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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장 미지의 세계에 부임한 외교관들 1. 대한제국에 부임한 외교관 에드윈 모건과 한국 컬렉션 2.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새뮤얼 버거와 데이비드 딘 러스크 3. 뉴욕에 골동품상을 차린 주한미국대사의 부인 리아 스나이더 2장 한국을 방문했던 최초의 미국인들 1. 조선의 문을 연 해군 제독 로버트 슈펠트와 한국 컬렉션 2. 조선의 풍경을 사진에 담은 ‘보스턴 브라민’ 퍼시벌 로웰 3. 제중원 원장 존 윌리엄 헤론과 그의 유품 4. 스탠퍼드대학의 한국 컬렉션을 만든 목사 헨리 아펜젤러 5. 도난 문화재를 반환한 수집가 로버트 마티엘리 3장 한국의 미를 수집한 미국인들 1. 애나 라이스 쿡과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의 한국 컬렉션 2. 순수한 장인 정신, 크래프트맨십에 가치를 둔 수집가 에이버리 브런디지 3. 외교도 선교도 아닌 ‘선택’으로 이루어진 한국 컬렉션, 메리 버크 4. 보스턴 컬렉션을 만든 보이지 않는 손, 조안 와킨스와 찰스 베인 호이트 5. 하버드 컬렉션의 숨은 기증자들, 필립 호퍼와 덴만 로스 6.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한국 컬렉션의 배후, 로버트 무어 7. 중화풍 건축에 담긴 수집의 욕망, 그레이스 니콜슨 8. 한반도의 영웅들인가 악마들인가, 그레고리 헨더슨, 마커스 쉐바허, 제임스 밴 플리트 4장 미국에 한국의 미를 알린 아트 딜러들 1. 뉴욕으로 간 글로벌 아트 딜러의 명암, 야마나카 사다지로 2. 발굴의 시대에 큰손이 된 마유야마 가문 3. 장부로 읽는 수출 미술 유통의 현장, 사무엘 리 4. 미국 내 최초의 한국 미술 전문 딜러 강금자 5장 한국 미술을 연구하고 세상에 알린 연구자들 1. 한국의 병풍을 세상에 알린 평양 태생의 에블린 매큔 2. 책거리와 그 화가들의 계보를 밝힌 에드워드 와그너와 케이 블랙 3. 한국 미술의 매력을 알린 조자용 6장 미국 소재 한국 미술의 경향과 특징 1. 같은 공방, 같은 작가, 같은 초본을 쓴 이산의 작품들 2. 화이트 큐브 안에 들어간 ‘문화상품’, 수암 한진해 3. 해외에서의 한국 미술 수집 경향 (1), 낙화 4. 해외에서의 한국 미술 수집 경향 (2), 최석환 계열 포도도 5. 해외에서의 한국 미술 수집 경향 (3), 국내외 소장본에 대한 비교 연구의 필요성 7장 미국 내 한국 미술 컬렉션의 활용 및 전망 1. 한국 미술 컬렉션 관련 이슈들 2. 한국 미술 컬렉션의 의미와 가치 지은이의 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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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사절에 병풍을 선물하는 전통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어떤 병풍을 주느냐는 단순한 예의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였다. 러스크에게 준 병풍은 당대에 제작된 ‘동양자수’였다. 버거에게 준 병풍은 장승업의 작품이다. 게다가 감정 첨지와 대통령 인장까지 붙어 있었다. 외교 서열로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다. 그러나 냉전기와 국내 상황을 고려하면 이 차이는 분명하다. 국무장관은 동맹의 대표였고 주한미국 대사는 정권을 인정해준 사람이었다. 박정희에게 누가 더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는 병풍이 말해준다. 버거에게 전달된 병풍은 2014년 유족에 의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이 병풍은 외교 선물 이자 한국 정치사의 증거며 동시에 아름다운 미술품이기도 하다. 냉전의 긴장에 깊이 결부되었던 이 작품은 그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듯 오늘날 뉴욕 한복판에서 말없이 그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다. 미술의 힘이며 역사의 아이러니다. ---p.38 제국주의와 식민지 개척의 시대에 서구가 앞다투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고고 유물과 미술품을 수집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집은 순수한 미적 평가보다는 발견, 정복, 분류의 논리 속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수집 과정에서 윤리적 비위가 자행된 경우도 있으며, 때로 이러한 행위가 서구의 우월성을 강화하는 이론의 근거로 활용되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또한 이들 전체가 세심하게 분류되지 못한 채 미술관이 아닌 자연사박물관, 인류학박물관, 민족학박물관에 수집되어 있다는 점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유물에게 다시 본래의 맥락 안에서 호명될 기회를 부여하고, ‘예술’로 재분류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pp.63~64 호퍼와 로스는 지금까지 한국 미술 수집가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한국 컬렉션은 규모 면에서는 크지 않다. 