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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엇박자 장기판 위의 가족 룡두레 우물가 남쪽에서 온 선물 광장무 펼쳐진 장기판 두부 집 칭씨 봉호 선생님 떠나는 사람들 1 떠나는 사람들 2 1년 졸업식 보너스 챕터: 작은 책방 다시 깊어진 우물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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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면 인터뷰 중에서 1. 작품은 할아버지가 홍희에게 반복해서 ‘자기소개’를 시키는 독특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왜 ‘자기소개’를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으셨나요? 조선족 아이가 주인공이고 2000년대 조선족 마을이 배경인 만큼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세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작을 ‘자기소개’로 열었습니다. 홍희의 다름을 처음부터 드러내면서도 독자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이 세계에 들어오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어릴 때 부모님께 자기소개를 자주 배웠습니다. 당시에는 별 의미 없이 반복했던 일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충돌보다 안심을 택하는,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평화의 제스처였던 것 같습니다. 홍희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배워가는 아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기소개가 이 이야기의 가장 어울리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2. 작품에서 할아버지가 홍희에게 장기를 가르치려 하고 엄마도, 봉호 선생님도 각기 다른 동기로 장기를 배우라고 하는데요. 장기는 어떤 의미를 지닌 소재인가요? 저의 중학교 시절에는 지금처럼 학원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들이 많았는데, 장기나 바둑 같은 보드게임도 그런 배움의 한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그것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아이의 사고력과 끈기를 길러준다고 믿었고, 그래서 종종 등을 떠밀어 배우게 하곤 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장기는 그런 현실적인 배경 위에 놓여 있습니다. 동시에 장기는 홍희를 둘러싼 어른들의 서로 다른 기대와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삶의 지혜와 기억을 전해주는 도구이고, 엄마에게는 아이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며, 봉호 선생님에게는 홍희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입니다. 그래서 장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홍희가 여러 세계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함께 움직이는 상징적인 소재라고 생각합니다.3. 우물가는 조선족 아이들, 광장무를 추는 한족, 한국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중요한 장소로 등장합니다. ‘우물가’를 이야기의 중심 공간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 기억 속에서 우물가는 조선족의 오래된 역사와 전통 같은 정체성을 품은 곳이면서도, 오랜 기억들이 서서히 잊혀져 가는 침묵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였고 어른들에게는 잠시 쉬어 가는 쉼터였지요. 동시에 낯선 사람들이 흘러들어오는, 늘 조금은 약동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소설에서 공간 설정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글을 시작할 때 어떤 공간을 중심에 둘지 오래 고민하는 편인데요. 우물가를 이야기의 중심 공간으로 정하는 순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4. 작품 중 부모님이 한국으로 일하러 가신 아이들이 많아지는 한편 교실에서는 사회주의 정치 교육이 이루어지고 아이들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실시간으로 즐기고 있는데요. 이런 변화가 일어난 배경과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 시기의 조선족 사회는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후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조선족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저희 또래 아이들 중에도 부모님이 한국에 나가 계신 경우가 흔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안의 교육은 여전히 중국 체제 속에 있었기 때문에 교실에서는 사회주의 정치교육을 배우고 있었죠. 흥미로운 건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일상에는 이미 한국 문화가 깊이 들어와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위성방송, CD 같은 매체를 통해 한국 드라마나 음악이 빠르게 퍼졌고, 저희도 그것을 거의 실시간처럼 접하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한 교실 안에는 사회주의 정치교육, 한국으로 떠난 부모 세대, 그리고 한국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아이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묘한 풍경이 있었습니다. 국경은 여전히 국가 안에 있었지만 사람들의 삶은 이미 국경 밖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거죠. 저는 그 시기의 공기를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보고 싶었습니다.5. 작품에서 조선족은 어디서나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시선과 3개 국어를 하는 것을 장점으로 삼자 등 소수자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 담겨 있는데요. 작가님은 이주배경을 비롯한 여러 다른 ‘소수자성’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자고 하고 싶으신가요? 조선족 출신인 저는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이고, 한국에서는 동포이면서도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이주민, 외국인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에 서 있어도 ‘소수’라는 위치에 놓여 있는 셈이지요. 20대 시절에는 그 사실이 내심 괴롭기도 했습니다. 마치 가시처럼 제 정체성을 계속 찌르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생각의 폭을 조금 넓혀 보니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각자 나름의 ‘소수자성’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을 드러낼지 말지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소수자성을 단순한 거침돌로만 바라보기보다는, 가능하다면 삶을 밀어 올리는 디딤돌로 사용해 보자는 마음이 더 커진 상태입니다. 6. 한국 사회에는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이 많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문학은 서로 다른 경험과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릴 때부터 중국에는 56개의 민족이 있고, 지역마다 억양과 식습관, 기후와 문화까지 모두 다르다는 이야기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감각이 제 인간 관계의 기본 값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낯선 타인을 만나면 먼저 호기심이 생기고, 그 안에서 비슷한 점 하나라도 발견하면 몹시 반가워하는 그런 정서였지요. 사실 작은 범주 안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국적이나 학연, 지연 같은 비교적 큰 범주 안에서 서로를 묶으며 정서적인 안정감을 빨리 획득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사람들도 생기고요. 저는 관계에서는 무엇보다 ‘느림’이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는 빠르게 결속되고 또 누군가는 쉽게 배제되는 현상은 결국 내 안의 불안이 작동한 결과일지도 모르니까요. 서로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탐색하면서 각자에게 맞는 안전거리와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확인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은 신중하고, 어느 한쪽도 쉽게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정교해야 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작은 연변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열린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소설의 영향도 컸던 것 같습니다.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책 속에서는 서로 다른 시대와 국가의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경험은 어릴수록 더 자연스럽게 현실의 사람들에게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다양한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 데에는 문학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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