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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일레븐 마이너스 투 2. 뷰잉 3. 레퍼런스 체크 4. 길 찾기 5. 병원 예약 6. 튜브 7. 펍 8. 학교 9. 슈퍼마켓 10. 운전하기 11. 머리 자르기 12. 테라스하우스 13. 커먼 14. 워터스톤스 15. 이스트본 16. 입원 17. 내셔널 트러스트 18. 날씨 19. 정원 가꾸기 20. 홍차 21. 공원 추천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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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몸으로 겪은 일을 때로는 더 깊게, 때로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보통 직접경험은 총천연색이고 독서와 같은 간접경험은 무채색일 거라고 짐작하지만, 내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여행이든 해외살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겪었던 일들은 색이 빠지고 뼈대만 남아 색칠하기 좋은 밑그림이 된다. 책을 크레파스 삼아 기억 속 이곳저곳을 채워 가는 경험은 여행지에서 처음 느낀 흥분 못지않게 흥미롭다. 그런 점에서 책 소개 코너도 즐겁게 봐 주시기를 바란다.
--- p.12 “아빠, 여기는 치과가 별로 없잖아. 그래서 애들이 내 은니를 엄청 신기해 해. 아침마다 보여 달라고 해.” 이것이 과연 산업혁명의 나라이자 40개국이 넘는 영연방의 본국이자 총생산 규모 세계 5위에 빛나는 영국에서 할 만한 대화인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는데, 나도 이미 안과를 찾느라 어지간히 고생했던 터라 ‘그래, 신기해 할 수도 있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매일 아침 은으로 씌운 어금니를 자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한국에는 테스코보다 치과가 많다는 둥 하면서 조국의 우월한 의료 시스템을 이미 열심히 설파한 모양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아이는 주먹을 눈앞에서 꼭 쥐어 보이면서 덧붙였다. “그래서 양치질 잘하고 가야 돼. 오늘도 어금니 보여 줘야 하거든!” --- p.62 그나저나 도심의 펍에서 사람들이 자리에 앉질 않고 밖에 서서 맥주를 마시는 이유는 싱겁게도 2007년부터 실시된 실내 흡연 금지 정책 때문이란다. 흡연과 음주란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나 뭐라나. 일행 중 몇몇이 흡연자일 경우, 안에 자리 잡고 들락날락하느니 그냥 야외에서 맥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자 하는 식으로 시작된 것 같은데, 이제는 그게 하나의 문화가 된 모양이다. 펍이 퇴근 후에 가볍게 한잔하러 가는 곳이라는 점도 영국인들이 펍 내부의 식탁에 앉지 않고 가게 앞 골목에 옹기종기 모이는 이유 중 하나다. 식사할 요량이면 레스토랑에 가지, 펍에 가지는 않는다는 것.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아 참, 펍 앞 골목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만 가능하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야외 음주가 불법이라고. --- p.83 영국의 방송국인 ‘채널4’에서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말해 준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는데, 슈퍼마켓에 관해서라면 ‘당신이 어디에서 장을 보는지가 당신을 말해 준다(You are where you shop)’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가디언』의 표현을 빌리자면, 테스코에 가는 사람은 세인즈버리에서 장을 보는 사람에 비해 술에 취해 공공장소에서 바지를 훌러덩 벗는 추태를 부릴 확률이 높고, 키안티셔(Chiantishire: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별칭)에 별장을 소유한 이가 웨이트로스에서 쇼핑을 한다면 리들이나 아스다의 고객은 키안티셔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거나 평생 별장을 가질 전망이 없다고 추정해도 큰 무리가 없다.(...) 테스코에 다니는 이는 가장 아래 단계인 ‘최저수입으로 살아가는(minimum income standard)’ 계층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이 기사를 읽다가 우리 집 열쇠 꾸러미에 달려 있는 테스코 클럽 카드를 떠올리고는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 pp.102-103 머리 자르는 동안 손님에게 말을 거는 것은 불행히도 한국만의 문화는 아닌 것 같다. 영국의 이발사나 미용사도 마찬가지였다. 파크 바버스의 이발사도 내 목에 가운을 걸면서 부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조용히 머리나 자릅시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영어 공부한다 생각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대화의 주제가 가게 이름인 ‘박 이발사들(Park Barbers)’이라는 데 이르렀다. ‘박(Park)’은 한국의 성씨이기도 하다고 했더니만 아저씨는 자기도 박씨 성을 가진 한국인을 안다며 반가워했다. 그 한국인은 바로 ‘지성 박’. 딱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은 아닌 것같았지만, 그래도 축구는 좋아하는지(누가 안 그렇겠나) 한국에서 온 성실한 미드필더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눴다. 