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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ecca Ser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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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쪽지를 받을 때마다 묘한 체념이 들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이 시스템의 덕을 본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 아닌가? 이별은, 마치 작은 물방울 속에 단둘이 갇힌 것처럼 서로에게 꼭 붙어서 세상을 수채화처럼 바라보던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남남이 되는 일이었다. 이별을 겪은 친구들은 사랑이 이렇게 끝날 줄 몰랐다며 울먹이곤 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끝을 알고 있었다. 수영장에 물이 없는 걸 알고도 머리부터 뛰어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쪽지에 적힌 기간에 따라 마음을 얼마나 쓸지 정해두고 관계를 시작했다. 물론 이별이 찾아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실망했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끝날 줄 몰랐다는 말은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니까.
--- p.56 나는 내게 없는 것을 그리워했다. 한 번도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을 원하다니,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사랑이 그렇지 않을까? 눈으로 보거나, 만지거나, 설명할 수 없어도 우리는 사랑을 믿는다. 마치 심장의 존재처럼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랑이 있다고 받아들인다. --- p.71 “진지한 관계를 원한다는 말이에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제이크가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가 내렸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가벼움’의 반대가 ‘진지함’은 아니잖아요.” “그럼 뭐예요?” 내가 되물었다. 제이크가 나를 바라봤다. 엷은 갈색 눈동자가 난방 램프 불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났다. 마치 눈 속에 작은 태양을 박아놓은 것처럼. “‘가벼움’의 반대는 ‘깊이’예요. --- p.116 나는 이미 내가 휴고에게 너무 깊이 빠져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만약 내 친구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나는 냉정하게 말했을 것이다. 이런 남자들은 절대 변하지 않아, 지금은 너한테 빠져 있는 것 같아도 머지않아 차갑게 식을 거야, 지금 둘 사이에 오가는 감정이 특별하다고 착각하면 안 돼. 사실 나에게는 친구의 조언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모든 걸 말해주는 쪽지가 있었으니까. 문제는, 내 몸이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p.198 친구 대부분은 이제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연을 이어가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인연의 끈을 붙잡고 있으려면 각자의 삶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의식적으로 서로를 선택해야 했다. ‘너를 선택할게.’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계속해서, 거듭해서 그 마음을 전해야 했다. --- p.203 진실은 어렵다. 복잡하다. 때로는 비논리적이다. 그리고 편리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이야기에서 진실을 지운다. 한쪽 구석에 밀어두고 굳이 조명을 비추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진실은 따라온다. 원래 그런 법이다. 진실로부터 도망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숨을 수는 없다. --- p.250 “인생 자체가 진퇴양난이야. 그래서 신이 여자들의 우정을 창조한 거야.” --- p.324 자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원했다. 그래서 두려웠다. 그 꿈에 닿지 못할까 봐. 영영 그 문턱조차 밟지 못할까 봐. --- p.347 “우린 모두 언젠가는 떠나. 매일매일 그날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거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 그게 선택이 된단다. 오늘 너는 어느 쪽을 택할 거니? 오늘을 살아갈 거니, 아니면 천천히 죽어갈 거니?” --- p.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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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3일’ ‘노아, 5주’ ‘휴고, 3개월’
적중률 100퍼센트! 수상한 쪽지가 내 연애의 ‘수명’을 알려준다 무자비한 쪽지의 예언에서 살아남을 연애란? 사랑에 빠진 순간 우리는 종종 생각한다. 이전의 망한 연애들과는 다르기를, 그 사람이 나의 완벽한 짝이기를, 이 불확실한 관계가 나를 좋은 결말로 데려다주기를. 그런데 만약 끝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관계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달라질까? 복잡한 계산도, 불안도 없이 더 효율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로맨스 유통기한》은 한창 뜨겁게 연애하는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 바로 연애의 ‘유효 기한’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다프네 벨에게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수상한 쪽지가 날아와 이번 연애의 지속 기간을 미리 알려준다는 것이다. 쪽지의 예언은 절대적이어서 다프네는 늘 쪽지가 알려준 기간만큼 상대와 만나고 헤어졌다. 마틴과는 3일, 노아와는 5주, 휴고와는 3개월. 언제쯤 기간 한정 연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금해하던 다프네에게, 소개팅을 앞둔 어느 날 특별한 쪽지가 날아온다. 기한 없이, “제이크”라는 단 세 글자만 적힌 쪽지가. 드디어 평생의 짝을 만난다는 계시일까? 하지만 제이크와의 관계가 진행될수록 다프네는 쪽지의 예언을 의심하게 되고, 완전히 끝난 줄 알았던 전남친 ‘휴고’는 아직 다프네에게 마음이 남아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며 혼란에 빠트리는데……. 쪽지의 숨은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다프네는 인생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선택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결말보다 밀도가 중요한 시절과 인연 지나가버린, 그리고 다시 찾아올 모든 사랑에 바치는 찬가 《로맨스 유통기한》은 신비한 쪽지의 힘으로 평생 이별 시점을 미리 알아온 다프네가 처음으로 만남 기한이 적혀 있지 않은 쪽지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이전의 연애가 다프네의 인생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감정의 궤적을 차근차근 되짚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결말을 미리 알기에 무모하게 마음 주지 않는 연애만 반복해온 다프네는 이별이 예정되지 않은 제이크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이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상대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다치진 않을지 처음으로 고민한다. ‘불확실성’이라는 사랑의 진짜 시련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쪽지의 힘 없이 살아가는 현실의 독자에게도 크게 낯설지 않다. 《로맨스 유통기한》은 연애라는 경험을 통과하는 동안 느끼는 모든 감정의 결을 깊게 들여다보고,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위축되었던 우리의 마음을 섬세하게 매만진다. 그리고 사랑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결국엔 끝난다는 명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가 아니냐는 물음을 조용히 건넨다. 죽음이라는 결말을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삶의 태도처럼, 결말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밀도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통해 독자는 자신의 실패한 연애들을 떠올리고, ‘누구와 몇 년’으로 간단히 요약되는 관계들 속에도 한 시절을 버티게 해준 애정과 배려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운명’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다프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무수한 가능성으로 반짝이는 세계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