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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해를 위해 독자들에게 드리는 지침
서론 1부 _ 정치신학을 신학적으로 최종 처리했다는 전설에 대하여 1장. 전설의 내용 2장. 한스 바리온의 정치신학 비판 3장. 최종 처리 전설의 현재적 시사성 - 한스 마이어, 에른스트 파일, 에른스트 토피취 2부 _ 전설의 문헌 1장. 문제의 발생과 시대 구획 2장. 정치-신학적 삽입구 -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3장. 정치적 측면에서 본 소재의 한계와 문제설정 - 군주제 4장. 신학적 측면에서 본 소재의 한계와 문제설정 - 일신교 5장. 정치신학의 원형 에우세비우스 6장. 에우세비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대결 3부 _ 전설의 최종 결론 1장. 최종 결론의 주장 2장. 최종 결론의 신빙성 후기 _ 이 문제가 오늘날 처한 상황에 대하여 - 근대의 정당성 옮긴이 후기 |
Carl Schm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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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또한] 로마-교회법의 정신 아래 40년이란 긴 세월을 동행해온 세속 법학자와 교회법학자의 우정에 대한 증명, 즉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 이론적·실제적·개인적 차원의 경험에 대한 증명이다. 문제와 주제의 차원에서 나의 1922년 저작 『정치신학』을 확장하는 이 책은 16세기 개혁법과 더불어 개시된 후 헤겔에게서 정점에 이르렀고, 오늘날에 와서는 어디서든 감지할 수 있는 전반적인 흐름을 추적하는 작업을 담고 있다. 즉 이 책은 정치신학에서 정치기독학으로의 이행을 다루는 책이다.
--- p.10~11 정치신학은 극도로 다형적인 영역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두 개의 상이한 측면, 즉 신학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두 측면은 각자 고유한 개념들에 의해 운영된다. 이는 정치신학이라는 합성어 안에 이미 반영되어 있는 사실이다. 수많은 정치신학들이 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서로 다른 수많은 종교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수많은 종류와 방식의 정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중적이고 양극적인 분야에서 실제적인 토론이 가능하려면 [우선] 주장을 분명히 해야 하고, 질문과 답변 역시 정확하고 명징하게 해야 한다. --- p.67 기독교의 시간 전체는 하나의 긴 행군이 아니다. 그것은 단 하나의 기나긴 기다림이며, 두 개의 동시성 사이의 긴 중간기, 구세주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치하에 태어나신 때와 장차 시간의 끝에 이르러 다시 오실 순간 사이의 과도기이다. 이 거대한 과도기 안에 다시 크고 작은 지상[속세]의 중간기들이 끊임없이 새롭게 발생하는데, 이 사이-시간들 속에서 무엇이 올바른 믿음인가라는 교리상의 문제는 수 세대가 지나는 중에도 [계속해서] 미결 상태로 남겨지기 일쑤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기독교적·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행위는 쉽게 차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파국의 시대에는 사실 그러한 해석이 문제 상황을 새롭게 보게끔 해주는 예상 밖의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 p.101~102 나의 정치신학은 체계적인 사유[의 한계] 안에서 역사상 가장 발전한, 그리고 최고도의 형식에 도달한 “서구 합리주의”의 두 가지 결절점에 대한 설명이다. 즉, 그것은 온전한 법적 합리성을 갖춘 가톨릭“교회”와 유럽 공법에 의해 탄생한 “국가”─이것은 홉스의 [사유] 체계 안에서는 아직 기독교적인 것으로 전제되고 있다─라는 두 개의 결절점 사이에서 움직인다. 바로 이 국가에 의해 인류는 전쟁에 관한 국제법상의 이론에서 오늘날까지 가장 위대한 합리적 “진보”를 이룩했다. 다시 말해, 적과 범죄자를 구분하고 이를 통해 다른 국가들 간에 벌어진 전쟁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킨다는 이론을 위한 유일하게 가능한 토대를 만든 것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 그리고 나의 정치신학에게도, 근대로의 시대 전환에 속하는 사건이다. [바로] 이 전환의 “시대 문턱” 위에서 놀라의 조르다노 브루노와 동시대인이자─그보다 약간 더 운이 좋긴 했지만─운명 공동체였던 알베리쿠스 겐틸리스의 외침이 울려 퍼졌던 것이다. “신학자여 침묵하라!” --- p.147~148 하지만 정치신학과 정치적인 것의 기준, 즉 적과 동지의 구분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둘 필요가 있다. […] 이와 같은 모순의 많은 사례들을 그저 병치시켜놓기만 해도 그것은 정치적이고 정치신학적인 현상들의 인식을 위한 노다지가 되어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의 한복판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신학적 내전학이 자리해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니까 적과 적대라는 문제는 [어떻게 해도] 은폐될 수 없는 것이다. --- p.154~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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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사상가 칼 슈미트가 남긴 마지막 저서!
