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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
: 행위자들은 어떻게 현실을 거시적으로 조직하는가,
그리고 사회학자들은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돕는가
미셸 칼롱, 브뤼노 라투르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
: 개코원숭이에서 인간까지
셜리 스트럼, 브뤼노 라투르
권모술수뿐만 아니라 기계를 위한 『군주론』을 쓰는 법
브뤼노 라투르
미주
옮긴이 해제
행위자 불평등 발생론: 초기 라투르의 정치관, 그리고 이후의 변화

저자 소개 4

브뤼노 라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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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o Latour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사이의 학제적 조류를 이끈 과학기술학(STS)의 대가이며, 근대성 비판과 인간중심주의 해체에 토대를 둔 생태주의 정치철학을 독보적으로 제시한 사상가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홀베르상과 교토상을 받았다. 1947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아프리카에서 인류학 현장 연구를 경험하며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류학 연구로 학문적 관심을 넓혔다. 파리 국립광업대학, 런던 정치경제대학, 하버드 대학, 파리정치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라투르가 현대사회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행위자-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사이의 학제적 조류를 이끈 과학기술학(STS)의 대가이며, 근대성 비판과 인간중심주의 해체에 토대를 둔 생태주의 정치철학을 독보적으로 제시한 사상가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홀베르상과 교토상을 받았다.

1947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아프리카에서 인류학 현장 연구를 경험하며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류학 연구로 학문적 관심을 넓혔다. 파리 국립광업대학, 런던 정치경제대학, 하버드 대학, 파리정치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라투르가 현대사회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은 혁신적인 사회이론으로 평가받으며 인류학, 지리학, 경제학, 생태학, 미학, 문학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2022년 7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첫 저서 『실험실 생활』 이후,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와 『판도라의 희망』 『자연의 정치』를 거쳐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 『존재양식의 탐구』에 이르기까지 숱한 문제작을 펴냈다. 말년에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공공지식인으로 활동했으며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녹색 계급의 출현』 등의 저작을 통해 신기후체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깊이 탐구했다.

브뤼노 라투르의 다른 상품

미셸 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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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학자, 과학기술학자. 파리 국립광업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브뤼노 라투르와 함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의 주창자 중 한 명으로, 이 이론을 시장 분석에 적용하여 경제와 경제학의 수행적 관계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번역의 사회학의 몇 가지 요소들」 등의 논문을 썼으며, 지은 책으로 『만들어지는 시장』 등이 있다.

셜리 스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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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장류학자.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인류학 명예교수다. 1970년대부터 개코원숭이 연구를 수행하며 영장류 사회에 대한 인식 변화에 공헌했다. 케냐의 한 개코원숭이 개체군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스트럼의 연구는 가장 오랜 기간 수행된 야생동물 현장 연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지은 책으로 『거의 인간과 같은』 『우리 기원의 메아리』 등이 있다.
문학평론가. 2021년 『문학과사회』에 평론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쓴 논문으로 「매력의 미학사: 칸트에서 랑시에르까지」(2025)가 있으며, 옮긴 글로 「왜 비판은 힘을 잃었는가? 사실의 문제에서 관심의 문제로」(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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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208g | 128*187*10mm
ISBN13
9788932045214

책 속으로

이 글의 목표는, 홉스의 중심 가설을 유지하면서 계약을 번역이라는 일반 법칙으로 대체했을 때 사회학은 무엇이 될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미시 행위자와 거시 행위자 사이의 크기 차이를 해명하고 분석하는 것이 목표라면, 우리는 사회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 p.12

우리는 분화가 결코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특정화되지는 않는 신체, 그러나 각 세포가 다른 세포들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특정화하려 하는 장소인 신체, 많은 기관organs이 프로그램의 핵심부가 되기 위해 영구적으로 쟁투하는 곳인 신체를 상상해본다. 그러한 괴물을 상상한다면, 우리는 성장하는 것을 눈앞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리바이어던의 신체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관념을 갖게 되는 셈이다.
--- p.25

