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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두려움
박완서 등저
동아일보사 200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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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데
2. 기억의 저편
3. 어둠 속의 소녀
4. 천국의 눈물
5. 진실 혹은 두려움
6. 괜찮은 한정식 집
7. 환상탈출
8. 행복 무한 주식회사
9. 산타는 있다.
10. 섬 속의 섬
11. 태양이 가까운 도시
12. 문지기
13. 날아라, 자장면
14. 결혼에 관한 가장 솔직한 검색
15. 플라피 랩소디

저자 소개 1

등저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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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婉緖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문단에 나온 이래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40여 년간 수많은 걸작들을 선보였다. 평범한 일상을 풍부하고 다채로운 언어로 길어 올리며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특유의 예리한 시선과 살아 숨 쉬는 문장으로 시대와 삶의 풍경을 오롯이 담아낸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세대를 넘어 깊이 사랑받고 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배반의 여름』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문단에 나온 이래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40여 년간 수많은 걸작들을 선보였다. 평범한 일상을 풍부하고 다채로운 언어로 길어 올리며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특유의 예리한 시선과 살아 숨 쉬는 문장으로 시대와 삶의 풍경을 오롯이 담아낸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세대를 넘어 깊이 사랑받고 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배반의 여름』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친절한 복희씨』 등 다수의 작품이 있고,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인촌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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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39쪽 | 56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0902241

책 속으로

정오 : 이세건,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된 이름이다. 아침 일곱 시에 들어와 꼬박 다섯 시간을 디아블로에 매달렸는데도 그의 교복 깃 앞섶에는 공들여 다려진 흔적이 남아 있다. 학생용 넥타이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차림새 같지 못하다. 꺼칠해진 얼굴에는 우울이 더께처럼 덮여 있다. 아침에 들어설 때부터 이름표를 내어 달고 있었다는 걸 지금에야 의식한 게 아니라면 스스로 의도한 행동일 텐데, 만 원짜리를 내밀던 세건은 재킷 호주머니 밖으로 걸려 있던 이름표를 거칠게 떼어내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시선은 외면한 채이다. 거스름돈을 건네자 그의 시선이 내 손을 잠깐 건너다보는가 싶더니 싸늘하고 느린 동작으로 돌아선다. 다시 오죠. 돌아서다 말고 뇌까린 칼칼한 목소리는 분명히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그의 왼쪽 어깨에 몰아 멘 가방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진다. 카운터 모서리를 붙들고 있는 내 손가락들에 쥐가 나는 듯한 균열이 생겼다가 온몸 구석구석 여진처럼 퍼져나간다. 늘 단정한 차림새와 깊은 눈매에 갇혀 갈등하던 그의 이반이 마침내 폭발했다는 걸 오늘 아침 그 친구가 들어서던 순간, 가슴에 내걸고 있던 이름표 때문에 느꼈다.

오후 한 시 십 분 : 아저씨, 나 왔어요. 다람쥐처럼 기척 없이 뛰어들어온 녀석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소리를 질렀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나절에 왔다가 갔던가. 다른 때보다 훨씬 이른 시각인데 녀석은 제가 잘 앉는 자리가 빈 것을 보고 달려가 아저씨 내 방석, 소리를 지르며 뛰어 올라앉는다. 녀석 의자에 포개줄 방석을 챙기며 녀석 어머니가 들어서기를 기다린다. 아직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열려 있는 출입문 바깥쪽으로 기침 소리가 울린다. 여자는 늘 녀석보다 일 분쯤 뒤에 들어서기 마련이었다. 안녕하세요. 오층을 걸어 올라와 숨이 가쁜 듯 여자는 생각을 삼킨 듯한 기침을 한차례 더 쏟더니 방석 두 장을 들고 선 나를 향해 엷게 웃는다. 미백색의 긴 내리닫이 치마에 연초록색의 짧은 카디건을 걸친, 제법 맵시를 낸 차림새인데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내가 녀석의 의자를 만들어주고 요구르트를 가져다주는 동안에도 여자는 카운터 앞에 서 있다가 내가 다가서자 시선을 피한 채 뇌까리듯 말했다.

