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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STS 용어 해설 STS의 계보 1부 STS의 시작에서 전 지구화까지 1장 전 세계가 STS가 되고 있다 | 브뤼노 라투르 2장 항상 스스로 새롭게 만드는 STS | 쉴라 재서노프 2부 확장된 STS의 여러 얼굴들 3장 STS 공부와 실행의 길들 | 위비 바이커 4장 STS와 그 도전적인 의무들 | 도널드 맥켄지 5장 존재론적 불복종 프로그램으로서 STS | 스티브 울가 6장 스스로 깨서 거듭나는 STS | 해리 콜린스 3부 학문과 실천으로서의 STS 7장 공공 프로젝트로서 과학과 성찰적 이성 | 브라이언 윈 8장 대안적인,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며 | 아델 클라크 9장 과학기술사에서 STS로, 그리고 한국의 STS로 | 홍성욱 엮은이 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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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객관적이다, 기술은 진보한다, 경제는 발전(해야)한다, 시장은 만능이다,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과학의 힘을 가지고 이데올로기와 싸워야 한다, 기계는 인간을 소외시킨다, 사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본래 그렇다, 지구는 죽어 있다 등등. 이런 당연한 담론에 STS는 도전한다.
--- 「홍성욱, 책을 내며」 중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인류학에 더 관심이 있고 사회학적 설명은 방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태 위기와 인류세로 인해 전 세계가 STS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모든 작은 차이를 불식합니다. 40년 전에는 과학이 어떻게, 왜 만들어지는지 이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었지만 제 목표는 언제나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모두가 자연과 사회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죠. 이것이 바로 인류세의 처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브뤼노 라투르, 전 세계가 STS가 되고 있다」 중에서 요즘 저는 과학기술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장 깊이 성찰하는 분야가 STS라고 말합니다. 이는 ‘과학기술학’을 통해 과학기술의 특별함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는 것과, ‘과학기술과 사회’를 통해 과학기술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모두 필요합니다. --- 「쉴라 재서노프, 항상 스스로 새롭게 만드는 STS」 중에서 STS와 협업함으로써 이득을 얻지 못할 만한 학과는 생각나지 않네요. 오만한 주장처럼 들리지만, 어떤 학과라도 일종의 구성주의적 전회를 겪는 건 도움이 될 겁니다. 아주 엄밀하고 이데올로기적인 의미에서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연구 관행이나 연구하고 있는 대상을 조금이나마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 「위비 바이커, STS 공부와 실행의 길들」 중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공식을 가져다가 너무 섣불리 다른 것, 또 다른 것, 그리고 또 다른 것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STS가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관심 분야와 연구 방식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늘 스스로와 논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STS의 이런 요소들이 분야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살아 있게 만듭니다. --- 「스티브 울가, 존재론적 불복종 프로그램으로서 STS」 중에서 STS의 관점에서 과학이란 인간을 초월하는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적·문화적 조건에서 이뤄지는 열려 있는 실천이다. 이 실천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구, 사물, 동물을 동원하는데, 이들은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형태와 능력을 얻고,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 과학은 한 장소와 순간에서 특정한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담론이 얽히는 실천이며, 실천이 달라지면 실재도 달라진다. 단일하고 보편적인 실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 「구재령, 엮은이 후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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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중요한 행위자 과학기술,
STS는 인류세의 기초 소양 흔히 과학은 객관적이고 단일하며 보편적이라 여겨진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다. 과학기술학(STS)은 이에 도전한다. 과학기술학자들은 ‘진리’는 왜 진리라 여겨지는지, ‘법칙’은 어떻게 법칙이 되었는지에 의문을 가지고 그 맥락을 들여다본다. “STS의 관점에서 과학이란 인간을 초월하는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적·문화적 조건에서 이뤄지는 열려 있는 실천이다.” 과학은 객관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과학은 개인적이고 우연적이다. STS는 세상을 작동시키는 거대한 법칙이 있다고 믿는 대신 작은 것들에 주목하고, 단일한 진리를 좆는 대신 세상의 복잡성을 인정한다. 과학기술이 정치에 이용되고, 경제를 움직이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과학기술은 우리 삶의 “중요한 행위자”다.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과 과정, 여러 맥락을 두루 살피고 그것이 인간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주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는 일이 바로 STS다. “무지와 억지가 진리가 되는 지금 시대에, STS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것은 부당한 권력에 동의하는 일”이라고 홍성욱 교수는 역설한다. STS는 현시대의 기초 소양이다. 위기의 시대를 위한 학문, 이야기로 듣는 STS의 역사 STS는 과학기술이 인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을 때 생겨났다. 1960년대 미국에서 반핵 운동과 환경주의 등 과학기술에 대한 정치적 우려에서, STS의 큰 줄기 중 하나가 등장했다. STS는 과학사, 과학철학, 사회학, 인류학 등 과학을 경험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많은 학문들이 만나 융합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다. 전쟁에 버금가는 전 지구적 위협인 생태 위기를 맞은 바로 지금, 과학기술의 영향력을 여러 분야의 시각에서 두루 살피고, 다양한 학문이 힘을 합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브뤼노 라투르는 말한다. “지금은 인류세이고 우리는 중심 학문입니다!” 이 책에는 STS라는 분야를 손수 일군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여러 학문의 융합으로 발전해 온 분야이니만큼, STS의 역사를 서술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브뤼노 라투르, 쉴라 재서노프 등 STS를 짓고 발전시킨 대가들과 이 분야에서 현재 활약하고 있는 젊은 학자들의 대화를 통해 STS가 걸어온 걸음들과 겪어 온 여러 갈등을 듣다 보면, 과학기술사의 큰 그림이 눈앞에 떠오른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은 이 분야 선구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역사책인 셈이다. 용어 해설과 계보도를 수록한 최고의 입문서 또한 이 책은 과학기술학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한국 STS 분야의 형성에 기여하고 현재 가장 활발히 활약하고 있는 엮은이들이 작성한 「STS 용어 해설」은 언뜻 복잡해 보이는 이론과 개념들을 친절하고 간명하게 풀어낸다. 이 책을 위해 특별히 그려 낸 「STS 계보도」는 STS의 뿌리부터 뻗어 나온 가지들까지, 그 발전과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은 과학 전공자와 이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필수 입문서가 될 것이고, 과학과 사회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과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인류세 시대를 사는 법을 고민하는 모두에게 훌륭한 참고서가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