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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2006 제4회 올해의 책 후보도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책세상 200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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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박지향

1부 | 식민지하의 일상적 삶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이영훈
하바꾼에서 황금광까지―채만식의 소설에 나타난 식민지 사회의 투기 열풍│한수영
식민지 시기의 생활수준│주익종
일제하 법치와 권력│이철우
식민지 시기의 공업화 재론│김낙년
식민지 근대 도시의 일상과 만문만화│신명직

2부 | 식민지하의 여성의 삶
상하이의 일본군 위안소와 조선인│후지나가 다케시
친일 문학의 또 다른 층위―젠더와〈야국초〉│최경희
교육받고 자립된 자아실현을 열망했건만 : 조선인 ‘위안부’와 정신대에 관한 ‘개인 중심’의 비판인류학적 고찰│소정희

3부 | 식민지하의 지식인의 삶
몰락하는 신생―‘만주’의 꿈과〈농군〉의 오독│김철
‘민족의 힘’을 욕망한 ‘친일 내셔널리스트’ 이광수│조관자
한글 운동과 근대 미디어│이혜령

4부 | 단절과 연속
식민지 말기 조선의 총력전·공업화·사회 변화│카터 J. 에커트
식민지 시기 조선인의 정치 참여―해방 후사와 관련해서│나미키 마사히토
‘신인간’―해방 직후 북한 문학이 그려낸 동원의 형상│신형기
파시즘에서 공산주의로―북한 집산주의 경제정책의 연속성과 발전│기무라 미쓰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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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85).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1977~1982). 한신대학 경제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거쳐 2002년 이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7년에 정년을 하였다. 경제사학회, 한국고문서학회,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이승만학당의 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후기사회경제사朝鮮後期社會經濟史』(한길사, 1988),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공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대한민국역사』(기파랑, 2013)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85).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1977~1982). 한신대학 경제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거쳐 2002년 이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7년에 정년을 하였다. 경제사학회, 한국고문서학회,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이승만학당의 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후기사회경제사朝鮮後期社會經濟史』(한길사, 1988),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공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대한민국역사』(기파랑, 2013), 『한국경제사』Ⅰ·Ⅱ(일조각, 2016), 『반일 종족주의』(공저, 미래사, 2019)가 있다. 청람상靑藍賞(한국경제학회, 1990), 봉래상蓬萊賞(봉래학술문화재단, 2008), 경암학술상耕岩學術賞(경암교육문화재단, 2013), 월봉저작상月峰著作賞(월봉한기악선생기념사업회, 2017) 등을 받았다.

이영훈의 다른 상품

朴枝香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학교(스토니브룩 소재)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프랫대학교와 인하대학교를 거쳐 1992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도쿄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2011~2015), 한국영국사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대통령 소속 인문정신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영국사와 서양근현대사 전공으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집중 연구했으며 지난 10여 년간 영국, 아일랜드, 일본, 한국을 아우르는 비교사적 시각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학교(스토니브룩 소재)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프랫대학교와 인하대학교를 거쳐 1992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도쿄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2011~2015), 한국영국사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대통령 소속 인문정신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영국사와 서양근현대사 전공으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집중 연구했으며 지난 10여 년간 영국, 아일랜드, 일본, 한국을 아우르는 비교사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노력을 진행해왔다. 저서로 Profit-Sharing and Industrial Co-partnership in British Industry 1880-1920: Class Conflict or Class Collaboration?(London & New York),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 『제국의 품격』,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 『클래식 영국사』, 『대처 스타일』, 『슬픈 아일랜드』,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제국주의: 신화와 현실』 등의 저서가 있고, Past and Present, Journal of Social History,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서양사론》, 《역사학보》 등 국내외 저널에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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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지향 외
(가나다 순)
기무라 미쓰히코(木村光彦)_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김낙년_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호_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일영_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철_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나미키 마사히토(竝木眞人)_페리스여학원대학 교수
박지향_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소정희_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 인류학과 교수
신명직_구마모토가쿠엔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
신형기_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우정은_미시간대학 정치학과 교수
유영익_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한국학 석좌교수
이만갑_서울대 명예교수
이영훈_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완범_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과 교수
이정식_펜실베이니아대학 명예교수,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
이철순_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철우_성균관대 법과대학 교수
이혜령_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강사
장시원_한국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전상인_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조관자_주부대학 인문학부 교수
주익종_서울신용평가정보(주) 평가사업본부 이사
차상철_충남대 사학과 교수
최경희_시카고대학 동아시아학과 한국문학 교수
카터 J. 에커트Carter J. Eckert_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
한수영_동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후지나가 다케시(藤永壯)_오사카산업대학 인간환경학부 교수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778쪽 | 1270g | 153*224*40mm
ISBN13
9788970135519