거기서 그만해야 했는데, 신이 난 나머지 나는 박씨 중에 유명한 사람은 박지성뿐이 아니라고, 한국에는 두 명의 ‘박’ 대통령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이발사 아저씨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사에 관심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이 모든 대화가 서비스의 일부라고 생각해서였는지, 그는 대꾸할 말을 잠시간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두 대통령이 인기가 좀 있었냐고 물었고 나는 의외의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냥 그렇다고, 아저씨네 이발소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대답했으면 무난했을 텐데, 내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내뱉은 답변은 이랬다. --- p.123 테라스하우스에서의 생활처럼, 좋든 싫든 우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 산다. 이웃이 벽을 마주하고 있으니 큰 소리가 나면 나는 대로 듣고, 축구공이 넘어오면 넘어오는 대로 돌려준다. 싫어도 별수 없다. 그러다 고마운 일도 생기고, 같이 웃기도 하며, 잠시나마 친해졌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연립주택에서의 일상이 아닌가 싶다. 조금 불편할 수는 있으나, 때로는 그 불편함이 연대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벽 너머로 고성이 들릴 때마다 이웃집 부부에 대한 동지애가 솟아났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어지간히 데면데면하게 지내기는 했으나 때때로 음식을 나눠 먹었고, 열쇠를 깜빡 집에 두고 나왔을 때는 그 집 아이들이 담장을 넘어 (!) 우리 집 부엌 뒷문으로, 또는 2층 창문으로 침투해 주기도 했다. 이사 나올 무렵에는 자잘한 지난 기억들이 떠올라 초코파이를 주러 갔다가(정[情] 아닌가 정!) 한국에 가더라도 소식을 전하자며 엉겁결에 메일 주소까지 주고받았으나, 이후 서로 연락한 적은 전혀 없다. --- p.140-141 탕수육의 추앙 목록에는 지하철, 맥주, 달리기에 더해 역사 공부와 유적지 탐사도 있기 때문에, 에일 맥주를 먹이면서 자꾸 말을 해 보라고 부추기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뛰기도 바쁜데, 언제 저런 걸 보고 자료를 찾아서 머릿속에 넣어 놓는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달리기할 곳이 천지인 데다 몇 발짝 걸을 때마다 대단하든 그렇지 않든 역사적 장소가 튀어나오는 영국이야말로 탕수육이 살기에 꼭 맞는 나라가 아닌가 하는 잡념에 빠지곤 했다. 대부분의 영국인이 기꺼운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매일같이 펍에 갈 뿐 아니라 틈만 나면 동네 구석구석을 달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코리안 보디에 담긴 것 중 적어도 3할 정도는 브리티시 소울인지도 모른다. 탕수육에게 듣고 찾아간 윔블던 커먼의 숨겨진 명소 두 곳을 소개해 보겠다. --- p.150 이스트본에 도착하자마자 한 여성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와 함께 저녁을 드시겠습니까?” 이역만리 타국의 작은 해변 마을에 살고 있는 한 무리의 여성이 나의 빛나는 외모에 반한 나머지 나를 그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한 것일까? 슬프지만 답은 독자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것 같아서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다.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의 여성이 나에게 저 대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장소가 베스트 웨스턴 랜스다운 호텔 로비였고, 나는 체크인을 하는 중이었으며, 그 여성은 점원이었을 뿐이다. 표정은 매우 심드렁했다. 문제는 호텔 점원이 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하는지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p.170 버지니아 울프가 1927년에 발표한 소설 『등대로』는 다소간 갑작스럽게, 램지 부인이 아들 제임스에게 건네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 시작한다. “그럼 물론이지. 내일 날씨가 맑으면 말이야.” 오매불망 등대에 가고 싶어 하는 여섯 살 어린이 제임스는 기쁨과 기대에 들뜨지만 이어진 아버지의 매몰찬 한마디에 금세 풀이 죽고 만다. 램지 씨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날이 맑지 않을 거야.” (...) 엄밀히 말해서 이곳 기상의 특징은 늘상 비가 온다거나 바람이 분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변덕이 심하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날씨에 일정 기간 노출되면 날이 좋지 않더라도 그게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기대가 슬그머니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 지금 하늘이 구름으로 엉망진창이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뜰지 모른다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소한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불행한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고통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점, 종국에는 지나가고야 말리라는 점, 그것을 깨달아 아는 것만으로도 삶이 더 나아진다는 점이야말로 동서고금 강조되어 온 지혜이자 진리 아닌가. --- p.201 미스 파울러는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의 주인이다. 영국인이 정원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 원예 활동을 무엇보다 즐긴다는 이야기는 런던에 가기 전에도 종종 들었지만, 그는 보통의 영국인보다도 정원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았다.(...) 정원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정원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적지 않은 금액을 물어내야 했다는 불쌍한 세입자들 이야기를 꽤나 들었기 때문이다. 