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는 글 006
01. 이사의 이유 015 02. 범위와 경계 029 03. 가게가 문을 열었다. 가게가 문을 닫았다. 045 04. 거래 너머 가게 067 05. 장소의 기억 079 06. 심은 나무 095 07. 이름 짓기 111 08. 야생의 동네 125 09. 이웃이 되려는, 또는 이웃이 되지 않으려는 151 10. 텃밭 성원 173 11. 동물의 집 195 12. 좁은 길, 넓은 길 223 13. 휴먼 스케일, 자본의 스케일 243 14. 광장 사용권 257 15.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라는 말 275 16. 주차 선택 295 17. 전이지대 311 18. 수로 풍경 331 19. 경계 너머 연결 351 20. 사물의 시간 367 21. 소리 391 22. 정착의 이유 407 나가는 글 419 미주 422 |
최성용의 다른 상품
|
‘집이 모여 있는 지역’을 의미하는 ‘동네’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삶의 중심 공간이었다. 그러나 현대 도시인에게 동네의 무게는 예전만 못 하다. 주거와 직장이 분리되어 거주지와 생활지의 불일치 속에 사는 사람이 많아졌고, 직주 분리와는 관계없이 소비와 여가를 위해 동네를 뛰어넘어 더 특화된 지역으로 가거나 아예 집 안에서 해결하는 ‘동네 패싱’이라 부를 만한 현상도 동네 생활시간을 줄이는 데 한몫한다. 집 안팎, 동네 안팎을 연결하는 각종 선을 따라 인간, 물건, 데이터가 손쉽게 이동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동네의 중요성은 줄어든다. 잦은 이사는 동네에 대한 관심과 애정, 소속감을 줄이는 경향을 한층 강화한다. 어차피 곧 떠날 동네에 애정 어린 눈길을 주는 수고를 거둬들인다. 어떤 이에게는 아예 동네가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요즘 동네의 처지다. 하지만 동네의 중요성이 예전만 못 하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여전히 동네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 동네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각자의 ‘우리 동네’가 존재한다.
--- p.30 정부는 사회의 병리로 여겨지는 문제의 해결이나 국민 복리 증진을 위해 각종 기구와 제도를 만들어 세금과 행정력을 투입한다. 거리의 안전을 위해 CCTV를 설치하고, 아이의 양육을 위해 보육시설을 만들고, 시민의 건강을 위해 의료보험 제도를 운영한다. 그렇다면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는 세금과 행정력을 투입할 만한 일일까? 이웃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은 개인 사이의 일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는 사사로워 보이고, 특정 문제의 해결책으로 삼기에 부족하지만, 이웃 관계 안팎의 사람들에게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주어 궁극적으로 사회 병리 현상을 완화하고, 국민 복리 증진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는 무수히 많다. 세금의 관점에서 보아도, 결국 따로 기구와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세금을 줄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거리에 존재하는 이웃의 관계망과 시선은 거리의 안전을 높여준다. 이웃이 서로 아이를 돌봐준다면 공공의 보육시설 설치 압력을 낮출 수 있다. 이웃 간의 소통은 스트레스를 낮춰 의료비에 드는 예산을 아낄 수도 있다. 이웃 사회는 독거노인의 안전망이 되기도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잇따라 발생한 불특정 다수를 노린 ‘무차별 살상’ 사건을 오래전부터 겪어왔던 일본 사회는 사건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개인의 사회적 고립’을 꼽았다.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은 개인의 일만은 아니다. --- pp.167-168 누군가에게 고도제한은 피하고 싶은 규제일 것이다. 김포공항 주변의 고도제한을 완화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고, 최근에는 인천시가 ‘공항 주변 고도제한 완화 방안 수립 용역’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고도제한은 동네를 지금의 모습으로 남겨주는 장치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지켜주는 제도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규제가 반갑다. 문득 궁금해진다. 고도제한을 풀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왜 규제 완화를 원하는 걸까? 더 높은 건물을 짓고 싶어서일까? 높은 곳에서 살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건물의 가치를 끌어올려 더 비싼 가격에 팔고 싶어서일까? 그렇게 경제적 가치를 높인 뒤의 최종 행동은 무엇일까? 