출판사 리뷰

1. 왜 해방 전후사의‘재인식’인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 우리 역사는 반공 이데올로기 중심의 우편향적인 시각에서 서술되어왔다. 1979년 첫 권이 출간된《해방 전후사의 인식》(전6권, 이하《해전사》)은 1980년대 민주화투쟁 시기를 대변하는 책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을 민중사관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학계에서는 민족 지상주의, 민중혁명론 등《해전사》에서 제기된 여러 주장에 대해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왔다. 이번에 책세상에서 출간된《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재인식》)은 그간 학계에 축적된 해방 전후사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해전사》로 대표되는 기존 역사서의 좌편향적인 역사서술을 바로잡고 보다 다각적이고 실증적으로 우리 역사를 논하고자 한다.
《재인식》은 특정 이념을 표방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이분법적 시각이 아니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해방 전후사를 ‘재인식’해보자는 의도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발굴했으며,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일상사의 문제에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머리말을 포함한 30편의 글과 편집위원의 대담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집위원 박지향(서울대, 서양사), 김철(연세대, 국문학), 김일영(성균관대, 정치외교학), 이영훈(서울대, 경제사)을 중심으로 카터 J. 에커트(하버드대학, 한국학), 기무라 미쓰히코(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국제정치경제학) 등의 외국 학자들뿐만 아니라,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 신형기(연세대, 국문학) 등《해전사》의 필자였던 학자들까지 참여함으로써 이념을 떠나 역사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친일과 민족주의의 문제, 일제 잔재의 단절과 연속, 해방 정국과 대미 관계, 분단과 한국전쟁, 1950년대와 이승만 정부에 대한 재평가 등을 논하고 있는《재인식》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보여주는 새로운 연구성과의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기존의 역사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보다 비판적인 안목과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2. 우리 사회의 민족 지상주의에 칼날을 들이대다
《재인식》은 먼저 민족 지상주의가 우리 역사 해석에 미친 폐해를 지적한다. 민족이 다른 모든 가치들을 압도하는 민족 지상주의는 애국심과는 다른,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다. 최근 황우석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민족의 이익을 최고의 선(善)으로 간주하며 이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극렬한 파시즘적 행태를 보인다.
이러한 극단적 행태는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재인식》은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편집위원 박지향은 머리말에서 “우리 민족은 대단히 우수한데 다른 나라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의 비극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말자”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공과(功過)를 정확히 따져 공정하게 봄으로써 과거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인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권은 해방 전사(前史)이며, 2권은 해방 후사(後史)로 구분된다. 식민지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1권은 총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민지하의 일상적인 삶, 예를 들면 당시의 투기 열풍, 1인당 소득과 소비 행태, 근대 도시의 일상문화에서부터 당시 조선인 위안부와 정신대를 중심으로 한 여성의 삶, 친일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는 식민지하의 지식인의 삶, 그리고 식민지 말기 조선의 총력전, 조선인의 정치 참여에서 이어지는 공산주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를 논하고 있는 2권은 냉전 과정 속에서의 한반도 분단 문제와 대외 세력과의 관계 등을 통해 해방 공간의 사회를 살피고, 한국전쟁과 한미동맹, 농지개혁을 둘러싼 신화 해체를 중심으로 당시 농촌 사회의 사회상을 고찰해보며, 해방 이후의 역사를 거시 담론뿐만 아니라 민중의 일상사라는 미시사의 관점에서도 접근하고 있다.