평생 잔디도 한 번 깎아 본 적이 없는데, 이 많은 꽃나무를 무슨 수로 건사한단 말인가. --- p.210 영국에 온 직후에, 아주 오랜만에 〈노팅힐〉을 다시 봤다. 영국에서 산다는 자각을 과도하게 하고 있을 때라 그랬는지 휴 그랜트가 극중에서 ‘영국인스럽게’ 그려지는 장면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대사의 절반 정도가 “맞아요(Right)”, “그렇죠(Of course)”, “실례합니다(Sorry)”인 것 같다거나 하는. 영국인들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법이 없더라, 속을 모르겠더라, 하루 종일 홍차 생각뿐이더라, 만날 날씨 얘기만 하더라 하는 식의 우스갯소리가 흔한 것 같은데, 그런 식의 일반화가 가능하다면 휴 그랜트가 분한 윌리엄 태커야말로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버전의 현대 영국인’이 아닌가 싶다. 영국, 영국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홍차다. 〈노팅힐 〉의 윌리엄도 미국인 배우 애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차를 권한다. 그때마다 거절당하는데, 한번은 이런 대답도 듣는다. “그놈의 차 안 마실 거라고요(I don’t want a goddamn cup of tea)!” --- p.220 그러나 볕 좋은 봄날 카페 정원에 앉아서 우유와 설탕을 넣은 홍차를 마시고, 잼 바른 스콘도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튤립과 벚꽃과 또 이름 모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봄밭을 지나 킹 헨리 마운드를 향해 나지막한 언덕을 천천히 오르다 보니, 잘 사는 게 별건가 싶어졌다. 버트런드 러셀은 1930년, 58세 되던 해에 쓴 책 『행복의 정복』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한 성원임을 자각하고, 우주가 베푸는 아름다운 광경과 기쁨을 누린다.“ 나는 꽃가루 알러지로 빨갛게 부어오른 코를 훌쩍거리면서, 한쪽 손에는 첫째, 다른 한쪽에는 둘째의 작은 손을 잡은 채로 푸르른 녹음 아래 다소곳이 펼쳐진 산책로를 걸었다. 그리고 위 구절을 떠올렸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이 근사한 도시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 대단한 노력 없이도 이 공원의 아름다운 광경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 p.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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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느 평범한 직장인이 런던이라는 낯선 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한참을 버둥거린 기록이다. 낯선 도시에서는 집을 구하고, 병원을 예약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모든 과정이 모험이고 퀘스트다(물론 그렇게 버둥거린 덕분에 가족과 이웃의 일상은 평화로울 수 있었다. 특히 내가 덕을 크게 봤다). 혹여 낯선 땅으로의 이주나 유학, 한 달 살기 같은 것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책에 담긴 ‘버둥거림의 기록들’이 대단히 실용적인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게다가 이 가이드는 매우 웃기기까지 해서, 한참 읽다 보면 애초의 목적은 잊은 채 라조기가 빌 브라이슨의 한국형 보급판 정도로 보이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저자 이름이 ‘빌 라조기슨’은 아닌지 표지를 다시 보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아니, 빌 브라이슨도 런던에서 수도 요금 고지서가 잘못 발행되거나 항구에 냉장고와 세탁기를 버리는 경험은 못 해 봤겠다.
자, 여기 빌 브라이슨도 못 해 주는 이야기들을 잔뜩 손에 들고 빌 라조기슨이 여러분 앞에 왔다. 기대하셔도 좋다. - 탕수육 (역사학자, 『역사책 읽는 집: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역사책 35』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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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어울린 라조기는 축구를 좋아하고, 어딘가 애매하면서 종종 빵 터지는 유머를 구사하는 친구다. 그래서 라조기가 영국에 간다고 했을 때, 시니컬한 영국식 유머처럼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금방 적응할 걸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영국에서 병원 가기가 얼마나 힘들고 거지 같은 일인지 거의가 욕설인 푸념을 한참 쏟아 내는 것 아닌가. 유머가 아니라 영국식 푸념이 늘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들었던 그 길고 긴 푸념이 이 책에 그대로 들어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덕분에 우리는 런던의 베이글보다 싱싱한 푸념을 집에서 받아 볼 수 있다. 혹시나 영국에 갈 일이 있는 여행자라면 의외로 참고가 많이 될, 귀여운 투덜투덜을 여러분께도 추천한다. - 임경빈 (작가·유튜브 채널 ‘헬마라이브’ 진행자, 『뉴스가 위로가 되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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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성인이 가족을 동반하고 외국에서 몇 년을 살아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착하면 집을 구해야 하고, 계좌를 개설해야 하며,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20대 유학생이라면 혼자서 어떻게든 견뎌 내겠지만, 가족을 동반한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가족들이 행복해야 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한다.
