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추천의 말 004
좋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월급 받으면 011 작가의 말 248 해설 252 |
박선영의 다른 상품
|
“정치를 잘하는 게 뭔데?”
“실력이 없다는 걸 자기도 아는 거지.” ---p.174 “다른 사람들은요?” “사람‘들’? 없어.” 태경이 껄껄 웃었다. 태경과 규영은 나란히 서서 흐뭇한 표정으로 진하를 바라봤다. 성별도, 나이도 분명 달랐지만, 이상하게 두 사람의 얼굴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텐션. 분위기. 오라. 그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완전히 동기화된 느낌이랄까.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이건 마치 뭐랄까. ‘지박령.’ 진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 두 사람과 같은 얼굴을 하고 나란히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쳤다. 순간, 뒷골이 서늘해지며 등줄기가 쭈뼛 섰다. ---p.71 띠링. 띠링. 띠링. 마음을 놓기가 무섭게 UI카드들이 서로를 마구 밀어올리며 로드됐다. 각 카드는 하나의 일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어 ‘일감’이라고 불렸다. 너울거리며 떠오르는 수십 개의 일감. 진하는 잠시 넋을 놓고 바라봤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막혀왔다. 진하는 프로젝트 LC의 프로그래머인 입사 동기 대훈의 말을 떠올렸다. ‘일이 많은 건 일이 없는 것보다 좋은 거야. 조직에 네가 필요하다는 증거니까.’ 맞는 말이었다. ---p.17 진하는 눈을 감았다. 속이 시끄러웠다. 아침부터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팀이 사라졌고, 1년 넘게 만들던 게임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섭종된 줄 알았던 게임은 살아 있었고 그 폐허로 가게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었을까.” 대답 대신 한숨만 새어 나왔다. ---p.61 진하의 기억 속 NPC들은 늘 여유롭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맞아줬다. 어린 진하는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NPC들은 어쩐지 초라하고 지쳐 보였다. 분명 다를 리 없는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그래픽이 달라진 건가.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40년 전 게임 엔진의 한계일까. 한참을 고민하며 서 있던 진하는 깨달았다. 달라진 건 자신이었다. ---p.82 그래도 누구에게나 살아남을 방법은 있다. 구석에 붙어 버티든, 더 강한 쪽에 붙든, 남들이 안 보는 틈을 파고들든 견뎌야 한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것이다. 끝까지 버티는 쪽이 승자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전배를 가야 해.” ---p.91 계속 심란해하기엔 삼겹살이 너무 맛있었다. ---p.158 “이사님처럼 쿰쿰한 냄새 풍기면서 여기서 썩어가기 싫다고.” ---p.162 시야는 끝없이 트여 있었지만, 그 점에 오히려 숨이 막혔다. 새하얀 바닥과 끝없는 암흑. 그 위에 점처럼 덩그러니 찍힌 기분. 가슴 안쪽이 서늘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의미도 남지 못하는 공간. 생각도 감정도, 자신의 존재마저도 전부 희미해지고 있다. “기분이 좀 이상한데.” “그치? 나도 처음엔 그랬어.” 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세상이 비어 있는 걸 본 적이 없잖아.” ---p.182 기억을 타고 올라가다 보니, 공교롭게도 황금의 나라가 나왔다. 열두 살, 학교가 끝나면 친구 넷이 늘 접속해 몰려다니곤 했다. 마을 상점을 구경하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웃다 보면 하루가 다 갔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이후에는 뭔가 불순물이 낀 느낌이다. 비교. 불안. 조급함. 하지만 다들 그런 것 아닌가. ---p.167 그 문장을 끝으로, 진하는 황금의 나라에서 튕겨 나왔다. 눈앞에는 새하얀 공간만 남아 있었다. 진하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냥 좀 씁쓸했다. ---p.230 “규영 님은 불안하지 않아요?” 진하가 물었다. “뭐가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거요. 앞으로가 한 치 앞도 안 보이잖아요.” “저는 원래 길치예요. 맨날 길을 잃죠.” “그래도 괜찮아요? 길을 잃으면 난처하잖아요.” 규영은 잠깐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길을 안 정해요. 그러면 잃을 길이 없더라고요.” ---p.238 |
|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이라.