3. 식민지 조선은 근대 사회였는가
《재인식》은 일본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이 조선 사회와 조선인의 삶에 미친 이중적 효과를 추적한다. 일제가 35년간 조선을 지배한 목적은 ‘영구병합’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지배 정책은 ‘내선일체’라고 불린 동화 정책이었다. 조선을 영구히 병합하기 위해 일제는 일본의 법과 제도를 조선에 이식했고, 그 결과 조선은 법치가 성립한 근대 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지배자로부터 동의를 구하지 않은 권력인 식민지 권력의 법치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가 아니었다. 조선인에게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와 기회가 없었다. 총독부는 자신의 전통 사회와 문화를 지키고 나아가 정치적으로 독립하고자 했던 조선인의 자연적 권리를 짓밟았다. 그 점에서 식민지 권력은 생경한 폭력이었다. 이 같은 식민지 권력의 이중적 성격, 즉 한편에서는 근대적 법치로써 사회를 규율하는 정당한 폭력체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의 자연권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부당한 폭력체로서 기능하는 모순적 관계를 잘 지적하고 있는 것이 이철우(성균관대, 법학)의〈일제하 법치와 권력〉이다.
식민지 시기에 관한 인식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점은 경제 영역이다. 1910~1940년간 세계 자본주의가 침체와 위기를 겪는 동안 조선은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고 산업 구조도 근대화했다. 김낙년(동국대, 경제학)의〈식민지 시기의 공업화 재론〉은 이러한 식민지 경제의 양적 성장과 질적 발전을 최근의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식민지 경제의 발전을 조선 경제의 발전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조선의 경제 발전은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유입과 일본으로의 쌀 수출로 가능했고, 따라서 경제 발전은 일본인 자본가와 일본인 지주들을 살찌웠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과실을 모두 일본인이 차지하고 조선인은 거기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주익종(서울신용평가정보 평가사업본부 이사)의〈식민지 시기의 생활수준〉은 이러한 수탈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당시 식민지의 일반 대중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한편으로는 근대 문명이 주는 해방감이나 활기를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문명의 주체가 되지 못한 식민지인의 무기력감과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신명직(구마모토가쿠엔대학, 동아시아학)의〈식민지 근대도시의 일상과 만문만화〉는 ‘만문만화(漫文漫畵)’를 통해 근대도시 경성을 향유하고 있는 경성 사람들의 일상과 이중성을 리얼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경성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수영(동아대, 국어국문학)의〈하바꾼에서 황금광까지―채만식의 소설에 나타난 식민지 사회의 투기 열풍〉은 미두와 금광 개발을 둘러싸고 전국에서 벌어진 투기 붐을 그린 채만식〈탁류〉와〈금의 정열〉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실감나게 재생하고 있다.

4. 과연 친일과 반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는가
식민지의 시공간은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저항, 가해와 피해 등으로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40년을 살았던 수천만 명의 삶을 간단하게 설명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도식이나 잣대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식민지 시기라고 해서 민족적 열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존에 우리는 몇 가지 정형화된 인식틀만으로 일제시대를 이해하고 재단해왔다.《재인식》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한 개인의 삶에서부터 여성, 지식인 등의 의식과 사회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내고 있다.

