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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소설가
임현
창비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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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부딪히는 돌과 바위들에게
느리게 흩어지기
분재
나를 아는 사람들
행복한 소설가

해설 | 민선혜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소개 1

林賢

1983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201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단편소설 『그 개와 같은 말』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7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8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 『그들의 이해관계』, 중편소설 『당신과 다른 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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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416g | 128*188*19mm
ISBN13
9788936439989

책 속으로

“저도 제가 너무 염치없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정말 부탁할 데가 여기밖에 없었어요.”
그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받는 마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의 관대함과 너그러움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그에게는 전혀 없었다.
--- p.42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아무것도 쓰지 않고 어떤 것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 온몸이 흠뻑 젖어 모든 것이 씻겨가도록, 원철에 대한 모든 마음과 기억 들이, 내가 나의 잘못을 스스로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정혜는 무작정 걸어볼 생각이었다.
--- p.80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신부님, 나는 그래요. 내가 품은 희망들은 어딘가 나를 떳떳하지 못하게 만들거든요.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건, 오히려 나의 억울함을 생각할 때뿐이었습니다.
--- p.119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고해소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지은 죄만 간략히 고백하시고, 죄를 지은 이유를 설명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의 잘못을 고백하기 위해서 왜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변명할 수밖에 없었는데, 고작 나 한 사람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 이유 없이 스스로의 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일까.
--- p.153 「부딪히는 돌과 바위들에게」

“산책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알아요? 흩어질 산, 꾀 책. 근데 그 둘을 더하면 어떻게 걷는다는 의미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명길은 산책은 그냥 산책이지 다른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듣고 보니 이상했다. 산책이라는 게 흩어지는 거구나. 꾀를 내어 흩어지는 일. 흩어지기 위해 꾀를 내는 일.
--- p.171 「느리게 흩어지기」

친모를 만난 후 선우가 느꼈을 감정이 무엇이었을지, 재우는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왜 우리가 아니라 그 여자였을까. 우리에게 부족한 게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때마다 불쌍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을 재우는 후회했다.
--- p.202 「분재」

나의 정당함을 위해 나는 다른 누군가를 더 나쁘게 만들어야만 했다.
--- p.242 「나를 아는 사람들」

정은 씨가 올린 글은 꽤나 정갈하고 단순하면서도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문장이었다.
나는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그 메시지에 답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286 「행복한 소설가」

출판사 리뷰

“어쩌면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부끄러움을 견디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게 아닐까요.”
용서와 단죄, 믿음과 의심 사이의 치열한 저울질

2025년 현대문학상 수상 후보작인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은 재정 악화로 운영하던 카페를 정리한 ‘정혜’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불륜 상대인 원두 거래처 사장 ‘원철’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고, 원철의 아내는 정혜에게 그동안 원철이 눈감아준 원두 값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정혜는 돈을 빌리기 위해 전 애인인 ‘민수’에게 연락한다. 불륜 상대의 아내에게, 매정하게 버렸던 전 애인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막막한 상황, 정혜는 그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용서에 관한 임현의 문제의식은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에서 좀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위선을 응시하는 데까지 닿는다. 한국현대소설학회 ‘2026 올해의 문제소설’로 선정된 이 작품은 손해사정사인 ‘나’의 고해성사로 전체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나’는 보험사기에 가담하다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소년 ‘권선호 라자로’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겹쳐 본다. 아버지의 진실을 은폐하는 대가로 가해자로부터 합의금을 받은 모멸적인 과거를 떠올린 것이다. 어느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리가 뒤바뀌는 고백을 따라 소설은 못 견딜 만큼 부끄러운 감정을 딛고 타인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 끈질기게 묻는다.