애초에 회사에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나?” _ 본문 중에서 직원의 뇌파를 감시하면서 성과 없는 팀을 해체하는 회사 그 회사조차 외면한 ‘잉여 팀’으로 떨어진 청년의 가장 빛나는 일과 진하는 판교의 게임 회사 ‘텔루즈게임즈’의 2년 차 막내 사원이다. 게임을 좋아하지도 즐기지도 않는 그가 이 회사를 택한 이유는 오직 높은 연봉과 복지 때문이다. “직원 대우가 좋은 회사이니, 일단 (이력서를) 넣은” 진하는 마치 주어진 길을 따라가듯 게임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의 BCI 시스템은 직원을 철저하게 데이터로만 관리하고 실시간으로 평가를 매긴다. 진하는 상위 평가와 진급을 위해 하루를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쪼개며 ‘일감’과 ‘성과’에 매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팀이 해체되고, 진하는 본의 아니게 BCI 기록 시스템을 쓰지 않는 팀에 배속된다. 40여 년 전 출시되어 사실상 방치된 가상 세계 게임 〈황금의 나라〉 팀이다. 수기로라도 성과를 기록해 부서 이동을 노리는 진하를 맞이한 건 프린세스 컬러링북 색칠하기, 비눗방울 불기, 제철 수박 먹기 등 ‘성과’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일뿐이다. 이상하지만 새로운 것을 보면 눈을 반짝이는 팀장 태경과 ‘느낌 가는 대로’ 일하는 특이한 대리 규영 사이에서 진하는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성공은 하고 싶은데 정작 ‘하고 싶은 일’은 없고, 저들과 어울리자니 노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진하는 혼란에 빠진다. 여기, 정말 회사가 맞기는 한 걸까. “그래도 작가는 쓴다. 시스템 너머를 꿈꾸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효율과 성과의 언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시간과 마음, 작고 연약한 관계가 끝내 우리를 황폐로부터 구할지 모른다고.” _ 정이현(소설가) 『좋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월급 받으면』에서 주인공 진하와 독자를 함께 사로잡는 정서는 ‘불안’이다. 진하는 업무 평가가 대부분 ‘초록색’임에도 환각과 환청이 들릴 만큼 과로하고, 휴일마저 자기계발에 쏟는다. 자투리 시간에 논문을 읽는 동기를 보며 ‘저렇게 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초조해하고, 끼니마저 냉장고에 넣어 둔 샌드위치로 하나씩 때운다. “사자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자신을 습관적으로 다그치는 그 모습은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그 불안이 사라진다고 장담하는 대신, 불안 또한 삶의 일부이며 그것을 견디게 하는 힘은 일상의 작은 만남과 허술해 보여도 결국 이어져 있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진하는 어떻게든 부서를 옮기려 궁리한다. 방치된 자리에 눌어붙은 ‘지박령’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면서도 팀장 태경이 사주는 삼겹살을 더없이 맛있게 먹고, 팀원들과 강변을 걸으며 비비빅을 나눠 먹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손익을 따지지 않는 그 시간 속에서, 또 가상 세계에서 만난 이름 모를 플레이어와 업무 시간에 몰래 노는 일탈을 즐기는 동안, 진하는 곁에 있는 사람을 저울질하던 자신을 처음으로 의심한다. 입사 동기 대훈은 ‘물들기 전에’ 부서를 옮기라 다그치지만, 사내 정치와 익명 커뮤니티에 매달리느라 굽어가는 그의 어깨는 ‘성공’이 실은 허상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퇴근길에 어깨를 들썩일 만큼 즐거운 하루를 함께 보낸 사이마저, 우리는 계산해야 하는 걸까. 사람을 득실로 나누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소설은 오래 잊고 있던 동심의 감각을 다름 아닌 ‘놀이’의 자리에서 되살려낸다. 우리는 좀 더 놀아야 한다. 그래야 ‘나’를 지킬 수 있고, 어쩌면 거기서부터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이 소설이 끝내 마음을 붙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
우리는 명실상부하게 ‘돈이 될까’의 세계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은 효율성으로 환원된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벌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 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우리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그건 혹시 인생의 전부를 지배한다는 뜻일까? 희망과 상실, 회복과 낙담, 상상과 불안까지도.
『좋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월급 받으면』은 가까운 미래의 게임 회사를 배경으로, 효율과 성과를 좇는 삶을 경쾌하면서도 예리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 속에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성과라는 미래를 바라며 끊임없이 ‘테트리스’ 하듯 사는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꼭 닮았다. 이 소설의 시간은 근미래다. 내일은 뜻밖의 얼굴로 오지 않는다. 이미 시작된 현재의 연장선 위에서, 더 정교하고 매끄러운 표정으로 도래할 뿐이다. 그래도 작가는 쓴다. 시스템 너머를 꿈꾸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효율과 성과의 언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시간과 마음, 작고 연약한 관계가 끝내 우리를 황폐로부터 구할지 모른다고. ‘진짜 자기 인생’을 발견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 정이현 (소설가) |
|
우리는 명실상부하게 ‘돈이 될까’의 세계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은 효율성으로 환원된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벌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 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우리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그건 혹시 인생의 전부를 지배한다는 뜻일까? 희망과 상실, 회복과 낙담, 상상과 불안까지도.
『좋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월급 받으면』은 가까운 미래의 게임 회사를 배경으로, 효율과 성과를 좇는 삶을 경쾌하면서도 예리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 속에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성과라는 미래를 바라며 끊임없이 ‘테트리스’ 하듯 사는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꼭 닮았다. 이 소설의 시간은 근미래다. 내일은 뜻밖의 얼굴로 오지 않는다. 이미 시작된 현재의 연장선 위에서, 더 정교하고 매끄러운 표정으로 도래할 뿐이다. 그래도 작가는 쓴다. 시스템 너머를 꿈꾸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효율과 성과의 언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시간과 마음, 작고 연약한 관계가 끝내 우리를 황폐로부터 구할지 모른다고. ‘진짜 자기 인생’을 발견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 장강명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