사회학자는 다른 행위자보다 더 외부적이지도 내부적이지도 않고, 더 과학적이지도 덜 과학적이지도 않다. 일반적인, 너무나 일반적인 상태에 있을 뿐이다.
--- p.51

모든 행위자가 어느 정도는 사회를 ‘수행’하며, 처음부터 조사하고 탐사하고 협상하고 재협상하는 능동적 참여자라면, 우리는 정치적 행동의 시작점을 어디에 적당히 위치시킬 수 있을까? 주요 협상이 표현형의 출현 이전에 벌어진다는 이유로 진사회적 곤충을 배제해야 하는가? 비인간 영장류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역이 그들의 물질적·상징적 자원의 범위에 의해 제한되므로 배제해야 하는가? [...] 정치는 다른 것들과 분리된 하나의 행동 영역이 아니다. 우리가 보기에, 정치는 갈수록 부수기 어려워지는 사회적 연결 고리로 많은 이질적인 자원을 엮어내는 것이다.
---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 중에서

사회와 기술은 마키아벨리적 교활함의 두 얼굴이다. 따라서 사회적 유대와 기술적 결속이라는 공허한 구분 대신, 우리는 연합association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선호한다. ‘이것은 사회적인가? 기술적인가?’라는 이중의 질문보다는, ‘이 연합이 저 연합보다 강한가, 약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를 선호한다.
--- 「권모술수뿐만 아니라 기계를 위한 『군주론』을 쓰는 법」 중에서

과학과 기술이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라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과 기술 안으로 들어가는 것, 즉 사회와 과학이 동일한 전략에 따라 동시에 정의되는 곳까지 침투하는 것이다.

--- p.126

출판사 리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만물에 대한 만물의 번역으로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에서 칼롱과 라투르는 영국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언급하며 서두를 연다. 리바이어던은 ‘자연 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던 인간들이 서로 계약을 맺어, 한 개인 혹은 집단에게 권리를 부여한 결과로 탄생한 주권자에 대한 홉스의 은유다. 칼롱과 라투르는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통해 어떻게 미시 행위자가 거시 행위자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행위자들 사이에 본성에 내재하는 차이는 없”으며, 행위자들 “사이에 있는 층위나 규모의 차이는 모두 거래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거래가 홉스에게는 인간 사이의 ‘사회계약’이었다면, 칼롱과 라투르는 홉스의 사회계약보다 포괄적인, 인간은 물론 더 많은 이질적 행위자들 사이의 ‘번역’으로 이해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들에 따르면, 행위자는 번역을 통해 이질적 행위자들을 등록(포섭)함으로써 성장한다. 이처럼 칼롱과 라투르는 홉스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면서도 그것과 대결하고, 개량하고 조합하면서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이론을 발전시켜나간다. 전기차 도입을 둘러싸고 프랑스전력공사와 르노자동차가 기술, 소비자, 시장 등의 요소를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게 포섭하기 위해 분투한 사례는 리바이어던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행위자는 내가 원하는 것,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 자다. 그가 나의 형식화되지 않은 소망을 정확히 번역한다면, 그때 내가 원하는 바가 바로 그것인데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p.30)

같은 글에서 칼롱과 라투르는 사회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들며 개코원숭이 사회를 끌어온다. 이 유인원 사회는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에서 스트럼과 라투르가 분석한 대상이기도 하다. 유인원 연구가 시작되던 20세기 초, 연구자들은 유인원 무리에서 인간 사회와 대비되는 자연 상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발견한 것은 매우 다양하며 유동적인, ‘복잡성’을 띤 사회의 모습이었다. 개체 수준에서 개코원숭이는 인간보다 사회적이다.

