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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서문 1장 레이건의 어린 시절 2장 영화배우협회, 반미활동조사위원회, 할리우드 3장 주지사 레이건 4장 러닝메이트 리처드 슈바이커 5장 제6호 법안 6장 부통령 조지 H. W. 부시 7장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 8장 하원의장 팁 오닐 9장 에이즈와의 전쟁 10장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날’ 11장 로스티와 세제 개혁법 12장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그리고 소련의 붕괴 13장 역사의 얼룩 14장 고인故人의 재조명 결론 옮긴이의 말 주 |
Craig Shir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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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은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보수주의를 포착하고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경계를 넘어 확장했다. 레이건은 단순히 권력이 위로 집중되는 체제를 믿는 미국식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 개인의 힘을 회복시키기 위한 세금 감면과 전략방위구상(SDI), 기업 유치 지구 지정, 카리브 연안 지원 구상, 공산주의 폭정에 맞선 원주민 자유 투사 지원 등 수많은 정책을 추진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Grand Old Party’[19세기 후반부터 사용되어 온 미국 공화당의 별칭]를 ‘완전히 새로운 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레이건이 반동주의자가 아니라 혁명가였다는 사실을 너무 많은 사람이 미처 깨닫지 못했다.
--- 「서문」 중에서 복지 개혁에 대한 레이건의 공세적인 태도는, 오늘날까지 그를 가장 오해하게 만드는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레이건은 복지 제도를 없애려는 의도를 갖거나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고, 오히려 여러 측면에서 정반대였다. (중략) 그의 해결책은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과,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말한 ‘마약처럼 교묘하게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에 중독된 복지 사기꾼들 사이에 확실한 선을 긋는 것이었다. --- 「3장 주지사 레이건」 중에서 마침내 레이건은 연단에 올라 청중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의 즉석연설에 엄청난 박수와 감동의 눈물이 쏟아졌다. 이는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전당대회 연설 중 하나였으며, 공화당의 방향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많은 언론은 이를 레이건의 작별 인사라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한 주간지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향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중략) 레이건의 연설은 작별 선언이 아니라 통합을 촉구하는 외침이었으며, 청중과 미국 국민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각인시키는 진정한 선언이었다. 포드를 향했던 관심이 급속히 레이건에게 쏠렸다. --- 「4장 러닝메이트 리처드 슈바이커」 중에서 오늘날 많은 미국 정치인의 주된 수사법은 거의 노골적으로 정체성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일부 정치 평론가들에게 깊이 내면화되어 특정 정체성은 특정 정당에만 속할 수 있다고까지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위기감을 부추기고 단기적 성과를 얻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그만큼 수명이 짧다. 레이건이 정체성을 초월한 ‘미국적 가치’를 끊임없이 강조했기에, 그는 역사상 가장 대중적이며 수사적으로 자주 인용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보수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레이건의 정치적 유산을 잇는 계승자로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7장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 중에서 대외 원조 문제에서도 오닐과 레이건은 첨예하게 맞섰다. 바로 콘트라라 불리는 니카라과의 자유 투사들에 대한 지원 문제였다. 1979년, 마르크스주의 성향을 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독재 정권을 축출하고 니카라과의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10년간 니카라과는 내전과 유혈 사태로 혼란을 겪으며 냉전의 대리 전장이 되었다. 산디니스타가 좌파 조직인 까닭에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레이건 행정부는 니카라과의 새 정권을 국가 안보와 먼로 독트린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 「8장 하원의장 팁 오닐」 중에서 레이건이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젊은 보수주의자 단체를 대상으로 연설하던 중 감세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감세가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도 맞지만, 감세의 본질은 ‘개인의 권리 회복’이고, 그 자체로 개인에게 권력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 1933년 뉴딜 정책의 등장 이후, 세금과 미국인의 정체성을 두고 끊임없는 논쟁이 지속돼왔다. 우리는 단순히 국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인가, 아니면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인가? --- 「11장 로스티와 세제 개혁법」 중에서 고르바초프의 회고에 따르면 레이건은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에게 몸을 기울이며 “만약 미국이 갑자기 외계인의 침공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를 도와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고르바초프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레이건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화답했다. 고르바초프가 “거참 흥미롭군요” 라고 말하자 두 사람은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이 질문은 명백히 터무니없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매우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했다. 언론은 늘 그렇듯 이런 질문을 한 레이건을 조롱했다. 하지만 이는 레이건이 지닌 지성의 깊이를 언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었다. (중략) 그저 사소하고 유머러스한 한 걸음에 불과했지만, 상호 불신으로 인한 전쟁 위험으로 아슬아슬했던 두 나라 사이에 신뢰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진전이었다. --- 「12장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그리고 소련의 붕괴」 중에서 그는 한때 “우리가 러시아의 침략에 굴복하면 자유를 단번에 잃을 수도 있고, 조금씩 나눠서 잃을 수도 있다. 결론은 노예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레이건이 투철한 군국주의자로 변모해서 한 발언이 아니었다. 냉전이라는 엄혹한 현실과 마주하면서도 레이건의 세계관은 흔들리지 않았기에, 그는 여전히 ‘광활한 초원의 대중주의자’[세련된 워싱턴의 엘리트가 아닌 일반 대중·서민을 대변하는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정치 및 정부 기관이 가진 권력에 대한 욕망을 자유의 적으로 보았다. 