(1) 이광수, 일본의 힘을 빌려 조선인이 강건한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갈구하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이광수는 대표적인 친일파다. 그러나 조관자(일본 주부대학 인문학부)의〈‘민족의 힘’을 욕망한 ‘친일 내셔널리스트’ 이광수〉는 이광수의 내면에 일본의 힘을 빌려 조선인이 강력한 민족으로 재생하기를 간구한 민족주의가 웅크리고 있음을 읽어낸다. 이광수에게 있어서 일본에 대한 협력과 저항의 문제는 단순히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고려한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선택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열망을 지닌 그에게, 민족은 일제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 존재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근대성 등 일제가 지향하는 것을 추구해야 하는 존재였다. 일제를 적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모범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모순은, 정도의 차는 있었겠지만 그 시대를 산 대부분의 지식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 식민지 시기의 여성
이러한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며 상호 모순적인 뒤얽힘은 식민지 시기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재인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본 논문을 싣고 있다. 소정희(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 인류학)는 산업 혁명과 근대성이라는 역사적 맥락하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능동성과 복잡다단한 삶을 생존 위안부의 증언을 통해 면밀히 분석한〈교육받고 자립된 자아실현을 열망했건만 : 조선인 ‘위안부’와 정신대에 관한 ‘개인 중심’의 비판인류학적 고찰〉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비극이 민족이라는 잣대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성적, 사회적 차별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소정희는 위안부들을 고통과 희생으로 내몬 근원적인 요인은 가정 내 가부장적 권력의 억압이었으며, 그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에서의 좌절과 시련이었음을 정치경제적인 관점과 페미니스트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최경희(시카고대학, 한국문학)의〈친일 문학의 또 다른 층위―젠더와〈야국초〉〉는 친일 문학작품의 전형으로 알려진 최정희의〈야국초〉를 조선인 남성에 의해 배신당한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토로한 것으로 본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을 일본의 ‘성전(聖戰)’에 바칠 것을 서약한다. 그러나 그 서약의 이면에는, 처자식까지 있으면서도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고, 그 결과로 생긴 아이를 책임지지 않으려 한, 한 조선인 엘리트 남성에 대한 복수심이 가로놓여 있었다. 결국 그녀의 친일은 억압적이면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조선의 가부장 문화에 대한 저항과 부정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글 읽기는 식민지 시기의 삶을 민족이라는 단일한 시각과 담론으로 환원해온 연구들이 간과했던 바를 보여준다.

5. 만들어진 역사상을 깨뜨리다
이러한 시각에서《재인식》은 식민지 시기나 해방 공간에 대해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들, 민족 지상주의와 이념 등 특정한 의도에 의해 선택적으로 취합되어 특정한 이미지를 전달하게끔 만들어진 역사상들을 깨뜨림으로써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관을 구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1) 북한의 친일파 청산은 완벽했는가
북한에서는 남한과 달리 ‘친일파 청산’이 완벽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형기(연세대, 국문학)의〈‘신인간’―해방 직후 북한 문학이 그려낸 동원의 형상〉에 따르면, 북한에서 친일파 청산 담론은 새로운 인민을 창출하는 타자화의 기획이었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혁명적 신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지만 그것은 결국 일제가 전시에 내걸었던 ‘혁신적 국민’과 다를 바 없었다. 즉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동원체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지는 않았다.
한편 북한의 경제체제를 다룬 기무라 미쓰히코(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국제정치경제학)의〈파시즘에서 공산주의로-북한 집산주의 경제정책의 연속성과 발전〉은 일제가 전시기에 구축한 통제경제 체제가 해방 후 북한에서 거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계승되었음을 밝힌다. 농업 부문에서는 생산책임제, 강제수매제, 생산반과 증산돌격대 등을 예로 들 수 있고, 공업 부문에서도 일제의 사영기업에 대한 개입 정책이 북한에서 그대로 재판되었다. 이처럼 전시기 일제와 북한 간의 강한 제도적 연속성은 하이에크Friedrich A. von Hayek가 지적한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원리적 유사성을 떠올리게 한다.

