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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시작 글쓰기를 허락하라 귀 기울여 듣기 시간이 없다는 거짓말 선로 깔기 나쁜 글쓰기 글쓰기가 있는 삶 기분 드라마 분노의 벽 내 경험을 믿기 구체적으로 쓰기 경험의 집합체 내면의 우물 스케치하듯 쓰기 외로움 자기 삶의 증인 왜 우리는 아무 데서나 쓰지 못할까? 연결되기 열린 채널 되기 통합하기 신뢰성 장소의 힘 행복하게 쓰기 작가로 성공할 확률 진실할 것 취약함의 용기 매일 쓰는 삶 목소리 라이브 발로 뛰기 수행 내 글 지키기 듣기 글을 쓰고 싶지만… 드라이브 뿌리 내리기 인도받기 소소한 요령 위험 부담 미루기의 유혹 물속으로 뛰어들기 쓸 권리 추천 도서 |
Julia Came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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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을 쓸 때 지나치게 신중하다. 너무 제대로 쓰려고 한다. 똑똑해 보이려고 한다. 그렇게 애쓴다. 글은 너무 애쓰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잘 쓰인다. 그저 종이 위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자신을 풀어놓을 때 더 잘 쓰인다. 나에게 글쓰기는 좋은 잠옷 한 벌과도 같다. 편안하다. 지금 우리 문화 속 글쓰기는 군복을 갖춰 입는 경우가 많다. 문장들이 질서 정연하게 일렬로 행진하는 예의 바른 기숙학교 학생들처럼 보이길 원한다.
--- 「시작」 중에서 자기 자신을 잊으면 글쓰기가 쉬워진다. 우리는 군인처럼 뻣뻣하게 서서 ‘나’라는 주어가 나올 때마다 자아 전체를 욱여넣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잊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그저 작가로서 편안히 자리 잡는다면 글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오게 된다. 자의식 강한 작가의 자리에서 물러나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될 때 우리는 글을 더 잘, 수월하게 쓸 수 있다. --- 「귀 기울여 듣기」 중에서 글쓰기에 몰입하다 보면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잘 알게 된다. 글쓰기는 자주, 구체적이고 정기적으로 실천할수록 수월해진다. 주말에만 집수리할 시간을 내는 게 아니라 평소 자주 못을 박다 보면 요령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글쓰기가 주말에 시간을 내야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작가다운 재주를 발휘해 종이 앞에 앉아 내면의 수리를 시작한다. 격렬한 고통을 들여다보기 위해, 분노나 열정, 원한, 제안, 특히 사랑 등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글쓰기를 시도한다. 연애편지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감정의 힘이 글을 쓰도록 우리를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며 편지를 쓴다.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자기 자신을 허락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고자 한다면 알 수 있다. 글을 구체적으로 쓴다는 건 평범한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표현한다는 의미다. 그냥 “난 괜찮은 것 같아”라고 쓰는 대신 “난 그게 썩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끔찍하지도 않아. 실망하고 체념했어. 우울감에 빠져들고 있어. 어서 다 지나가길 바라고 있어”라고 쓰는 것이다. --- 「구체적으로 쓰기」 중에서 디테일을 쌓는 것,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 글을 문맥에 맞게 정확히 배치하려는 의지, 이 모든 게 독자와 긴밀히 연결되는 글을 만든다. 어쩌면 더 중요하게는 이 모든 게 작가와 긴밀히 연결되는 글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의 경험을 정확하고 친밀하게 명명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의 영역이 되고 우리가 실제로 머물렀던 공간이자 우리의 감정이 담긴 장소가 된다. 얽혀 있는 디테일 아래에 흐르는 깊은 감정과 접촉하게 되면 우리 자신과 독자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는 글을 쓸 기회가 생긴다. --- 「장소의 힘」 중에서 글을 쓰면서 우리는 삶이 나아갈 방향을 그려보고 결정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희망과 꿈을 종이에 솔직히 적어보면서 스스로 명확해지고자 한다면 삶의 혼탁함은 가라앉기 시작하고 자신의 진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글쓰기는 연습장이다. 우리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 용감해지는 법을 가르쳐준다. 열린 마음, 배려, 충실, 기지 그리고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 가르침을 실천한다면, 상상력으로 점과 점을 연결한다면 우리는 지금껏 겪어온 것보다 크고 완전한 인간으로 자기 자신을 그려보기 시작한다. --- 「취약함의 용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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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불태우자. 고상한 동기 따위는 잊어라.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구미를 당기는 은밀한 즐거움, 쓰지 않을 수 없는 단어들에 몸을 맡겨라.” 줄리아 캐머런은 글쓰기를 소수의 재능 있는 사람만이 수행하는 전문적인 활동으로 보지 않는다. 