표를 가지고 성장, 발전하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존재"로 본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개인의 선택 행위에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하는 사회적 의미 지평의 확대와 타인과의 상호 대화가 가능한 공동체적 유대를 확보함으로써 근대적 자기 진실성의 이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인생의 의미가 각자의 취향과 선택에 따르면서도 그것이 파편화된 개인들의 자기 폐쇄주의나 주관주의로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좁은 이해의 지평 너머에 있는 사회나 자연의 요구를 수용하고 동시에 역사나 공동체적 연대 고리를 확복함으로써 우리가 자신의 내면의 진실성의 충실함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자기 진실성의 이상"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현대 사회의 불안을 극복하고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의미 있는 삶의 지평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개인 - 역사 - 사회 - 공동체가 연대되는 "자기 진실성의 이상"을 회복함으로써, 도구적 이성이 극단적으로 판을 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우리 인간이 더 이상 시장과 자본의 수단적 존재가 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주체적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테일러는 이 작은 책자에서 우리가 맞고 있는 현대 사회의 불안 요인을 분석하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