(2)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민족 운동이라 할 수 있는가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한 한글 운동은 일제에 저항한 대표적인 민족 운동이며, 조선어 말살정책과 조선어학회 사건은 대표적인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일반적 평가와 달리 이혜령(성균관대, 국문학)은〈한글운동과 근대 미디어〉에서 식민지 권력, 즉 조선총독부가 항상 조선어학회에 적대적이지는 않았다고 밝힌다. 오히려 철자법의 개정과 거기에 근거한 교과서 개정 등 조선 어문 통일에 총독부의 행정력이 지원되었다. 이는 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문자의 유통을 장려한 총독부의 정책적 필요와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의 보급을 위해 학교, 출판 등의 시스템을 필요로 했던 조선어학회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또한 조선어학회는 철자법 통일안을 둘러싼 정음파와의 논쟁 등 다른 단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총독부와 긴밀하게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지금까지 문화적 민족주의 운동으로 이해되어온 한글 운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3) 이태준의〈농군〉은 일제의 만주 침략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작가의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의해 농토를 잃은 조선 농민이 만주 일대를 유랑하며 고난을 겪었던 역사적 사실은 지금까지 한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상식이었다. 이태준의 단편 소설〈농군〉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민족문학’의 대표적 성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김철의〈몰락하는 신생―‘만주’의 꿈과〈농군〉의 오독〉에 의하면〈농군〉은 일제의 만주 경영에 적극 부응하는 ‘국책문학’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만주로 이주한 조선 농군들은 주변의 중국 농민들을 미개인으로 멸시하고 그들의 권리를 무시한다. 중국 농민들과 분쟁이 발생하자 그들은 일본 헌병의 도움을 요청한다. 조선 내의 언론도 무조건 조선 농군의 편을 들어 국내에 거주하는 화교에 대한 물리적 탄압을 유도한다. 그렇게 국경을 넘은 농군들뿐 아니라 국내의 조선인들조차 만주사변 이래 대륙으로 뻗어가는 일본 제국의 뒤를 따라 아류 제국주의자로 변하고 있었다. 김철에 의하면〈농군〉은 당대의 이런 이념을 좇은 작품일 뿐, 식민지적 삶의 모순과 이중성을 드러낸 ‘민족문학’은 아니었다.

6.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식민지 유산은 무엇인가
이 책은 해방 전사와 해방 후사를 연결시키는 인간군, 이를테면 박정희와 같은 인물들이 성장한 사실에서 식민지 유산을 찾아낸다. 카터 J. 에커트의〈식민지 말기 조선의 총력전·공업화·사회 변화〉는 제도와 인적 자본의 측면을 넘어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20세기에 한국인들이 경험해야 했던 일련의 전쟁의 연속선상에서, 식민지 시기와 해방 후를 연결하는 인간군이 성장해왔음을 설명한다. 중일, 태평양전쟁기에 조선에서 전개된 대규모 군수공업화는 조선인 노동자, 기술자, 기업가, 관료 집단을 성립시켰다. 또한 에커트는 정부 주도형이라는 1960년대 이후 경제 시스템의 기원도 총독부가 주도한 식민지 공업화의 경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식민지 권력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주었다는 논리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때 시행된 개발 정책의 기본 개념이 1960년대 이후 한국에서 시행한 개발 정책의 모델이 되었고, 그것이 1960년대 이후 복원 내지 답습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일제가 전시기에 구축한 통제경제 체제가 해방 후 북한에서 거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계승되었음을 밝힌 기무라 미쓰히코의 논문과 함께 남북한 모두에서 식민지와의 단절보다는 연속이 지배적이었음을 보여준다.

7. 한국전쟁과 분단의 책임
지금까지는 이승만과 미군정에 분단 책임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광복 직후 통일의 기회였을 신탁통치안을 남한의 우파들이 반대했을 뿐 아니라, 남한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할 의향을 밝힌 최초의 인물이 이승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정식(펜실베이니아대학 명예교수)의〈냉전의 전개 과정과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스탈린의 한반도 정책, 1945〉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공개된 소련 문서에 의하면, 스탈린은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수립할 의향을 밝히기 전인 1945년 9월 20일에 이미 북한의 소련군정에 북한에 독자적인 행정 기구를 구축하라는 비밀 지령을 내렸다. 또한 김영호(성신여대, 정치외교학)의〈한국전쟁 원인의 국제 정치적 재해석―스탈린의 롤백 이론〉은 소련 문서를 통해 한국전쟁이 미소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기 위한 스탈린의 세계 전략에 기인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스탈린은 중소방위조약을 체결한 다음, 미국의 봉쇄선 38선을 돌파하여 남한을 소련의 영향권으로 편입함으로써 미국의 국제 위신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스탈린의 세계 전략을 부추긴 것은 김일성의 무력통일 의지였고, 여기에 중국의 참전 의지가 전달됨으로써 한국전쟁이 실천에 옮겨진 것이다.


