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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1997년도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문학동네 199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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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소설상

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1. 환부와 동통을 분리하는 법
2. 자기만 예쁘게 보이는 거울이 있었으니
3. 네 발밑의 냄새나는 허공
4. 까탈스럽기로는 풍운아의 아내 자격
5. 일요일에는 빨래가 많다
6. 데이트의 어린 배심원
7. 그 도둑질에는 교태가 쓰였을 뿐
8. 금지된 것만 하고 싶고, 강요된 것만 하기 싫고
9. 희망 없이도 떠나야 한다
10. 운명이라고 불리는 우연들
11. 오이디푸스, 혹은 운명적 수음
12. '내 렌나 죽어 땅에 장사한 것'
13. 슬픔 속의 단맛에 길들여지기
14. 누구도 인생의 동반자와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15. 모기는 왜 발바닥을 무는가
16. 태생도 젖꼭지도 없이
17. 응달의 미소년
18. 가을 한낮 빈 집에서 일어나기 좋은 일
19.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깊은 것을
20.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보았네
21. 죽은 뒤에야 눈에 띄는 사람들
22. 눈 오는 밤
에필로그.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저자 소개 1

Eun Hui Gyeong,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은희경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새의 선물』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1997년에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 2000년에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은희경은 등단한 다음 해부터 2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해마다 2000매 이상을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은희경 소설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것과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뒤에는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한 페이소스를 숨기고 있다. 은희경 소설의 매력은 소설의 서사 진행 과정중 독자들 옆구리를 치듯 불쑥 생에 대한 단상을 날리는 데 있다.

그녀의 소설을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희경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그녀를 따라 다니는 또 하나의 평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동창생 네 친구의 얽히고 설킨 25년 여 인생을 추적하면서 '마이너리그'란 상징어로 한국사회의 '비주류',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해당될 수밖에 없는 '2류인생'의 흔들리는 역정을 경쾌한 터치로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갖가지 허위의식, 즉 패거리주의 학벌주의 지역연고주의 남성우월주의 등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마이너 인생을 애증으로 포옹한다. 작가는 권두의 '작가의 말'에서 "내게 주어진 여성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한때 나로 하여금 남성성에 대한 신랄함을 갖게 했다. 이제 나를 세상의 남성과 화해하게 만든 것은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불완전한 도중(道中)에 있다"라고 말한다.

저서로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그것은 꿈이었을까』, 『비밀과 거짓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태연한 인생』, 『소년을 위로해줘』, 『빛의 과거』가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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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6년 0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96쪽 | 59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5712767

책 속으로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 온 사람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자기 삶을 바라 볼수 있는 거리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어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 p.224

어느 날 나는 지나간 일기장에서 '내가 믿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긴 목록을 발견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는다 말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면체로서 언제나 흘러가고 또 변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의 삶 속에 불변의 의미가 있다고 믿을 것이며 또 그 믿음을 당연하고도 어이없게 배반당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를 입을 것인가. 무엇인가를 믿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그 일기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삶을 꽤 심각한 것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 p.34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 머리말 중에서

슬픔. 그렇다. 내 마음속에 들어차고 있는 것은 명백한 슬픔이다. 그러나 나는 자아 속에서 천천히 나를 분리시키고 있다. 나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바라보는 나'는 일부러 슬픔을 느끼는 나를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본다. 찬물을 조금씩 끼얹다보면 얼마 안 가 물이 차갑다는 걸 모르게 된다. 그러면 양동이째 끼얹어도 차갑지 않다. 슬픔을 느끼자. 그리고 그것을 똑똑히 집요하게 바라보자.