서구 사상사를 꿰뚫는 물음을 던지다! 『정치신학 2』는 나치의 ‘황제 법학자’ 칼 슈미트가 남긴 최후의 저서이다. 이 책은 젊은 시절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였던 신학자 에릭 페테르존이 나치 정권에 복무하던 그에게 쏜 화살, 즉 「정치적 문제로서의 유일신교」라는 공격적이고 문제적인 논문에 대하여 팔순을 넘긴 노년의 슈미트가 뒤늦은 응답으로 내놓은 책이다. “순수하게 법학적인 저작”인 『정치신학』과 달리, 『정치신학 2』는 ‘정치신학’의 핵심적인 의제들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나치의 ‘황제 법학자’에게 박힌 “파르티아인의 화살” 1920년대 초, 본Bonn 대학의 동료로 만난 에릭 페테르존과 칼 슈미트는 수년간의 지적 대화를 통해 각별한 관계가 되었다. 독실한 프로테스탄트 신자였던 페테르존은 슈미트로부터 영향을 받아 1930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로 결심하며 신학교수직을 그만두기까지 하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30년대 초 히틀러의 등장으로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1933년 3월 31일 페테르존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향하던 슈미트는 히틀러와 손잡은 당시 정부의 부수상 프란츠 폰 파펜의 전보를 받고 베를린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치의 ‘황제 법학자’가 된 슈미트는 『국가, 운동, 국민』(1933), 「제국-국가-연방」(1933), 『법학적 사유의 세 종류』(1934), 「나치스 헌법국가의 일 년」(1934), 「나치즘과 법치국가」(1934), 「나치즘적 법사상」(1934), 「독일 법률가의 길」(1934) 등 일련의 논고를 통해 나치스 어용법학자로 위용을 떨쳤다. 슈미트의 이러한 모습은 페테르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것이 페테르존이 1935년에 「정치적 문제로서의 유일신교」를 집필한 직접적인 동기였다. 이 논문에서 페테르존은 서기 4세기 초 로마제국의 사례를 통해 슈미트를 우회적으로 공격했다. 서기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종교로 격상시켰고, 그의 치하에서 카이사레아의 주교 에우세비우스는 “황제의 신학 가발을 다듬는 이발사”로 활약했다. 황제의 통치를 찬양하기 위해 기독교 교리를 이용한 에우세비우스를 향한 비판을 통해 페테르존이 히틀러와 나치즘에 동조한 슈미트를 겨냥하였음은, 논문의 마지막 각주에서 칼 슈미트와 그의 저서 『정치신학』을 언급하며 정치신학이 신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분명했다. 슈미트는 35년이 지난 1970년이 되어서야 페테르존의 논문에 답했다. 한스 바리온을 인용하며 “파르티아인의 화살”이라고 부른 페테르존의 공격을 상처에서 뽑아내겠다고 결심한 슈미트는 『정치신학 2』에서 그 사이에 학계의 “전설”이 되어버린 페테르존의 논문과 대결하고 있다. 서구 근대의 뿌리에 놓인 ‘정치적인 것’의 문제를 제기하다 에우세비우스라는 4세기 초 로마제국의 역사적인 인물을 무대의 중심에 올려놓고 페테르존과 슈미트가 벌인 특이한 논쟁은 정치와 신학, 국가와 종교 간의 영원한 대립이 지닌 본모습을 생생하게 현시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삼위일체 교리는 ‘정치적인 것’의 위력을 능가하거나 제압할 수 있는가? 거꾸로, ‘적과 동지의 구별’은 기독교 교회의 유일무이한 ‘내재적 초월’ 형식을 관통하거나 초극할 수 있는가? 한 시대를 주름잡은 가톨릭 법학자와 가톨릭으로 개종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이 두 독일 지식인이 벌인 지적 대결은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상징되는 서구 근대의 근본적인 모순을 가장 심층적인 차원에서 건드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슈미트는 「후기」를 통해서 『근대의 정당성』을 주창한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도전에도 맞서고 있다. 20세기 후반 독일 최고의 지성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블루멘베르크는 정치신학의 타당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세속화를 역사적 불법의 범주”로 폄훼한다. 그는 “비-절대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하면서 모든 정치신학을 학문적으로 부정하는 작업을 감행한다.” 철학자의 이와 같은 강력한 도발에 직면한 슈미트는 ‘정치기독학’ 혹은 ‘내전학’의 근원성 혹은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이때 그가 의지하는 전거는 대문호 괴테가 썼던 라틴어 격언이다. “신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신에게 맞설 수 없다”(nemo contra deum nisi deus ipse). 요컨대, 신이 이미 자신 안에 분열과 모반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으므로, 설령 인간이 신의 자리를 찬탈할 수 있다 해도, ‘정치적인 것’과 정치신학은 결코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반론이 담긴 『정치신학 2』를 읽은 블루멘베르크는 자신의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언젠가 슈미트가 『정치신학 3』을 써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모든 정치적인 기획과 시도들이 허탈하게 공회전하고 있는 오늘날, 무자비한 경제 논리와 무기력한 인권 담론이 공모하여 ‘정치적인 것’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은 정치와 신학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성찰하고 싶은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