타인에게 굴절되고 증폭되는 내면의 균열
마음의 밑바닥에서 마주하는 통렬한 진실

앞선 두 작품이 용서라는 행위에 얽힌 복합적인 감정과 동기를 들여다본다면, 호의와 배려가 적의와 시혜적 태도로 귀결되는 작품들 역시 첨예하다. 소설집의 첫 작품인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는 동해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나’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여행길이지만 차 안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여행 직전, 아들 ‘정호’가 ‘아내’의 지인 ‘은 선생’의 신상을 인터넷에 마구잡이로 유포했다는 사실이 발각되고, 아내는 그런 정호에게 실망을 감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호는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아내는 어째서 은 선생을 그렇게 열성으로 도왔으며, ‘나’는 왜 “눈앞에 있는 은 선생이 몹시 가엾게 느껴”졌을까. 긴 도로를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는 점차 은 선생을 향한 가족의 연민과 기만, 곪을 대로 곪은 가정의 균열을 폭로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의 주인공 ‘나’는 시골로 내려가게 된 친한 선배 부부의 공방을 물려받게 된다. 단, 월 칠십만원의 임대료도 함께 말이다. 한편 같은 건물의 종친회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상문 씨’와도 가까워지는데, 그 사정이 복잡하다. ‘나’는 형편이 어려운 상문 씨를 위하는 척 자신의 이익만 고려하는 상가 입주민들의 위선은 불편해하지만 정작 상문 씨를 향한 자신의 시혜적인 태도는 외면한다. 하지만 상문 씨를 배려한다는 ‘나’의 행동 또한 오히려 상문 씨를 곤란하게 만들고, 슬슬 공방의 임대료도 부담이 된다. 소설은 어설픈 호의에서 비롯한, 선행이라 믿고 행한 것들이 실은 얼마나 연약하고 얄팍한지를 드러내 보인다.
그런가 하면 「부딪히는 돌과 바위들에게」는 표절 문제를 통해서 얼핏 견고해 보이는 믿음의 뒤편에 숨은 이기심과 오만함을 뜯어본다. ‘나’는 대학의 시간강사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열성만 한 실력은 없는 수강생 ‘종규’에게 종종 조언과 추천도서를 일러준다. 어느 날 종규가 다른 수업 과제에서 ‘나’의 문장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종규를 살뜰히 챙겨줬다고 자부하는 ‘나’는 당연히 종규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종규를 용서하려 마음먹는다. 그러나 되레 자신을 원망하는 종규의 전화를 받은 뒤 종규를 “아끼긴 했으나 믿어주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심지어 종규의 표절 흔적에서 자신의 감추고 싶은 비밀을 발견하여 혼란스러운 상태로 거리로 나온 ‘나’는, 애꿎은 사람에게 폭언을 하며 무너지고 만다.
그밖에도 외로움에 사무쳐 글쓰기 모임에 나가지만 자신의 글은 한 줄도 발표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작업 노트에만 적어두는 ‘명길’과 그런 명길을 다 알겠다는 듯 말을 거는 ‘성희’ 사이의 이해와 오해를 그린 「느리게 흩어지기」, 입양한 아들을 불쑥 나타난 친모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부의 사정을 담은 「분재」는 섬세한 필치로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며 사람들이 으레 선의라고 믿으며 행하는 일들에 의혹을 덧대고, 마음 깊숙이 담겨 있는 선민의식과 위선을 폭로한다.

거짓된 답을 걸러내고 남은 질문들로 짜 올린 서사
‘좋음’의 이면을 끝까지 들추어내는 시선

본래의 선한 의도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내가 행하는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성가신 간섭에 지나지 않는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믿었던 행동들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면. 그 순간의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에 대해, 우리는 감히 어떠한 말을 얹을 수 있을까. 표제작 「행복한 소설가」는 좀처럼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는다. ‘나’는 자신이 지나치게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기 때문에 소설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한다. 뭐라도 쓰기 위해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던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내 ‘연재’가 일하는 도서관에 입사한 ‘정은 씨’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은 씨는 업무에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지만, 경계선지능인이라는 이유로 암암리에 배려를 받는다. 심지어 정은 씨의 어수룩한 일처리 때문에 연재가 억울하게 곤란한 처지가 되자, 동료들은 정은 씨가 딱하다며 연재가 이해해줄 것을 강요한다. 한편 정은 씨 또한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동정 어린 배려를 거부하며 도서관을 떠난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정은 씨가 밉다는 연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이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으려 시도한다. 과연 ‘나’는 “한없이 가여워하다가 결국에는 혐오하게 만드는 저 선량하고 악의 없는 보통의 마음들에 대해” 쓸 수 있을까.
행복과 불행, 용서와 복수, 배려와 무도,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우리는 으레 전자를 ‘좋음’의 영역에 두고 그것을 행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과연 사람의 마음을 두 축 중 어느 한쪽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임현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무시되고 외면당하는 복잡한 중간지대에 끈질기게 머무르며 복잡다단한 행위의 동기를 하나하나 분리해낸다. 끝내 판단하지 않으려는 저 불편하고도 어딘지 미더운 펜 끝. 그 날카롭고도 끈기 있는 시선이 지금 여기 우리 곁에도 다가와 앉아 있다.


작가의 말(부분)
나에 대해서 쓰는 일이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백하기보다는 어떤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변명에 더 가까웠다. 누군가를 부정하지 않고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나를 싫어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슬플 때 남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덜 슬퍼지고, 지나간 나의 불행은 간혹 자랑이 되기도 한다. 나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뿐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와 자주 다투고 실망하며 때때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

겨우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또 한권의 책을 묶는다.

2026년 7월
임현

추천평

이 작가, 나를 자꾸 주인공으로 삼는다. 나는 평범하고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임현의 소설을 통과하고 나면 그런 믿음과 확신이 무너진다. 임현은 지당하고 일상적인 내 감정까지 호되게 흔들어놓고는 한다. 대문자의 감정이 해체되고 이름할 수 없는 소문자의 감정들이 남는다. 어쩔 수 없이 이 불편한 정서적 체감까지 내 모습이다. 임현은 일상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윤리적 딜레마를 발견해왔다. 존중을 통한 사회적 배려와 연대까지 순도를 따진다. 세번째 소설집 『행복한 소설가』에서 임현은 작가 자신에게 서사를 더 밀착시킨다. 언어, 표현, 제도의 딜레마를 넘어서 감정과 정서의 차원까지 치열하게 살핀다. 쓰는 자로서 소설의 윤리까지 묻고 있다. 반성과 비판에 자신이 빠진 적 없고, 삶에 대한 연민은 있되 결코 자기를 비하하지 않는다. 이 진실됨이 임현의 소설이 갖는 전위성이다. -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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