--- p.187

사람의 감정이란 언제 변할지 모르며 특히 젊은이를 변심하게 만드는 일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그러므로 상대가 나를 사랑할때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은 상대의 사랑을 잃을 때 내가 불행해 진다는 것과 같은 뜻임을 깨닫고 그 사랑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한편 그것이 사라질 때의 상실감에 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타인을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을 있지도 않다는 것을 이모는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 p.304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 p.123

말은 빈 수레를 끌고 가는데도 침을 질질 흘리며 헉헉대고 있다. 제깐에는 꾀병을 부리는 것인지 땅바닥에 발을 끌며 느릿느릿 걷는데 그럴 때마다 못마땅한 마부는 고삐를 더욱 세게 잡아당기며 발걸음을 빨리 한다. 그러면은 말은 느릿느릿 걸어가는 중에도 앞다리와 뒷다리를 바꿔 딛는 사이사이에 넙적한 똥을 퍽퍽 떨어뜨림으로써 주인에게 모욕을 준다. 말하자면 말과 주인이 신경전을 벌이는데 배짱은 말이 더 센 것 같았다.

--- p.136

댓돌 위의 구두를 신고 나서 이모는 마지막으로 마루 끝의 기둥에 걸려 있는 작은 거울에 자기의 모습을 비쳐본다. 상당히 의식적인 동작으로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넘겨 보더니 옆으로 몸을 틀며 어깨를 살짝 들어올리면서 가볍게 고개를 젖혀보기도 한다. 그리고는 자기의 모습에 대한 흡족함의 표시로 괜스레 비뚤어지지도 않은 내 옷깃을 바로잡아준다.

자기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데다 나를 들러리로 앞세우고 나서니 비로소 일전을 불사할 자신감이 생기는 듯하다. 그 자신감을 미소로 드러내 보이느라고 이모의 번들거리는 죽은분홍색 입술이 살짝 젖혀진다. 첫만남을 위해 이모는 장소에 대해 꽤 신경을 썼다. 고심 끝에 이모가 결정한 평생 잊혀지지 않을 낭만적인 장소는 산성 안에 있는 '성안'이다.

--- p.81

누가 나를 쳐다 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내 몸 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 있지만 진짜 나는 몸 속에 남아서 몸 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된다.

--- p.20-21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을 의식할 만큼 성장하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딛고 선 출발선은 아주 불리한 위치였다. 더구나 그 호의적이지 않은 삶은 내가 빨리 존재의 불리함을 개닫고 거기에 대비해주기를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지 않은 내 사람에 집착하면 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삶의 비밀에 빨리 다가가게 되었다.

--- p.14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힘이 나.그 안간힘이 소설을 쓰게 했을까. 세상이 내게 훨씬 단순하고 그리고 너그러웠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인생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작가 후기> 중에서

--- p.390

내 이름이 불려지자 허석은 어뜻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허석이 이모 편에 들어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는 걸 보며 배신감과 질투를 느끼던 나는 그의 시선에 조금 마음이 누그러진다. 사랑은 자의적인 것이다. 작은 친절일 뿐인데도 자기의 환심을 사려는 조바심으로 보이고, 스쳐가는 눈빛일 뿐인데도 자기의 가슴에 운명적 각인을 남기려는 의사표시로 믿게 만드는 어리석은 맹목성이 사랑에는 있다. 허석이 다만 하번 쳐다본 것을 가지고 그것이 '이렇게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바로 너'라는 의미라도 되는 듯이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진정 나는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 p.180

나처럼 일찍 세상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 행세를 진짜 어린이 수준밖에 못 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그를듯하게 해낸다. 그래서 어른들 비밀의 겉모습을 조금 엿봤을망정 그 비밀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묻것도 모르는 척 행동한다. 그것이 어른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면서 또한 귀여움을 촉발시키는지 모른다. 비밀이란 심술궂어서 자기를 절대 보이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공유되어지기를 간청하는 속성이 있다.

--- p.19

나는 왼쪽 털신 속에 발을 집어 넣고 이번에는 오른쪽 털신을 벗어들고는 그 안의 눈을 털어냈다. '보여지는 나'가 말한다. 공손하게 인사를 해. 침착하게. '바라보는 나'가 말한다. 반가워하지마. 아버지라고? 농담이야. 60년대엔 나에게 아버지가 없었지. 그러니 이건 새로운 농담이 틀림없어. 70년대식 농담인 거야. 시대라는 구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하더라도 맙소사, 아버지아니, 70년대엔 내게 아버지가 있다니, 이건 대단한 농담이다.

