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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에 충실하기
1부 혼자가 될 나에게 여자니까 못해도 돼 마지막 참관수업 지지 않는 삶 계속 바뀌는 이야기 대나무숲의 고백 왜 보고 싶지 않았을까 감정과 생각을 활자로 옮기며 아이한테 부끄러울 때 싸게 먹히는 생활 엄마를 미워해도 돼 오늘은 속절없이 2부 원하는 이름 대신 원하는 삶 역에 서 있는 기분 딸이 엄마에게 남은 사람들 아이 졸업식에서 전남편을 만난다면 아버지에게 받은 뜨거운 마음으로 상상과는 다른 맛 원하는 이름 대신 원하는 삶 글을 쓸 때의 나 엄마한테 내가 1순위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3부 두 번째 이별 편한데 좋지는 않아서 하지 않아도 좋을 말 엄마한테 하듯이 해 살면서 한 번도 나를 봐주지 않았다 한 가지 일로 오래 밥벌이를 하다 보니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우리 사이에 자그마한 털 뭉치 아프지만 뜨거운 상상 만나니까 좋은데 헤어지니까 더 좋다 4부 점을 이어 선으로 상실감이 아닌 놀라움으로 기준이 되는 사람 멈추지 말고 붙잡으려 하지 말고 추억은 끝까지 남아 온전히 현재에 엄마라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엄마들과 얼굴 말고 보는 게 생긴 거거든 오래 남는 것 편집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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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은 혼자가 된다》는 딸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겪은 사건과 내 생각의 변화 같은 것들을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따라가 본 기록이다. 시작은 아이와 내가 보낸 관계의 밀도를 남기고 싶었던 건데 자꾸만 그 마음과는 다른 이야기로 흘러갔다. 과거 3인 가족에서 2인 가족으로 전환할 때 내가 겪은 쓸쓸한 과정까지. 그리고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배우자와 헤어지는 일이 물리적인 독립이었다면, 아이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정서적인 독립을 지속해 왔다는 걸. ---p.6
결혼 후 그분과 나는 각자 돈을 벌고 각자 쓰는 생활을 했다. 강아지 분양비와 여름 휴가비도 공평하게 반씩 부담했다. 그렇게 살아보니 알았다. 나는 전혀 독립적인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결혼은 영화 보고 밥 먹고 차 마시는 데이트가 아니었다. 함께 사는 일을 매사 공평하게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p.19 “엄마, 1월 중순부터 나 전주에서 살기로 했어.” “뭐? 1월 중순이면 한 달밖에 안 남았잖아!” “이사하고 바로 학교 다닐 수 없잖아. 한 달쯤 학원도 미리 다니고 지리도 익혀야 하니까.” “…그래. 그래야겠지.” (…) 아직은 초밥이 없는 내일을 상상할 수 없다. 품에 있던 아이가 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유일한 가족이 떠나는 일이다. 가장 아쉬운 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일상과 감기까지 공유했던 사람이 사라지는 거다. ---p.47 산에서 내려갈 때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렀다. 스틱을 쥐고 있어서 닦을 수도 없고, 눈길이라 잠시 설 수도 없었다. 일곱 시간을 예상한 산행은 쌓인 눈을 헤치고 사라진 길을 다시 만들며 걷느라 열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 초밥이와 영영 헤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른 관계를 시작하려는 것뿐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별개였다. 오랫동안 품어온 아주 소중한 게 빠져나간 그 공백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p.108 예전에 나는 해외여행, 쇼핑 같은 이벤트가 많을수록 행복한 삶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특별한 순간은 저절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굳이 쫓아가지 않아도, 목표로 하지 않아도 반짝이는 순간들이 알아서 내 앞으로 다가온다고. 그 사실이 얼마나 나를 느긋하게 하는지 모른다. ---p.134 이제 아침에 일어나서 초밥이 등교 시간에 맞춰 밥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에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으로 밤사이 굳은 몸을 푼다. 전에는 시간 계산을 하느라 요가할 마음을 좀처럼 먹지 못했지만, 지금은 나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최근 외모를 가꾸려는 관심도 부쩍 늘었다. 미용실에 가서 펌을 할까 싶기도, 옷을 사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편안함과 여유가 마냥 좋기만 하지 않은 건 왜인지 모르겠다. ---p.160 이삿짐 차는 침대, 장롱, 냉장고, 세탁기처럼 부피 큰 것들을 먼저 싣는다. 그런데 의외로 그것들이 트럭을 한가득 채우는 건 아니다. 짐은 여전히 많아서 트럭의 절반은 자잘한 살림을 블럭처럼 잘 계산해 쏙쏙 쌓아 넣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여러 역할도 비슷하다. 늙어가는 부모를 챙기는 일, 아이를 돌보는 일,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 부피가 큰 이삿짐이라면 며느리 역할은 자잘한 살림이다. 그것까지 더해지면 조금의 빈틈은 쉽게 사라지고 만다. ---p.168 꽤 괜찮은 집을 가진 줄 알았다. 집이 곧 나라고 여기고 그런 나를 과시하고 싶었다. 집을 이루는 벽과 타일, 벽지 어느 것 하나 내가 선택한 게 없는데도 그것이 다 내 거라고 단정했다. (…) 집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것도 잠시, 언젠가부터 그 집에서 생활하는 게 편하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p.180 초밥이를 한 달여 만에 만나서 겨우 하룻밤을 보내고 전주로 데려다주는 날이 많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홀로 돌아오는 날이면 차 안에서부터 이미 허전한 마음이 차오른다. 문득 그 사람도 초밥이를 만나고 돌아갈 때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동지애 비슷한 감정이 올라왔다. 