외국에서 실제로 생활해 보면, 한국에선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다양한 문제와 만나게 된다. 가령 집을 구하려면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하고, 은행 계좌를 만들려면 주소가 있어야 한다. 순환오류라는 이 치명적인 난제(!)를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 저자 라조기는 영국 생활 중에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를 자조적인 유머 코드를 섞어 흥미롭게 소개한다. 직접 겪었던 여러 시행착오를 알려 주고, 이에 대한 쏠쏠한 대처법(답이 없을 때도 많다)을 소개한다. 저자는 제목에 『런던 정착술』이라는 말을 넣었지만, 실제로 이 책은 영국 사회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 보고서에 가깝다. 천연덕스러운 필체로 자신이 겪은 다양한 사건을 늘어놓은 뒤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구성이 의외로 상당히 재미있다. 국제 뉴스 속에서 접하는 딱딱한 영국이 아닌 평범한 일상 속 영국, 나아가 익숙지 않은 다른 공동체의 삶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읽다 보면, “라조기 힘내!”라고 외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 길윤형 (『한겨레』 논설위원, 『조선의 갈림길』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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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은 스침이 아니라 겪음이다. 수없이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녀도 그저 스침일 뿐이다. 런던, 지구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도시. 라조기의 정착은 만만치 않았다. 집 계약서 앞에서 당황하고, 병원 대기실에서 지치고, 펍과 지하철 사이에서 흔들리며 도시를 몸소 겪었다. 그제야 술수든 기술이든 생겼다.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팟캐스트 ‘역사책 읽는 집’을 진행하는, 조금 이상한 보통 사람 라조기의 우당탕 분투기. 고되지만 유쾌하고, 허둥대지만 다정하다. 지구 반대편을 읽으며, 지금 우리를 읽는 이야기.
- 손성욱 (역사학자, 국립창원대학교 교수,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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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좋은 책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속적인 독서를 촉발하는 책이다. 저자가 소상하게 소개해 주는 것처럼 영국이나 런던에 대한 책들이 이토록 많은 줄 몰랐다. 나아가 오래된 책까지도 다시 꺼내어 보게 되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영국을 어떻게 묘사했던가, 나혜석은 『구미만유기』에서 무엇을 보았던가, 박권상의 『영국을 본다』도 처음으로 읽어 보았다. 각각 19세기 말, 20세기 초, 20세기 말에 출간된 책들이다. 동경과 탄복이 주조를 이룬다. 유길준은 ‘천둥소리’를 내는 것 같은 같은 지하철을 묘사하며 산업화에 감탄했다. 나혜석은 런던의 ‘여성 경찰’들을 부러운 눈길로 서술하며 남녀가 평등한 나라를 꿈꾸었다. 훗날 KBS 사장이 되는 박권상은 BBC 등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향유하는 사회를 관찰하며 민주화를 염원했다.
마침내 21세기 라조기의 『지금 당장 알고 싶은 런던 정착술 21』에 이르러서야 ‘일상’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것도 ‘ㅋㅋㅋ’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는 특유의 위트를 한가득 품고서 우당탕탕 런던살이를 살뜰하고도 살갑게 그려 내는 것이다. 지난 150년의 변화가 단숨에 읽힌다. 유머는 인지의 여유로부터 비롯하는 심리학적 놀이다. 영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도 어느덧 그러한 넉넉함과 너그러움을 확보한 것이다. 좀처럼 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던 1999년 런던의 버거킹 알바 앞에서 느낀 무력감과 열등감은 사라졌다. 나는 다시 새 책들을 찾아보고 있다. 19세기 대영제국 출신이 아시아의 델리에서, 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오세아니아의 시드니에서 남겼을 법한 정착술에 대한 책들이다. 『런던 정착술』처럼 ‘자조적 유머’의 심리적 여유가 흘러넘치는 저작들이 제법 있을 것만 같다. 실로 유쾌하게 읽었다! - 이병한 (역사학자, 『유라시아 견문』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