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작가와 작품에 대하여
밤 끝으로의 여행 부록 자료 1 자료 2 해설 작품 목록 작가 연보 |
Louis-Ferdinand Celine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다른 상품
김예령의 다른 상품
|
나는 기병 하사의 또 다른 욕지거리 속에 다시 깨어났다. 전쟁은 그대로 속에 얹혀 있었다.
--- p.48 모든 걸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이야기해야 할 거다, 우리가 본, 인간에게서 가장 악독한 점이 과연 뭔지를. 그런 후에야 씹는담배를 내려놓고 무덤 구덩이로 내려가야 한다고. 온 생애를 통틀어 해야 할 일은 그거 하나로 족하다. --- p.52 우린 밤의 도처에서 끄집어냈다, 근사한 평화 시대, 이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 모든 것이 온화했던, 실상 그 어떤 것도 중요한 결과로 귀착되지 않는 대신 숱하게 많은 다른 일이 실행되고, 그럼으로써 그것들 모두가 놀랍게도 기적처럼 유쾌하게 변모하던 그때 그 시절과 제법 닮은 시간의 조각을. 그 평화롭던 시절이라니, 살아 있는 벨벳 같은…. --- p.64 우리 속엔 이제 생명을 춤추게 할 음악이 많지 않다, 그렇다. 이미 청춘 전체가, 진실의 침묵 속에 세계의 끝으로 죽으러 가 버렸는걸. 그러면 바깥 어디로 가나, 난 당신에게 그걸 묻는다. 자기 안에 충분한 양의 헛소리가 더 이상 없는 그 순간부턴, 어디로? 진실, 그건 끝나지 않는 단말마를 말한다. 이 세상의 진실은 죽음이다. 죽을지, 거짓말을 할지, 선택을 해야 되는데. 결코 나 자신을 죽게 할 수 없었다, 난. --- p.285 “선생님, 제가 하늘에 대고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딸을 갖게 됐을까요! 아, 적어도 동네 사람들에겐 아무 얘기 안 하실 거죠, 선생님…! 선생님을 믿어요!” 그녀는 끊임없이 제 두려움을 뒤척였고, 이웃 남녀가 이 일을 대체 어떻게들 생각할까, 그 걱정에 부글거렸다. 불안한 짐승의 혼란 지경, 이 어미의 상태. 그런 건 오래간다. 그녀는 내가 복도의 어둑함, 수프를 만들려고 끓인 파 냄새, 벽지, 그 벽지의 바보 같은 당초무늬, 자신의 숨 막힌 듯한 목소리에 적응하도록 두었다. 마침내, 횡설수설에서 감정 섞인 탄식으로 넘어가며 우린 그 딸, 까라져 엎딘 환자의 침대에 이르렀다. 진찰하려 해도 피가 어찌나 많이 쏟아지던지, 곤죽이 된 그녀의 질에선 아무것도 안 보였다. 엉긴 핏덩이들. 여자의 가랑이 사이에선 전쟁 때 대령의 잘린 목에서 그랬듯 “꾸룩꾸룩” 소리가 났다. 그냥 커다란 솜을 다시 대고 도로 이불을 덮어 줄 수밖에. --- p.364 밤은 제집에 깃들어 있었다. --- p.442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니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줄줄이 펼쳐지는 게… 대갈통 속에 극장이 하나 있다고 해도 되겠어….” 장차 네가 그 작은 극장 때문에 지쳐 떨어질 날이 오리란 말을 로뱅송에게 할 엄두가 아직은 안 났다. 모든 생각은 죽음을 향해 가므로, 어느 순간에 이르면 넌 네 극장 안에 너와 함께 있는 그것만을 보게 되겠지. --- pp.453-454 무(無)는 늘 그녀 가까이, 심지어 벌써 약간은 그녀 자신 위에 놓여 있었다. --- p.481 집 속의 그 어떤 것도 좋지 않다. 문이 한 사람을 가두면 그는 이내 냄새를 피우기 시작하며, 그가 끌고 다니는 것 역시 죄다 냄새를 풍긴다. 그는 그 자리에서 퇴색한다, 영혼과 몸 모두 다. 그는 썩는다. 사람들이 악취를 풍긴다고, 그건 우리의 자업자득이다. 일찌감치 우리가 처리했어야지! 그들을 끄집어내고, 몰아내고, 내놓았어야 했다고. 