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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기쁨으로 삶은 반짝인다
사과 속의 씨앗처럼 우린 어떤 기억을 품고 산다. 이 책은 작가의 유년에서 길어 올린 작품이다. 우물에서 물을 긷듯 슬픔과 아픔을 지나 가장 아래 반짝이는 기쁨을 퍼 올린다. 그리고 우릴 살아가게 하는 건 사소한 기쁨임을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2026.07.28.
우솔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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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웃음과 눈물의 낙원
발문|낙원의 기쁨_강화길(소설가) 작가의 말 |
全鏡潾, 본명:안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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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은 사과 속의 씨앗처럼 세상에서 꼭꼭 숨어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감꽃으로 덮인 길이야. 누가 부려놓은 듯, 마을 안길이 온통 감꽃으로 덮여 있었지. 감꽃은 흔히 미색이라고 하는 연한 노란색이야. 태어나 처음 입는 배내옷같이 옅고 흐린 색, 그건 초유의 색이기도 해.
---p.7 저 멀리 어린 시절에 묻어두었던 보석의 황금빛 광휘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해. 그때 그 아이가 정말 나였을까, 내가 정말 그 아이였을까?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내 안의 어딘가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세월이 지나 왜 나는 다른 내가 아니고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p.12 “슬프다.” “우리 새별이, 슬픈 것도 아나?” 새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픈 건 연못 같은 거야.” 마음에 틈이 있는 것처럼 저절로 물이 새어 들었다. ---p.16 섬뜩하게 파란 하늘과 바람에 떠다니는 수련을 담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연못을 떠올리니 새별이는 그립다가 어쩐지 슬퍼졌다. 슬픔을 느낄 때면 서늘한 물이 저절로 들어오는 연못의 틈이 자기 몸 안에도 있는 것만 같았다. ---p.48~49 봉연이 할매는 새벽에 나가 풀숲 사이에서 밤사이 떨어진 홍시를 주운 것이었다. 누런 박 바가지 안에 든 홍시 세 개가 불을 켠 듯 환했다. 세상이 사라진 듯한 충격 뒤에, 홍시가 그 텅 빈 세계를 메우는 순간이었다. 오직 홍시 세 개와 봉연이 할매가 세상의 전부였다. 그 둘은 영원히, 절대로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약속처럼 새별이의 마음을 채웠다. ---p.78 끝없을 듯 깊은 밤하늘에 별들이 보석 넝쿨처럼 얽혀 빛나고 있었다. 새별이는 눈물 너머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깜박이는 별떨기의 웃음소리를 듣고 울음을 그쳤다. 보면 볼수록 별은 더욱 많아져 마침내는 빈틈없이 하늘을 뒤덮었다. 덮인 하늘 뒤에도 그 뒤에도 별은 끝없이 가득한 것 같았다. ---p.116 윤수의 눈 속에서 반짝 빛이 났다. 그것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굵은 빗방울과 몸속에서 닦여 나와 빛나던 새 동전과 밤하늘에서 깜박이는 별과 같은 빛이었다. ---p.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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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한국문학의 근간을 호명하는 소설선 올-타임 그 첫 번째, 전경린이 등단 31년 만에 처음으로 꺼내놓은 유년의 기억 ‘올-타임’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곁에 함께했으며, 앞으로도 함께할 작가를 조명하는 프로젝트로, 김영사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한국 소설선이다. 그 시작을 등단 31주년을 맞이한 소설가 전경린이 연다. 사랑과 상실, 욕망과 모순으로 뒤엉킨 인간의 내면과 관계를 탐구하며 한국문학의 한 주축으로 자리해온 그가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작품을 들고 찾아왔다. 신작 《천 개의 웃음과 눈물의 낙원》은 작가가 등단 이후 처음으로 꺼내놓은 ‘빛나는 보물’ 같은 작품이다. “쓰지 않으려고 꽤나 버텼다”던 작가의 고백처럼, 이 소설은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유년의 기억에서 길어 올린 작품이다. 