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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모자보건 100년의 우여곡절
1장공적 영역으로 들어온 임신과 출산 : 보구녀관(1887)에서 유유아보호심득(1932)까지 2장위생에서 보건으로, 분만실과 신생아실의 등장 : 부녀국 설치(1946)에서 대한가족계획협회 설립(1961)까지 3장피임과 단산의 시대 : 가족계획사업(1962)에서 둘 낳기 운동(1971)까지 4장조산사와 의사의 공존 : 모자보건법(1973)에서 인구 폭발 방지 범국민결의대회(1984)까지 5장인공생식과 인공유산 : 한국의 시험관아기(1985)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2019)까지 6장한국의 반사실 궤적 : 북한의 모자보건(1950~2022) 맺음말: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변화와 복원 출처 참고 문헌 부록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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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했고 일터에서의 모성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성 단체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높아졌다. 전통 산파와 조산사는 출산 이후에도 산모와 신생아를 함께 돌봤지만 병원과 전문의 제도가 이식되며 소아 의료가 산모 관리로부터 분리되었다.”
---『1장』 “소아 의료는 전후 소아 전문의 제도로 정착했다. 어린이 대상 예방접종을 법으로 의무화하며 필수 예방접종이 소아 의료의 핵심 행위 중 하나가 되었다. 1960년 병원에 신생아실을 만들고 보육기를 사용하면서 아기는 출생 직후 산모와 분리되기 시작했다. 광복과 전쟁 이후 발생한 고아, 기아, 미아를 보살피던 시설들은 이후 소아 전문병원이 됐다.” ---『2장』 “산아제한에 보건 자원이 집중되는 동안 안전한 임신과 출산에 배정된 예산은 가족계획에 비해 훨씬 적었고 시설 분만을 위한 공적 기반은 여전히 열악했다. 시설 분만이 일반화되기 전, 한국 여성들은 역설적이게도 출산을 제한하기 위한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의사들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3장』 “임신중절 대부분이 여전히 법의 허용 범위 밖에 있었지만 가족계획사업은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으로 새로운 동력을 얻고 다양한 피임 기술을 도입하며 더욱 탄탄한 관리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자금과 기술 지원과 정부의 다양한 유인책, 가족계획사업에 앞장섰던 산부인과, 비뇨기과 전문의들을 통해 난관·정관수술과 같은 영구 불임시술이 이 시기 가장 우세한 피임법으로 자리 잡았다.” ---『4장』 “1960~1970년대가 피임 기술의 시대였다면 1980~1990년대는 보조생식술(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1978년 첫 시험관아기가 탄생한 이래로 각 국가에서 시험관 시술을 성공시키며 본격적으로 인공 수태의 길이 열렸다. 초창기 보조생식술은 일부 병원에서 하는 특수 시술이었으나 혼인 연령이 높아지면서 점차 많은 부부가 선택하는 흔한 치료법이 되었다.” ---『5장』 “해방 이후 약 80년간 서로 다른 나라로 살아온 북한의 모자보건 현대사는 하나의 역사에서 갈라져 나온 한국 모자보건사의 평행 궤적이라 할 수 있다. 남한과는 다른 정치경제 체제하에서 산전 진찰과 출산, 소아 의료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반사실(counterfactual) 상황으로서, 북한의 사례는 현재 한국의 의료 체계가 아니었을 경우에 출산의 모습이 어떠했을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6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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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출산율 여섯 명에서 0.7명이 되기까지
임신과 출산에 얽힌 한국 여성의 100여 년을 56개 장면으로 되짚다 모자보건은 공중보건, 국제보건의 핵심 분야로, 엄마와 그 아기에서 점차 그 대상이 확대되어 현재는 생애주기 건강의 관점에서 모성, 신생아, 어린이, 청소년의 건강을 아우른다. 다른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여성들도 역동적인 근현대사를 거치며 임신과 출산에 있어 시대 환경에 따라 세대 간 공유하는 경험이 변해 왔다. 모자보건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것은 베이비부머들에게는 가족계획이었지만 밀레니얼들에게는 출산 장려금일 수 있다. 이 책은 연대기 형식으로 근현대의 한국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조선 말기와 일제 식민지 시기에 정부와 민간의 병원이 전국에 자리 잡았지만 대다수의 여성들은 여전히 집에서 분만을 했다. 조산사 제도를 통해 양성된 조산사들은 조산원를 차리거나 왕진 가방을 들고 임부의 집으로 호출되어 아기를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를 전후로 조산사는 급격히 감소했고, 오늘날 한국의 모든 산전 진찰과 분만은 병원과 산부인과 전문의에 집중되어 있다. 이 극적인 변화는 의료법 개정, 가족계획사업과 의료보험 제도의 도입, 현대 진찰 기술 등 사회 전반의 흐름과 깊게 맞물려 있다. 이 책은 근현대 여성의 몸과 출산, 그리고 의료의 역사가 얽혀 흥미로운 서사를 이룬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산부인과와 예방의학 전문의를 취득한 의학 연구자로, 현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보건대학원에서 예방의학과 역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은 모자보건 수업을 준비하던 지은이가 한국의 모자보건 역사에 대해 스스로 아는 것이 없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해, 오랜 고민과 자료 수집을 거쳐 쓴 결과물이자 한국의 모자보건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가정에서 병원으로, 위생에서 보건으로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과거의 모자보건은 주로 산모와 영유아의 생존을 목표로 했다. 산모 사망률을 낮추고, 영아 사망을 줄이며, 감염병을 예방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한때 집안의 여성들끼리 조용히 치렀던 분만은 의료 전문직이 등장하면서 점차 공적 서비스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국가가 출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전문 분만 보조 인력이 등장했으며, 여성들은 집이 아닌 곳에서 아기를 낳기 시작했다. 식민지 시기에 일제가 피임을 금지하는 한편으로 제국주의 우생학이 산아제한의 움직임과 결합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해방 이후 모자보건 전담 부서가 생기고 현대 분만 시설이 빠르게 자리 잡으며 신생아실과 소아과 전문의 제도가 만들어졌다. 