관료제를 인간의 자유와 표현 그리고 열망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다. --- 「결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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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췄던 미국 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소련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자유의 수호자, 레이건을 재조명하다! 미국인에게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다. 오늘날까지도 공화당 정치인들은 레이건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며 그를 본받으려 애쓰고 있다. 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보수의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전환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8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 레이건은 1984년 재선에서도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그는 지리멸렬했던 공화당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고, 집권 이후 미국 내 보수주의 헤게모니를 확고하게 다진 인물이다. 그는 미국 역사에 또렷한 족적을 남겼다. 규제 완화와 감세, 자유 시장 활성화를 기반으로 한 ‘레이거노믹스’는 미국 경제정책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고, 대외적으로는 소련과의 냉전을 종식시키며 ‘냉전 승리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국민들로 하여금 낙관주의적 희망을 갖도록 해 침잠했던 미국의 자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레이건은 대통령의 표준이자, 공화당 창립기의 상징인 에이브러햄 링컨에 이어 현대 공화당의 정체성을 만든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로널드 레이건이 20세기 가장 성공한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평생 동안 레이건을 연구해온 베스트셀러 전기 작가 크레이그 셜리가 쓴 『레이건: 강철 같은 낙관의 리더십』에 그 답이 있다. · 레이거노믹스: 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다 “과도한 세금과 규제, 기업에 대한 정부의 억압, 치솟는 인플레이션, 좌절한 소수자들과 소외된 미국인들은 자유 시장 체제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들은 중앙집권적 관료제와 엘리트를 자처하는 이들의 통치에 의한 희생자일 뿐입니다.”(30쪽) 레이건은 고물가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신음하던 1980년대 미국 경제에 ‘레이거노믹스’라는 과감한 수술을 단행했다. 그는 과도한 세금을 낮추고 불필요한 규제의 사슬을 끊어 비효율을 줄이고, 민간 투자를 유도해 기업과 가계, 나아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레이건은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시장의 잠재력을 믿었을 때 비로소 경제의 심장이 다시 뛸 수 있음을 증명했다. 레이건은 복지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았고, 성장의 가치를 복원하려는 이들에게 진정한 보수의 경제적 해답을 제시했다. · 자유의 수호자: 낡은 이념을 벗고 시대의 새로운 주류가 되다 “제가 구상하는 ‘새로운 공화당’은 상류층 사교클럽이나 대기업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된 정당이 되지 않을 것이며,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30쪽) 레이건 이전의 공화당은 엘리트주의와 ‘뉴딜’이라 불린 민주당의 어젠다에 갇힌 소수파 정당에 불과했다. 레이건은 이를 과감히 깨부수고 ‘새로운 보수주의’를 정립했다. 그는 공화당을 단순히 상류층이나 대기업의 이해관계에 매몰된 기득권을 지키는 세력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삶을 개선하고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제시하는 역동적인 개혁 세력으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레이건은 ‘자유’의 가치를 열정적으로 수호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뉴딜 체제로 인해 비대해진 국가의 권력이 개인의 삶을 침해하는 것을 경계했으며,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공산주의라는 거대 악을 압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 힘에 의한 평화: 단호한 안보 철학으로 냉전을 승리로 이끌다 “레이건은 소련과 협상할 용의가 있지만, 오직 힘의 우위에 서 있을 때만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193쪽) 안보는 보수의 근간이다. 레이건은 원칙 없는 타협과 막연한 평화론을 외치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평화는 오직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소련과의 회담을 앞둔 몇 년간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고 핵무기 보유량을 늘렸으며, 상대의 모든 핵무기를 쓸모없게 만드는 새로운 방어 체계, 즉 전략방위구상(SDI) 개발에 힘썼다. 이를 통해 ‘악의 제국’이라 불리던 소련을 상대로 압도적인 군사력을 구축하고 전략적 우위를 점함으로써, 상호 간에 총성 한 발 울리지 않고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가짜 평화의 속삭임이 가득한 시대에, 레이건의 단호한 안보 철학은 보수가 지켜야 할 진정한 평화의 조건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 위대한 소통가: 시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다 “우리는 ‘내일의 나라’입니다. 20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미국은 여전히 ‘발견’을 향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결코 완성된 적이 없으며, 언제나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나라입니다.”(385쪽) 레이건은 인생을 관통하며 얻은 자신감과 겸손함, 가난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서민적 풍모, 배우 경력에서 비롯된 유머러스함과 언어의 품격 등을 모두 동원해 국민에게 다가갔다. 그는 보수주의와 자유민주적 신념과 낙관주의를 바탕으로 비전을 제시했고, 복잡한 정책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풀어냈다. 미국인들은 그런 레이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레이건 민주당원’으로 포섭하는 경이로운 외연 확장 능력을 보여주었다. 레이건의 낙관주의와 소통 능력, 대중 친화적 리더십은 정치인이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에 관한 이상적인 표준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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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급스러운 농담을 잘하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쇼맨십 아래 숨겨진 강철 같은 낙관주의자로서의 레이건, 진영을 넘어선 유연함을 보였던 레이건, 치밀한 전략가로서의 레이건을 감정을 절제한 채 차분히 늘어놓는다. 지금, 혼란의 시기 대한민국에도 레이건처럼 유능하고, 유연하고, 애국적인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 제69대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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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은 리처드 닉슨이나 빌 클린턴이 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국의 궤적을 바꿔놓았다. 그는 명쾌한 비전과 낙관주의, 그리고 한동안 사라졌던 활력과 기업가 정신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 버락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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