--- p.380

나는 볕이 들지 않는 뒷마루로 가서 고전읽기 경시대회에 대비하여 단테의 [신곡]을 읽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외국 이름이 페이지마다 새로 나오고 주석이 너무 많아서 내용이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따분한 책이었다. 몇 장 읽기도 전에 하품이 나왔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아홉 가지 지옥이며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외어야 하는데 주인공은 외울 것이 많아지면 아이들이 더욱 괴로워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없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자기 견문만 넓히고 있다.

--- p.289

나는 기회만 닿으면 언제라도 '첫경험'의 금기를 깨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기회가 어른들이 생각하는 적당한 나이보다 조금 빨리 주어져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그처럼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삶이 다 그렇듯이 그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p.247)
그러자 이모는 더 큰 소리로 섧게 울었다. 사랑을 잃은 처녀의 눈물로 새워질 또 하루의 밤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모에게는 너무나 긴 밤이었다. 그리고 그 밤이 지나자 화요일이 되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허석이 오는 날이었다.(p.320)
세상에 기적이란 없다. 그러나 우연은 많다. 아니 세상의 중요한 일은 공교롭게도 모두 우연이 해결한다. 다행인 것은 우연 중에는 나쁜 우연이 더 많지만 간혹 좋은 우연도 있다는 것이다.(p.372)

--- p.247-372

그때 버스 안에 탔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나를 향해 아우성을 친다. 사방이 웅성거리고 소란스럽다. 나 혼자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가슴을 쥐어뜯고 있다.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소리는 찢어질 듯한 비명과 아비규환의 부르짖음으로 바뀐다. 한사코 나는 목소리를 내려고 몸을 비틀고 고개를 내두르며 안간힘을 썼다. 제발, 단 한 마디만, 이모라고, 제발 한 마디만, 이모.....드디어 꽉 막혔던 목구멍이 터지며 내 입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나왔고,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 p.337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을 의식할 만큼 성장하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딛고 선 출발선은 아주 불리한 위치였다. 더구나 그 호의적이지 않은 삶은 내가 빨리 존재의 불리함을 깨닫고 거기에 대비해주기를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지않은 내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삶의 비밀에 빨리 다가가게 되었다.

--- p.14

그 식모,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식모'보다는 '비운의 처녀'인 영숙이모는 주인아저씨의 목소리가 은밀하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조금만 잘해줘도 주인의 인정스러움에 감동'하는 식모답게 황급히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술냄새가 확 끼치며 영숙이모의 순결한 몸위로 탐욕스러운 대머리 사내의 몸뚱이가 덮쳐왔다.

--- p.258

광진테라 아저씨가 이렇게 방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모르는 척 그냥 방구들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장군이네 마루가 갑자기 왁자지껄해지더니 자기 소개를 하는 허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리에 누워서 한참을 이리저리 뒤척이던 나는 모기장을 젖히고 방에서 나와버린다. 덥기도 하려니와 이상하게 마음이 들떠서 통 잠이 오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광진테라 아저씨는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아저씨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만 가면 정치적인 인물을 자처하는 버릇이 있다. 더욱이 지금 시점이 휴교령 이후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허석을 의식했는지 부쩍 그런 방향으로 화제를 몰고 간다. 아저씨가 이 술자리를 정치적 집회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적 소신'에서가 아니라 '풍운아적' 기질에서 나오는 실속 없는 공명심 탓이라는 사실을 우리 집 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에 별로 대꾸를 하지 않는다.