그러나 총 58점의 유물이 태평양을 건너 이들의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경로와 여정을 상상해보면, 그 이면에는 수많은 개인적 선택과 역사적 조건이 얽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물 하나하나에 얽혀 있을 구구절절한 내력들을 떠올려보면, 그 정성과 시간 앞에서 그저 한량없이 마음이 먹먹해진다. 이 글은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작은 시도다. 잊힌 기증자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한국 미술이 세계로 이동해온 경로를 다시 읽어내기 위함이다. ---pp.161~162 아트 딜러는 단순히 예술품을 ‘상품’으로만 보는 이가 아니다. 성공적인 딜러란 문화의 힘과 자본의 논리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줄 아는 식견 있는 사업가여야 한다. 물론 그 길에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때로는 도굴품 및 도난품에 엮이거나, 불균형한 시장 구조로 인한 복잡한 윤리적 논쟁에 휘말린다. 그럼에도 서구에 아시아 미술을 소개한 딜러들을 ‘문화의 번역자이자 상업적 미학자’로 평가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강금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미국 내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전문성과 신뢰로 승화시킨 개척자였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와 같던 상황에서 한국 미술 전문 딜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만든 선구적 여성 사업가 강금자는 이제 단순한 거래의 기록이 아니라, 한국 미술이 세계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여정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남게 될 것이다. ---p.249. 와그너가 남긴 수백 장의 육필 원고에는 아직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책거리도 화가들의 이름이 남아 있다. 아카이브에는 공개되지 않은 슬라이드 사진과 복사본 이미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예고하는 자료들이다. 한자와 한글을 또박또박 적고, 붉은 표점과 선, 점선, 화살표로 촘촘히 연결한 가계도 수십 장은 그 자체로 집요한 연구의 흔적이다. 2018년 여름, 하버드 아카이브의 종이 박스를 뒤적이며 먼지를 마시던 며칠 동안 나는 십수 년 전 같은 공간을 오가며 연구했을 노학자의 시간이 눈앞에 겹쳤다. 그 축적된 시간 앞에서 문득 한숨이 나왔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한국인보다 더 절실하게 한국의 유산을 붙들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는 싸구려 그림으로 치부되며 주목받지 못했던 책거리 그림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연구했던 이들, 그들이 남긴 것은 단순한 자료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이며, 앞으로 이어질 연구의 출발점이다. ---p.268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조선이 문호를 개방한 이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상실하기까지 20여 년은 한국 미술이 처음 서양에 수집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수집된 한국 컬렉션은 영국의 피트리버스박물관과 빅토리아앤앨버트미술관,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과 피바디에섹스박물관 등에 소장되었다. 이들 기관은 순수 미술만을 수집하는 곳이 아니었다. 인류학, 민족지학, 자연사 등 좀더 넓은 범주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던 기관이었다. 그 결과, 우리 기준에서는 최고 수준의 왕실 유물이 공룡 화석이나 곤충 표본과 함께 자연사박물관에 놓이기도 하고, 반대로 일상용품에 불과해 보이는 물건이 박물관에 수집되는 일도 벌어졌다. 이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기준의 차이’다. 