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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의 맞는 여행
병원에만 가면 병이 낫는 병 지난 초여름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버리기의 우선순위 고양이들 여름엔 늘 좋은 일이 생긴다 숙면 사과를 먹을 때면 주말에 언니와 서원전 눈 오는 날 나의 도시 밤 산책 침대 온실 지저스 크라이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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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영의 남편 최재훈 작가는 이윤희와 다시는 여행을 보내지 않기로 선언했으나, 이후에 또 군산에 둘이 가게 되는 일이 생겼고, 그때는 제목처럼 제 나이에 맞는 여행을 했다. 이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제 나이에 맞는 여행」 후기에서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이 말을 들으면 왜 늘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아픈 게 잘못도 아닌데, “어디가 아프다”는 설명 자체가 왜 이렇게 어색한걸까. 좀처럼 아픈 걸 말하지 않는 성격 탓인지,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심리가 통증을 억누른 건지 갑자기 어깨가 멀쩡해지고 말았다. --- 「병원에만 가면 낫는 병」후기에서 지난 초여름,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느슷한 나날이 이어질 때 문득 낯선 풍경 속에 던져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혼자하는 여행 같은 --- 「지난 초여름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중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 습관처럼 미래의 나에게 말을 겁니다. 살면서 지금 이 순간이 여러 번 떠오를 거라고. --- 「지난 초여름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중에서 상자 안에는 쓸모없지만 가장 아끼던 물건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5학년쯤 주고받은 크리스마스 카드인데, 써준 아이의 이름과 얼굴, 별명까지도 떠올랐다. --- 「버리기의 우선순위」 중에서 신기하게도 인연이 끊어진 사람들이 남긴 물건은 종종 없어지거나 깨어진다. 일본에서는 사물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신으로 모신다는데, 그 영혼의 수명이 다한 걸까. 지금도 만나는 친구들의 물건들은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아 예쁜 포장지로 감쌌다. --- 「버리기의 우선순위」 중에서 나는 진심으로 제안받기보다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능동적이고 늘 아이디어가 넘치고,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미공개 원고가 쌓여 있어서 뭇 편집자님들께 자신의 작업의지를 밝히는 그런 작가. 하지만 슬프게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언제나 만화 원고 제안을 받으면 그제야 당황하며 무슨 이야기를 그릴지 압박감에 시달리곤 한다. --- 「여름엔 늘 좋은 일이 생긴다」후기에서 사과를 먹을 때면 여행을 떠올린다. 가장 가까운 기억은 가마쿠라의 해변. 둘이서 바닷가를 걸으며 사과 한 개를 나눠 먹었다. … 브뤼셀에 갔을 땐 호텔로 그냥 들어가기 적적해서 사과를 샀다. 다음 날 아침 일행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중 한 분은 사과를 소중히 가지고 다니셨다. 노션의 그 선생님은 기차로 가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았다. 풍경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선생님은 그만 사과를 기차에 놓고 내렸다. “사과는 룩셈부르크로 가겠네요.” 사과 한 개를 다 먹는 동안 당신도 가끔 떠올릴가.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사과의 맛과 다시 오지 않을 풍경들을. --- 「사과를 먹을 때면」 중에서 얼마 전 같이 살던 친구가 방일 비웠다. 나간 지는 꽤 됐지만 그대로 비워두고 있다. 그냥 빈방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게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이 도시에 살게 됐고, 이젠 나 혼자다. --- 「나의 도시」 중에서 애인과 심야영화를 보러 간 친구를 기다리는 밤. 이곳의 밤은 참 조용하다. 얼마 전 내가 떠나온 곳의 밤은 늘 활기가 넘쳤다. 특히 여름반엔 더욱 그랬다. 약속도 없는 혼자인 밤엔 종종 산책을 나갔다. 그러곤 사람들 틈에 섞여 들어갔다. --- 「밤 산책」 중에서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갈 수가 있을 텐데… 당장이라도!” --- 「밤 산책」 중에서 단편만화를 그리는 일은 정말로 혼자 걷는 밤 산책과도 같다. 목적 없이 걷는, 늘 걷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가벼운 걸음, 환기가 되는 고요한 시간. --- 「밤 산책」후기에서 잠결에 들리는 소음은 기차였다가, 드럼이었다가,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밤이 되었다. --- 「침대」 중에서 우선 이 만화를 싣기 위해서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이번 단편집에 수록하게 된 이유는, 거의 최초로 그린 만화이기 때문이다. 그것뿐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후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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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였나. 여섯 살 때였나. 유치원 갈 즈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공교롭게도 작은 동네에 동갑내기가 두 명 더 있어서 자주 놀았다. 얘들끼리만 말고, 어른들끼리도. 이모들보다도 가까운 아줌마들은 그 어떤 이모들보다 나를 더 잘 알았다. 가끔은 우리 엄마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미래는 이렇구나. 고은이는 안 그러는데. 시완이는 이러는데. 미래는 이렇네. 이모들한테는 안 나오는 반말이 아줌마들을 향해서는 곧잘 튀어나왔다. 애기로 봐달라는 듯이 자기 자식으로 봐달라는 듯이 “그랬는데요?”하다가 어느 순간 “그래앴는데에—”하고 끝나는.