썩은 내를 풍기는 거시기한 것들은 죄다 방 안에 있고, 거기서 공들여 스스로를 꾸미나 어쨌든 냄새는 진동한다. --- p.493 비참이 그 안에 있었다. 의상, 스팽글 장식, 조명, 미소, 다 안 통한다, 비참이 깜빡 속게, 제 먹잇감들에 대해 착각하게 하고 싶나,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숨은 자릴 다시 찾아낸다. 비참은 그들이 제 차례를 기다리는 가운데 온갖 어리석은 희망의 노래나 부르도록 만들며 희희낙락한다. 그러는 게 그걸, 비참을, 깨우고, 어르고, 자극한다. 이렇듯 우리의 고통은, 크디큰 그것은, 오락일 뿐이다. 그러니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자여, 안됐구나! 사랑, 그건 바로 비참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비참이야, 언제나 비참이야, 우리의 입을 통해 거짓말을 하러 오는 똥, 그저 그거다. 그 고약한 것이 도처에 있으니 그것, 자신의 비참을 깨워선 아니 되리, 행여 허세로라도. 비참 앞에서 허세는 금물이라고. --- p.502 우린 가끔 삶이 동정심을 느끼는 걸, 우리가 두고 떠난 진부하고 소중하고 때로 두려운 존재 및 사물 들과 함께 그것이, 삶이, 우리 자신 안으로 주름지는 걸 목도하기도 한다. 우리가 쾌락이나 먹을 빵을 좇아 도시에서 종종걸음치는 동안, 마침내 끝을 낸다는 두려움은 이 모든 것에 제 주름들을 찍어 놓았다. --- p.515 세월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로 재차 붙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이 한 말을, 그때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던 거였냐고 물을 수 있도록 그들 자신을…. 하지만 그들은 모두 떠나 버렸다…! 당시 우린 아직 배운 게 충분하지 않아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 그 이후로 혹시 그들의 견해가 바뀌진 않았는지, 그걸 알고 싶은데 물어볼 수 있다면…. 그러나 너무 늦었다… 다 끝났어…! 이제 그들에 대해선 아무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밤 속으로, 전적으로 홀로 자신의 길을 계속 가야 할밖에. 진정한 길동무는 잃어버렸다. 그랬어야 할 바로 그때 우린 그들에게 좋은 질문, 진짜 질문을 던지지 못했어. 그들 곁에 있을 때 우린 알지 못했지. 실패한 인간. 우린 언제나 애초부터 늦는다. 이 모든 게 회한이다, 밥을 먹여 주지는 않는 회한. --- p.520 듣는다, 기다린다, 희망한다, 여기서, 저기서, 기차에서,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휴게실에서, 수위실에서, 우리는 듣는다, 기다린다, 악의가 스스로를 다잡길, 전쟁 때처럼, 그러나 그건 그저 동요하기만 할 뿐, 아무 일도 닥치지 않는다, 저 가련한 아가씨들에 의해서도, 다른 이들에 의해서도, 결코. 아무도 우릴 도우러 오지 않는다. 거대한 지절거림이 생의 위편에 회색빛 단조로움으로, 어마어마하게 낙담시키는 한 자락 신기루처럼 펼쳐진다. --- p.527 “(…) 페르디낭, 나는 내 영혼을 잃어버리도록, 그러기 위해 떠나 보고 싶다네. 사람들이 제 옴 붙은 개를, 썩은 내 진동하는 자신의 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자기 길동무를 내버리러 아주 멀리 가듯이, 죽기 전에 말일세…. 마침내 정말로 혼자서… 담담하게… 자기 자신인 채로….” --- pp.599-600 삶에서 우리는 올라가지 않는다, 내려간다. --- p.631 우리 안엔 기껏해야 나날의 삶, 안락의 삶, 저만을 위한 삶, 이런 가혹함에 유용한 것들만 있을 뿐이다. 