결국 팔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주민과 정치인들은 집값을 높여 동네를 떠나려는 사람들인 걸까? --- p.255 코로나19로 동네를 재발견한 것은 아이들만은 아니었다. 매년 4월 초가 되면 사람들은 자동차와 지하철을 타고 벚꽃이 피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진해 여좌천변에 400만 명이, 서울 윤중로에 500만 명이 모여 벚꽃과 사람을 구경했다. 그해는 거리두기를 위해 전국의 유명 벚꽃길이 통제됐다. 벚꽃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사람들은 동네를 둘러보았다. 아파트 정원에도, 동네 놀이터에도, 버스정류장 옆 보도 위에도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벚꽃이 한창이던 때 사람들에게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우리 동네에 벚꽃이 이렇게 많이 있었나?” 동네에서 잠만 자던 어른들의 눈에도 동네가 들어왔다. 먼 곳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동네 산책을 하며 장기전을 준비했다. 코로나 시기 동네 공원에 사람이 부쩍 늘었다. 그래봤자 예전 유명 공원에 비하면 아주 적은 사람들이지만, 동네 꼬마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텅 비어 있던 공원을 사람들이 이제야 발견한 것처럼 발걸음을 했다. 그곳에서 시선을 위로 하면 벚꽃이 핀 자리를, 고개를 숙이면 제비꽃을, 무릎을 굽히면 봄까치꽃을, 코를 땅에 박으면 꽃마리를 만난다. 그 사이를 잽싸게 날아다니는 직박구리와 참새, 꽃들의 수정을 도우며 배를 채우고 있는 꿀벌과 꽃등에까지 볼 수 있다면, 인공의 동네가 생명의 공간임을 알게 된다. 사람이 늘어난 것은 동네 공원만이 아니다. 이동과 집중을 피하다 보니 시내 중심가의 소비가 급감하고, 동네 가게에서의 소비가 증가했다. 손님보다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아 조용했던 우리 집 앞 슈퍼마켓은 코로나 시기에는 북적이며 소리를 냈다. --- pp.404-405 |
|
도시 연구자이자 숲 해설가로 도시와 자연을 함께 살펴온 지은이가 인천 외곽의 한 동네에서 14년을 살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발견한 것을 깊고 촘촘하게 담아낸 본격 동네 탐구서!
“35년 동안 열일곱 번의 이사를 했다. 한 집에 2년 정도 산 셈이다. 그만큼 이사의 이유가 많았다. … 동네 살이 초기에는 2년이 지나면 떠날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27쪽) 우리에게 동네는 무엇인가? 한국인은 10년에 약 3.6회, 일생에 걸쳐 평균 10회 이상, 수도권 거주자 중 한 동네에 거주하는 기간은 평균 6년, 그중 41퍼센트는 2년 이내에 이사한다고 한다(162쪽). 직장, 재개발, 집값, 교육 등 다양한 이유로 이사하는 우리에게 동네는 어쩌면 잠시 머무르다 떠나야 하는 곳이 되었다. 과연 우리에게 동네는 어떤 의미일까? 아파트와 빌라가 있고,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가게가 있으며, 아침이면 직장이 있는 도심지로 가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면 돌아와 잠을 자는 곳, 여가는 다른 지역에서 소비는 온라인으로 해결하고, 교육과 직장을 위해 늘 다른 동네를 꿈꾸는 사람들이 사는 곳. 우리 시대 동네의 자화상이다. 열일곱 번의 이사 끝에 인천의 한 외곽 동네에서 14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동네에 대해서 생각하고 관찰하고 기록한 것들을 토대로 쓴 이 책은 동네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그려내는 무늬뿐만 아니라 가게, 산책로, 광장, 텃밭, 가로수, 공터, 벤치 그리고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주목받지 못했던 나무와 풀, 꽃, 동물과 곤충 등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거의 모든 존재들의 삶과 시간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오랜 시간 관찰하고 기록한 내용, 동네 관련 연구 자료, 역사 자료, 통계, 회의록, 신문기사, 일화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동네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사회와 자연의 변화가 동네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조망하면서 우리 삶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동네 살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책은 사람과 사물 그리고 자연까지 동네 이야기를 구성하는 다양한 성원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아주 깊게, 때로는 아주 촘촘하게 기술한다. 동네의 사회, 문화,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인류학적 동네 보고서이자 폭넓은 시선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자연의 구성원들의 삶을 들여다본 새로운 개념의 동네 탐구생활 이 지구가 인간만 거주하는 곳이 아니듯 동네의 주인공은 사람만이 아니다. 