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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책머리에 붙이는 글 제1장| 해방 이전 교회 · 국가 관계의 구조적 변화 제2장| 해방 이전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대한 고찰 제3장|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갈등과 분립(1945-1955) 제4장| 1959년 한국장로교 분열: 통합 · 합동의 역사 해석의 차이 제5장| 1959년 한국장로교 분열: 미국 선교사와 미국 복음주의권의 반응 제6장| 1960년대 한국장로교 연합운동과 통합의 WCC 복귀 제7장| 박정희 정권과 교회 · 국가 관계 제8장| 한국 도시산업선교회의 선구자 조지송 목사의 활동과 사상 제9장| 한국교회의 성장과 감소의 원인에 대한 성찰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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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3·1운동의 준비와 확산 과정에서 주도적인 공헌을 하면서 커다란 에큐메니컬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교파와 지역을 초월해 하나가 되었다. 또 교회 밖의 이웃 종교인 민족운동 단체와 연합하였다. 한국교회는 3·1운동 과정에서 큰 희생을 당함으로써 외래종교 위치에서 민족적인 종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p.61 WCC 재가입 안을 총회에 상정한 서울노회 소장파 그룹은 이를 관철하기 위해 최종적인 노력을 했다. 김용준은 1969년 8월에 「대한예수교장로회와 W.C.C」를 발행하여 모든 총대들에게 배포했다. 이 책에는 9월 총회에서 WCC 복귀를 결정지으려는 목사들의 글을 실렸다. 이들은 통합교단의 방향이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과 함께 가야 한다고 확신했다. 이 노선에는 강신명 · 김용준 · 김동수 · 박창목 · 새뮤엘 마펫으로 연결되는 프린스턴 신학교 동문 커넥션이 있었다. ---p.212 얼어붙은 유신 정국을 돌파한 사건은 ‘남산부활절 연합예배 시위 기도 사건’(1973.4.22)이었다. 이 사건의 주모자들은 박형규 · 권호경 · 김동완 등 수도권 빈민선교 실무자들과 KSCF 실무자들이었다. 사건 당일 당사자들은 준비한 플래카드를 펼치지도 못하고, 유인물만 소수에게 배포한 후 물러났다. 두 달 후, 보안사는 이 사건을 ‘내란예비음모’ 사건으로 확대하고 공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사건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학생운동을 자극하여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물꼬를 열었다. 짐 스텐츨은 이 사건을 취재해 보도했고, 국내운동을 지원하려는 국제적인 기독교 연대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당시 재판기간 동안 시작된 기도회는 훗날 종로 5가의 ‘목요기도회’로 발전했다. ---pp.234-235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는 질적 성숙 없이도 수적인 성장을 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하는 교인감소 현상이 바로 그 증거이다. 한국교회는 내부모순에 직면했다. 전도하고 인도해야 하는 교회가 사회적 지탄을 받는 곳이라면 어떻게 전도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교회 성장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어야 한다. 교회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가 아닐 때, 전도와 선교는 교회의 자기 확장 도구로 전락한다. 자기반성과 개혁이 없는 교회성장은 오히려 교회의 본질을 손상한다. ---p.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