신뢰는 길을 가다 다 잃어버렸다. 우리에게 남은 연민은 더러운 알약인 양, 몸속 깊숙이 정성을 다해 쫓아내고 닦달했다 그것은. 똥과 함께 창자 끝으로 밀어냈지. 그건 그 자리에 잘 있다, 그렇게 우린 생각한다. --- p.675 그들은 더는 충분히 즐길 수 없어서 여전히 훌쩍거리니, 죽어 가는 자들은… 요구하고… 항의한다. 그건 생에서 죽음 그 자체로 넘어가려 애쓰는 불행이 벌이는 희극이다. --- p.676 멀리서, 예인선이 휘파람 신호를 보냈다. 그 부름이 다리를 통과해 갔다, 또 교호를, 다시 또 다른 교호를, 수문을, 또 다른 다리를, 멀리, 더 멀리… 그것이 강의 거룻배 모두를 제 쪽으로 부르고 있었다, 거룻배 전부를, 또 도시 전체를, 또 하늘과 들판을, 또 우리를, 제가 데려가는 모든 걸, 센강 역시도, 전부, 그러니 그에 관해 더는 말하지 않기를. --- p.686 |
|
섬망과 착란의 오디세이
“그건 그렇게 시작됐다.”(29쪽) ‘여행’을 시작하는 기념비적인 첫 문장의 뒤를 이어 펼쳐지는 무대는 1차 대전 속 유럽의 전장, 아프리카 열대지방 오지 속 식민지, 미국, 그리고 전후의 불황과 침체 속 파리 근교 및 지방 도시의 모습을 피카레스크 형식으로 그려 간다. 화자인 바르다뮈의 긴 여정 가운데 그의 친구 로뱅송이 비극으로 함께하는 이 항해를 두고 “떠돌이가 제 여정에서 보고 건진 깨달음의 전말을 읊은 현대판 오디세이”(김예령)라 말해 본다면, 이 오디세이는 착란의 헛소리 위에서 표류한다. 『밤 끝으로의 여행』 출간 이듬해에 이뤄진 인터뷰에서 셀린은 “문학에 단 하나의 구실이 있다면, 우리의 착란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김예령은 이 착란이, 의사 데투슈이기도 했던 작가 셀린에게 있어 “인간의 고질적이며 대표적인 병증이고 숙명”이면서 “‘창의력’의 동의어로서 문학의 이유와 목적, 방법론의 자격을 두루 구성하는 소중한 개념”이 된다고 읽는다. ‘민중’의 주체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문명이라는 병에 시달리는 노예근성의 군중상”이 펼쳐 가는 “열에 들뜬 긴 밤의 이야기”, 그건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니 “표면과 이면이 뒤집히며 (…) 드러나는 창자들의 세상”만이 이 소설의 전부가 아니다. 거대한 비극을 파고드는 비틀린 어법, 웃음, 시정(詩情) 등 여러 작은 요소들이 흩뿌려지고 발산되며 『밤 끝으로의 여행』의 문양을 이루어 간다. 이 말들은 특정한 논리나 정당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형을 벗어나고 흐려 간다. 그러한 움직임의 상태를 저들의 여행으로 삼아. 프랑스에서는 2021년 셀린의 미발표 초벌 원고 5,300여 장이 새롭게 발견돼, 2023년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야드 총서에서 이 새 원고를 포함해 수록작을 재정리한 셀린 작품집 개정 증보판 네 권이 출간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자료 발굴과 더불어 다시금 조명되기 시작한 역사 속 논란의 작가 셀린을 비평적 관점에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읽기 좋은 때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의 비평적 견지를 차치하고서라도, 『밤 끝으로의 여행』은 “문학적이지 않았던 어떤 것을 문학적인 것으로 만들려”(알베르 티보데) 애쓰면서 드문 성공을 거뒀다. 살아남은 말의 얼룩은 “일궈 나가야 할 장르”로 건재하다. “하긴, 아름다움에서만큼이나 추함 속에서도 예술이 가능하지 말란 법이 있나? 그건 일궈 나가야 할 장르고, 그뿐이다.”(12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