사회, 문화, 역사를 오가며 동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시대 동네의 자화상을 기술하는 이 책은 폭넓은 시선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자연의 구성원들의 이야기 역시 교차해서 풀어놓는다. 여기서 해마다 오월이면 하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 가로수와 지난여름 동네 빌라 필로티에서 새끼를 길러 함께 제주에서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거쳐 호주까지 가서 겨울을 나고 동네로 돌아오는 제비, 아파트 베란다 실외기에 집을 짓고 사는 집비둘기, 오월이면 산란철을 맞아 한강을 거슬러 좁은 농수로를 가득 채우는 잉어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길가 옆 공터의 버드나무와 버려진 주차장 물웅덩이의 소금쟁이와 모내기철이면 산에서 내려와 밤새 울어대는 청개구리, 인간의 손길을 피해 씨앗을 틔우고 자라나는 버스정류장 옆 공터의 버드나무 그리고 가을 아침이면 피워내는 안개와 하늘을 낮게 나는 기러기의 울음소리도 동네 이야기를 만드는 한 가닥 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동네의 풍경과 인상과 냄새와 기억을 만든다. 동네의 시간의 이들 존재로 인해 한층 더 깊어지고 풍성해진다. 기억, 연결 그리고 발견 “코로나19로 동네를 재발견한 것은 아이들만은 아니었다. 동네에서 잠만 자던 어른들의 눈에도 동네가 들어왔다. ‘우리 동네에 벚꽃이 이렇게 많이 있었나?’”(405쪽) 동네의 삶에서 평소라면 잘 드러나지 않는 진실, 즉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힘은 문제가 발생하고, 위기가 찾아오면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팬데믹으로 이동이 제한되고, 거리두기가 실행되자 사람들은 동네를 다시 보고 다시 발견하기 시작했다. 비대면과 온라인 거래가 대세를 이루는 와중에도 동네에서의 소비가 늘고 동네를 오가며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들여다본 것이다. 녹물이 섞인 수돗물 사태는 우리가 마시는 물이 수십 킬로미터를 거쳐서 집안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중국의 비닐 쓰레기 수입 금지 조치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지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 시스템이 하나만 삐끗해도 얼마나 큰 파국이 일어나는지 알게 한다. 신도시 건축을 위한 계양들녘 공사가 큰기러기와 알락도요의 기착지를 뒤바꿔놓듯, 3ㆍ1만세운동 기념관 전시실 개축 공사는 동네 참새를 뿔뿔이 흩어지게 하며, 필로티를 허가한 건축법 개정은 동네 제비의 둥지 짓기에 영향을 준다. 어느 것 하나 홀로인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동네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적인 기억을 담은 그릇이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연의 구성원들과 지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동네는 우리 삶의 공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하나의 우주. 이제 다시 동네를 들여다볼 시간 갈수록 동네의 의미가 축소되고, 획일화되고, 서열화되고 있다. 이웃 관계는 사라지고, 잠 자는 곳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책은 마을 공동체의 복원이나 이제는 잊히고 사라진 과거의 동네 풍경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지금 이 시대 동네의 자화상을 그려낼 뿐이다. 친하게 지내면서 두터운 관계를 쌓았던 이웃은 이사를 가면 관계가 끊어지고, 목례와 눈인사를 나누고 때로 동네사람들을 연결하는 장이 되었던 가게는 폐업과 함께 사라진다. 이 시대 동네에서의 관계는 짧고 일시적이며, 연결은 느슨하고 연약하며, 동네와의 정서적 유대감은 늘 미끄러져버린다. 그럼에도 해마다 오월이 되면 새하얀 꽃을 피워내는 이팝나무 가로수가 편안하고 화사한 분위기를 동네에 뿜어내듯 늘 자리를 지키며 소소하지만 일상을 채우면서 동네를 동네답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을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는 어른과 거리에서 만나 잠시 인사를 나누는 이웃과 물건을 사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가게 점원과 눈이 오면 가게 앞을 쓸어내는 가게 주인과 전깃줄에 앉은 박새가 동네의 시간을 더 깊고 풍요롭게 한다. 가게에서 점원과의 시답지 않은 짧은 대화가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작은 행복감은 지극히 소소하지만 어쩌면 우리 삶의 고립과 단절을 메워주는 접착제 같은 것이다.(69쪽) 동네는 우리가 의식하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들을 지탱하고 채워주는 곳이다. 짧은 인사와 대화가 동네에 사는 동식물에 대한 작은 관심이 동네를 더 깊게 하고 넓게 하며 두텁게 한다. 책은 말한다. 이제 다시 동네를 들여다볼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