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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개정판 일러두기 5 옮긴이 일러두기 6 서문 31 I부 설명과 메커니즘 35 1장_설명 39 2장_메커니즘 73 3장_해석 103 II부 마음 129 4장_동기화 145 5장_ 자기 이익과 이타주의 179 6장_근시안과 선견지명 207 7장_믿음 233 8장_감정 275 9장_변환 313 2권 III부 행동 7 10장_제약 : 기회와 능력 11 11장_강화와 선별 39 12장_인물과 상황 69 13장_합리적 선택 91 14장_합리성과 행위 127 15장_비합리성에 대응하기 153 16장_텍스트 해석에 대한 함의 177 IV부 상호행동 199 17장_의도치 않은 귀결들 201 18장_전략적 상호행동 219 19장_게임과 행위 245 20장_ 신뢰 265 21장_사회 규범 285 22장_집합적 믿음 형성 317 23장_집합행동 347 24장_집합적 의사결정 375 25장_제도와 헌법 427 결론 : 사회과학은 가능한가? 467 옮긴이 후기 542 찾아보기 565 |
Jon El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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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설명은 인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현상(피설명항)을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야기한 이전 현상(설명항)을 인용하는 것이다. 인과적 설명을 주창한다고 해서 행위에 대한 의도적 설명의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의도는 원인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 특수한 종류의 의도적 설명의 하나가 이어지는 장에서 상세히 논의될 합리적 선택 설명이다. 그러나 많은 의도적 설명이 행위자가 이러저러하게 비합리적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 비합리성은 그 자체로는 부정적 또는 잔여적 관념이다. 즉 합리적이지 않은 모든 것이다. 그런 관념이 설명력을 가지려면, 특정한 행위를 함축하고 있는 특정 형식의 비합리성이 요청된다.
--- p.36 행동 설명의 패러다임적 양식은 그것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수행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행동이 행위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것이 행위자의 관점에서 최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혜택을 주는 귀결로 선택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 기능주의’의 한 형태이다. 그것은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아무것도 밝혀 주지 않는다. […] 설명이 순조롭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필요한 믿음, 즉 교육이 만족을 지연할 능력을 형성한다는 믿음을 가졌고, 그런 능력을 획득하려는 주관적 동기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 p.105~106 소크라테스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의지박약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그런 입장에 가깝다. 그는 행동의 순간에 판단력이 술의 영향 아래 있었던 사람을 예로 인용하며, 느슨한 관념의 의지박약은 인정한다. 내가 직장의 파티에 갔고 너무 많이 술을 마셨고 상사를 공격했으며, 상사의 아내에게 추파를 던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는, 그런 행동들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듯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누구라도 그런 식의 행동을 내게 제안했다면, 나의 평정하고 성찰적인 판단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것을 거절했을 것이다. 술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질 것을 미리 납득했다면, 나는 파티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 뒤에는 내가 한 짓에 대해 씁쓸히 후회할 테니 말이다. --- p.222 사람들은 한 일에 대해 칭찬이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또한 행동 동기 때문에 칭찬이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코리올라누스Coriolanus에 대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대중의 채무에 대한 토론에서, 그가 대중에게 증오odium를 불러일으킨 큰 이유는 그가 가난한 사람을 깔아뭉갠 바탕이 채무 회수라는 목적이 아니라 오만함과 무례함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탐욕이 오만과 무례보다는 받아들일 만한 동기화로 보였던 셈이다. 이런 구별은 “상처에 소금(모욕) 뿌린다”는 말에 반영되어 있다. --- p.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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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합리적이기를 원한다”
