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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발리, 그 섬에서 -야夜심한 연극반 -그라나다 유기견 -그녀의 허니문 룸메이트 -목소리들 -코드 번호 1021 -비상대책위원회 -해설-심진경(문학평론가) 열린 상처, 낯선 진실 -작가의 감상-김도연(소설가) 소설 쓰는 여행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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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2026-07-02
소설을 쓰기 위해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는 작가. 편집자로서 제가 만난 한지수 작가님은 매우 집중력이 좋고, 인간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지닌 그야말로 천상 소설가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번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매우 열심히 취재를 하는 열정적인 작가이기도 합니다. 여러 해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저축한 돈을 여행을 가기 위해 다 사용하는 것은 물론, 그곳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기 위해 수개월을 기꺼이 침잠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효율을 따지며 창작의 과정을 경제적 논리로 환산하려 하지만, 한지수 작가에게 소설은 단순히 이야기를 직조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깎아내어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고통스럽고도 숭고한 통과의례에 가깝습니다. 그가 소설 속 인물의 사소한 습관 하나, 깊은 슬픔의 결 하나를 그려내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는 단순히 지갑 속의 돈이나 흘러간 시간으로 계산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는 현장을 발로 뛰며 체득한 생생한 날것의 감각을 책상 앞에 앉아 정교하게 다듬어냅니다. 고요한 밤을 꼬박 재새우며 마침표 하나를 찍기 위해 수십 번 원고지를 뒤엎는 그 인고의 시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글을 쓴다는 것"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기게 합니다.
한지수 작가님을 보고 있노라면, 소설이란 결국 작가가 스스로를 얼마나 뜨겁게 소진했느냐에 따라 독자의 마음에 닿는 온도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을 접하다 보면 일렁이는 심지의 푸른 불꽃을 대하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는 자신을 태워 빛을 내는 촛불처럼, 오직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생애 가장 찬란한 조각들을 기꺼이 내어주고 있습니다. 작가란 바로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를 보며 편집자인 저는 매번 겸허해지고 또 용기를 얻곤 합니다.
독자의 손에 쥐어질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의 시간을 깎아 만든 인생의 파편을 독자와 나누는, 가장 내밀하고 따뜻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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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세 가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표할 때 여당 찍기, 결혼을 전제로 한 섹스, 그리고 평범한 결혼.” 너는 ‘평범한’이라고 발음할 때 입술을 심하게 비틀었다.
--- p.23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부富를 경멸하고, 아름다울 수 없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멸시하듯이, 평범할 수 없는 너는 평범함을 거부했다. --- p.24 누가 바다로 들어갔을까. 네가 아니라면, 신랑이 바다로 뛰어들었나? 아니다. 무엇도 확실한 건 없었다. 두 사람에게 각자의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 p.33 미안해. 이 여행에 너를 끌어들인 거…… 그리고 너 혼자 돌아가게 될 일정도 미리 사과할게. 왜 너를 이 여행에 초대했느냐고 물었지? 중학교 때, 네가 나를 위해서 매일 막차를 타고 집에 가준 거, 마시지 못하는 소주를 빨대 꽂아 마시며 웃어준 거, 부서지고 엉망인 내 옆에 계속 있어준 거…… 넌 내게 그런 고향이야. 그게 너를 이 여행에 끌어들인 이유야. --- p.37 “저는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오랜 세월을 살았답니다. 제 인생이 아니라, 이 옷과 분장이 화려했지요. 젊은 시절엔 교토의 기온 거리에서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놀았답니다. 어느 가족의 기쁜 자리에 출장을 가기도 했지요. 손님 앞에서 옛 춤을 추고, 다다미 놀이가 끝나면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동정 섞인 박수와 함께 돈을 받았습니다. --- p.48 엄마였던 아버지도 저렇게 무릎을 꿇고 앉아 서글픈 엔카를 불렀다는 건가. --- p.67 그때 깨달았다. 나는 엄마 자궁에서 살아남았을 때가 아니라, 아버지로 인해 태어났다는 걸. 아버지가 엄마 옷을 입은 그 순간 나는 ‘별’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로그인한 것이다. --- p.69 너는 지금 한 여자의 남편이 되는 중이다. 너를 향해 걸어가는 신부는 크림색의 인어 라인 드레스를 입고 있다. 드레스에 매달린 스팽글이 눈부시게 빛난다. --- p.77 ‘중국인들은 이별할 때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주었다고 해. 버드나무 가지는 아무 데나 꽂고 물만 주면 잘 자라니까. 이별 후, 먼 길을 가서라도 뿌리내리고 잘 살아달라는 뜻이야. 언젠가 너에게 고해성사를 하려고 했는데…… 안녕!’ --- p.110 “상처는 내 것이 크고, 떡은 남의 것이 큰 법이지. 자네두 그런가?” --- p.139 나는 어느 편도 아니야. 언제나 옳은 편이야. 항상 그러려고 애를 쓸 뿐이야. --- p.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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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고, 모든 여행은 소설이다.
캐리어가 열리는 순간, 우리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창적인 시선과 탁월한 상상력으로 주목받은 소설가 한지수의 두 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은 첫 소설집『나는, 자정에 결혼했다』 이후, 한층 깊어진 작가의 문학 세계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발리, 교토, 이스탄불, 그라나다, 파리 등 낯선 이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감정적 동요와 낯선 진실을 마주하는 5편의 여행 소설과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의 거친 공기를 담아낸 2편의 소설 등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묵직한 사연을 품고 익숙한 일상을 떠난다. 직장 내 미투 사건의 얼룩진 기억을 안고 파리로 도망친 사람「목소리들」, 폭풍 같은 사랑과 파국적 반전이 서늘한 충격을 안기는 「발리, 그 섬에서」, 죽은 연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라나다의 골목을 헤매는 이의 상실과 고통을 다룬 「그라나다 유기견」. 그리고 튀르키예의 낯선 방에서 만난 괴팍한 노파를 통해 진짜 삶의 무게와 상처를 배워가는 「그녀의 허니문 룸메이트」와, 교토의 서정적인 거리에서 비로소 부모의 처절한 진실과 대면하는 「야夜심한 연극반」까지. 여기에 더해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의 냉엄함을 응시하는 평택 고덕의 LH 토지공사 수용 지역의 풍경 「비상대책위원회」와, 어두운 시절 남산 지하실의 단면을 고문관의 비장한 독백으로 담아낸 「코드 번호 1021」이 이어진다. 이 제각각의 이야기들은 무심히 흘러가던 시간의 역사를 전복시키며,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눈부신 울림을 남긴다. 〈작가의 말〉 속 문장처럼, 삶의 가장 소중한 진실은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하는 엽서처럼 우리를 찾아온다. 앞면의 낯선 풍경을 다 지나치고 나서야 비로소 뒷면의 짧은 진심이 읽히는 것처럼, 『캐리어』는 독자들에게 인생의 가장 눈부시고도 아픈 비밀을 대면하게 만든다. 세련된 문체와 날카로운 시선으로 무장한 한지수 작가의 이번 신작은 깊은 공감과 고요한 위로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길고 지난했던 방황을 끝내고 마침내 내 안의 평화에 이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