사물이나 제도 같은 육체 외적 자원이 거의 없는 만큼, 개코원숭이는 다른 개체를 만날 때마다 자기 몸과 자신이 체득한 사회적 기술로 사회적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반면 인간 사회에서는 의복, 명함 등의 사물이나 제도, 개개인이 속한 상징적·물질적 네트워크 등이 사회적 과업을 대신한다. 이를 스트럼과 라투르는 ‘복잡성’이 큰 사회와 구별해 ‘복합성’이 큰 사회라고 보았다. 스트럼과 라투르에 따르면, 개체뿐만 아니라 물질과 상징으로 촘촘한 네트워크를 이룰 때 사회는 복잡성에서 복합성으로 이동하게 된다. 즉 번역의 규모와 범위에 따라, 행위자가 얼마나 많은 물질과 상징을 동원할 수 있는가에 따라, 얼마나 많은 타자를 회유하고 자기편으로 ‘등록’할 수 있는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별되는 사회들이 있다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기술은 오래 견디게 만들어진 사회다”

새로운 군주들은 수많은 갈등 속에서 길을 엮어내기 위해 인간 자원과 비인간 자원을 자유롭게 선택한다.(p.115)

인간뿐만 아니라 물질, 상징, 기술 등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로 뒤얽힌 라투르의 리바이어던은 홉스의 리바이어던과도, 개코원숭이의 리바이어던과도 다른 괴물이다. 「권모술수뿐만 아니라 기계를 위한 『군주론』을 쓰는 법」에서 라투르는 홉스와 같은 한계를 마키아벨리에 대해서도 발견한다. “마키아벨리는 그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또 그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통제하게 하는 방식으로 계책을 수립한다. […] 이런 관점은 오늘날에는 적용될 수 없다.” 권력을 둘러싼 인간 행위자의 권모술수를 논하면서 비인간 행위자를 고려하지 않는 한, “마키아벨리의 세계가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문제투성이더라도 우리에게는 설익고 단순한 세계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라투르는 기계와 권모술수, 기술과 사회를 동시에 묘사할 수 있게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확장해 읽어내려 한다. “인간의 오래된 정념, 배반, 어리석음에 우리는 전자·미생물·원자·컴퓨터·미사일의 완고함, 교활함, 힘을 덧붙여야 한다.”

행위자들은 자신의 이해에 맞게 현 상태를 안정화하거나 판도를 바꾸기 위해 사회-기술 혼합물의 이질성을 증가시킨다. 이 혼합물을 관리하는 지식과 장치, 요령을 ‘기술’이라 부른다면, 기술은 이미 언제나 사회적이다. 기술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기술이 그 자체로 압축된 사회이며 사회를 견고하게 압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가사 노동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로봇청소기를 집에 들인다. 제품을 판매하고자 한 기업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 결과인데, 만약 로봇청소기의 카메라가 해킹당한다면 우리는 로봇청소기의 ‘블랙박스’를 열어 그 안에 담긴, 그 전까지 생각할 일이 없었던 물질과 제도, 법, 담론의 네트워크를 점검하게 될 것이다. 이때 단순히 ‘기술적’ 대상으로 여겨지던 것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기술과 사회는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연합이나 네트워크가 얼마나 견고하게 압축되었는가에 따라 때로는 기술로, 때로는 사회로 여겨질 뿐이다.

행위자 불평등 발생론

라투르가 그리는 세계에서는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모든 행위자가 같은 평면에 나란히 있다. 이들 중 어떤 것도 다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지만, 매 순간 모든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를 환원하려 한다. 때로 한 행위자가 정말로 다른 행위자들을 남김없이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거대해지지만, 이 다른 행위자들 역시 환원에 저항하며 언제든 동맹에서 이탈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투르의 존재론은 민주주의적이다.

홉스 역시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가정했다. 만약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불평등했다면 ‘사회적’ 불평등 역시 자연스러울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평등하다면 모든 불평등은 인위적인 것이 된다. 라투르가 홉스에게서 가져온 생각은, 모든 비대칭성이 인위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즉 존재론적 동등성을 가정하면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불평등과 비대칭성은 해명해야만 하는 문제로 부각된다.

후기에 이르러 라투르는 녹색 계급의 조직화된 투쟁이 필요함을 갈파했다. 그런데 녹색 계급은 누구에 맞서 투쟁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후기 라투르와 초기 라투르는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다. 녹색 계급은 탄소·화석 경제라는 거대한 블랙박스 위에 걸터앉아 있는 “거대한 리바이어던”들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라는 과제를 마주한 우리에게, 이 책은 커다란 시사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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