욘 엘스터, 인간 행위와 사회과학적 ‘설명’의 본질적 기준을 제시하다! 욘 엘스터는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정치학자, 사회이론가이다. 고령임에도 올해 『1789년 이전의 프랑스: 절대주의의 해체』를 출간하는 등 여전히 학문적 활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학문적 명성을 누려왔다. 합리적 선택 이론의 대가, 분석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인 지지자라는 명성에 비하면 우리말로 소개된 그의 저서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되는 ??사회적 행위를 설명하기: 사회과학의 도구상자??만으로 독자들은 현재까지의 욘 엘스터를 총괄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사회적 행위에 있어서 다양한 사회과학자들의 논의와 문학 및 역사 속 수많은 예시를 향한 엘스터의 철학적/윤리적 분석이, 그의 핵심 개념인 ‘이성적 선택’을 중심으로 이 책에 집대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 책은 두 번의 개정을 거친, 즉 『사회과학을 위한 볼트와 너트』(1989)와 『사회적 행위를 설명하기: 사회과학을 위한 더 많은 볼트와 넛트』(2007) 이후의 판본(2015)을 완역한 것으로, 이 책 자체가 엘스터가 자신의 논의를 총괄하기 위한 도구이자 동시에 목적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몽테뉴와 함께 행동경제학을, 흄과 함께 집합행동 이론을 읽는 놀라운 즐거움 『사회적 행위를 설명하기』는 1부 「설명과 메커니즘」, 2부 「마음」, 3부 「행동」, 4부 「상호행동」 그리고 결론 「사회과학은 가능한가?」로 구성된다. 과학 이론적 전투를 개시하는 1부와 그런 전투를 통한 고지 점령을 선포하는 결론이, 마음에서 행동으로 그리고 행동에서 상호행동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전개의 사회이론을 에워싸는 구성이다. 엘스터는 이 책에서 마음-행동-상호행동의 연속선상에 자신의 사회이론과 타당하고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이론들을 ‘합리성’과 ‘선택’이라는 개념에 따라 재구성/배열한다. 우리는 우리의 합리성을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의 신념과 감정은 합리성을 제한하는가? 집합적 행위, 의사결정은 어떤 메커니즘을 갖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응답한다. 엘스터의 논의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사회과학에서 일어난 혁신의 중요한 전선 하나를 잘 드러내고 전달하는 이점이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게임이론, 베이즈적 통계학, 사회심리학, 그리고 사회심리학과 경제학의 혼성으로 형성된 행동경제학만큼 혁신적인 분야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이런 학문이 만들어 낸 개념들이 얼마나 일상적 언어로까지 정착했는가인데, 오늘날 ‘죄수의 딜레마’, ‘내시 균형’, ‘무임승차’, ‘애쉬의 동조 실험’, ‘밀그램의 권위 실험’, ‘대표성 어림법’, ‘소유효과’, ‘승자의 저주’ 같은 개념들은 사람들에게 널리 잘 이해되고 있거나 최소한 귀에 익숙한 것들이다. 이러한 현대 지식의 최전선에서 이뤄진 논의들을 대량으로 학습할 수 있으며, 상호적용하며, 그것의 과학적 가치를 잘 음미하고 있는 『사회적 행위를 설명하기』는 사회현상을 바라봄에 있어 높은 수준의 인식틀을 제공한다. 물론 엘스터는 이미 이 책의 이전 판(2007)을 통해 신고전파 경제학, 합리적 선택 및 공공 선택 이론, 집합행동 이론, 협상 이론,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게임이론과 행동경제학 등의 분야에서 이뤄진 최신의 사회과학적 성과들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정돈하고 비판하고 재조합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책(2차개정판)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런 현대적 성과를 세네카, 몽테뉴, 파스칼, 몽테스키외, 라 로슈푸코, 데이비드 흄, 알렉시 드 토크빌, 제러미 벤담, 에드워드 기번, 애덤 스미스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이들과 아주 적극적인 의미에서 ‘함께’ 읽는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예컨대 몽테뉴와 ‘함께’ 행동경제학을, 그리고 흄과 ‘함께’ 집합행동 이론을 읽는 놀라운 즐거움을 또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좌파 우파 구별 없이, 다만 사회과학을 과학답게 ‘엉터리’ 사회과학에서 ‘가능한’ 사회과학으로 사회 이론적 관점에서 이 책의 저술 의도에 대해 상기해야 할 것은, 사회과학계가 전문가인 척하면서 엉터리 설명을 휘두르는 협잡꾼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을 탐구하고자 하는 이라면 그런 ‘헛소리’bullshit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사회과학자라면 그런 ‘헛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훈련된 감수성을 배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작업을 위한 중심 개념이 ‘설명’이다. 엘스터는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제대로 된 과학이라면 모름지기 설명을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과학을 ‘위한’ 그의 작업이 이제 사회과학을 과학답게 하는 작업으로도 확장된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과학에서 가능한 설명의 양식을 명료하게 제시하고자 하며, 그런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사회이론 구축을 방해하며 엉터리 설명을 제공해 온 사회이론들을 통렬히 비판한다. 제대로 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또는 제대로 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면서도 제공하는 척하는 당대의 사회 이론들에 대한 비판은 이 책에 결론 「사회과학은 가능한가?」에서 시연되고 있으며, 이때 제1부에서의 설명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전투적 역할을 떠맡는다. 엘스터는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명성 있는 여러 사회 이론들을 향해 심각한 학문적 낭비라거나 막대한 사회적 피해를 야기하는 ‘반계몽주의’라고 서슴없이 일갈하며, 심지어 자크 데리다, 브뤼노 라투르, 가야트리 스피박,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호미 K. 바바, 주디스 버틀러 등은 아예 공들여 비판할 가치도 없는 이론가 취급을 한다. 엘스터가 벌이는 이러한 도발적인 전투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지적 흥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