부부로서 나눠 갖지 못했던 감정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이를 통해 나누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또 다른 마음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지금, 이런 모습으로 각자 다른 곳에 서 있지만, 그것대로 괜찮고 소중한 관계라는 마음. ---p.218 “엄마 딸로 태어나서 너무너무 좋아. 엄마 딸이 아니었으면 지금만큼 행복할 수 없었을 거야. ” (…) 예전에 나는 세상에 두 가지 길만 있다고 생각했다. 이혼 가정 아니면 정상 가정, 행복 아니면 불행, 성공 아니면 실패, 이기거나 지거나… 어떤 상황을 맞든 그 일을 둘 중 하나로 정의하려 했다. 전남편과 헤어지고 한동안 불행하다고 여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인생이란 이렇게나 촘촘하고 다양해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p.221 같은 경험을 나와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하는 초밥이를 보면서 나도 나를 객관적으로 보려 애쓰게 된다. (…) 번번이 아이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 눈에 내가 한심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더 나은 곳으로 나를 밀어내고 싶어진다. ---p.253 줄기 산행은 빠르게 움직이는 내 마음을 언제나 제 속도로 돌려놓는다. 종착지에 빨리 갈 목적이라면 차를 타고 가면 그뿐이지만 줄기 산행에서는 그것이야말로 무의미한 선택이니까. 다음 달이면 지난번 내려온 지점부터 다시 걷기를 시작해야 한다. 과정을 밟아 선을 잇는 작업을 계속하는 거다. 지금 내가 걷는 이유도 그저 과정을 거듭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 사람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가는 길, 오늘 든 생각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남은 건 과정에 있었던 일뿐이라고. ---p.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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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의 사건, 이것은 현재이다.
현재는 자기로부터 출발한다. _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le Levinas 잘 맞는 룸메이트 같은 딸아이와도 헤어질 시간을 준비해야 했다. 아이는 자기만의 목표가 생겼고, 더 잘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익숙한 것과 거리 두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중3 딸아기가 상급학교 진학을 목표로 독립을 선언했을 때 작가는 이별의 과정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뱃속에서부터 쭉 함께했던 딸과의 시간이 죄다 흩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에. 그런데 이야기는 마음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과거 3인 가족에서 2인 가족으로 전환할 때 겪은 쓸쓸한 과정이 딸려 나왔고, 아이와 함께했던 밀도 높은 시간은 다른 형태로 빛났다. 서로에게 사랑의 시범을 보여주었던 이 둘은 이미 믿음을 나눠 갖고 있었다. 서로 떨어져 살아도 각자 잘 지내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그 신뢰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현재가 좋다고 여기는 깊은 만족감으로,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향한 무한한 기대로도 이어진다. 짐작건대 좋은 관계 안에서의 ‘홀로서기’는 ‘나’를 정의하는 과정이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그가 존재자라는 사실, 오직 이 사실로 주체는 홀로 있다. 레비나스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한 주체가 주인이 되어 ‘존재’하게 되었을 때, 그 관계에서 고독이 생겨난다고. 자기 안으로 들어가고 파헤치고 존재를 정의하는 게 홀로서기 작업이라면 고독은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필수 조건인 셈이다. ‘살면서 한 번도 나를 봐주지 않았구나. 남한테 어떻게 보일지만 신경 쓰느라 내 안이 텅 비는지도 몰랐구나.’ - 「살면서 한 번도 나를 봐주지 않았다」 중에서 『살면서 한 번은 혼자가 된다』에도 저자가 겪은 뼈아픈 순간들이 독백으로 흘러나온다. ‘오르막이 나올 때마다 길을 탓했던 게 지금까지의 나 아닐까?’ ‘살면서 고개를 드는 무수한 질문 앞에서 남이 대신 답해 주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이벤트가 많을수록 행복한 삶이라 착각했구나’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작가는 끝내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정의하는 일에 잠재된 힘이 있다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에 충실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 명쾌한 고백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관계에 갇혀 홀로 나아가지 못할 때도 있지만, 더없이 좋은 관계라서 유유히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관계와 좋아하는 것들을 돋움으로 하는 독립이라면 그 과정은 생기발랄하고 유쾌할 수 있다. _ ‘편집 후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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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본인의 허술한 민낯이나 속마음을 내보이고 싶을까. 그럼에도 그 나약함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반추하는 글을 읽다 보면 새삼 고맙다. 홀로 남아 비틀거리면서도 온전히 산 하나를 통과해 나아가는 독립 분투기. - 마녀체력(이영미) (『미리, 슬슬 노후대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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