10. 1950년대와 이승만 정권에 대한 재평가
이 책에는 1950년대 여러 방면에서 일어났던 변화들, 그리고 이승만 정권의 정치, 외교, 국방, 경제정책에 관한 논문이 실려 있다. 그 논문들에 따르면 이승만은 확고한 반공-반일주의자였으며 북진통일과 한미방위조약, 수입대체산업화라는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기회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알았던 마키아벨리스트였다.

(1) 이승만 정권을 재해석하다
김일영의〈전시 정치의 재조명―부산정치파동의 다차원성에 대한 복합적 이해〉는 한국전쟁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벌어졌던 ‘정치파동’과 ‘발췌개헌’의 정치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있다. 흔히 그 사건은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시작되는 계기로 알려져 있지만, 김일영은 미국의 전쟁 수행과 동아시아 정책에 대항하는 이승만과 미국의 영향권하에 있는 의회와 야당의 지도자가 정치적 헤게모니를 다툰 것으로 평가한다. 즉 그것이 북진통일과 한미 동맹에 대한 이승만의 열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차상철(충남대, 사학)의〈이승만과 1950년대의 한미동맹〉은 이승만이 한미방위조약을 성취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승만은 약소국 대한민국의 생존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미국과의 방위조약 체결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때로는 미국에 맞서는 전략을 불사하면서 미국을 상호방위조약으로 얽어맸고, 그것이 훗날 고도 경제성장을 확보해준 안보 환경으로 작용했다. 또한 우정은(미시간대학, 정치학)의〈비합리성 이면의 합리성을 찾아서―이승만 시대 수입대체산업화의 정치경제학〉은 1950년대의 경제 회복과 성장을 이끈 이승만의 정치경제학을 다룬다. 우정은은 이승만이 최대한의 달러를 얻어내어, 그것으로 수입대체공업화, 곧 경제 자립화를 이루려 했다고 평가한다.

(2) 1950년대의 재해석
1950년대는 이제까지 생각된 것처럼 어둡고 정체된 시기가 아니었다. 유영익(연세대, 한국학)의〈1950년대를 보는 하나의 시각〉에 의하면 1950년대는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의회정치와 정당정치를 시도하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하고 국민교육을 확대하는 등 나름의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1950년대를 새롭게 보는 것은 이승만 정부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이철순(부산대, 정치외교학)의〈1950년대 후반 미국의 대한 정책〉은1950년대 후반의 변화된 안보상황에 대처하는 미국의 대한 정책과 그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한국 정부와의 긴장 관계를 다루고 있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이 민주주의 원리에 좀더 충실하고 원조 삭감에 대비해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가동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자신이 이룬 것에 도취된 이승만은 완고해져 있었고, 1958년 미국의 원조가 대폭 줄어들면서 경제는 침체하기 시작했다. 민중은 봉기했고, 미국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1. 대담―해방 전후사의 새로운 지평
《재인식》의 취지와 목표는 편집위원(박지향, 김철, 김일영, 이영훈)의 대담을 엮은 제9부〈대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의 역사 인식에서 특정한 ‘이미지’를 걷어내려 한다. 고대사든 일제시대든 해방 이후사든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은 특정한 이미지에 구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규명하고 그 과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주어진 이미지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과 마주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단 하나의 잣대로 환원시키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것이고, 따라서 여러 개의 잣대를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 즉《재인식》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객관적 역사 해석, 일국사적인 관점이 아닌 비교사적인 관점에 의한 역사 인식을 통해 우리 역사에서 다층적이고 다원적이고 복잡한 삶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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