기억의 끝에서 길어 올린 한 줌의 광휘 쓰지 않으려 버텼지만 끝내 축복처럼 쏟아진 이야기 깜깜한 길을 걷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때, 딱 한 발짝을 떼기 위한 한 줌의 빛이 간절할 때, 우리 마음 한구석에서는 무언가 반짝 빛을 발한다. 그것은 어떤 기억이자 눈길이다. 내가 바라보았고, 나를 바라보아주었던 다정한 시선들. 세간의 평가나 잣대 없이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던 어린 날의 나.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나라고 하기엔 너무 먼 그 아이를 새별이라고 부르고 싶어.” 소설은 이렇듯 기억의 가장자리에 남아 있는 한 줌의 광휘에서 시작된다. “그 마을은 사과 속의 씨앗처럼 세상에서 꼭꼭 숨어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감꽃으로 덮인 길이야. 누가 부려놓은 듯, 마을 안길이 온통 감꽃으로 덮여 있었지. 감꽃은 흔히 미색이라고 하는 연한 노란색이야. 태어나 처음 입는 배내옷같이 옅고 흐린 색, 그건 초유의 색이기도 해.” 온통 감꽃으로 덮인 미색의 흙길을 지나 도달한 작은 마을. 소설의 어린 화자 ‘새별이’는 어느 날 마을로 이사 온 아이다. 작가는 새별이를 만나기 위해 “나선형의 기억을 따라” 이제는 “흙으로 덮여버린” 길을 오래도록 더듬어야 했다. 너무나 소중해 쉬이 꺼내볼 수 없던 기억이지만, 그 한 줌의 광휘는 때로 평생을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사과 속의 씨앗처럼’ 세상에서 꼭꼭 숨어 있는 마을, ‘태어나 처음 입는 배내옷같이’ 옅고 흐린 감꽃이 뒤덮은 그곳은 작가가 오랜 시간 아껴온 빛나는 보물이다. “그런데 낙원이라니” 아프고 불온한 시대 속에서도 기어이 피어난 웃음과 눈물 감꽃이 뒤덮은 마을은 언뜻 낙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은 “어딘가 아프고 불온”한 낙원이다. 곳곳에 전쟁의 상흔과 시대의 핍박이 짙게 배어 있다. 피난길에 포탄을 맞아 정신이 나간 ‘복덕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한쪽 다리를 잃고 돌아온 상이용사 ‘희조 아재’,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난 ‘순자 이모’, 치마를 입지 못하는 아이 ‘재남이’, 여섯 살 난 아이를 떼놓고 집을 떠나야 했던 ‘봉연이 할매’와 사람이 떼로 죽어 피로 물든 바다를 본 뒤론 다시는 바다를 바라보지 못하게 된 새별이 엄마까지 사연 없는 이가 없다. 발문을 쓴 소설가 강화길은 묻는다. “그런데 낙원이라니.” 강화길의 말처럼 “새별의 시간은 결코 낙원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은 그저 불행하기만 했을까? 소설 곳곳을 채우는 웃음과 눈물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새별이가 처음 세상을 감각하고, 상실을 예감하며, 타인의 사랑을 통과해나가는 날들은 감꽃이 눈처럼 떨어지던 순간, 이름이 처음 다정하게 불리던 찰나의 순간들로 눈부시게 반짝인다. ‘천 개’는 새별이가 아는 가장 큰 숫자, 곧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니 제목이 말하는 낙원은 다름 아닌, 셀 수 없이 많은 웃음과 눈물이 쌓인 곳이다. 전경린이 그리는 낙원은 행복만으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다. 그 안에는 기쁨도 있고, 고통도 있다. 그러나 전경린은 그 사이사이에 감꽃과 보리, 메주 냄새,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를 채워 넣음으로써 사소하지만 끈질긴 것들이 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근원임을 조용히 증명한다. 자극과 도파민이 넘쳐나는 시대, 이 소설은 그 반대편에 조용히 서 있다.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작가에게 평생 힘이 되어준 그 시절의 이야기는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두의 마음에 깊은 위로와 다정한 응원을 건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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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소설은 외로움과 슬픔, 사무치는 서러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빛났던 어떤 아이에 관한 기록이다. 맹랑하고, 눈치 빠르고, 서슴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아이. 그리고 그 시절 덕분에 여전히 빛을 내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궁금하다. 슬픔이 어떻게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상처가 어떻게 빛이 될 수 있을까. 새별이는 어떻게 사랑을 사랑으로 기억할 수 있었을까. - 강화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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