다시 말해, 당시 서구가 아시아를 바라보던 ‘시대의 눈’이 만들어낸 결과다. ---pp.294~295 앞으로도 미국 내 한국 컬렉션은 교포 후속 세대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가진 관람자 누구에게나 교육의 장이자 문화적 접점으로 기능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컬렉션은 국내에서 형성된 장르적 위계와 평가 기준을 상대화하고, 한국 미술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문화와 예술은 전 세계적으로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술계는 그 어느 때보다 ‘한국성(Koreanness)’의 정의를 요구받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서사의 구축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pp.366~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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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는 어떻게 미국의 컬렉션이 되었나?
바다를 건너 세계로 향한 K-아트의 뿌리를 찾아서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K-아트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이 책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약 100년 동안 한국 미술이 미국으로 건너가 컬렉션으로 자리잡은 과정을 추적한다. 대한제국의 외교 예물에서 선교사·의사·군인·여행자의 수집품, 일제강점기 일본 골동품상의 거래, 해방 이후 미군과 외교관의 개인 컬렉션, 전문 수집가와 한국계 딜러의 활동까지, 작품 뒤에 가려진 사람의 선택과 욕망의 역사를 복원한다. 저자 김수진 교수는 수집가·딜러·기증자·큐레이터·연구자의 기록과 작품의 이동 경로를 연결해, 미국인이 한국의 미를 어떻게 발견하고 선택하고 재해석했는지 보여준다. 동시에 국외 컬렉션이 작품의 제작 연대를 밝히는 기준이 되고, 국내에서 잊히거나 낮게 평가된 미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자료임을 입증한다. 또한 약탈과 반출, 환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수집의 역사를 드러내며, 출처와 소유, 국적과 문화적 번역의 문제를 질문한다. 흩어진 한국 미술의 흔적을 다시 연결함으로써 지금의 K-아트로 이어진 오래된 교류의 역사와 세계 속 한국 미술의 미래를 함께 조망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K-아트 그보다 먼저 바다를 건넌 한국 미술의 역사 오늘날 한국 미술은 ‘K-아트’라는 이름으로 세계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 미술이 세계와 만난 역사는 최근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조선의 병풍과 회화, 도자기와 공예품은 외교 선물과 여행의 기념품, 거래와 수집의 대상이 되어 태평양을 건넜다. 미국의 박물관과 대학, 개인 컬렉션에 자리잡은 이 유물들은 한국 미술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초기의 흔적이다. 『수집된 한국』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약 100년 동안 미국 내 한국 컬렉션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오늘날 K-아트의 세계적 확산 이전에 존재했던 오래된 문화 교류의 역사를 복원한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유물의 목록이 아니다. 하나의 병풍이 누군가에게 외교 예물로 전달되고, 한 수집가의 집을 거쳐 후손에게 상속된 뒤, 다시 박물관에 기증되기까지의 긴 여정이다. 그 과정에는 한국을 찾은 외교관과 선교사, 의사와 군인, 여행자와 학자가 있었고, 한국에 오지 않고도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와 이를 연결한 딜러가 있었다. 이들의 선택이 축적되어 오늘날 피바디에섹스박물관, 보스턴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하버드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 등에 한국 컬렉션이 만들어졌다. 『수집된 한국』은 지금 세계가 발견한 한국 미술의 뿌리를 찾아, 작품보다 먼저 국경을 넘었던 사람과 관계의 역사로 독자를 안내한다. 외교관·선교사·의사·군인… 낯선 조선을 수집한 최초의 미국인들 한미 수교 직후 조선을 찾은 미국인들은 대부분 일반 관광객이나 전문 미술 수집가가 아니었다. 외교관과 선교사, 의사, 교육자, 군인, 정보원처럼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조선 왕실로부터 병풍과 공예품을 선물받기도 했고, 지인을 위해 물건을 대신 구입하거나 자신의 체류 경험을 기념하기 위해 유물을 모았다. 