--- p.149

고달픈 삶을 벗어난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 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 p.135

<새의 선물>은 깔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삶의 진실에 던져지는 날카롭고 에누리없는 시선이다. 보아서는 안 될 삶의 이면을 너무 일찍 보아버린 아이의 날카로운 비판적 시선과 거기서 오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의 가차없는 묘사는 사트르트의 소설 <말>을 연상케 한다. -김화영(문학평론가)

--- p.

<새의 선물>은 깔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삶의 진실에 던져지는 날카롭고 에누리없는 시선이다. 보아서는 안 될 삶의 이면을 너무 일찍 보아버린 아이의 날카로운 비판적 시선과 거기서 오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의 가차없는 묘사는 사트르트의 소설 <말>을 연상케 한다. -김화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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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또 하나의 ‘대형신인 탄생’
문단의 비상한 관심과 세인의 주목 하에 진행된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은희경의 장편소설 「새의 선물」이 출간되었 다. 은희경씨는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이중주'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한 데 이어 3,000만원 고료 제1회 문학 동네소설상 당선자로 선정됨으로써 한국 소설의 내일을 이끌어갈 뛰어난 신예작가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수상작 「새의 선물」은 환멸의 학습을 통해 인간 성숙을 그린 뛰어난 성장소설이자 지난 연대 우리 사회의 세태를 실감나게 그린 재미있는 세태소설이 란 호평을 받는 작품이다. 인생의 희비극적 단면에 대한 절묘한 포착, 상식을 뒤집는 역설과 잠언의 적절한 구사, 일상적 경험을 형이상학적 인식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치열한 탐구정신 등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 작품은 90년대 우리 문학의 중요한 수확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새의 선물」은 작가가 지난 여름 무주 적상산의 안국사라는 절에 들어가 2개월간 해발 1,000m가 넘는 선방에서 두문불출, 하 루 10시간씩 노트북 컴퓨터와 씨름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장편소설. 그야말로 작가 은희경의 영혼과 정신의 거센 출렁거 림과 인간의 삶과 세계를 꿰뚫는 빛나는 통찰이 돋보이는 역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삼십대 중반을 넘긴 ‘나’가 1995년 무궁화호가 발사되는 광경을 보고서 아폴로11호가 달을 향해 발사되던 1969년 열두살(국민학교 5학년) 소녀시절을 회상해보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여섯살에 어머니는 전쟁통에 실성하여 목매 달아 자살했고, 아버지는 사라졌다. 외할머니 슬하에서 이모, 삼촌과 함께 생활하는 열두살의 ‘나’는 “세상이 내게 별반 호의 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살에 성장을 멈췄다. 나는 알 것을 다 알았고 내가 생각하기로는 더이상 성숙할 것이 없었다. ” 삶의 숨겨진 비밀을 다 알아버린, 남의 속내를 예리하게 간파해내는 조숙한 아이인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은 우물을 중심 으로 하여 두 채의 살림집과 가게채로 이루어진 ‘감나무집’, 그리고 읍내의 ‘성안’과 도청소재지를 넘나드는 남도의 지방 소 읍이 전부다. 그 공간에서 그는 각양의 군상들을 만나고, 그 군상들의 일상 속에 펼쳐지는 삶의 숨겨진 애증의 실체를 엿보거나 사람 사이의 허위를 들추어낸다.

그의 시선에 포착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지난 시절의 우리 이웃 같은, 미운정고운정으로 끈끈히 맺어진 살가운 사람들이다. 철없고 순수한 이모, 남편이 죽은 뒤 외아들을 떠받들고 사는 장군이엄마, 병역기피자이며 바람둥이인 광진테라아저씨와 착하고 인정 많은 광진테라아줌마, 신분상승을 위해 뭇남성에게 교태를 부리는 미스리, 순정파인 깡패 홍기웅 그리고 완전한 헤어짐으로 사랑의 추억을 완성하는 ‘나’ 등 개개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약자들 이고 소외당한자들이지만, ‘삶을 멀찌감치 두고 보려고 애쓰는 나’에 의해 그들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하나씩 복원된다. 그러한 따뜻함과 정겨움은 킥킥 웃음이 터져나오는 갖가지 삶의 에피소드 속에서 드라마처럼 혹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펼쳐진 다. 그 웃음은 풋풋하다. 그러나 마냥 웃기만 하기에는 삶이 도저히 온전하지 못할 것 같은 상처의 내압과 잔인한 진지함이 또한 있다.