모자동실의 출산에서 엄마와 아기가 분리되고 모자보건에서 소아 의료가 독립하였으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개인적·환경적 실천에서 국가나 사회적 차원의 생명 보호와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차원으로, 즉 위생에서 보건으로 개념이 확장하고 발전했다. 분만 장소가 가정에서 병원으로 빠르게 옮겨 간 요인이 무엇인지는 지난 100년을 돌아볼 때 모자보건과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질문이다. 1962년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시작된 가족계획사업은 1970~1980년대에 이르러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할 만큼 공격적으로 시행되었다. 농촌 구석구석을 이동 ‘진료’ 차가 다녔고, 국가가 피임 방법을 정해주었으며, 루프를 직접 생산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여성이 의사로부터 피임 시술을 경험했기에 산전 진찰이나 분만을 위해서도 자연스럽게 병원과 의사를 찾게 되었다. 단산을 원하는 경우 제왕절개로 분만을 하면 개복한 상태에서 난관결찰술을 함께 받아 영구 피임까지 해결할 수 있었으니 그에 따른 선호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자녀의 수가 줄고 건강보험으로 병원 분만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병원과 조산원 사이의 선호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조산사의 자리는 그 반대편에서 좁아졌다. 조산사는 청진기와 초음파 같은 의료 기기를 다룰 수 없는 등 법적으로 가능한 의료 행위가 제한되었기에, 최신 기술과 장비로 산전 진찰을 하고 경우에 따라 태아의 성감별과 임신중절까지 가능했던 의사가 점차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며 인공임신중절도 가족계획을 위한 피임법의 하나로 활용되었고, 임신중절의 허용 한계에 드러난 우생학의 유산은 오랫동안 현장에 남았다. 산전 진찰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은연중에 선별을 거친 출산이 가능해졌고, 이러한 검사들이 현대 산과 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며 전문의 중심의 산전 관리는 더욱 공고해졌다. 개업 조산사와 지도 의사가 공생하면서 경쟁하던 시기를 지나, 현대 산전 진찰 기술로부터 소외된 조산사는 필수 의료 인력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제도 지원에서도 배제된 채 구시대의 직업이 되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여성의 전문직이 이 땅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정부의 출산 장려책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려면 … 여성의 자기 결정권, 여성 중심의 분만 환경 등 “선택” 보장 단순한 의료의 연대기를 넘어 지난 100년이 답하는 오늘의 물음 그렇다면 현재의 저출생 상황은 출생을 억제한 가족계획사업이 과도하게 성공하고 최근의 출산율 제고 정책이 실패한 결과일까? 지은이는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 핵가족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 현대 피임 기술의 보급이 맞물린 결과로 파악한다. 가족계획사업이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었던 것은 사업이 그만큼 효율적이었다기보다는 당대 가임기 인구의 선호와 국가적 목표가 마침 일치했기 때문이며, 지금의 저출생 상황은 청년들의 선택과 국가의 부양 기조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산과 의료 공백 또한 60여 년 전 자원 배분의 결과다. 정부 수립 이후 미국 모델을 본뜬 민간 중심의 의료체계가 이식되며 조산원이나 산과 병원 또한 민간 시설 위주로 늘어났다. 산업화 초기 보건의료의 공적 자원이 가족계획사업에 대부분 집중되면서 피임 관리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데 반해, 안전한 분만과 소아 의료를 뒷받침할 공공 기반 투자는 부족했다. 그 결과 2022년 기준 전국 250개 시군구 중 108곳(43.2%)이 ‘분만 취약지’가 되었고, 산전 진찰과 분만을 전적으로 산과 전문의에게 의지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지방의 분만 기관은 의료진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전 검진을 받느라 멀리 이동해야 하고 몇 시간씩 의사의 진찰을 기다려야 하며 결코 편안하지 않은 제왕절개분만까지 겪은 여성에게, 또는 그 주위 여성들에게, 임신과 분만은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한때 개업 조산사와 지도 의사가 협력했던 것처럼 필수 산과, 주산기 서비스에서 숙련된 조산 전문 인력이 산전 관리와 분만의 일부 기능을 분담하는 체계를 재현하는 일은 이 공백을 해소하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보다 많은, 세심하게 훈련된 인력이 임부와 신생아를 돌볼 수 있게 된다면 안전과 효율 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가 지향하는 ‘긍정적 출산 경험’을 갖춘 여성 중심의 분만 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별도의 산과 전문 인력을 키워내기 위한 투자를 늘리는 것은 쉽지 않은 정치적 결정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자원을 집중할 전문 조산 인력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단순한 의료의 연대기가 아니다. 왜 가정 분만에서 병원 분만으로 이동했는지, 왜 조산사를 통한 산전 진찰과 분만이 자리 잡지 못했는지, 왜 출산 장려 정책이 기대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했는지를 물으며 국가, 가족, 여성, 의료전문직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생애주기의 여느 선택과 마찬가지로, 출산을 할 것인지, 출산을 한다면 어디서 누구의 도움을 받아 할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각자에게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마침 그러한 선택이 피임을 장려하는 국가의 정책과 일치했기에 그 성과가 배가되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 임신과 출산을 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는 한, 인구 정책이든 저출생·고령화 대책이든 국가가 의도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지난 100여 년간의 짧은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 이 책은 대우재단 학술연구지원 사업 논저 부문에 선정되어 연구 및 출간 지원을 받은 저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