때로는 박물관과 연구기관의 요청을 받아 민속품과 생활용품을 대량 수집했다. 그 결과 이들이 조선을 떠날 때 함께 바다를 건넌 물건들은 미국 내 초기 한국 컬렉션의 토대가 되었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의 한국 미술 수집은 한미 수교 이듬해인 1883년 시작되었다. 당시 관장 에드워드 모스는 조선에 직접 들어오는 대신 현지 외교관과 사업가를 통해 유물을 확보하는 ‘대리 수집’을 활용했다. 대한제국에 부임한 외교관 에드윈 모건의 컬렉션은 그의 사후 후손들에게 전해졌고, 그중 일부가 지속적으로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에 관여한 로버트 슈펠트, 조선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긴 퍼시벌 로웰, 제중원 원장 존 윌리엄 헤론, 정동교회를 설립한 헨리 아펜젤러의 행적 역시 한국 미술의 이동과 연결된다. 저자는 이들을 한국 문화를 사랑한 선의의 수집가로만 미화하지 않는다. 그들의 수집에는 호기심과 애정뿐 아니라 외교와 선교, 정보 수집과 제국주의적 시선이 함께 작동했다. 따라서 초기 한국 컬렉션은 개인적 취향의 결과인 동시에, 당시 한국과 미국 사이의 불균등한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수집은 취향이자 권력이다 사람과 욕망으로 다시 쓴 미술사 『수집된 한국』의 가장 큰 특징은 유물 자체보다 그 유물을 소유하고 이동시킨 사람에게 주목한다는 데 있다. 미술품은 숭고한 창작의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취향과 권력, 교환과 과시의 대상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작품을 모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안목을 드러내기 위해 아시아 미술을 수집했다. 또 어떤 사람은 선교와 외교 활동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혹은 순수한 장인 정신과 조형미에 매료되어 한국 미술을 선택했다. 애나 라이스 쿡은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의 한국 컬렉션 형성에 기여했고,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작품에 담긴 ‘크래프트맨십’을 중시하며 한국 미술을 수집했다. 메리 버크의 컬렉션은 외교나 선교라는 공적 임무가 아니라 개인의 독립적인 선택과 안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안 와킨스와 찰스 베인 호이트, 필립 호퍼와 덴만 로스, 로버트 무어와 그레이스 니콜슨의 사례는 하나의 박물관 컬렉션 뒤에 수많은 기증자와 조력자, 조언자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들을 영웅적인 ‘발견자’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수집에는 문화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있었지만, 동시에 이국적인 대상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서구 중심적 분류, 민족지학적 시선도 존재했다. 따라서 수집의 역사는 아름다운 작품을 구해낸 미담인 동시에, 누가 타인의 문화를 소유하고 이름 붙일 권리를 가졌는지를 묻는 권력의 역사다. 이 책은 찬양이나 단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수집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의 미’를 알린 보이지 않는 손, 딜러 미술품은 저절로 국경을 넘지 않는다. 누군가는 작품을 발견하고 값을 매기며, 구매자를 찾아 소개하고, 운송과 거래를 성사시킨다. 『수집된 한국』은 기존의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아트 딜러와 골동품상의 역할에도 주목한다. 작품의 제작자뿐 아니라 누가 그것을 선택하고 유통했는지를 살펴보아야 미국 내 한국 컬렉션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을 중심으로 활동한 일본 골동품상들이 한국 미술의 미국 유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야마나카 상회와 마유야마 가문은 보스턴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미국의 주요 기관과 거래하며 고려청자와 나전 공예, 민화와 병풍을 서구 시장에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소개된 한국 미술에는 일본 딜러들의 취향과 분류 방식이 깊이 개입했다. 한국 미술이 중국이나 일본 미술의 주변부로 이해되거나, 특정 장르만 ‘한국적’인 것으로 선택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유통 구조가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한국전쟁과 미군 주둔을 계기로 외교관과 군인, 군무원을 상대로 한국 미술품을 판매한 사무엘 리의 장부는 당시 수출 미술시장의 구체적인 현장을 보여준다. 