--- pp. 409-410

인생이란 뜻하지 않는 곳에서 짓궂게 브레이크를 건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그는 브레이크를 걸며 내 인생에 뛰어들었고,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뻔히 손해가 날 장사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거래를 한다. 어쩌면 내가 받아 드는 건 결혼이라는 '약속어음' 한 장 뿐일 수도 있다. 그가 내게, 내가 그에게 살아가면서 지불할 행복이 어느 정도일지는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 볼 작정이다.

--- p.405-406

이제 저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랑을 우리의 꿈이라고 여깁니다. 사랑을 지키는 힘은 사랑이라기보다 어떠면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남편을 다시 받아들이는데는 2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2년 세월이 저는 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여겼습니다. 저한테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겼던 탓에 더욱 견디기 어려웠던 건 같았어요. 그 2년 동안 저는 얼마나 많이 남편이 죽어버리길 원했는지 모릅니다. 남편이 죽어버린다면 남편을 더는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사랑의 감정이 영원하지 않듯 미움의 감정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걸 전 남편이 제 곁을 떠나기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떠난 뒤에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이었습니다.

--- pp.136-137

외할아버지가 직접 파셨다는 정원의 연못은 말라 있었다. 한때는 알록달록한 금붕어들이 노닐고 근처 논에서 떠온 개구리밥이 파르스름하게 떠돌던 곳이었다. 나는 그 말라붙은 연못 바닥을 내려다 보며 외갓집의 쇠락을 예감했다.

--- p.

'기정아, 너 이런 생각 안 드니?'

'뭘?'

'극장에서 하룻밤 새우며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 보통 아줌마들 같으면 어림없잖어?'

'맞아.'

구구한 여성학 이론보다 명쾌했다. 그래, 피할 수 없을 땐 즐기는 방법도 있다. 단순하게.
이론은 인간의 짐을 무겁게 하고, 도는 인간의 짐을 가볍게 한다던가. 둘은 둘의 길을 가고, 혼자는 혼자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 p.262

고모하고 고모부는 십오 년이 채 안 되게 같이 살았다. 그후 따로 산 세월은 오십 년이다. 순전히 타의에 의한 한 많은 이별이었지만 한을 푸는 것 못지않게 오십 년의 사생활 또한 중요하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는 이별이 아무리 부당한 것이라 해도 그후 새로 살아낸 자그만치 오십 년 세월까지 부당해지는 건 아니다. 오십년의 사생활을 보호할 것이냐 이별의 한을 풀 것이냐는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다. 제삼자는 비켜나 있어야 한다.

--- p.21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오늘의 한국문학의 수준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여성동아' 장편소설 당선작가 15인의 신작 중단편소설이다. 작가들은 각각 남녀간의 애정과 결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등을 빼어난 필치로 그려냈다. 따라서 이 책은 새 밀레니엄의 첫 해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랑의 생겨남과 사랑의 떠남을 주제로 다룬 소설이 많은 만큼 우리 삶의 아기자기한 양상들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소설집 한 권으로 우리 여성작가들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오늘의 삶을 통해 그들이 무엇에 대해 결핍을 느끼는지가 명징하게 드러난다.

개별작품들을 보면 박완서의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는 지난해 이상가족 방문단의 내왕을 둘러싼 사소설에 가까운 소설로 작가의 내밀한 관심사를 엿볼 수 있으며, 표제작이기도 한 김향숙의 <진실 혹은 두려움>은 깊이 신뢰했던 남편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여성의 심사와 지향을 그려냈다. 조혜경의 <괜찮은 한정식 집>은 우연히 청혼을 앞둔 남자와 함께 들른 한정식 식당에서 지난 시절 지순했던 한때의 기억을 진하게 내비치고, 이남희의 ,행복 무한 주식회사>는 우리 삶의 한켠을 이루고 있는 배금주의와의 실상과 유춘장의 <결혼에 관한 가장 솔직한 검색>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의미를 한 노처녀의 진실한 고백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 외 송은일의 ,플라피 랩소디>는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슬픔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일반인들에 대해 자신들을 이반(異般)이라고 지칭하면서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아픔을 핀집성 있게 드러냈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으로 우리 문학계의 한 단면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리뷰 총점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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