어떤 면에서 고은이나 시완이보다 고은이네 엄마랑 시완이네 엄마가 더 편했다. 우리 엄마랑 아줌마들이 앉아있으면 그 둘레를 괜히 느리게 스쳐 지나가면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에 담았다. 이 어른들의 앉은 키를 훌쩍 뛰어넘을 즈음을 그려보면서 아주 가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던 하루. 그들을 지나치면서 나는 계속해서 목을 가다듬었다. 뭐가 걸렸는지, 간지럽고 따가왔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이 답답했다. 우리 집에서 아픈 것은 곧 부주의이자 죄악이므로 엄마 앞에서는 숨기던 기침을 그들 앞에서는 편하게 내색했다. “미래 일부러 기침하는 것 같은데?” “애들이 저럴 때는 쓸쓸하다는 거라던데.” “관심받고 싶은 모양인데?” “감기 걸린 척하는 거 보면…”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방 아닌 방에 들어가 문들 닫았다. 그건 고은이 방이었을까, 시완이 방이었을까. 문손잡이를 잡던 손을 떼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무엇이 그렇게 서운했던거니. 자세히 탐구해보지는 못했다. 그러고서 알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들어갔고, 어른들보다는 또래에게, 친구 집보다는 다른 장소들에 관심이 생겼다. 정신이 바빠졌다. 그런데 왜 이 지면에 이런 애길 하고 있느냐고? 윤희 언니 만화를 보면, 이런 기억이 하나씩 떠오른다. 다 잊은 줄 알았지? 아니 없는줄 알았지? 없는데 있었다. 진실에는 한참 못 미치는 기억. 거기 쓰이는 마음. 없어진 걸 있게 그리는 손과 펜. 윤희 언니 만화를 읽을 때면, 내게는 고향이 없는데, 그 고향이 정말로 그리워지곤 한다. — 김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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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대학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윤희를 처음 만났다. 조금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 친구가 훗날 내 혼인의 증인이 되어줄 인연이 될 줄,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윤희는 입학했을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였다. 그림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고 아는 것도 많아 동기들 사이에서 ‘교수님’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나는 입시미술을 거치지 못한 채 학교에 들어와 스스로의 역량을 자신하지 못하는 상태로 신입생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1학년 기말을 앞두고, 그런 나에게 윤희는 함께 과제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와 작업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사항 같은 일이었기에, 당시의 나는 꽤 어리둥절한 상태가 되었다. 당황해하던 나에게 윤희는 “네가 그리는 그림이 참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 한마디는 이후의 그림생활로 끼어준 첫 단추로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나와 윤희는 각각 시청역과 명동역 근처 식당에서 파트타임을 시작했다. 일부러 시간을 맞춘 것처럼 손님이 붐비는 점심시간에 그릇을 나르는 일을 끝내고 나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우리는 종각역에서 만났다. 가장 빨리 문을 여는 가게 아무 데나 들어가 현실과 꿈을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후 그림을 업으로 삼게 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그때 나눈 윤희와의 대화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붙잡아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윤희는 여러모로 나보다 항상 두세 발자국 앞서있는 친구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경험한 것의 8할은 윤희와 함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희를 만나는 날이면 온르은 또 어디를 가게 될까 늘 설렜다. 내가 사는 수원, 그중에서도 집이 있는 동네 둘레를 크게 벗어나본적 없던 나에게 윤희와의 만남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이었다. 윤희가 데려간 멋진 사람들이 가득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름도 낯선 술을 함께 마셨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함게 여행을 했다. 좋은 영화와 노래를 추천받고, 훌륭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무렵 윤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도 굉장히 많은데, 그 안에는 지금의 남편도 있다. 무척이나 좁던 내 세상이 윤희 덕분에 조금씩 넓어져왔다. 윤희에게는 늘 사람을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는 현실뿐 아니라 윤희의 만화 속에도 고스란하다. 마음 한편에 오래 남아 있던 익숙한 기억을 건드려, 잊고 지내던 풍경들을 눈앞으로 불러낸다. 처음 보는 장면인데도, 어딘가 지나온 것만 같고 경험해본 적 없는 이야기인데도 희미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윤힁의 만화에는 그런 묘한 힘이 잇다. 만화 속 낯선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힘. 벗으로서, 또 독자로서 나는 윤희와 윤희의 만화를 통해 수많은 새로운 세계를 겪어왔다. 윤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본 풍경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조금씩 삶의 방향을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그는 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렇게 서로 전혀 닿지 않을 것 같던 세계들이 연결되면, 그 안에서는 예상 밖의 일들이 생겨났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지 않은가. 내가 다른 이의 책에 실릴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역시 윤희와 함께하면 늘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 허지영 (동료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