미국 내 최초의 한국 미술 전문 딜러 강금자는 전문 컬렉터와 박물관을 연결하며 한국 미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확산시켰다. 이 책은 딜러를 단순한 중간 상인이 아니라, 무엇이 미술로 인정되고 어떤 작품이 박물관에 들어갈지를 결정한 문화적 번역자이자 가치 생산자로 조명한다. 단순히 ‘되찾아야 할 대상’을 넘어 미술사를 다시 쓰는 해외 소재 한국 예술품들 국외 소재 문화유산은 흔히 ‘돌아와야 할 유물’이라는 관점에서만 이야기된다. 그러나 『수집된 한국』은 미국 내 한국 컬렉션이 단순히 해외에 흩어진 유물이 아니라, 한국 미술사를 새롭게 밝히는 핵심 연구 자료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선의 전통 회화와 공예품 가운데에는 작가나 제작 연대가 기록되지 않은 작품이 많다. 이때 외교관이나 선교사가 작품을 받은 시점, 한국에 체류한 기간, 박물관에 기증한 날짜가 확인되면 그 작품이 적어도 어느 시점 이전에 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에드윈 모건의 후손이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기증한 〈곽분양행락도〉는 모건이 한국을 떠난 1905년 이전에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동종 작품의 편년을 위한 기준작이 된다. 또한 해외 컬렉션에 남은 사진과 기록은 병풍이나 공예품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복원하는 자료가 된다. 저자는 동일한 초본이나 같은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국내외 작품을 비교하며, 흩어진 작품들이 서로의 제작 시기와 계보를 밝혀주는 관계에 있음을 설명한다. 낙화(烙畫)와 최석환 계열의 포도도처럼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장르가 해외 수집가들에게 선호된 현상도 분석한다. 작품이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하면서 본래의 맥락을 잃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새로운 장소에서 보존되고 연구되며 다른 가치를 획득하기도 했다. 이 책은 ‘반출된 유물’을 ‘되찾아야 할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국내외 미술사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연구 자원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세계 속 한국 컬렉션을 어떻게 연구하고 활용할 것인가 이 책의 여정은 과거의 수집사를 정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국외 한국 컬렉션을 오늘날 어떻게 연구하고 활용할 것인지 묻는다. 미국의 박물관에는 오랫동안 중국이나 일본 작품으로 잘못 분류되었다가 최근 연구를 통해 한국 미술로 국적이 변경된 유물들이 있다. 이는 식민지 시기 형성된 동아시아 미술의 분류 체계와 한국 미술 연구의 공백이 여전히 박물관의 명칭과 설명에 남아 있음을 뜻한다. 작품의 출처, 즉 프로비넌스를 면밀히 조사하고 소장 이력을 바로잡는 일은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문화재 반환 문제 역시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약탈과 도난으로 반출된 작품은 적극적인 환수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외교 예물이나 합법적인 거래, 개인 간 증여와 기증을 통해 이동한 유물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다룰 수는 없다. 저자는 소유권의 귀속만을 따지기보다 작품의 이동 경로를 투명하게 밝히고, 현지 박물관과 국내 기관이 연구·전시·교육을 위해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외 기관에 소장된 한국 미술은 현지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문화적 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이동이 어려운 작품은 디지털 기술과 복제 전시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칠보산도〉의 진품·재현품·미디어 콘텐츠를 연계해 소개한 사례는 국외 문화유산 활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수집된 한국』은 흩어진 작품을 무조건 국내로 되돌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확한 연구와 열린 접근, 공동 전시와 디지털 활용을 통해 세계 곳곳의 한국 컬렉션을 하나의 확장된 문화유산으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제안하는 미래다. |