아이는 말을 배우자마자 눈앞의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새롭게 익힌 단어를 금덩이처럼 만지작거리며 자기 것으로 만든다. 세상을 언어로 붙잡고 표현하려는 욕구는 이처럼 인간에게 본래 주어진 본성이다. 그러나 학교와 사회의 평가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언어의 즐거움보다 규칙을 먼저 배우고,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 ‘틀리지 않는 법’을 익힌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를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일로 여기기 시작한다. 저자는 우리가 종이 앞에서 얼어붙는 이유가 능력 부족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글을 쓰기도 전에 ‘진정한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출간하고, 글로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만 작가라 불릴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글쓰기는 한없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 된다. 초고의 단어 하나하나가 잘 다듬어진 보석처럼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더해진다. 하지만 작가라는 자격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소설을 쓰는 일이 아마추어 목수가 책장이나 탁자를 만들어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면? 출간이나 심사를 목표로 삼지 않고, 순전히 창작의 짜릿함과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해 글을 쓴다면? 저자는 ‘작가’라는 무거운 호칭을 잠시 지우고, 관찰하고 듣고 적어 내려가는 본래의 행위로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작가란 자격이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이름이다. 이 책의 원제인 ‘The Right to Write’에는 ‘쓸 권리’와 함께, 태어날 때부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라는 의미가 포개어져 있다. 우리는 모두 언어를 지니고 태어났으며, 따라서 자기 삶과 감정을 자기 언어로 표현할 권리도 타고났다. 『나를 위해 쓸 권리』는 글쓰기를 전문가의 영역에서 삶의 영역으로, 재능의 문제에서 권리의 문제로 옮겨놓는다. “글은 누구나 스스로 조제해 복용할 수 있는 약이다.” 자기 삶의 증인이 되는 순간, 글쓰기는 삶을 바꾼다 『나를 위해 쓸 권리』 가 다른 작법서와 가장 뚜렷하게 갈라지는 지점은 글쓰기를 작품 생산의 기술이 아니라 자기 삶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데 있다. 줄리아 캐머런에게 쓰는 일은 단순히 경험을 문장으로 옮기는 행위가 아니다. 자기 삶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동안 무시하거나 왜곡해온 감정을 정확히 명명하며, 스스로가 겪은 일을 자신의 언어로 증언하는 일이다. 저자는 오랜 시간 학생들과 함께 글을 쓰며 그들의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거듭 목격했다. 수줍고 소심했던 사람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과장과 허풍에 기대던 사람이 비대한 자아를 내려놓았다. 어떤 사람은 더 깊은 관계에 마음을 열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해치는 관계에서 빠져나왔다. 직업과 정체성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었다. 글쓰기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견딜 수 없는지 알려주며, 자기 삶의 변두리로 물러나 있던 사람을 다시 삶의 중심으로 불러들인다. 책에는 글쓰기와 삶이 맞닿는 다양한 장면이 등장한다. 그 장면들을 통해 저자는 분노를 외면하지 않고 벽 너머의 진실에 접근하는 법, 외로움을 창작의 고립과 구분하는 법, 일상의 구체적인 감각을 기록해 경험의 집합체를 만드는 법, 자신에게 안전한 독자를 골라 아직 연약한 글을 보호하는 법을 차례로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초고를 보여주는 일을 경계한다. 실제로 한 작가는 경쟁 관계에 있던 동료의 부정적인 충고를 듣고 원고를 서랍에 넣은 뒤, 다시 단편소설을 쓰기까지 15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글쓰기에 필요한 취약함은 우리의 창의성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으므로, 글이 자랄 때까지 안전하게 지켜줄 독자와 친구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우리 삶의 진실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진실에 따라 행동할 힘도 준다. 자신을 존중받지 못하게 하는 관계, 오래된 역할과 습관, 더는 몸에 맞지 않는 정체성을 문장으로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잘 쓴 글은 때로 기분을 좋게 하기보다 불편하게 한다. 자신을 붙잡고 있던 과거의 패턴을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놓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쓸 권리’가 단순히 창작할 자유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작업을 존중할 권리, 인간적으로 존중받을 권리,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을 권리를 비롯한 수많은 권리의 원천이다. 나를 위해 쓰는 순간 우리는 자기 삶을 타인의 해석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바라보고 명명하고 선택하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