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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권력자에 이르는 통로에 대하여
새로운 공간에 대하여 옮긴이 해제 아이러니의 마지막 질문-칼 슈미트의 정치인간학에 대한 시론 |
Carl Schm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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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쨌든 인간들은 항상 보호를 필요로 하고, 권력이 그렇게 해주기를 원합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보자면, 보호와 복종의 연결은 권력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 못한 자는 복종을 요구할 권리 역시 갖지 못합니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죠. 보호를 구하고 또 받는 사람은 복종을 거부할 권리를 가질 수 없습니다.
--- p.18 바꿔 말하자면, 직접적 권력의 내실內室 앞에는 간접적 영향력과 강제력Gewalt의 대기실이 만들어지게 마련입니다. 권력자의 귀에 닿을 수 있는 통로, 권력자의 영혼으로 이어지는 복도가 생기는 겁니다. 이런 대기실, 이런 복도가 없는 인간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 p.26 다만 이제 우리가 파악해야 할 사실은 완전히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 새로운 질문들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를 조금 첨예한 방식으로 표현해도 된다면, 우리는 ‘질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 p.78 새로운 대양의 외침을 프랑스 선원들보다 더 또렷하게 감지한 민족은 없을 겁니다. 이들보다 더 대담하게 그 소리를 따르려고 한 민족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17세기에 로마 가톨릭주의를 따르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당시에 이것은 곧 땅과 대지를 향한 결단을 뜻했습니다. 모든 유럽의 발견자들은 오로지 땅만 취득했습니다. 오직 영국만이 위대한 도약을 감행했고, 땅에서 바다로의 이행, 육지적 실존에서 해양적 실존으로의 이행을 완수했습니다. --- p.90 기술 발명은 어떤 더 높고 비밀스러운 정신의 계시가 아닙니다. 기술 발명은 해당 시대에 종속됩니다. 그것은 해당 시대의 인간들을 둘러싼 총체적 실존이 어떤 형태인가에 따라 쇠락하기도 하고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산업혁명을 개시한 발명들은 오직 해양적 실존으로의 행보를 감행한 곳에서만 산업혁명을 위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 p.94~95 하나의 역사적 진리는 오직 한 번만 참됩니다. 새로운 시대가 준비하는 역사적 부름, 역사적 도전 역시 오직 한 번만 참됩니다. 따라서 일회적인 부름에 대해 주어지는 역사적 응답 또한 오직 한 번만 참되고, 오직 한 번만 옳습니다. 이 사실을 항상 유념하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맥퓨처. 역사적 부름과 그에 대한 올바른 대답에서 출발한 시대가 [당대 사람들에게] 남기는 인상은 너무나 강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승리 역시 오직 한 번만 참되다는 사실을 승리자 자신이 파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p.105 혹시 이것은 ‘상처받은 양심의 표현’일까? 아마도 슈미트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양심은 심급이 아니라 심연이다.” 다시 말해, 양심은 그 자체로 신을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있는 능력이다. 양심은 아이러니의 잠재성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인간에 대해 인간’인 고로, 오직 각자의 양심만을 건사할 수 있을 뿐이다. 슈미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 p.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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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현대 정치학 사상 가장 논쟁적인 이론가 칼 슈미트의 대화극
1954년 라디오 방송으로 송출되기도 한 희곡 「권력과 권력자에 이르는 통로에 대하여」에서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해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권력은 선한가 악한가 등의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익명의 청년 J.가 질문하고 C.S.라는 인물이 응답하는 구조인데, 여기서 C.S.는 칼 슈미트 본인을 지칭한다. 젊은 시절 ‘객관적 해결책’이라고 확신했던 ‘독재와 대표’라는 정치 형식이 파탄에 이르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이 필연적인 귀결이었음을 깨달은 슈미트가 이 뼈아픈 교훈에 대해 말하기 위해 대화극의 형식을 빌린 것이다. 그는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도, 신도 아닌) 인간’이라는 정식을 역설하며 권력의 본질을 짚어나간다. 특히 ‘대기실’과 ‘복도’라는 은유를 통해 권력의 정점에 있는 개인보다, 그 권력자에게 다다르기 위한 통로를 장악한 존재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포착한다. 공간적 관점에서, 이제는 권력자에게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권력의 대기실, 권력의 복도를 누가 점유하느냐가 정치의 핵심이 된다. 이어지는 「새로운 공간에 대하여」에서는 공간에 대한 사유가 전 지구적 범위로 확장된다. 이 대화극에서 슈미트는 ‘늙은 남자’라는 뜻의 “알트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영국과 미국을 상징하는 “노이마이어”와 “맥퓨처”라는 두 인물과 논쟁을 벌인다. 그에 따르면 세계사는 모두 땅과 바다, 즉 육지 권력과 대양 권력의 끊임없는 분쟁의 기록이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로마와 카르타고의 분쟁을 비롯해, 성서에 기록된 여러 에피소드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슈미트는 섬나라 영국이 대항해 시대에 해양 통치권을 획득한 것과 그에 이어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 역시 영국이 해양적 실존으로의 이행을 완수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폭발적인 기술 발달로 인해 공간 개념이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오늘날, 다시금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역사적 부름에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대화 속의 세 논자는 우주와 해양, 그리고 다시 대지로 회귀한다는 각기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하지만 여기서 슈미트가 전하고 싶었던 핵심은 다름 아닌 독일인 알트만의 진술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역사적 진리는 오직 한 번만 참됩니다. 따라서 일회적인 부름에 대해 주어지는 역사적 응답 또한 오직 한 번만 참되고, 오직 한 번만 옳습니다.” […] “저는 대지와 더불어 대지 위에 머무를 겁니다. 저에게 인간이란 대지의 아들이고, 그가 인간인 한에서 계속 그렇게 남을 겁니다.” 여전히 유용하고 흥미로운 슈미트의 권력과 공간에 대한 논의 각각 미시적 권력 구조와 거시적 공간 질서를 다루고 있는 두 편의 대화극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수렴한다. 기술 발전으로 강력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위태로워진 인간의 조건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 책을 엮고 기획한 조효원 교수(연세대 독문과)는 「옮긴이 해제」에서 아이러니 개념과 정치인간학이라는 테제를 중심으로, 슈미트 사상의 궤적을 충실히 그려나간다. 옮긴이는 일찍이 대화를 불모의 소통 형식이라며 절망했던 슈미트가 온통 대화로만 이뤄진 텍스트를 집필했다는 것부터가 아이러니를 보여준다고 환기한다. 이와 같이 흥미롭고 깊이 있는 해제를 통해 독자들은 슈미트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초국가적 권력과 AI 등 유례없는 기술 발달의 환경 속에서 새로운 역사의 단계를 맞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현실에서, 무려 70여 년 전에 쓰인 텍스트가 여전히 다양한 방면에서 유효한 분석 틀이 되어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이 책 『대화극』은 이처럼 계속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재해석되는 칼 슈미트로 가닿는 친절한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