이 소설은 이처럼 묵직한 주제와 리얼리티를 내장하고 있으면서도 대단히 재미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 은희경의 번뜩이는 필력에서 연유하는데, 내밀한 삶의 속속들이를 다 알고 있는 이 소설의 화자인 열두살 계집아이의 당돌한 시선에 힘입고 있는 바 크다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이 화자를 돌본다고 여기고 있는 이모를 사실은 화자가 돌보고 있는 형국에 대한 묘사와 그 독 특한 어조는 이 소설의 해학과 웃음의 근원이자 묘미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동생을 등에 업은 채 천방지축 팔방놀이를 하는 문제 아적 소녀의 행동을 묘사하는 대목이나 ‘매사에 뒤에 처지기 때문에 하찮은 존재’였던 이선생님이 여호와의 증인이자 빨치산의 아내인 정여사 구출을 위해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순교의 장면과 그 후 정여사와 이선생님에 대한 간첩 혐의로 빚어지는 웃지 못할 풍자, 그리고 늘 가출을 꿈꾸면서도 버스가 떠난 다음에 먼지구름 속에 추연히 남아 있는 광진테라아줌마에 대한 묘사 등등 은 참으로 압권이다. 이와 같이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가 은희경의 싱싱하고 원숙한 심리묘사와 해학적인 문체는 우리 소설문 학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강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새의 선물」은 때로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귀여운 간교함으로, 때로는 경쾌한 상상력으로 삶의 금기와 규범체계, 사회의 지식 메커니즘 따위의 고정된 인식틀을 해체하는 삶의 모험적, 도전적 통찰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인생에 대한 냉소로부터 비롯된 시니컬한 시선이 갖가지 희극적인 삽화들 속에서 리얼하게 펼쳐지는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 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동시에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밀스런 관계의 본질과 삶의 심연에 흐르 는 위악적 경험의 비합리성이라는 무게 있는 주제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 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라 고 말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모성의 부재, 그 상처를 다스리기 위해 열두살 계집아이가 본능적으로 터득한 자기방어의 기제인 위 악과 냉소의 시선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삶의 잔인함과 허망을 꿰뚫은 역설이 아닐까. 황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염소와 남자의 실 루엣, 그리고 하모니카 소리…… 마치 아득한 정적과도 같이 묘사되는 장면 속에서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인 그 남자 ‘허석 ’에 대한 화자의 사랑이라는 이미지 새기기와 그것의 가차없는 상실은 삶의 미망인 사랑과 성(性)에 대한 고통스런, 그러나 성 숙한 자기확인이 아닐까. 삶은, 사랑은 대단한 것이지만, 어쨌든 “농담인 것”이다.

‘희극적인, 그러나 너무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칼날 같은 통찰, 마침내는 배반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한 냉소와 조롱, 결 코 대단하지 않은 일상의 늪 속에서 군더더기 없이 원숙하게 묘사되는 인물들의 내면과 삶의 위장된 진실들에 대한 눈부신 혜안! 장편소설 「새의 선물」의 전반을 관류하는 문학적 깊이와 서사적 무게는 그야말로 90년대 우리 문학에서 멸하지 않는 빛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추천평

12살의 시각으로 고정되어 있고 한국의 시대 배경, 환경을 자연스럽게 풀어썼다. 섬세한 묘사로 작중인물과 사건을 ‘보여지는 나’에서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간결하게 썼다. 또 그 이중성을 인간적인 면으로 묘사하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기 때문에 작품이 살아있고 따스함을 전해준다.
--- 어린이도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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